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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헌의 브러시백] kt 강장산, 세 번의 수술 끝에 마운드에 서기까지

바람돌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7.06.10 08:33:49
조회 987 추천 40 댓글 14

kt 위즈 ‘이적생’ 강장산은 야구선수로는 아주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2008년 동국대학교에 입학해 2013년까지, 무려 6년 동안 대학 야구 선수로 활약한 이력이다. 중간에 입대를 해서도, 잠시 야구를 그만뒀기 때문도 아니다. 3학년 때 처음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받은 뒤, 2년간 세 차례나 수술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부상과 수술, 부상 재발과 재수술이 반복되며 동기들보다 훨씬 늦게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젊고 건강한 선수를 선호하는 프로야구에서 강장산은 핸디캡이 많은 선수다. 여러 번의 수술 경력과 많은 나이, 군 미필이란 조건은 다른 선수들과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강장산은 주위의 부정적인 평가에 더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 일을 미리부터 염려하지도 않는다. 대신 오늘-여기 마운드에서 일구일구 온 힘을 다해 던지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로운 둥지 kt는 많은 기회를 원하는 강장산에게 잘 어울리는 팀이다. 투수진 보강이 절실한 kt 역시 강장산의 활약이 필요하다. 이적 후 첫 등판에서는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부진했지만, 이후 2경기에선 각각 1.2이닝 무실점으로 좋은 투구를 펼쳤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안정적인 피칭으로 kt가 기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강장산이다.
 
오랜 시간 부상과 수술로 힘든 시간을 보낸 강장산. 앞으로의 야구 인생은 행복한 일로 가득하길 바라는 그를 ‘엠스플뉴스’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6일 강장산의 새 홈구장인 수원 케이티위즈 파크에서 진행됐다.
 
“오늘 못 던지면 끝이란 부담을 벗었다”
 
0000011557_002_20170610073546860.jpg?type=w540NC 시절 강장산(사진=NC).

이제는 NC가 아닌 kt 위즈 강장산이 됐습니다. 새 유니폼은 마음에 드나요.
 
NC 있을 때는 경기에 자주 나가지 못했잖아요. kt에 온 뒤 2경기에 나갔는데(8일 포함 3경기) 생각보다 게임에 많이 나갈 수 있어서 좋습니다. 어쨌든 투수는 마운드에 올라가 던져야 결과가 나오는 거니까요. 우선 지고 있는 경기라도 자주 나가서 경험을 쌓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나중에는 이기는 경기에도 나가는 투수가 될 수 있잖아요. 그런 바람을 갖고 열심히 던지고 있습니다. 
 
혹시 발표가 나기 전에 트레이드될 것 같다는 예감은 없었나요.
 
트레이드 소식을 고양 다이노스 경기가 끝난 뒤 동료들과 햄버거 먹으러 갔다가 들었어요. 구단에서 트레이드됐다며 구장에 오라고 하더라구요. 햄버거가 얹히는 것 같았죠. (웃음) 전혀 생각지도 못했어요. 올해 2차 드래프트가 있다 보니, 구단에서 나를 안 묶으면 어쩌나 걱정은 했지만 트레이드까진 생각을 못 했죠.
 
NC는 1군 마운드 경쟁이 굉장히 치열한 팀입니다. 반면 kt는 아직 투수력에는 여유가 없는 편이구요. 개인적으로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는데요.
 
사실 트레이드 직후에는 그런 생각보단,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라커룸에서 짐을 빼는데, 4년이나 NC에 있었는데도 유니폼 빼고 지급품 빼고 하니까 트렁크에 넣을 제 물건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그게 너무 아쉬웠어요. 트레이드 이후 주위 분들 대부분이 ‘축하한다’고 말씀하실 때도 ‘이게 축하할 일인가’ 반신반의한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kt에 와서 마운드에 오르고, 원정을 함께 다니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어떻게 바뀌었나요.
 
kt라는 팀의 분위기가 NC와는 또 다르단 걸 알게 됐죠. NC는 매년 상위권에 오른 팀이고 투수층이 두텁잖아요. 그래서 확실한 필승조가 아니면 매 경기가 살얼음판이었어요. 한번 못 던지면 한 발 뒤로 가고, 두 번 못 던지면 언제든 내려갈 준비를 해야 하죠. kt는 분위기가 좀 달라요. kt에 온 뒤 첫 등판 때 정명원 코치님이 마운드에 올라와서 처음 한 말씀도 ‘편하게 해’ 였어요. 두 번째 등판에서도 앞의 이상화 형이 남긴 승계주자를 홈에 들여보내서 너무 미안하던 차였는데, 정 코치님이 올라오셔선 ‘점수 다 줘도 되니까 편하게 던지라’고 하시더군요. 여기에선 오늘 못 던지면 끝이라는 부담감을 벗고, 조금 더 마음 편하게 제 공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아요.
 
kt에는 NC 시절부터 알던 선수와 코치도 많잖아요. 동국대를 함께 나온 고영표 선수도 있고, 이광길 수석을 비롯해 NC에서 건너온 코치들도 많아서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런데 아직 kt에 온 뒤 아는 얼굴들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영표는 저랑 동국대 졸업을 같이 한 사이에요. 나이는 제가 두 살 위인데, 제가 대학을 6년 다니는 바람에 졸업은 함께 했죠. (웃음) 영표가 제가 온 트레이드 된 당일 선발투수였잖아요. 그러고는 부산 원정에 따라오질 않아서 못 봤어요. 오늘(6일)에서야 처음 만나서 얘길 해봤어요. 홍성용 선배도 수원 홈경기 끝난 뒤 1군에서 말소돼서 볼 새가 없었어요. 사직 원정 갔는데 아는 선수가 하나도 없더라구요.
 
저런.
 
그런데 저랑 룸메이트가 된 주권이가 저를 잘 챙겨줘서, 권이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권이한테 고맙게 생각해요. 
 
세 번의 수술과 끝없는 재활 터널
 
0000011557_003_20170610073546880.jpg?type=w540세 차례 수술이 남긴 흔적(사진=엠스플뉴스 배지헌 기자).
 
동국대학교 시절까지 강장산은 본명인 ‘강병완’으로 대학 무대를 호령했다. 194cm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50km/h대 강속구는 대학 타자들에게 공포를 주기 충분했다. 강장산 스스로 “고교와 대학 때는 패스트볼만 던져도 타자들이 치질 못했다”고 할 정도로 위력적인 구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3학년 시즌인 2010년 9월 4일, 그해 마지막 대회인 전국대학야구선수권 연세대 전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동국대 시절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4학년이 되면 프로 상위 지명은 떼놓은 당상이라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는데요, 3학년 이후 부상과 수술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으로 압니다. 
 
3학년 때, 2010년이었을 거에요. 2010년 마지막 대회였는데, 대회를 앞두고 팔꿈치가 조금씩 아리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도 공을 던지는 데는 큰 지장이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 날 상대팀이 연세대였고, 신월경기장이었을 거에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연대에 김우석이라는 선배가 있었는데, 타석에서 계속 커트하면서 파울을 잘 만들어 내는 타자였어요.
 
‘용규놀이’를 잘하는 타자였군요.
 
그 형이 하도 커트를 계속하길래, 바깥쪽 코스로 전력을 다해 공을 던졌죠. 그 순간 팔꿈치에서 ‘뚝’하는 소리가 나더라구요. 
 
바로 병원으로 갔나요.
 
아니요. 바로 병원 가서 체크를 받지 못했어요. 한창 대회를 치르는 중이다 보니… 아마추어 야구이고 팀에 트레이너가 있는 게 아니라서 세밀하게 관리를 받지 못했어요. 그러고 난 뒤 10월 말, 날씨가 슬슬 추워질 때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데, 너무 아픈 거에요. 
 
그때는 병원에 갔겠죠.
 
예. 병원에 갔는데 이미 팔꿈치 인대가 다 끊어진 상태였어요. 병원에서는 왜 진작에 오지 않았냐고 난리였죠. 결국 첫 번째 팔꿈치 인대 재건 수술을 받게 됐어요.
 
그 이전에도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한 적이 있나요.
 
그렇진 않아요. 그냥 어느 정도 투수라면 다 느끼는 정도의 느낌을 갖고 던졌고, 그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보통 토미존 수술을 하면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 재활 기간을 거친 뒤 마운드에 복귀합니다. 그런데 수술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수술대에 올랐던 것으로 압니다.
 
예, 제가 첫 수술을 한 게 2011년 1월이었어요. 그리고 재활이 거의 끝날 때쯤인 그해 12월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어요. 
 
토미존 재수술을 한 건가요.
 
두 번째는 관절경으로 뼈를 깎아내는 수술이었어요. 팔꿈치 쪽에 웃자란 뼈를 정리하는 수술을 받았죠. 그리고 다음 해 5월에는 세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았구요.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된 건가요.
 
제가 욕심을 부렸고,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수술을 받고 나서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팀 겨울 캠프에 따라가서 공을 던졌거든요. 
 
세상에.
 
뼛조각 제거 수술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게 문제였어요. 병원에서는 꿰맨 부위 실밥만 풀고 나면 괜찮을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공을 던지고 나니까 너무 아프더라구요. 팔꿈치가 퉁퉁 부어 있었죠. 
 
코칭스태프가 말리지 않았습니까. 
 
정신력이 약해서 그런 거다, 너무 겁을 먹어서 그렇다, 한번 해 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얼마나 아픈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잖아요. 이겨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한번은 아픈 걸 잊으려고, 연습경기를 앞두고 소주 한 병을 원샷을 하고 던져보려 한 적도 있어요. 제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거든요. 그런데도 아프더라구요. 병원에 갔더니 인대가 다시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결국 2012년 5월에 세 번째 수술을 받았습니다.
 
2000년대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수술 세 번에 거의 2년 넘게 재활을 한 셈인데, 지루하고 고통스럽지는 않았나요.
 
사실은 재활 과정보다는, 재활 비용 때문에 힘들었어요.
 
재활 비용이요?
 
너무 갑작스럽게 여러 번 수술을 받다 보니 수술과 재활 비용이 부담이 되더라구요. 사실 저희 집이 그렇게 넉넉한 형편도 아니었고. 그래서 재활 기간 저녁과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재활이 제대로 안 된 것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재활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재활비를 버는 게 주가 되다 보니까. 재활보다 아르바이트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힘들었죠.
 
수술을 여러 번 받은 것만 알았지, 그런 사정까지는 몰랐네요.
 
(갑자기 생각난 듯) 학교 앞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거기 영표가 자주 제 얼굴 보러 놀러 오곤 했죠. (웃음) 제가 전화를 받거나, 볼일이 있어서 나갈 때면 영표가 대신 카운터를 봐 주기도 했어요. 그래서 다른 후배들보다 더 친한 것도 있어요.
 
첫 수술 후 2011년에는 대학야구 선수 명단에서 이름이 사라졌습니다. 그해 학교를 휴학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흔치 않은 일이긴 한데 휴학을 했죠. 사실 저도 그때 공익근무를 하면 어떨까 생각을 하긴 했는데, 팀에서 제게 원하는 기대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쉽게 허락을 안 해주더라구요. 저 역시 다시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휴학 쪽을 택했죠. 지난 일이긴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아쉽죠. 
 
대학야구 기대주 강병완이 ‘강장산’이 된 이유
 
0000011557_004_20170610073546896.jpg?type=w540NC 입단 이후 구단과 인터뷰 중인 강장산(사진=NC).
 
대학 시절까지는 이름이 강병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병완이 아닌 강장산이 되어 있더군요. 이름을 바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몸이 자꾸 아프니까, 이름을 바꾸면 좀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원래 제 이름이 ‘병완’이잖아요. 그런데 발음 때문인지 사람들이 자꾸 병원, 병환, 이렇게 부르고 잘 알아듣지를 못하더라구요. 어머니도 저를 어디 데리고 가면 자꾸 그런 말을 들으니까, 이름 때문에 아픈가 생각을 하셨죠.
 
음.
 
할아버지와 할머니 허락을 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결국 허락을 받고 이름을 지으러 어느 스님을 찾아가 부탁을 드렸죠. 동국대가 불교학교잖아요. 작명소보다는 스님한테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잘 해주질 않더라구요. 남의 이름은 함부로 지어주는 게 아니라고 거절하셔서, 거의 3개월 동안 매주 찾아가서 부탁을 드렸죠. 그렇게 해서 받은 이름이 ‘장산’이에요.
 
강병완, 강장산. 강병완, 강장산.
 
강장산도 발음이 어렵잖아요. 처음 듣는 순간에 ‘이건 아니다’ 생각했지만 무를 수도 없고, 또 이게 저뿐만 아니라 집안에도 좋은 이름이라고 하셔서 고민 끝에 그냥 쓰기로 했죠.
 
길 장 자에 뫼 산 자를 쓰는 것 맞나요?
 
예. 제가 처음에 물어봤어요. 왜 강산은 안 되냐. 그랬더니 불교학적으로 강과 산 사이에 장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시더라구요. 또 ‘장산’을 이름만이 아니라 법명으로도 쓸 수 있다고요. 
 
주위에서는 줄여서 ‘산’이라고 많이 부르는 것 같던데요.
 
최훈재 코치님이 한번은 제게 ‘성이 장씨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제 이름이 장산인줄 아셨대요. 사람들이 하도 산아, 산아 하고 부르니까요. (웃음)
 
지금은 강장산이란 이름이 마음에 드나요.
 
처음 이름을 받고 사흘 정도는 누가 ‘강장산씨’하면 저를 부른 줄도 몰랐어요. 어색했죠. 좀 지나고 나니까, 강장산이 제 얼굴과 몸에는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어요. 뭔가 야구선수 이름 같지 않나요?
 
야구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 같아요. (웃음)
 
지금은 마음에 듭니다. 한자로 쓰기도 편하구요.
 
한동안 대학야구 경기장에서는 스카우트와 기자들 사이에 ‘강병완은 언제쯤 등판할 수 있을까’가 주요 화제였습니다. 거의 2~3년 동안 대회만 열리면 그 주제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강병완이 야구를 그만두고 연예인을 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근거가 있는 얘기였나요.
 
연예인이 아니라 모델 제의를 받은 적이 있죠. 제가 키가 크고 몸이 마른 편이라, 어느 기획사에서 15kg만 더 빼면 모델을 시켜주겠다고 제의해 왔어요. 단칼에 거절했죠. 제가 무슨 모델이에요. 머리가 커서 안 돼요. (웃음)
 
그러다 2013년, 마침내 다시 대학야구 무대에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세 번째 수술과 재활이 성공적으로 잘 이루어진 덕분에요.
 
세 번째 재활을 마치고 2013년 겨울캠프에 따라갔어요. 수술부터 잘 된 덕분이죠. 수술하고 사흘 지났는데 거짓말처럼 팔이 움직이더라구요. 진작 그 병원에서 수술할 걸 그랬다고 생각했어요. 
 
남은 인대가 있나요.
 
이제 없어요. 있어도 또 수술하기는 어려워요. 다시 인대가 끊어지면 이번엔 뼈의 터널이 무너진다고 하더라구요.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런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런 걱정 없이, 그냥 ‘냅다’ 던지는 거죠. 
 
다시 공을 던질 수 있게 됐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합니다.
 
너무 좋았죠. 공을 던지면서 전혀 통증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병원에서도 ‘수술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야구를 그만둘 때까지 어느 정도 통증은 있을 것’이라고 얘길 했어요. 다행인 건 수술 전에 비해 통증이 훨씬 덜하단 거에요. 저에겐 그 정도 통증은 별 게 아닌 게 됐어요. 아프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좀 뻐근하구나, 싶은 정도죠.
 
다 지난 얘기지만,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갔다면 달랐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글쎄요, 제가 그 정도로 야구를 잘했던 건 아니라서요. 그냥 키가 좀 크고 가능성이 있는 정도였지 프로에서 데려갈 만큼 매력적인 선수는 아니었어요. 집에서도 대학까지는 나와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했구요. 후회하진 않습니다.
 
2013년 마운드에 복귀해 다시 강속구를 뿌리며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신인드래프트에선 이름이 불리지 않았죠. 지명을 못 받아서 속상하진 않았나요.
 
드래프트 날에도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모니터로 보고 있는데, 다들 될 만한 친구들, 잘하는 선수들이 지명을 받더라구요. 아, 그런가 보다 하고 컴퓨터를 껐는데 지명이 끝난 뒤에 7개 구단에서 제게 연락을 해왔어요.
 
육성선수로 오라구요?
 
예. 육성으로 자기 팀에 왔으면 좋겠다는 전화였어요.
 
그럴 거면 하위 순번으로라도 지명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요.
 
아무래도 전 수술 경력도 많고, 동기들보다 나이도 두 살이나 많잖아요. 이해합니다.
 
그래도 오라는 팀이 많은 건 좋은 일이잖아요. 자신감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좋게 생각했죠. 제가 원하는 팀에 갈 수 있는 거니까요. 부모님과도 제 진로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다 NC에 입단하기로 했죠.
 
NC를 택했던 이유가 있나요.
 
음, 일단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생팀이고 막 1군에 진입한 팀이었어요. 저는 군 문제도 있고 나이도 많은 편이라, NC에서 바로 승부를 걸어 보자는 생각으로 입단했어요. 그런데 막상 입단해 보니 현실은 마음과는 다르더라구요. 

그래도 그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정말 좋았죠. 처음 받은 등번호가 106번이었어요. 그런데 절 응원하는 몇 안 되는 팬들이 제 유니폼 등번호를 마킹해서 경기장에 오셨더라구요.
 
대단한 열정이네요.
 
저더러 ‘오빠, 이게 숫자가 세 자리라서 마킹하는데 5천 원이 더 들었어요’ 하시는 거에요. ‘내년에는 꼭 두 자릿수 달아주세요’ 라구요. 너무 창피하더라구요. 그때부터 두 자릿수 번호를 달기 위해 더 열심히 했죠. (웃음)
 
강장산, 그의 앞에 펼쳐져야 할 꽃길
 
0000011557_005_20170610073546917.jpg?type=w540kt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강장산(사진=kt).
 
이제는 kt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됐습니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예. 사실 올해는 NC에서 스프링캠프 갔을 때부터 마음가짐이 예년과는 달랐어요. 작년까진 뒷일을 너무 생각했어요. 나중 일을 먼저 생각하고 너무 절박하다 보니 수습이 제대로 안 될 때가 많았죠. 이제는 마음을 내려놨어요. 너무 부담을 갖거나 지나치게 조급해하지 않으려구요. 군대 가기 전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하자는 생각입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진 계기가 있나요.
 
사실 저한테 쏟아지는 평가 중에는 부정적인 얘기가 많잖아요. 나이가 많다, 팔 상태가 좋지 않다, 군대도 아직 안 갔다… 저도 그런 얘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 아플 때가 많았는데, 제 마음을 잡아준 분이 있어요. NC 시절 멘탈 트레이너로 도와주신 우진희 코치님이세요.
 
다른 선수들도 그분께 도움을 받았단 얘길 많이 하더군요.
 
정말 고마운 분이죠. 그분 앞에선 옛날의 제 아픈 기억도 다 털어놓을 수 있어요. 같이 울어주시고, 마음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시고, 정말 멋있고 고마운 분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몸이 아프면 마음도 함께 아프잖아요.
 
그럼요, 어떻게 보면 마음의 아픔이 더 크죠.
 
처음에 야구를 시작할 땐 좋아서 시작한 거죠?
 
네. 원래 선린에서 야구를 하던 사촌 형이 있어요. 그 형 동기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 감독, 코치였거든요. 그 영향으로 야구를 시작했죠. 어릴 때 저는 학원을 다니면 한 달을 좀처럼 넘기질 못했어요. 그래서 부모님은 야구도 그러려니 하셨던 모양이에요. 설마 지금까지 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그렇게 오랜 시간 부상으로 고생했는데.
 
세 번째 수술했을 때는 좀 힘들었어요. 이런 얘길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수술 결정이 난 뒤에 동호대교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본 적이 있어요.
 
저런.
 
부모님께도 말씀을 못 드리겠더라구요. 아르바이트도 더는 못하겠고, 프로 지명도 어려울 것 같고. 너무 절망스러운 마음에 한밤중에 동호대교 보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봤어요. 그런데, 너무 무섭더라구요. 정말 무서워요. 아마 거기 뛰어내릴 용기가 있으면, 무슨 일을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에요. 
 
그 정도로 힘들었군요.
 
그런 저를 누가 보고서 신고를 해서, 경찰서에 가게 됐어요. 경찰들이 ‘왜 뛰려고 했고, 뛰지 않은 이유는 뭔지’ 설명해 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뛸까 생각했는데, 부모님 생각이 나서 하지 않았다고 얘길 했어요. 사실은 무서워서 뛰지 못한 거였지만요.
 
그런 과정을 이겨내고 지금은 프로 1군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야구하는 게 행복일 것 같습니다.
 
행복합니다. 월급을 받으며 야구하는 것도 행복하고, 수원 1군 무대에 와 있는 것도 행복합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지길 바라나요.
 
글쎄요, 저는 먼 미래 계획보다는 프로야구에서 1승을 하는 게 첫 번째 목표에요.
 
10승도 아닌 1승이요?
 
예, 친구들끼리 1승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할 정도로 1승이 간절했어요. 그런데 너무 간절해서 그런지, 1승이 좀처럼 주어지질 않더라구요. 기회는 몇 번 있었는데 운도 따르지 않았고. 우선 1승을 목표로 삼고, 그 이후 계획은 차차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픔이 뭔지 잘 아는 만큼, 훗날에는 지도자를 해봐도 좋을 것 같은데요.
 
예, 저도 먼 훗날에는 지도자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부상 당하고 야구를 못 하는 심정이 어떤지 제가 잘 알잖아요. 지도자를 하면 다른 선수들을 이해하고,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 전까지는, 매일 마운드에서 1구 1구 던지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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