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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의 허례허식 금지법
허례허식 금지법? 그런 것도 있었음?1969년 3월 5일 대한민국 정부 관보 (제5188호)에 실린박정희 대통령의 담화문에서 허례허식 금지법의 떡밥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출처 : 국가기록원 기록물뷰어 (archives.go.kr)박정희 대통령의 담화문을 요약하면"지금 모두가 하나되어 조국근대화 하기 바쁜데, 관혼상제에 음식이 어떻고 술이 어떻고 그게 뭐가 중요하냐?관혼상제를 치르는 것만으로도 전통을 지키는 것이니 쓸데없는 체면치레는 하지 말자! "1968년에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여 정부 공포로 시행되었고1969년에 이 법률에 근거하여 대통령이 고시(告示)한 것이 바로 가정의례준칙이다가정의례준칙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결혼식은 신랑 신부 집 또는 공회당 (公會堂, 마을회관) 에서 치른다결혼식 청첩장은 내지 않는다결혼식 하객은 화환을 보내지 않는다 결혼식 주례가 신랑신부에게 혼인신고서에 서명하도록 한다혼인신고서는 결혼식 당일에 낸다신행 (新行, 신랑신부가 서로 집들이 하는 것) 은 결혼식 당일치기로 해라장례식에서 조문객에게 음식을 주지 않는다조문객은 근조화환을 보내지 않는다장례는 5일 이내로 치른다공공묘지와 공공납골당에 죽은 사람을 모시는 걸 원칙으로 한다. 혼례나 상례 이외에도 죽은 사람을 제사 지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우 자세한 매뉴얼이 담겨있다 가정의례준칙 (제15호) -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wikisource.org)아니 세상에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정부가 정하는 게 말이 됨?박정희가 군부독재 하려고 내세운 명분의 하나일 거 아냐ㄴㄴ 이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꽤 납득할 만하다.1968년 11월 7일, 경향신문 기사'국민 총소득액의 8%가 각종 의례의 뒷치다꺼리로 쓰여져 해마다 1천4백억원이나 낭비되고 있는 실정이라서국가예산의 반이나 되는 이 돈을 경제 발전을 위한 內資(내자)로 동원했으면 하고 정부는 바라고 있지만 ㅡ '1968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이 약 2214억원 이 당시 정부 예산의 60% 정도가 결혼식, 장례식, 제사 등에 낭비 2024년으로 비유하면 대한민국 정부 예산 656조원 중에 한 350조원 정도가 결혼식, 장례식, 제사에 쓰인 거다와 박정희가 가정의례준칙을 만들만 했네 박정희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1973년에 법을 바꾸어 처벌 조항을 만들었는데청첩장, 부고장을 개별적으로 보내거나결혼식 장례식때 답례품 (감사의 표시로 주는 물건)을 주고받거나음식과 술을 접대하거나화환 등 각종 장식물을 사용하면5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태료에 처하는 항목을 만들었다★이 처벌 조항은 훗날 1998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사라졌다??? : 에이 재수없어 독재자 박정희.. 쓸데없이 서민 집안일에 간섭이나 하고근데 사실 이렇게 박정희 욕을 하는 사람도 검은 양복에 완장을 차고, 근조 리본을 달고, 꽃장식에 영정을 올려 장례식을 1번이라도 했을 거다이런 식의 제사도 최소 1번쯤은 했을 거다이 모두 다 박정희가 기획한 가정의례준칙에서 생긴 것이다아 지금까지 말을 하지 않은 게 하나 있는데가정의례준칙은 박정희가 리메이크 한 것이다.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에서 만든 의례준칙 (1934)정확히 90년 전에 일제 조선총독부에서 조선 가정의 의례준칙을 최초로 만든 것이다2009년 논문일제강점기의 유교의례 변화 양상 - 이희재 광주대학교 교수장례식에서 울음소리가 끊어지면 안 되니까사람을 사서라도 대신 우는 사람을 시킨 게 다름아닌 한국인의 장례식 모습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이는 토착왜구와 일뽕의 역사 왜곡이고 날조야'이렇게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며 이런 사고회로를 다급하게 가동하겠지만이 글은 누구를 옹호하는 것도, 비방하는 것도 아닌기록을 있는 그대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1줄 요약 : 인간의 역사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ㅡ끝ㅡ
작성자 : 노인복지관고정닉
국제 단위계 이야기 (2) 길이: 미터 (m)
[시리즈] 국제 단위계 이야기 · 국제 단위계 이야기 (0) 개괄 · 국제 단위계 이야기 (1) 시간: 초 (s)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 오늘 소개할 단위는 길이와 관련된 단위인 '미터 (m, metre, meter; 이하 m로 표기)'입니다.영어 'metre/meter'는 프랑스어로 '단위'를 뜻하던 'mètre'에서, 프랑스어 'mètre'는 그리스어로 '측정'을 의미하는 'μέτρον'에서 유래하였습니다.나일강길이를 측정하는 것은 인류 문명이 시작한 이래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졌습니다.특히 나일강이 주기적으로 범람하여 토지 면적을 주기적으로 새로 측정해야 했던 이집트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는데, 길이를 측정해야 이를 바탕으로 토지 면적을 측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발 길이가 기준이 되었던 길이의 단위 피트. 1 피트 = 12 인치입니다.처음에는 동서양 모두 사람 신체 부위를 기준으로 길이를 측정했고, 이에 따라 여러 단위들이 파생되었습니다.가령 척 (尺 / 우리 말로는 '자')은 성인 남자가 손가락을 폈을 때 엄지와 중지 사이 길이를 기준으로 한 것에서 유래하였고, 촌 (寸 / 우리 말로는 '치')은 척을 1/10로 나눈 것이었습니다.피트 (feet)는 발 길이를 기준으로 하였고, 인치 (inch)는 피트를 1/12로 나눈 것이었습니다.다만 '어떤 사람의 신체 부위'를 쓰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값이기 때문에 측정자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길이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습니다.프랑스 혁명그러다가 과학 혁명이 일어나면서 과학자들 간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길이 단위를 통일할 필요가 생겼습니다.영국의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Christopher Wren, 1632-1723)은 진자가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가는 시간이 1 s인 진자 막대의 길이를 표준 단위로 삼자고 주장했습니다.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뒤 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 (Académie des sciences)에서도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였으나, 프랑스 혁명이 격화되면서 영국과 사이가 나빠져 계획이 취소됩니다.게다가 위도에 따라 중력이 차이 나기 때문에 진자를 이용해 표준 단위를 삼는 것은 문제가 있었습니다.m의 초기 정의: 파리의 경도를 기준으로 북극부터 적도까지의 자오선의 1/10 000 000프랑스의 과학아카데미는 진자가 한쪽에서 반대쪽으로 가는 시간이 1초인 진자 막대 (초진자)의 길이가 지구 둘레의 1/40 000 000 정도임을 인지하고, 적도 길이의 1/40 000 000을 1 m로 정의하기로 합니다.하지만 적도의 길이를 측정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기에 파리의 경도를 기준으로 북극부터 적도까지의 자오선의 1/10 000 000을 1 m로 정의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이 시기에는 비행기, 인공위성 모두 없었기 때문에 자오선의 일부를 추출하여 육지 위에서 측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 됭게르크와 바르셀로나를 기준으로 거리와 위도 차이를 측정하여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하고자 했습니다.피에르 메셍 (Pierre Méchain, 1744-1804), 장 밥티스트 달랑베르 (Jean-Baptiste Delambre, 1749-1822), 프랑수아 아라고 (François Arago, 1786-1853)이 측정을 담당했는데, 됭게르크와 바르셀로나 사이 거리는 대략 1 000 km 정도 되는 거리로 당시로서는 측정 과정이 매우 험난했고, 6년 넘게 걸렸습니다 (1792-1798).측정 과정의 기술적인 어려움도 있었고,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들의 활동을 수상하게 여긴 주민들이 스파이로 신고하는 일이 발생하여 투옥되는 일도 있었습니다.이렇듯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적도에서 북극까지 길이를 측정했고, 1 m를 최초로 정의하게 되며, 1799년에 프랑스 의회에서 백금으로 된 미터 표준 원기를 채택하게 됩니다.백금-이리듐 미터 원기그리고 1889년 열린 제1회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 부식/산화/온도 변화에 강한 백금-이리듐 합금 (백금 90% + 이리듐 10%)으로 미터 원기를 만들었고, 1927년에는 0 ℃, 1 기압에서의 미터 원기의 길이라는 조건이 붙게 됩니다.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기술이 발전하자 최초 측정에서 오차가 있어 지구 자오선, 그러니까 북극 -> 남극 -> 북극으로 돌아오는 자오선의 길이가 40 000 000 m보다 약간 더 길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더 정확한 자오선의 길이에 따라 m을 정의한다면 기존 1 m보다 0.2 mm 정도 더 길어야 했습니다.또한 지구는 이상적인 구형도 타원체도 아니고, 최초 측정한 경로가 정확한 원호라는 보장도 없었습니다.그리고 아무리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도 미터 원기는 온도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고, 재난으로 파괴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아주 정확한 기준으로 잡기에는 부적합했습니다.그렇다고 이제 와서 측정을 새로 하기에는 이미 기존 m를 기준으로 한 실험, 공업 제품, 공예품들이 너무 많았습니다.크립톤-86 램프따라서 1960년 열린 제11회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는 1 m를 "크립톤-86 원자가 진공에서 2p^10 - 5d^5 준위 사이의 전이할 때 방출하는 빛의 파장 길이의 1 650 763.73배"로 정했습니다. 그러나 측정이 더욱 정밀해지자 이러한 정의도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크립톤 원자는 열 운동을 하기 때문에 도플러 이동에 의해 파장이 미미하게 분산되어 단일한 파장 값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이에 명확하게 정의되는 기준이 필요해졌고, 진공에서 빛의 속도 (c)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활용하기로 합니다.그 결과 1983년에 오늘날까지도 쓰이는 1 m의 정의가 제시됩니다: "1 m = 빛이 진공에서 1/299 792 458 s 동안 진행하는 거리"왜 3억 분의 1 같은 단순한 숫자가 아닌 1/299 792 458 이라는 숫자를 썼냐 하면 이전에 정의한 길이와 최대한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작성자 : 에스프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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