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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맞춘 세 개의 안경. 미국의사가 버리라 했다. TXT

녹두장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5.08 06:5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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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닌 학교는 미 해군성이 재단을 운영하여 석사 및 박사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1907년에 설립한 대학원으로 Naval Postgraduate School이라고 불린다. 

미군은 해군의 나라다. 해군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해군이 가장 많은 예산을 사용하며, 

해군으로 인해 전 세계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다.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Power Projection Force 즉 군사력의 투사능력을 가진 것은 바로 해군력 때문이다. 

해군은 해저, 해상, 공중을 모두 이용하기 때문에 군에서도 군사과학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원자력 공학, 기상공학, 전자공학, 시스템 공학 등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신출귀몰하던 독일 잠수함 U-보트를 잡은 것은 역전의 용사도 아니고 명장도 아닌 젊은 수학자들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수학으로 전쟁을 하고, 수학으로 무기를 만들며, 수학으로 군수를 한다. 

이 모두를 위한 응용수학(Operations Research)이 이 학교의 명물로 인정받아 왔다.



당시 한국의 육군 장교들 중에는 이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해군 장교들 중에는 더러 있었다. 

대위로 합참에 근무할 때였다. 

미해군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에 한 사람을 선발하는데, 응시할 장교를 파악하여 보고하라는 공문이 왔다. 

나는 생전 처음 듣는 그 학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그 학교를 나온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소령을 만났다. 나보다 2년 먼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게 겁부터 주었다. “나는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교수로 있다가 갔는데도 혼이 났는데, 

당신은 책을 놓은 지 9년 만에 가지 않느냐. 욕심만 가지고 갔다가는 실패하기 쉽다. 

그 학교는 매우 엄격해서 중도에 탈락하는 사람들이 많다” 

겁이 나긴 했지만 가고 안 가고에 대한 결심은 나중에 하더라도 우선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시험부터 쳐놓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험이라야 영어시험 한 가지뿐이었다. 

한국에서의 경쟁은 토플과 비슷한 ECL (English Comprehension Level) 테스트 성적에 의해 판가름이 났고, 

최종적인 입학허가서는 미 해군대학원이 육군사관학교 성적과 영어 점수를 고려하여 발부한다고 했다.



영어 공부만큼은 월남 전쟁터에서나 전방에서나 틈틈이 해두었기 때문에 나는 100점 만점에 97점을 맞았다. 

이 기록은 당시까지 군 최고의 기록이었다. 

아마도 TV나 보면서 저녁시간들을 어영부영 보냈더라면 갑자기 나타난 기회를 포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차점을 받은 장교는 해군사관학교 출신 해병 중령이었는데 82점이었다. 

국방부 인사과에는 그의 친구인 해군중령이 인사장교로 있었다. 

그 인사장교가 나를 부르더니 해병중령에게 기회를 양보하라고 했다. 

경쟁자였던 해병중령은 그 동안 미국에 여러 번 단기 코스를 다녀왔기 때문에 졸업에 성공할 수 있지만, 

나는 9년 동안이나 공부와 담을 쌓은 사람이라 성공할 수 없다며 겁도 주었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그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비위가 상한 인사장교는 자기가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해병중령을 반드시 보낼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중령이라고 대위를 얕본 것이다. 

마침 그 때에 국방부에는 주월한국군사령부에서 나를 귀여워 해주시던 대령 참모가 장군이 되어 총무과장을 하고 계셨고, 

월남에서 내 직속상관이었던 포병사령관도 장군이 되어 장관 보좌관을 하고 계셨다. 

두 분 모두 국방부에서는 끗발도 있고 발언권도 있었다. 

이분들은 매우 바쁜 분들이라 나는 문제의 요지를 편지지에 담아 그들의 보좌관을 통해 전했다. 

그러자 바로 그 다음날, 인사과 과장인 육군대령이 양쪽 장군 방에 따로따로 불려가 야단을 맞고, 

인사장교인 해군중령은 해군으로 원대복귀 됐다. 

여러 해 뒤에 내가 같은 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오자, 

그 인사장교는 간접적으로 축하의 인사를 전해주면서 당시 자기가 매우 미안한 일을 저질렀다고 솔직하게 사과했다.



그 학교를 먼저 나왔다는 해군소령은 회계학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고생을 덜 하려면 회계학만큼은 미리 공부를 해가라고 조언했다. 

나는 당시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서울대학교 이용준 교수가 쓴 공업부기와 상업부기 책을 사서 독학을 하기 시작했다. 

어가 상식과 조율되지 않았고, 기본개념이 잘 설명돼 있지 않아 이리저리 궁리를 해야 했다. 

헷갈리고 머리 아프게 쓰인 책들이었다. 

결국은 이해도 되지 않는 그 책들을 싸 가지고 미국으로 갔다. 

입학을 하자 하버드대의 안토니 교수가 쓴 회계학원론(Fundamental Financial Accounting)이 교과서로 채택됐다. 

영어로 돼 있긴 하지만 그 원서는 매우 쉽고 논리적으로 쓰여 있어서 혼자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대 이용준 교수가 쓴 부기 책에 소개된 간접비 배분방식은 케케묵은 일본 책을 번역해 놓은 것이어서 

미국에서는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었다. 

논리는 없고, 절차만 소개돼 있어서 원리를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원서에는 간접비 배분방식에 기초수학이 응용돼 있어서 이해하기 매우 쉬웠다. 

한국에서 권위 있다는 한국 책은 결국 쓰레기통으로 던져지고 말았다. 

‘교과서 하나 제대로 없는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한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이 공부에 취미를 잃는 것은 결국 교과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책들을 가지고는 독학 및 예습 능력을 기를 수 없게 돼 있다. 

그래서 초등학교 교과서일수록 최고의 석학이 실명제로 정성껏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초중등학교 교과서들을 읽어보면 균형감이 없고 요령부득으로 쓰여 있어 나도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과외를 찾는 것이다. 

교과서와 참고서들이 다양하고 훌륭하면 학생들은 이들을 가지고 충분히 독학도 할 수 있고 예습도 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을 여러 저자들의 시각으로 소화한다는 것은 사고방식을 다양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또한 학생들은 각자의 인지구조에 따라 저자들에 대한 선호도를 형성할 수 있다. 

첫째, 공부란 창의력을 기르는 과정이어야지 기존의 지식을 암기하는 과정이어서는 안 된다. 

둘째, 독학은 사고력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데 가장 좋은 학습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학을 가능하게 하는 교과서와 참고서의 질은 그 사회의 창의력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예습은 복습보다 훨씬 효과적인 학습방법이다. 

예습을 하면 상상력이 길러지지만 복습을 하면 외우게 된다. 

예습을 하면 교수의 말이 100% 들리지만, 예습을 하지 않고 강의를 들으면 한 시간 내내 불안하다. 

그래서 교과서는 예습이 가능하도록 아주 정교하게 쓰여야 한다. 

나는 사관학교 때, 경제학에 취미를 잃었다. 

당시 한국에는 사무엘슨 경제학원론이 두껍게 번역돼 있었다. 

그 책을 사다가 미국에서 읽어보니 요령부득이었다. 

번역이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 책으로 예습을 하니까 경제학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던져지는 교수의 질문에 나는 부지런히 대답할 수 있었다. 

특히 미시경제학은 수학이 전부였다. 

미시경제학을 회계학과 연결시켜 가면서 소화하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미국과 한국과의 차이는 안경에도 있었다. 

미국에 가기 전에 갑자기 눈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알아보니 난시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안과에 가서 안경을 맞춰 썼더니 쓰는 순간부터 어지러웠다. 

다음날 안과에 가서 어지럽다고 말했더니 의사가 화부터 냈다. 

“일주일간 참고 써 보라니까요” 다른 두 곳의 안과를 찾아갔다. 

찾아가는 데마다 처방이 달랐다. 모두가 다 어지러웠다. 

급한 김에 이렇게 만든 세 개의 안경을 가지고 미국으로 떠났다. 

군병원의 안과를 찾아갔다. 

의사가 세 개의 안경을 검사해 보더니 화를 내며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다. 

“이 모두가 당신의 안경이 아닙니다.”(None of these is yours). 

그 의사가 맞춰준 안경은 쓰자마자 세상이 달라져 보일 만큼 시원했다. 

그리고 그 안경은 지금까지 30년 이상 쓰고 있다. 

1979년 내가 박사과정으로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세 분의 한국군 장군들이 단기 과정을 위해 나의 모교를 찾았다. 

그분들 역시 한국에서 맞춘 안경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내가 주선하여 그분들을 그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야,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어? 세상이 달라 보이네!” 

그분들은 한동안 내게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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