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그런 아가씨를 이런 위험한 일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에요"
  번들은 세시저가 눈치가 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들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건 아무 상관 없다는 투로 들렸기 때문이다.


독일 발명가는 번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젊었다. 기껏 해야 서른에서 서넛 더 먹어 보였다. 그는 시골티가 줄줄 흐르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지만 남을 불쾌하게 만드는 성품은 아니었다. 푸른 눈은 수상쩍다기보다는 수줍은 편이었고, 좀 불쾌하게 느껴지는 습관들, 즉 빌이 말했듯이 손톱을 물어뜯는다든가 하는 것은 무엇보다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겉모습은 깡마르고 홀쭉했으며 빈혈기가 있고 허약해 보였다.



말하기 좀 어렵군요. 어떤 대답을 유도하고 싶지 않아서 그럽니다. 이러이러한 것을 눈치 챘느냐고 물어보면, 벌써 상대의 생각을 그쪽으로 유도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그 대답을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너무 큰 부담이 안된다면, 로버츠 박사님, 그날 브리지 게임을 했던 방에 무엇이 있었는지 묘사해 주시겠습니까?




필라르의 붉은 입술 양 끝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올라가자 그 입이 갑자기 잔인하게 변했다. 어린아이나 새끼고양이의 입처럼 잔인하고 탐욕적인,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알 뿐 아직 연민을 모르는 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