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은 다 아는 레전드 재수만화, 그 \'겨울이야기\'다

재수생 쳐 나오는 만화는 존나 많다.
우리나라의 그 숱한 순정만화나 일본에서도 고전인 메존일각이나 그 후에 러브히나를 비롯해서 최근에도 세키레이등등 매년 꽤 유명한 걸로도 열 댓개씩은 재수생 얘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 많은 재수생 만화의 주인공은 공부하는 꼬라지를 본 적이 없는데도,
거의 항상 한국이라면 서울대, 일본이라면 도쿄대를 씨발 당당히 합격하는 평범한 독자(특히 재수생)들이 보기에 존나 개씹스러운 시츄에이션이 연출된다.
여자들 둘, 셋씩 들러붙는 건 물론 옵션이고..

요컨대 그런 만화 주인공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벼락치기를 하든, 원래 천재라는 설정이든 능력자가 나오고 평범이나 리얼리티는 기대할 수 없다.

근데..그게 그럴 수 밖에 없다.
원래 재수는 우울하고 존나 암울한 거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학원, 점심, 저녁 처먹고 도서관-> 집 무한반복..
그걸로 무슨 얘기가 나오냐.

\'겨울이야기\'란 만화도 결론이 뭐냐, 해피하지 않냐고 말한다면..
뭐, 관점에 따라서는 해피하다고,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임현화(나오꼬)랑 결국에 되는데다 이 현화가 존나 능력자(연상에 커트머리 미인. 게이오 의대를 붙어놓고 찬다. 물론 붙기까기의 과정과 집안사정이 컴플렉스를 안고 살게 하기는 한다만..)니까.
그리고 조종범 이 새끼도 추가합격으로 센슈에 가긴 가니까.

근데 이 \'해피함\'을 따져볼까?

종범이가 끝끝내 짝사랑하던 하영(시오리)이는 결국 중도에서 포기할 수 밖에 없는데,
그 결정적인 이유가 지 주제와 능력이 지가 좋아하는 여자를 커버할 수 없었던 것에서부터 비롯된다.
그 능력이란 게 바로 학벌차다.
씨발..

좋아하는 여자인 하영(시오리)는 전국 모의고사에서 심심찮게 수석을 차지하는, 외모까지 샤방한 걍 만화의 히로인이다.
게다가 좋아하는 선배는 재수해서 이미 도쿄대 학생이고..

물론 종범이는 원서만 내면 붙는다는 개지잡까지 떨어졌던 견적 안 나오는 평민 1..
조건으론 겜도 안 된다.

시오리에 맞먹는 능력자인 현화는 그런 개루저 종범이를 지가 감쌌던 거다.
종범이가 \'나라도 현화까지는 커버할 수 있다\'면서 들이댄 게 아니다.
(센슈와 게이오의 차이는..대충 건동홍과 연고대정도로 보면 된다.)

현화가 눈에 꽁깍지가 씌여 쥰(현역 도쿄대에 위너. 성격까지 괜찮음.)을 차고 종범이를 택한 거지, 종범이의 능력으로 현화를 잡은 게 아니었다.
다시말해, 종범이가 지 현실적인 꼬라지를 눈물을 머금고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그 순간까지의 과정이 \'겨울이야기\' 의 스토리라인이다.

작가놈이 말하는 바는 \' 니 꼬라지에 맞게 사는 게 행복이고 인생이다\' 란 거다.
노력해서 바꿔라 내지는 바꿀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그런 게 인생이란 걸 받아들이라고 하는 거다.

최고대(도쿄대)를 포기하는 것 = 하영이(시오리)를 포기하는 것

대충 이런 등식이 지 머릿속에서 나오는 상황에서,
성모형의 강건마가 아닌 그냥 평범한 행인1에 가까운 종범이에게 다가오는 학벌의 넘사벽은 그야말로 좌절 그 자체로 다가온다.

일본이나 우리나 학벌이 주는 그 이후의 무게감은 비슷하고,
그래서 재수생은 멀쩡한 여자친구와도 깨지고 학벌이 후지면 좋아하는 여자에게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대쉬도 못한다.

씨발..겨울이야기는
그런 처참한 내용을 여과없이 지면에다 그리는 만화다.

"혹시나"..내지는 \'어쩌면\'..?이라는 기대따윈 갖지마라.
하라 히데노리만화는 그딴 거 없다.
한번 찐따는 끝까지 찐따다.

겨울이야기는 재수생의 현실을 잔혹할 정도로 잔잔하게 그린다.
만약은 없다.
그게 가슴을 찌른다.
그게 현실의 우리들 모습이란 걸 아니까 더 쓰라리다.

지금도 가끔씩 겨울이야기를 보면서 내 재수시절을 겹쳐본다.

여자가 없었다는 것 하나만 빼면 거의 판박이처럼 그 찐따의 모습이 나랑 닮아있다.
아니, 그래도 종범이녀석은 가지(야찌요 상)대에서 탈출해서 어쨌든 자기자신은 나름 만족할 수 있는 센슈에 갔는데...
(그나마도 3수해서 간 거다) 
난 결국 가고 싶었던 학교에 끝끝내 못 가는 바람에 이후 4년간을 지옥속에서 보냈다는 것도 다르다면 다를 수 있겠다.

어차피 오늘 이 글 보는 놈이야 없겠지만,
내일 이후에 올해를 곰씹으며 어떻게든 한번쯤 이 만화 구해서 봐라.
그리고 가슴이 탁탁 막히는 암울함과 고뇌, 괴로움들을 진하게 느껴보길 추천한다.

나이먹고 만화 추천하는 거 별로 쉬운 일 아니지만,
그래도 이 만화는 그마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