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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JPG
1901년부터 시작된 노벨상의 수상자들은 백인 일색이었다. 특히 과학 분야의 경우 편중이 더욱 심했다. 당시만 해도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과학의 발전이 매우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시아 동쪽 끝 섬나라에서 불세출의 천재가 나타난다. <유카와 히데키> 그는 원자핵 속의 새로운 입자인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하는 이론을 세운 업적으로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유카와는 유학 경험이 없는 순수한 일본 국내파라는 점에서 더욱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간 것은 1939년인데, 그때는 이미 중간자 이론으로 유명해진 후였다. 유학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어린 유카와는 일본을 방문하는 외국의 과학 거장들을 보며 과학자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중에는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1922년 초 일본을 방문했는데, 그가 1921년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일본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였다. 따라서 아인슈타인을 맞이하는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도쿄와 나고야, 교토, 오사카 등을 순회하며 강연을 이어갔는데, 관중 속에는 중학생인 유카와 히데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에게 중간자라는 힌트를 준 것은 바로 당나라 이백의 시와 장자의 응제편에 나오는 ‘혼돈사칠규’라는 우화였다. 빛과 그늘, 즉 세월은 천지라는 만물의 숙소를 스쳐가는 과객이라고 읊은 이백의 시에서 그는 시공과 소립자의 관계가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또한 장자의 혼돈사칠규에 등장하는 남해의 임금 숙은 재빠르게 나타나는 것을, 북해의 임금 홀은 재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중간자를 서로 주고받으며 숙이나 홀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면서 서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유카와의 이 같은 기발한 발상을 처음엔 믿지 않았다. 그런데 3년 후인 1937년 중간자로 해석할 수 있는 입자가 실제로 관측됐다. 그리고 1947년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의 세실 파월 연구팀이 높은 고지대에서 장시간 우주 방사선 노출 실험끝에 파이온을 발견한것이다. 이후 유럽의 물리학계에서는 유카와를 보는 시선이 급격히 변화해 그를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연이어 추천하기 시작했다. 노벨위원회는 결국 194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유카와 히데키를 선정했다. 유카와의 수상은 이론 분야의 업적을 잘 인정하지 않는 노벨위원회의 수상 원칙을 최초로 깬 노벨상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은퇴 후에는 여러편의 에세이를 쓰고 물리학 저널 편집하는 일을 했다. 또한 1955년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에 막스 보른을 비롯한 이들과 함께 공동선언자로 이름을 올리는 등 반(反)핵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상으로 모시던 아인슈타인과 함께한 유카와 히데키) (닐스 보어,오펜하이머와 함께) - dc official App
작성자 : 방파제고정닉
대만, 중국이 어선 나포해 발칵! 대응도 못하고 쩔쩔... 충격 반전은?
어젯밤 중국 해경이 대만 어선을 나포해 중국으로 데려가서 대만이 발칵 뒤집힘 어제인 7월 2일, 현지시각으로 오후 8시 10분께 중국 해경선 2척이 진먼다오 근처에서 대만어선 다진만 88호(大進滿88)를 나포해 중국 웨이터우항으로 끌고 갔음 어선에는 대만인 선장 1명과 외국인 선원 5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확임됨 신고를 받은 대만측은 깜짝 놀라서 곧바로 해경 선박을 출동시켰으나 곧바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음 중국 해역 내에서 대치하는데 중국 해경은 7척, 대만은 3척... 속속 중국 함정이 도착하는 상황이라 위험하다고 판단한 대만 함정들은 바로 추격을 포기하고 대만으로 튀었다고 함 이럴 수밖에 없는 게 애초에 수도 상대가 안 됐지만 함선 체급자체가 다르기 때문임 사진에도 나오지만 대만 해경은 600톤급 소형 함정이 대부분이고 최대급이 1000톤짜리였음 최근에 큰맘먹고 4000톤급 운림함을 한 척 도입하기는 했지만 상대인 짱깨해경은 12000톤급만 2척에 3~4천톤급 해경함은 30척 이상을 운용하는 놈들임 짱깨입장에선 주력도 아닌 2~3톤급 몇척만 보내도 대만 해군은 대응할 방법이 없을 수밖에 없음 여튼 이번 일로 대만에선 반중 바람이 일어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대만 어선 다진만호는 진짜 중국 관할 해역에 들어가서 불법 조업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됨 ㅋㅋㅋㅋㅋㅋㅋㅋ 할 말 없어진 대만의 중국 본토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 등은 그냥 어민과 어선의 즉각적인 송환을 촉구하는 선에서 대응중이라고 함 대만 해경에 쫓긴 중국 어민 사망... 전쟁 여론 고조 - 실시간 베스트 갤러리조업 중이던 중국 어민이 대만 해경에 걸려 쫓기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서 양안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 춘절 연휴인 14일 오후, 중국과 인접한 타이완 진먼섬 인근 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조업을 하다 타이완 해경에 발각m.dcinside.com이 사건 이후로 짱깨새끼들 벼르고 있었는데 이번에 빼도박도 못할 건수 하나 잡히니까 바로 행동 들어간 것 같음 전쟁이 겁나서 군사행동 못하겠으면 느그 양안짱깨 해경들끼리라도 한 판 좀 시원하게 붙어봐라 ㅋㅋㅋㅋㅋ
작성자 : 난징대파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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