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인 수트핏은 역대급 수트빨로 인정받는 MB와도 견줄 수 있다.

"인간적이다."

이 말을 듣고 대통령을 떠올려 보라고 하면

좌, 우를 막론하고 제일 많이 거론되는 건 단연 노무현이 아닐까?

이 새낀 대통령이 아니고 연예인을 했어야 된다고 말하는 노무현 추종자도 있을 정도.

옷차림에서도 다분히 느껴지는 그의 인간미, 그리고 그 안에 치밀하게 숨겨진 엣지를 짚어볼까 한다.

젊은 노무현과 스트릿 패션

어릴 때부터 그는 남달랐다. 주변의 친구들은 그 당시 유행에 맞게 반팔 셔츠에 슬랙스,

편한 로퍼와 한손백을 매칭하여 무난함을 연출했지만

노무현은 타고난 패션감각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피케티에 셔츠를 아우터처럼 걸쳐 시원한 느낌을 냄과 동시에

인디고 진으로 다시한번 청량감을, 자칫 잘못하면 언밸런스할 수 있는 레인부츠까지 멋스럽게 연출해 피 끓는 반항아임을 각인시켰다.

표정에서부터 카메라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되는지, 자기가 얼마나 '잘 먹히는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서재에서의 노무현

"아름답다."

외계인이 노무현을 보고 하는 말을 번역한다면, 아마 이쯤 되지 않을까?

편안한 느낌의 그라파이트색 블레이저, 베이지색 잭-필드 팬츠로 연출한 '포멀함',

주황색 타이로 교만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구태어 숨기진 않는 고결한 '자신감',

흰색 양말과 슬리퍼로 '순수함' 또한 '편안함'을 주는 이 코디는

본인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자 국보급 MC, 그리고 부동의 패셔니스타란걸 굳이 입아프게 떠들필요 없게 한다.

나쁜남자 노무현

이 남자는 나쁘다.

본인의 매력을 알면서도, 아무데나, 심지어 미성년자에게도

뚝뚝 흘리고 가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다.

44사이즈의 컴퍼터블함을 좋아하는 그지만 42레귤러 블레이저로 몸의 선을 살리고

하프집업 셔츠로 스포티함을 어필, 하지만 소매를 3센치정도 빼내어

캐쥬얼임에도 그 격을 놓지 않았고

짙은 브라운색의 통이 좁게 떨어지는 슬랙스로 트렌디한 느낌 또한 잡았다.

상의와 톤을 맞춘 스니커즈는 자칫 노해보일 수 있는 코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패션은 20대이면서도, 20대완 다르다.

다듬어지지 않은 듯, 완숙하다.

좆고딩의 그 것과 사뭇 다른, 무심한듯 문 담배는

그 삶의 무게를 안다면 옆의 여자가 20대와 다름을 느꼈는지

이 남자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래서 왜 손에 쥔 꽃을 건네지조차 못하는지 느껴질 것이다.

겸허하지만, 반항적인 죽음

45X30X15의 오동나무 통짜 유골함은, 합판을 쓰는 흔한 유골함과는 다르게

옷을 살 때 항상 재질과 세탁탭을 먼저 살피는, 기본의 충실했던 패셔니스타의 죽음과 어울린다.

음각으로 새겨진 금색의 봉황은, 발망(Balmain)의 쌍독수리티를 오마쥬하여

죽음을 패션의 일부로서 받아들이는, 기존의 틀을 깬 반항적이지만

또한 겸허한 죽음임을 알리는 노무현의 메시지가 아닐까.

누구보다 패션을 사랑했고,

누구보다 인간적인 대통령.

노 무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