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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조선시대 때 일본과 채결했던 조약들 모음
조선과 일본이 맻은 조약들중 시험에도 많이 나오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조약 8개를 모아봤다.참고로 약조라고 되어있는 것은 근대시대 전에 체결된 조약입니다.1. 계해약조 (1443년) 대표: 조선 (세종) - 대마도주 (이 시절 대마도주 초상화가 없음...) -대마도 정벌 이후 대마도에 정치적 불안으로 다시 왜구가 조선을 약탈하자 체결한 조약이다.-세종대왕 시절 때 체결된 조약이고 이 조약 덕분에 왜구침략이 실제로 감소했다고 한다. 여기에 조선에 왕래하는 일본인의 수, 그들의 체류지뿐만 아니라 연간 무역량까지 규정하였다.대표내용 1. 세견선(무역할 때 사용하는 배)은 50척으로 한다.2. 삼포에 머무르는 자의 체류 기간은 20일로 하고, 상경한 자의 배를 지키는 간수인은 50일로 하며, 이들에게 식량도 배급한다.3. 세사미두는 200석으로 한다. 4.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특송선을 파송할 수 있다.5. 고초도에서 고기잡이하는 자는 지세포만호의 문인(통행이나 여행을 허가하는 인증서)을 받고 와서 어세를 내어야 한다.2. 기유약조 (1609년) 대표: 조선 (광해군) – 에도막부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마도주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체결된 조약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막부를 세우고 여러차례 대마도주를 조선에 보내어 통교 허용을 요청하였다. -일본의 계속된 요청에 조선은 국서를 정식으로 먼저 보내올 것, 왜란 중 왕릉을 발굴한 범릉적을 압송해올 것, 피로인을 송환할 것 등 3대 조건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것을 실제로 하자 조선에서 기유약조를 체결했다.조약내용 1. 대마도주에게 내린 세사미두는 모두 100석으로 한다.2. 대마도주의 세견선은 20척으로 제한하고 특송선은 3척으로 하되, 세견선에 포함시켜 계산한다. 그밖에 사송선을 파견할 경우라도 세견선에 붙여야 한다. 세견선의 비율은 대선 6척, 중선 · 소선은 각각 7척으로 한다.3. 수직인(외국인인데 조선관직을 받은 사람)은 1년에 한 차례씩 내조해야 하며, 다른 사람은 파견할 수 없다. 내조시에 반종인은 평시와 같이 1인으로 한다. 수도서견선인인 겐소와 평경직 두 사람은 일년에 한 차례씩 내조해야 한다.4. 모든 입국왜선은 대마도주의 문인(여행이나 통행을 허가하는 증명서)을 소지해야 한다.5.문인이 없는 자와 부산포 외에 도박한 자는 적으로 논한다. (여기서 도박은 우리가 아는 그 도박 맞다.)3. 강화도 조약 (1876년) 대표: 조선 (신헌) – 일본 제국 (구로다 기요타카) - 조일수호조규라고도 불린다. 운요호사건 이후 체결된 조약이자 조선의 최초로 맻은 근대적조약이라고 한다.- 여기서 부턴 확실히 근대 이후 조약이라 그런가 자료가 많았다. 대표내용1. 조선의 자주국 인정2. 부산, 인천, 원산 3곳 개항3. 해안 측량권 요구4. 개항장에서 일어난 범죄사건은 자국의 법에 의하여 처리한다.(=영사재판권 요구)5. 양국 상인의 편의를 꾀하기 위해 추후 통상 장정을 체결한다.4. 제물포 조약 (1882년) 대표: 조선 (김홍집) – 일본 제국 (이노우에 가오루) - 임오군란으로 일본이 많은 피해를 받자 채결된 조약이다. 대표내용1. 20일 동안 임오군란에 참여한 조선군들을 수색해서 처벌할 것2. 임오군란으로 죽은 일본인들에게 장례를 치러줄 것3. 일본 관리 피해자의 유족 및 부상자들에게 5만원씩 배상할 것4. 일본이 받은 손해 및 공사를 호위한 육, 해군 비용 중에서 50만원을 조선이 부담하여 매년 10만원씩 지불하여 5년 이내에 청산할 것5. 조선은 대관을 특파하고 국서를 보내어 일본에 사죄할 것 5. 제1차 한일협약 (1904년) 대표: 대한제국 (윤치호) - 일본제국 (하야시 곤스케) - ‘조선인은 10%의 이성 90%의 감성으로 살아간다.’ 라고 말한 그 윤치호가 맞다.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러일전쟁 당시에 체결되었다. 대표내용 1. 대한 정부는 일본 정부가 추천하는 일본인 1명을 재정고문으로 하여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 의견에 따라 시행할 것2. 대한 정부는 일본 정부가 추천하는 외국인 1명을 외교고문으로 하여 외부에 용빙하고 외교에 관한 주요업무를 일체 그 의견에 따라 시행할 것.3. 대한정부는 외국과의 조약을 체결하며 기타 중요한 외교 안건, 즉 외국인에 관한 특권 양도와 계약등사의 처리에 관해서는 미리 일본 정부와 협의할 것.6. 을사조약 (1905년)대표: 대한제국 (박제순) - 일본제국 (하야시 곤스케) - 제2차 한일협약이라고도 불린다. 8개의 조약중 가장 유명한 조약일 것이다. - 한국의 외교권을 뺏어간 조약이다. - 고종이 헤이그 특사 파견한 이유가 바로 이 조약 때문이다.- 이토히로부미가 없어서 당황하겠지만 이토는 이 조약을 제시를 했고 대표로 체결한 사람이 하야시 곤스케이다- 참고로 박제순은 을사오적중 하나고 나중에 정미 7조약에도 동의한다. - 당연히 조약의 주 내용도 외교권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대표내용 - 일본정부는 재동경 외무성을 거쳐 앞으로 대한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하며, 일본의 외교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재류하는 한국의 신민 및 이익을 보호한다. - 일본정부는 대한제국과 타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할 임무가 있으며, 대한제국정부는 이후 일본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는 국제적 성질을 가진 어떤 조약이나 약속도 하지 않기로 한다. - 일본정부는 그 대표자로 하여금 대한제국 황제의 궐하에 1명의 통감을 두게 하며, 통감은 오로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하여 경성에 주재하고 대한제국 황제를 친히 내알할 권리를 가진다. - 일본과 대한제국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한 모두 그 효력이 계속되는 것으로 한다. - 일본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7. 정미7조약 (1907년)대표: 대한제국 (이완용) – 일본제국 (이토 히로부미) - 한일 신협약, 제 3차 한일협약이라고도 불린다.- 고종이 헤이그 특사 파견을 발각 당한 이후 체결된 조약이다.- 조약의 주내용은 한국의 입법,사법권 그리고 고등관리 임명을 일본이 가져가는 내용이다. 대표내용 1.대한제국 정부는 시정 개선에 관해 통감의 지도를 받을 것.2. 대한제국 정부의 법령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것.3. 대한제국의 사법 사무는 보통 행정 사무와 이를 구분할 것.4. 대한제국 고등 관리의 임명은 통감의 동의에 의해 이를 집행할 것.5. 대한제국 정부는 통감이 추천하는 일본인을 한국 관리에 임명할 것.6. 대한제국 정부는 통감의 동의 없이 외국인을 고용하지 말 것.7. 1904년 8월 22일 조인한 1차 한일협약 제1항을 폐지할 것. - 참고로 여기에서 말하는 통감은 ‘이토 히로부미’이다. 이후 별도로 각서를 체결하여 한국의 군대마저 해산 당한다.8. 한일병합조약 (1910년) 대표: 대한제국 (이완용) - 일본제국 (데라우치 마사타케) - 드디어 마지막 조약이다. 한국의 주권을 가져가는 조약으로 이 조약을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 일제강점기가 시작된다. 대표내용1. 대한제국 황제는 대한제국 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 또한 영구히 일본 황제에게 넘겨준다.2. 일본황제는 전조에 기재한 양도를 수락하고 전연 조선을 일본제국에 병합함을 승낙한다.3. 일본황제는 황제 · 황태자 및 그 후비와 후예로 하여금 각기의 지위에 적응하여 상당한 존칭 위엄 및 명예를 누리게 하며, 이것을 유지함에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4. 일본황제는 전조 이외의 대한제국 황족 및 그 후예에 대하여도 각기 상응의 명예 및 대우를 누리게 하며, 이것을 유지함에 필요한 자금의 공급을 약속한다.5. 일본황제는 훈공 있는 대한제국인으로서, 특히 표창에 적당하다고 인정된 자에 대하여 영작을 수여하고, 은급을 줄 것이다. 6. 일본정부는 전기 병합의 결과로 대한제국의 시정을 담당하고 같은 뜻의 취지로 시행하는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충분히 보호해 주며, 또 그들의 전체의 복리증진을 도모할 것이다.7. 일본정부는 성의로써 충실하게 신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을 가진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한 조선에 있어서의 일본국 관리로 등용할 것이다.8. 본 조약은 일본황제 및 대한제국 황제의 재가를 받은 것으로서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한다. 이상의 증거로서 양국 전권위원은 본조에 기명 조인한다. - 이후 1965년 한일기본조약때 무효임을 확인된다.- 여기서 나오는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조선총독부 초대 총독이 된다.
작성자 : dnjsxn고정닉
국군에 오토바이전투부대가 없는 이유
그... 군사경찰 MC 애들 말고 "전투부대"로써 오토바이가 왜 없는가 하면이 새끼들의 사례를 보면 됨.제603모터찌클련대 혹은 제603차량화저격병련대 라고해서 6.25때 북한군에 실제로 있었던 오토바이(정확히는 삼토바이) 전투부대였음.얘네들의 역할은 오토바이의 기동력을 활용해 기동부대(105땅크사단)과 함께 적을 추격, 기습, 정찰하는 목적으로 탄생함. 물론 알다시피 우리가 지금 배우는 6.25 관련 전사에서 저새끼들이 무공을 세웠다는 기록은 단 하나도 없다는게 문제임.왜냐고? 다 쳐망했으니까이러한 부대는 모든 나라가 거의 공통적이겠지만, 혼성으로 편제를 하게 됨. 오토바이 혼자서 전면전에서 기동전 수행하는건 미친짓이기 때문에 이 603연대 역시 BA64B 장갑차 1개 중대와 박격포(차량화)가 함께 조직되어서 운영하도록 되어있었음.이 제대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남침과정에서 위에 언급했듯이 후퇴하는 한국군 부대들을 추격하거나, 전차부대를 엄호하면서 기동력을 보완하고, 일부 수색정찰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임. 지금의 기계화보병이랑 일맥상통 한다고 보면 됨. 문제는 당시의 교리상 기계화보병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되어있지 않았고 북한군 자체 깜냥으로도 그걸 운영하질 못 하니까 저런 식으로 기병 혹은 오토바이를 장갑차와 혼성편제해서 기갑수색대처럼 운영하도록 한 것임.물론 1950년대 한국군한테도 개털려서 없어졌음.이 603연대가 개털리는 배경에는 얘네들의 역할이 매우 컸는데,서부전선은 105땅려의 기본 전투단위가 대대급으로 분산되어 마치 지금의 사단 전차대대처럼 인민군 사단에 복종변경되어서 빠르게 진격했지만, 상대적으로 지형이 안 좋은 동부전선에서는 603연대의 경량화와 기동성으로 이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갔는데, 시발 사람도 퍼지는데 삼토바이가 안 퍼지겠냐? 당연히 퍼짐.그리고 저 블루스타 친구들이 인민군 2군단 관하 2사단과 12사단을 개작살내면서 주공부대가 망해버리는 와중에 오토바이랑 장갑차 한줌으로 자칭 기동부대라 칭하던 603연대의 역할은 이 시점부터 무의미해졌음.이게 현대 한반도에서 있었던 처음이자 마지막 오토바이를 주축으로 된 기동전투부대임.2016년도 청와대 모의타격훈련때 적 특수전부대가 퇴출 시 삼토바이를 타고 빤스런치는 장면은 있었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오토바이의 기동성을 활용해 특수전부대원들이 저기 보이는 미쯔비시 SUV랑 같이 퇴출 수단으로써 쓴거지 저거 타고 승차전투나 기동전을 하는 물건이 아니고, 현재 북한에는 소문만 무성한 자전거부대는 당연하고 오토바이도 통상적으로 경무(군사경찰)순찰대 빼고는 공식편제로는 거의 운영하지 않음.옆나라 일본에는 아직 기계화부대와 공정단에 오토바이 정찰부대가 있긴한데, 얘네들 같은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목적성을 띔1. 도보정찰부대에게 기동성을 부여2. 작전지역이 일본열도 관내3. 상대적으로 병력밀집도가 적어서 오토바이로 정찰부대의 기동성을 높이는게 정찰부대 전개속도나 작전반경을 늘리는 점에서 싸게먹힘.이에 따라 오토바이를 위 사진과 같이 장갑차들과 혼성편제해서 정찰부대로써 운영함. 물론 이러한 정찰부대도 체급에 따라 자산이 오토바이, 장갑차, 공중기동으로 세분화된거지 오토바이가 주축은 아님.반대로 현대 한반도는 다음과 같은 문제로 인해 오토바이를 주축으로 한 기동부대가 나오기가 힘듦1. 지형이 씹창2. 적 경보부대 등 대규모 "도보" 침투를 하는 특수전부대 존재3. 적 대규모 화력 및 기갑부대 밀집4. 적이건 아군이건 병력밀집도 자체가 높음. 그리고 이러한 부대들은 주로 기동을 위해 도로나 평지를 이용하므로 오토바이정찰대 보내면 뒤짐.5. 이에 따라 정찰을 위해 오토바이를 놓는 것은 효율성이 떨어짐이와 같은 결론으로 오토바이를 주축으로 한 기동부대는 커녕 정찰부대도 없음.4륜 ATV 있지않냐? 하는데 저거는 저 GOP 같은데서 도로화가 씹창나니까 소차나 사오톤이 해야될 거를 잠깐 땜빵친거고 모든 사단에서 다 운영하는 것도 아님. 또한 그걸 타고 가면서 적과 전투를 수행하는 개념도 아님. 엄밀히 말하면 저 4륜 ATV는 오토바이를 표상으로 한게 아니라미군의 ISV(보병분대차량)과 레저용으로 강원도에서 타는 4륜 ATV의 사이쯤 어딘가 되는 딱 DMZ 작전에서만 쓸만한 경기동정찰차량임.그리하여 낭만 다 뒤진거 같지만 우리나라에는 2륜으로 된 우리가 아는 그런 모습의 오토바이를 적극 활용하는 전투부대가 없음.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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