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포켓몬 게임 별로 안 좋아해

포켓몬 입문은 역시 애니메이션

포켓몬 리즈 시절의 애니메이션은 미쳤으니까

게임은 '포켓몬도 게임이 있단 말이야?'는 식으로 시작했다

나한텐 애니메이션이 원작이고 게임이 그 부속이었지

내가 좋아했던 건 캐릭터와 설정, 배경 등 그 세상 자체가 좋았던 거지 게임이 좋았던 게 아니거든

다이아/펄이 한글화되고, 또 게임 시스템이 완벽하게 정립되면서 게임에 빠지긴 했었어

그래도 난 어디까지나 포켓몬이 좋았던 거고 게임이 좋았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포켓몬, 마이너 포켓몬들만 키웠어

거의 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어

자주 쓰지 않는 포켓몬들로 대전에 나서면 사람들이 신박해했거든

물론 승률은 거지같았지만

하지만 오래지 않아 게임에 정나미가 떨어졌어

지는 건 별로 상관이 없지만, 실전을 만들기 위해 무수히 버려지는 포켓몬들

그리고 팀을 짜기 위해 고려되는 수치와 상성들에 질려버렸거든

게임에는 포켓몬이라고 불리는 귀엽고 멋진 괴물들이 있는게 아니라

실전이라는 이름의, 수치와 궁합을 고려해 엄선된 데이터가 있을 뿐이었지

그걸 깨닫고나서 게임에는 완전히 손을 뗐어

지금도 물론 신작을 사서 플레이하기는 하지만 스토리만 맛보고 끝내

내 박스에 1순위로 모셔놓은 포켓몬들은 예전부터 키웠던 '스토리용' 포켓몬들이야

실전용 포켓몬도 아까워서 옮기고는 있지만, 세대를 거듭할 때마다 한두마리씩 버려지면서

처음엔 3박스는 되던 실전들이 이제는 1박스도 다 채우지 못해

스토리용 포켓몬은 꼬박꼬박 빠트리지 않고 옮기고 있지만 말이야

그 녀석들은 나와 함께 '여행'한 동료지, 싸워 이기기 위한 데이터가 아니니까

게임을 하지 않다보니 온라인 활동도 상당히 저조해지더라

포켓몬 컨텐츠의 대부분은 게임이니까

커뮤니티 자체도 카페, 디시, 루리웹 등등 모두 게임에만 집중되어 있잖아?

내가 원하는 건 포켓몬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 즉 대개는 2차 창작이야

그 세계관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뿐이지

불행한 점은 2차 창작 등 그런 부분에 초점을 맞춘 커뮤니티가 국내엔 없다는 점

그리고 내게는 2차 창작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어서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점이야

그저 루리웹 만화나 픽시브 번역본 등만 찾아다니는 날이 반복될 뿐...

요즘은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나처럼 포켓몬을 좋아하는 사람이 잔뜩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포켓몬을 즐기고 있고

일부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즐기는 사람들과는 내가 어울릴 능력이 못 되니까 말이야

물론 이건 그냥 게으름뱅이의 변명일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포켓몬이 멀어지는 기분까지 들어

거의 평생을 포켓몬만 보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난데,

포켓몬을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나이를 먹으면서 전엔 몰랐던 상업성도 눈에 띄게 되고...

슬프지만 이젠 정말로 포켓몬이 데이터로밖에, 어떤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안 보인다

내가 어려서부터 봐왔던, 꼬맹이인 날 흥분시켰던 귀엽고 멋진 괴물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