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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갤 단편] 버그 게이머

거북손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4.07.18 15:29:44
조회 2768 추천 41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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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앞으로 다가간다. 아이템 창을 열고 '동전 지갑'을 한번 확인한다. 오른쪽으로 두 걸음, 다시 뒤쪽으로 네 걸음, 문으로 돌아가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면, 그 곳에는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게임이란, 세상의 법칙을 가져와 새롭게 만들어낸 또다른 세계이다. 무수히 많은 게임들이 쏟아지던 시기, 제작진들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방법으로 세상의 모습을 게임 안에 옮겨담았다. 우리는 가상의 세계에서 뛰어다니고, 대화를 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교하게 제작한다 하더라도 결국 이것은 인간이 창조한, 어설프고 허술한 세계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는 버그라고 불리우는 기현상이 지속되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버그를 악용하여 이득을 취한다. 혹은 새로운 버그를 찾아내며 즐거워한다. 나 또한 게임에서 버그를 발견하고 찾아내는 일에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많았고, 그들은 인터넷으로 서로가 찾아낸 버그들을 공유하며 그것을 즐기곤 했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버그는 워프 버그였다. 일반적으로 문으로 들어가면 지정된 장소로 이동하게 되지만, 게임의 작은 틈새를 공략한다면, 그 작은 오류만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장소로 이동하게 된다. 게임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한 뒤, 걸음수로 난수를 맞춘 뒤에, 문으로 들어가면 그곳에는 건물내부가 아닌 완전히 다른 곳으로 통하게 된다.

 "이건 정말 천재적이군!"

 나는 기막힌 원리에 크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번에 발표된 아이템 복사 버그보다 뛰어난 원리였다. 나의 가방에 차곡차곡 쌓인 귀한 아이템보다 나는 이 경이로운 워프 버그가 더욱 맘에 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게임은 너무나도 쉽고 재미있어진 것이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이 버그를 만들어낸 원작자에게 찬사를 표했다. 그러던 나의 눈에 하나의 게시글이 눈에 들어왔다.

 '버그 게이머 모임'

 그것은 다름아닌, 버그를 주로 다루는 회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나는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나는 장소와 날짜를 확인하고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당일이 되어 나는 긴장된 마음을 억누른 채, 게임기를 챙겨 밖으로 향했다. 무더운 날씨를 뚫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나는 약속된 장소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게임기를 들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누군가 먼저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리에 앉으세요. 이름이?"

 갑작스런 물음에 나는 당황하였다. 그런 나에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본명 말고 신청하신 닉네임이 어떻게 되나요?"

 "아, 저는 '버그의왕'을 쓰고 있습니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순간, 주위의 사람들이 전부 나를 쳐다봤다.

 "버그의 왕?"

 그들의 반응에 나는 깜짝놀랐다. 닉네임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던 도중에 예상치 못한 이런 반응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었다.

 "벽뚫기 버그 만드신분 맞으시죠? 직접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앞쪽에 앉아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악수했다. 나는 얼떨결에 그 악수를 받았다.

 '그건 그냥 벽에 들락날락하는 별거 아닌 버그인데'

 사람들의 격한 반응이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저 멀리 나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왠지 붉은 빛 얼굴을 가진 중년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 사람이 이 모임의 주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에게 인사하였다.

 "반갑습니다. 버그 모임을 주최하고 있는 '하얀 신사'라고 합니다."

 그의 짧은 인사에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하얀 신사는 워프 버그를 발견한 사람의 닉네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황급히 그에게 인사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워프 버그의 원리는 아주 훌륭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나에게 그는 웃어보였다.

 "과찬이십니다. 오히려 그쪽의 벽뚫기 버그야말로 정말 놀라운 발견이었는걸요. 저도 그쪽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왠지모를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단순히 듣기 좋으라고 해주는 말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아무쪼록 즐거운 모임 되시길 바랍니다."

 라고 말하며 그는 자리로 향했다. 곧이어 나머지 사람들이 모임에 도착했고, 우리는 버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버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 그곳에서는 순식간에 새로운 원리들이 창조되었다. 직접 만나 머리를 맞대니 지금까지 혼자 생각하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시간은 순식간에 훌쩍 지나갔고 나는 그야말로 이 모임에 감명을 받게 되었다.

 "오늘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주최자의 인사와 함께 모임은 끝이 났다. 만족한 얼굴로 일어서는 나에게 중년의 하얀신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 좋은 원리들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에도 참석하시길 기대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정중히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니, 나는 왠지 모를 기쁨이 솟구쳤다.

 그 이후로도 나는 즐겁게 버그를 시험하며 게임을 즐겼다. 어느때와 다름없이 새로운 버그들을 시험하던 도중, 조금 깨진 그래픽 옆으로 없던 나무가 자라 있었다.

 "응?"

 나는 의아하여 그 나무를 바라봤다. 게임 화면이 조금 깨져 나오는것은 여타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없던 물건이 이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인터넷에 확인해보니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사람의 위치가 완전히 변하거나, 없던 물건이 생겼다던가, 다양한 증상이 보고되었다.

 '버그를 자주 써서 그런건가.'

 확실히 제작자들은 버그 사용이 게임에 무리를 주기때문에 의도치않은 기현상들을 속출시키고, 결국에는 게임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러한 사실을 신경쓰지 않았고, 가끔씩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경우엔 그냥 게임을 리셋하여 다시 시작하면 되었다.

 "오 이런"

 잠시 다른 생각을 하다가 실수로 걸음수를 잘못 계산했다. 동전 지갑을 누른 뒤 숫자를 잘못 기억한 것이다. 나의 캐릭터는 문 넘어 엉뚱한곳으로 날아가 빈 공간에 갇혀버렸다.

 "이런 젠장, 편리하긴 하지만 실수하면 더욱 귀찮아지는군."

  나는 게임 데이터를 리셋하고는 처음부터 다시 이런저런 버그를 시험했다.

 

 어느덧 두번째 모임이 다가왔고, 나는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그 하얀신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또다시 나를 반겼다.  

 "더운 날씨에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하 전혀요. 지하철을 타면 집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습니다."

 나의 말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참, 회원분들만 고생시키고 제가 나쁜 놈이 된 것 같네요."

 "신사님은 집이 근처에 있으신가요?"

 나의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내 내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렇다고 해야하나요. 사실 저에게 가깝고멀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어느새 내부 공간은 사람들로 북적이었고, 시간이 되어 우리는 버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모임이 끝나기 직전, 자리를 비웠던 하얀신사가 커다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우리는 모두 그 상자를 바라봤다.

 "여러분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가 꺼내는 물건들에 우리는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상자 안에는 바로 어제 새로 출시된 게임이 한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 말도 못하자, 그는 직접 사람들에게 게임을 하나씩 돌렸다.

 "가져가세요. 와주신 것에 대한 성의입니다. 앞으로는 이 게임도 다같이 연구해봅시다."

 라고 말하는 그에게 우리는 그저 감사인사만 전할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역시나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게임 매장 직원이라던가, 게임 개발자라던가, 아니면 어디에 땅이 있는 알부자, 혹은 재벌이나 대기업임원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 반응에 하얀 신사는 그저 웃으며 겸손한 태도만을 유지했다.

 어느덧 모임은 회수를 거듭했고, 그 규모는 커져만갔다. 나의 버그 실력은 갈수록 늘어, 수많은 게임의 무수히 많은 버그들을 만들어냈다. 신사는 그런 나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고, 우리 둘은 상당히 각별한 사이가 되었갔다. 그러던 어느날 모임이 끝난 뒤에 그가 나를 불렀다.

 "아, 버그왕씨,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같이 할까요? 제가 한턱 쏘고 싶습니다."

 그의 제안에 나는 흔쾌히 응했고, 그는 나를 데리고 근처의 고깃집으로 향했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돈이 참 많으신가 봅니다."

 나의 말에 그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밥만 벌어먹고 사는 수준이죠. 취미에 돈을 아끼지 않을 뿐입니다. 자 드시죠."

 그는 익어가는 고기를 잘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고맙게 그것을 받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늘어나는 술병과 함께, 우리의 이야기도 무르익어갔다. 그러던 중, 돌연 그가 나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저는 게임을 매우 좋아합니다. 게임이란 세계는 정말로 독특하니까요. 세상과 다르면서도, 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게임을 통해 새로운 세상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귀기울였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제가 버그에 빠진것도 이러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미스테리가 있죠. 환상의 괴수들, 보이지 않는 UFO, 버뮤다 삼각지대..."

 그러던 중 그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더니, 소주잔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고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것들은 대부분 거짓입니다. 혹은 있다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절대로 만나보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주지 못한단 말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달라요.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세상의 미스테리를 발견하여 그 미스테리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버그란 얼마나 멋진 존재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는 계속하여 열변을 토하였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차원의 틈을 찾아 세상을 이동합니다. 마치 마법처럼 물건을 복사하고, 미스테리하게 벽을 뚫기도 하고요. 이렇게 버그를 이용한 게임의 세상은 재미있기 그지없습니다. 이 세상보다도요. 공감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저는 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나는 순간 이상함을 느꼈다. 이야기의 국면이 다르게 흘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 버그투성이인 게임 세상에 매료되었지만, 최근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은 게임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갑자기 그는 얼굴을 가까이 내밀더니, 나에게 천천히, 그리고 작게 말했다.

 "왜냐하면, 게임은 이 세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씨익 웃어보였다. 그의 붉은 얼굴이 술기운이 더해져 더욱 붉게 보였다. 그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시계를 한번 보더니 천천히 짐을 챙기며 나에게 말했다.

 "이런,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아 두었군요. 죄송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먼저 계산대로 갔다.

 "아무튼 너무 제 이야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모임을 만들어서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것도 뭐 이런저런 이유가 있다, 그런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와 헤어졌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의문만을 품은 채 집으로 향했다.

 그날 이후로 하얀 신사는 점점 자취를 감추더니, 이내 완벽히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다. 모임의 주최자가 없어지자, 자연스레 사람들은 다른 모임을 새로 만들기로 하였고, 가장 버그에 일가견이 있었던 나를 대표로 추대했다. 그렇게 나는 새롭게 모임의 주체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고, 나는 수많은 버그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많은 버그 유저들의 우상이 되었다. 나는 그야말로 '버그의 왕'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하얀 신사를 잊어갔다. 하얀 신사는 역사속에서 완벽히 잊혀졌고, 나는 그의 자리를 차지하며 더욱더 유명해져갔다.

 

 나는 수많은 버그의 공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은 모두 나의 포스팅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였다. 나의 말 한마디가 그야말로 크나큰 무게를 차지했다. 버그의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직접 나에게 수많은 게임들을 사서 보내왔다. 그러면 나는 그 게임들의 버그를 하나씩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나의 모임은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었고, 사람들은 비싼 참가비를 지출하며 나의 모임에 참석하였다. 매일매일 나에게 무수히 많은 메일이 왔다. 나는 질리도록 쌓인 메일들을 대충대충 훑고는 전부 삭제해 버렸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때와 다름 없이 삭제를 누르던 나의 눈에 조금은 특이한 메일 한통이 눈에 보였다. 익명으로 보내진 메일은 짧고 굵었다.

 '넌 아직 한참 멀었어.'

 예상치 못한 내용에 잠시 주춤한 나는, 이내 매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멀었다고?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나는 버그의 왕이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나보다 버그를 완벽히 소화해내고 개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모르는 버그는 없었고 내가 사용하지 못하는 버그는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했다. 그런 나에게 아직 한참 멀었다고 하다니, 나는 사람들에게 이 메일을 공개하였고, 이 교만하고 어리석은 익명의 사람을 찾기위해 애썼다. 사람들은 동조하며 나에게 메일을 보낸 의문의 사람을 욕하였다.

 

 어느덧 또다시 모임 날짜가 다가왔고 나는 귀찮은 몸을 이끌고 전철로 향했다. 오늘도 버그란게 뭔지도 모르는 하수들에게 한수 가르쳐줘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귀찮았다. 나는 자리에 도착하여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또다시 게임의 허술한 점과 그것을 이용한 버그들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감탄을 연발하며 그것들을 메모해갔다. 오늘도 이렇게 대충 모임이 끝나고, 몇몇의 사람들과 식사를 끝낸 뒤에 나는 집으로 향했다. 밤은 깊어갔고, 나는 지하철을 향해 걸어갔다. 어느새 돌아온 여름은 온몸을 달아오르게 했고, 피곤함과 더불어 극도의 불쾌감이 온몸으로 번졌다.

 '오늘은 지름길로 가야겠군'

 나는 골목으로 돌아 지하철로 가는 가장 빠른길을 택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그렇게 한참을 걸어가던 나의 눈에, 저 멀리 서성이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그는 묵묵히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멀리 보이는 그를 바라봤다. 그는 잠시 무언가를 확인하더니, 이내 작은 창고의 문 앞에 멈추었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뒤져 작은 지갑을 꺼내 열어보았다. 그리고는 오른쪽으로 두 걸음 뒤로 네 걸음

 "...어?"

 나의 눈이 휘동그래졌다. 네 걸음을 뒤로간 그 남자는 다시 문 앞으로 향하더니 이내 창고의 문을 열었다. 구름에 가린 달빛 사이로 나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의 검붉은 얼굴이 달빛에 빛나고 있었다.

 '하얀 신사!'

 나는 나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더운 날씨도 잊은 채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를 향해 미친듯이 달렸다. 그는 천천히 창고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창고 앞으로 갔다. 그리고 숨을 고르며 창고를 바라봤다. 창고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이 안에서 무엇을?'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과 함께 생각하기 싫은 무언가가 스쳤다. 나는 침을 삼키며 굳게 닫힌 작은 창고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다행이도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의 눈으로 창고의 내부가 비치었다.

 "어?"

 창고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나의 눈을 의심했다. 몇번이고 눈을 비비고 뺨을 때렸다. 다시 밖으로 나가 문을 닫은 뒤에 다시 열었다. 변하는 것은 없었다.

 "말도 안돼..."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가만히 창고의 앞에 섰다. 어두운 골목길로 달빛만이 나를 비췄다. 마치 시간이 멈춘것 처럼,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나는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염없이 창고를 바라봤다.

 "말했잖나? 너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뒤에서 섬뜩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온몸에 오한이 서리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등 뒤를 바라보았다. 나의 눈동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는 높은 담벼락과 전봇대 뿐, 그 어느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사방을 향해 눈동자를 굴렸다. 그 순간, 벽에서 인간의 두 팔이 튀어나왔다. 나는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뒤로 쓰러졌다. 이내 벽에서 두 다리가 걸어나왔다. 그럼과 동시에 벽에서 나오는 그의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그 얼굴은 다름아닌, 하얀 신사였다.

 "전에도 말했었지. 자네가 만든 버그는 매우 훌륭해."

 벽에서 걸어 나온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벽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온몸을 떨며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잠시 후 나는 벌떡 일어나 벽으로 달려가 떨리는 손으로 벽을 매만지었다. 벽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나는 벽을 주먹으로 치고 머리를 박았다. 벽은 뚫리지 않았다. 나는 벽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주저앉은 나의 옆으로 거대한 전봇대가 만져졌다. 무언가 이상하여 그것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전봇대가 아닌  거대한 나무가 자라있었다. 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문 앞으로 다가갔다.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다가, 마침 가지고 나온 동전지갑을 꺼내 안을 확인하였다. 그리곤 옆으로 두걸음, 뒤로 네걸음. 너무 오래된 버그였다. 그 후로 정확한 걸음수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천천히 다시 문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굳게 닫히는 문을 뒤로한 채, 그 누구도 나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인생에는 리셋 버튼이 없으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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