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는 금새 그 소녀에게 다가왔다.

[식별 번호 T1641, 검사 결과 - 마인드맵 이상. 정화자 표준 규약 제14조에 의거, 해당 지능체를 이상지능체로 규정.]

자비없는 선언이 정화자로부터 흘러나왔다.

[정화 집행.]

정화자들이 일제히 소녀에게 총을 겨누었다.

"뭐야, 우리가 아니라 쟤를 노리는 거였어? 쟨 여기의 지능체잖아? 왜 정화자들이 난데없이 원주지능체를 공격해?"

솔은 그렇게 말하고는 달려나갈 기세였다.

"솔, 가만있어! 여긴 로숨 섹터야! 우리의 영역이 아니라고!"

페르시카가 솔의 어깨를 눌렀다.

"그럼, 가만히 구경만 하게 하게!?"

"물론 아니야! 나도 구해 주고 싶지만...!"

교수는 말했다.

"솔, 어서 가서 저 애를 구해. 페르시카는 여기서 엄호 공격하고."

"교수님, 그러다간 발각될 수 있어요..."

"걱정 마,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오아시스 방어막 유지 가능 시간 -01:41:39

퍼엉!

폭음을 내며 산산히 데이터 조각으로 흩어지는 정화자의 연기를 헤치며 튀어나온 솔이 검을 등허리춤에 꼽아 넣으며 말했다.

"후방 안전 확인. 이제 괜찮아, 추격해 오는 정화자도 더는 없어."

"죄송해요 교수님, 정화자의 주의를 끌어선 안 되는 상황인데 저희의 심정까지 신경써 주셔서..."

페르시카가 말했다.

"괜찮아, 어쩌면 얘가 우리의 돌파구가 되어 줄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애 상태는 어때?" 솔이 교수의 품에 안긴 지능체 소녀를 가리켜 물었다.

"괜찮니? 어디 다친 곳 없어?"

페르시카가 다가가 손을 대어 살피며 묻자,

[경고 - 하체에 심간한 손상을 확인.]

소녀의 입에서 그와 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흘러나오더니 곧이어 

"...왼다리에 부상을 입었으나 자체수복이 불가능 합니다." 라고 멍한 눈으로 말했다.

"상처 보여 줄래? 가만 있어 봐..."

지이이잉-

페르시카가 소녀의 왼다리를 수복해 주어, 상처가 다소 나아졌다.

"어째서 정화자가 널 공격했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

소녀는 여전히 무념한 눈으로 말했다.

"T1641의 마인드맵 수준이 기준치를 초과해서, AI 훈련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슨 금지된 방식에 손이라도 댄 거야? 도핑처럼?"

소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뭐야, 뭐가 됐든 마인드맵 수준이 기준치를 넘으면 규정 위반이라고? 정상적인 방식으로 단련했는데도?

페르시카, 로숨 섹터는 AI 연구의 선두주자라며? 오히려 억누르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솔이 말했다.

"감쇠 장치..."

"응?"

"감쇠 장치를 설치하는 것과 같은 이유일거야. 머리에 달린 장치를 봐."

솔은 그러고보니 소녀의 머리위에 솟아있는 설치류의 귀와 같은 것을 그제야 인지했다.

"엥, 이 복슬복슬한 귀가 장치였어? 난 또 디자이너의 악취미인 줄 알았지..."

"겉보기엔 이래도, 이건 감쇠 장치야. 지능체가 과도하게 진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지. 로숨 섹터는 AI 기술 돌파 연구를 주관

하는 섹터지만, AI의 진화는 반드시 이간의 선별을 거쳐야만 해."

"하지만 인간이 AI 보고 진화하라고 시킨 거잖아! 요구받은 대로 하는 게 뭐가 잘못이란 거야? 너무하네 진짜! 대체 지능체를 뭘로 보고--"

"휴... 맞아 솔. 그걸 횬타이스럽다고 하는 거야..."

그때 소녀로부터 불현듯 시스템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상위 명령 통신을 수신. 연결 중... 마인드 스왑 요청 확인. 좌표 설정.]

"...? 왜 그러니? 이게 무슨...?"

"페르시카, 물러서. 얘 상태가 좀 이상해."

[마인드맵 개방. 마인드 스왑 준비 완료--]

솔이 무기를 들고 경계하기도 잠시. 소녀의 온몸이 노이즈와 함께 모습이 눈 깜짝할 사이에 변했다.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낯선 방문객 여러분."

갑자기 훌쩍 성장하여 한껏 발육된 20대의 여성의 모습이 된 소녀가 말했다.

"헉!?"

"뭐야, 너 누구야!? 그 애는?! 어디로 숨겼어!"

솔의 호통에 여자는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 아이는 잠시 저와 위치를 맞바꿨을 뿐입니다. 저는 로숨 섹터의 관리자, 이름은 튜링입니다. 

T1641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아이는 제가 만든 지능체예요."

"로숨의 관리자? 목적이 뭐냐!"

"조심하라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지금 대규모의 정화자 무리가 여러분이 계신 건물로 접근 중입니다."

"페르시카, 바깥 상황 좀 봐 줘." 교수가 말했다.

"사실이에요... 거리에 정화자가 잔뜩 나타났어요!"

여성이 말했다.

"저를 믿어 주신다면, 로숨 섹터 관리 센터에 숨겨드리겠습니다. 안내는 T1641이 할 거에요."

"둘이 막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거야?"

"네, '마인드 스왑'입니다. 마인드맵 시스템에 기반한 복잡한 기술이죠."

"서로 다른 두 마인드맵 시스템을 연결해서, 양자의 모든 데이터를 교환하는 그 기술 말인가요?"

페르시카가 짐짓 놀라 말했다.

"한 쪽이 다른 쪽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이 있어야만 가능할 텐데... 게다가 안정성이 낮아 매우 위험한 기술인데,

당신은 그걸 문제 없이 자유롭게 쓰는 건가요?"

"네, 상당히 위험한 기술이죠.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

"어떡하지, 페르시카? 이 사람 믿어도 돼?"

"마인드 스왑이 가능하다는 건, 저 튜링이란 지능체가 T1641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졌단 뜻이야. 그녀가 섹터의 관리자

라는 증거로서는 충분하지만..."

페르시카가 망설이는 사이, 바깥의 정화자들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졌다. 교수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알겠습니다, 튜링 씨. T1641과 바꿔 주세요, 지금 바로 관리 센터로 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