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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죽 소설) 시대의 끝 에필로그

ㄱㄴㄹㄷ(121.131) 2016.04.11 18:27:28
조회 4226 추천 46 댓글 22

 한적한 시골마을, 귀엽게 생긴 꼬마아이 하나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개미들을 구경하며 놀고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체격이 좋아보이는 남자 하나가 아이를 불렀다.

 "얘야, 이리로 와서 나 좀 도와줘."

 아이는 뒤를 돌아보더니 입술을 죽 내밀고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또 그거 시키시려는거죠? 나 그거 싫은데. 엄마가 더러운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남자는 아이가 거절하자 곤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좀 도와줘. 난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누구한테 대신 처리해 달라고 할 수도 없단 말이야. 지금 도와줄 수 있는게 너 밖에 없어서 그래."

 아이에게 부탁을 할 때에는 언제나 그 아이의 능력을 높게 사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꼬마도 예외는 아니였는지 이 말에 남자를 돕기로 결심했다.

 "알았어요. 그럼 엄마한테는 비밀이에요."

 남자는 아이를 데리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오두막 안을 살펴보더니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늘은 뭘로 해요?"

 "그냥 손으로 해 줘."

 남자가 손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자 아이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으, 나 그 느낌 싫은데. 뭐 엄마도 한다고 한 일은 꼭 하라고 했으니까 해야겠죠?"

 남자가 손으로 침대 쪽을 가리키자 아이는 침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고는 손을 내리쳐 침대 옆에 있던 바퀴벌레를 눌러서 죽였다. 아이는 얼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으으, 꿈틀거리는거 진짜 싫어..."

 남자는 바퀴벌레가 죽은 것을 확인하더니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맙다. 문 옆에 물통이 있으니 손 좀 씻고 와. 그럼 내가 아껴둔 사탕을 줄게."

 "와아! 신난다!"

 아이의 표정은 금방 밝아졌다. 남자는 아이가 문 옆으로 쪼르르 뛰어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사탕을 찾으려 찬장을 뒤졌다.

 아이가 손을 깨끗이 씻고 돌아오자 남자는 찬장에서 찾아낸 사탕을 아이한테 주었다. 아이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사탕을 입에 넣고 빨기 시작했다. 잠시동안 집 안에선 사탕과 이빨이 부딪혀 나는 덜그럭 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이는 심심했는지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저씨는 왜 벌레를 못 잡아요? 지난번에 개미랑 모기랑 벌도 다 내가 잡아줬잖아요. 손에 개미 다리 묻은거 엄마한테 들켜서 혼났었다구요."

 "하하, 아저씨가 벌레를 무서워해서그래."

 남자는 웃으며 얼버무렸다. 아이는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듯 계속해서 물어왔다.

 "아저씨 이상해요. 벌레만 안 잡는게 아니라 낚시도, 사냥도 안하잖아요. 다른 아저씨들은 다들 심심할때마다 저기 강에 물고기 잡으러 가는데. 그럼 살아있는 건 사람 빼고 다 무서워하는거에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웃기만 했다. 아이는 혀를 내밀어 보이고는 일어나면서 말했다.

 "저 이제 갈래요. 다음에도 벌레 들어오면 말해줘요! 사탕 줄거면 잡아줄게요!"

 그러고는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남자는 아이가 나가자 몸에 힘을 쭉 빼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정말 평화롭고 잔잔한 하루라고, 무엇보다 고요한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십분 정도 후, 조용하던 남자의 오두막에 노크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 시기에 찾아올 사람이라면 지치지도 않고 사냥대회 참가를 권하는 마을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한 남자는 방문자에게 거절의 말을 전하고 돌려보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문을 열었을 때 거기에 있는 것은 마을 사람이 아니라, 익숙하고 기분나쁜 얼굴이었다.

 "당신이 여기엔 무슨 일입니까?"

 방문자는 비싸보이는 로브를 몸에 걸친 중년 정도의 남자였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외교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절이기도 했다.

 "저번과 같은 용건일세. 자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왔지."

 남자에게 있어서 이 녀석은 고요한 일상을 찢고 들어온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음었다. 왜 이 남자에게 국가를 대표하는 사절이 찾아왔는지, 또 왜 그 정도의 인물이 방해되는 소음일 뿐인지 알아보려면 이 남자의 과거를 알아야 한다.



 남자가 기억하는 한 가장 오래전부터 그는 혼자였다. 부모님이라는 존재는 알지도 못했고, 그 외 다른 사람들도 전혀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렇게 도둑질과 구걸을 반복하며 겨우겨우 삶을 이어나가고 있던 어느 날, 남자의 마음 속에서 천천히 고갈되고 있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이제 남자의 마음 속에는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려는 욕망은 전혀 남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욕망이 가득 차 있었다. 남자는 목숨을 바쳐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해내고 싶었다. 그런 그의 귀에 들어온 것은 어떤 던전의 소문이었다.

 던전, 막대한 마법과 보물이 잠들어 있는 곳. 또 그만큼의 거대한 위험이 숨어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어떤것에도 비할 수 없는 보물 조트의 오브가 보관되어 있는 곳. 이런 던전의 소문은 그를 사로잡았고, 그는 던전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가 던전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많은 모험가들이 던전에 발을 들여놓은 뒤였다. 그렇기 때문에 저층은 비교적 깨끗이 정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조금만 더 깊숙히 들어가도 다시 아래층에서 기어 올라온 몬스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는 약간의 행운, 목숨을 건 모험 몇 번으로 겨우 6층의 만신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는 만신전에서 수많은 신을 보았고, 그들의 달콤한 약속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이 던전에 어느 신보다도 커다란 발자국을 남길 수 있는 신, 폭풍의 신 콰즈랄이었다.

 그는 그의 신과 함께 던전을 헤쳐나갔다. 항상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폭풍의 방패는 수없이 많은 화살을 빗겨내며 그를 지켜주었고, 콰즈랄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자연의 힘은 재앙의 검이 되어 적들을 휩쓸었다. 아무리 강한 적이라도, 아무리 많은 적이라도 그의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을 재앙으로 가득 채우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늪지, 거미굴, 보물창고, 무덤, 지옥, 판데모니엄, 심연... 그는 던전의 모든 부분을 탐험하고 오브를 차지해 던전 밖으로 돌아온 최초의 모험가가 될 수 있었다.



 던전을 나선 남자가 느낀 것은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도, 모두가 실패했던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뿌듯함이나 자랑스러움도 아니였다. 남자는 피곤했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적들과 목숨을 건 전투를 몇번이나 반복했을까? 전투는 이제 지긋지긋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주위를 몰아치는 바람, 갈라지는 대지, 내리치는 번개의 소리가 그를 괴롭혔다. 이제 그는 조용한 곳에서, 아무와도 싸우지 않고 남은 삶을 고요히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한때는 번성했었지만 이제는 황무지가 된 던전의 옆에 주저않았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생각을 쉬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살육을 멈추고 시간을 보내자 그를 감싸고 있던 폭풍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조용함만이 남았을 때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직 평화롭고 소박한 삶만을 바라게 된 남자에게 오브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었다. 남자는 오브를 어떻게 처리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남자가 태어난 나라의 왕에게 찾아갔다. 남자는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오브를 나라에 바치며 이제 자신이 원하는 것은 평화로운 삶 뿐이라고 말했고, 왕은 매우 기뻐하며 기꺼이 한적한 시골에 남자가 살 오두막을 마련해 주었다. 또, 귀찮은 일에 휘둘리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해 주었다.



 그렇게 남자는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내키는대로 살던 남자가 조심하는 것이 단 한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가 생명체를 하나라도 죽인다면 콰즈랄은 기뻐하며 그에게 폭풍을 선물할 것이고, 그러면 평화롭고 고요한 일상은 끝장이었다.



 그렇게 조금 기묘하지만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날, 손님 하나가 남자에게 찾아왔다. 그 손님은 자신을 이 나라의 사절이라고 밝히고는 도움을 청해왔다.

 "귀족중에 배신자가 한명 있었어. 그 귀족은 조트의 오브가 우리 나라에 있다는 사실을 그와 손잡고 있는 외국에 알려버렸다네. 그 나라에서는 홀로 우리 나라와 전쟁을 벌여 오브를 차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네. 우리나라가 원채 국력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오브가 더해졌으니 더욱 부강해졌을 것이라고 판단한걸세. 그래서 그 나라는 이웃 나라에 오브에 대해 알리고 손을 잡고, 또 그 나라는 다른 나라에 알리고, 사이가 그리 좋지 않던 여러 나라가 손을 잡는 것을 보고 다른 나라에서 첩자를 파견하고, 진실을 알게 된 나라에서 숟가락을 얹으려 동맹을 요청하고... 그렇게 해서 몇 개나 되는 나라들이 힘을 모아 우리 나라에 선전포고를 해왔어. 솔직히, 이 나라의 군대로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이렇게 평화만 남은 줄 알았던 남자의 인생에 다시 불협화음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남자는 과거를 잠시 떠올려 보고는 대답했다.

 "전 이미 충분한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합니다만."

 "자네가 준 물건들말인가? 그 이상한 가방은 열면 거미줄만 잔뜩 뿜어져 나오더군. 하녀들이 청소하는 데 한참 걸렸다네. 또, 자네가 준 마법서. 단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화염폭풍'같은건 사기꾼의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더군. 물론 그 한명이 나라 제일의 궁중 마법사이기는 했지만, 그는 마법서에 있는 마법을 사용하려다가 스스로를 불태우고 말았어. 물론 맹독 구름을 내뿜는 로드나 군단 전체를 광폭화시키는 성검은 전략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허수아비 몇 구에 반사 아뮬렛을 걸어 사용하는 방법도 훌륭히 작동하기는 했네.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우리가 이렇게 많은 마법 도구들을 동원할 수 있는 이유가 오브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들은 포기는 커녕 주변의 다른 국가들까지 끌어들여 더 큰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네."

 사절에 장황한 대답에 남자는 코웃음을 치고 대답했다.

 "뻔히 보이는 대책이 있는것 같습니다만. 당신들이 할 일이 그것 아닌가요?"

 사절은 손짓까지 동원해가며 다시 긴 대답을 토해냈다.

 "물론 우리도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진실을 알리고자 했지. 평소 역정보를 퍼뜨리는 역할을 하던 우리 밀정들이 이번엔 진실을 전했어. 그런 마법 도구들은 오브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것과는 별개로 던전 안에서 발견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은 분명 모든 나라의 귀에 들어갔을걸세. 계획대로라면 그들은 우리 나라에서 관심을 조금 거두고 던전이 있는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 했지. 하지만 이건 아무 소용이 없었어. 그들 나라에서 공동으로 수색대들을 보냈는데,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거든. 1층만  재빨리 탐험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명령을 받은 전사들조차 귀환하지 못했어. 결국 그들은 던전에 대한 이야기는 사기라고 결론지었지. 우리 밀정들 역시 처리되었어..."

 남자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대답했다.

 "던전 1층은 판데모니엄의 악마들이 차지하고 있을 터이니 그렇겠군요."

 사신은 재빨리 자신의 대답을 끼워넣었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그런 무시무시한 던전을 통과한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야. 다른 모든 방법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가로막혔어. 이제 우리의 희망은 자네뿐이네."

 "아니, 제가 던전에 들어갔을 때는... 아니, 됐어요. 어찌됐든 직접 나서서 당신들을 도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만 돌아가시죠."

 남자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이유를 찾지 못했고, 사절의 등을 떠밀어 밖으로 내보냈다. 사절은 조금 더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하는것처럼 보였지만 남자의 힘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결국 사절은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금방 돌아오겠네. 그 때는 자네도 피할 수 없을꺼야."



 그 후 며칠간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게 지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조용한 날들은 아니었다. 평화로운 일상에 불안감이라는 노이즈가 배경음처럼 깔려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자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일상을 보냈다.



 남자는 그날도 의자에 앉아 축 늘어져 있었다. 분명히 휴식은 넘칠만큼 취하고 있을텐데 이상하게 피곤한 날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 쪽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속에서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마 사절 놈일거라고, 이번에야 말로 루의 신도 꼴을 만들어 돌려보낼 것이라고 결심한 남자는 문을 확 밀어 열었다. 하지만 남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사절이 아니라, 친하게 지내던 꼬마아이였다.

 "아저씨, 저 들어가도 돼요?"

 남자는 뒤로 물러서서 아이를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아이는 평소답지 않게 천천히 침대 쪽으로 걸어가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남자는 당황했다. 평생동안 우는 아이를 달래본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허둥대가가 찬장에서 사탕을 꺼내와 아이에게 주었다.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내젓고는 울기만 하고 있었다. 남자는 어찌할 바를 보르고 있다가 아이 옆에 앉아서 천천히 등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점차 잦아들더니, 결국엔 멈추었다.

 "아저씨... 흑, 우리 집에, 반짝이고 딱딱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흑, 아빠를 데려간데요. 따라가면, 흑, 다시 못 돌아올수도 있대요."

 아이는 말을 마치자 마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전쟁의 영향이 드디어 이 구석진 시골에도 도달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이는 진정하지 못한 채 꺽꺽대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흑, 저희 아빠 도와주면 안돼요? 흑, 사탕같은거 안먹어도 돼니까, 흑, 벌레도 내가 다 쫓아낼 테니까, 흑, 네?"

 남자는 어떻게 되었든 그의 평화로운 인생이이미 박살나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심을 마친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알았어. 아저씨가 어떻게든 해결해 볼게. 일단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랑 있어.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아이의 울음을 멈추기 위해선 이 말을 천천히, 여러번 반복해서 들려줘야 했다. 그래도 효과는 있었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표정은 좀 더 밝아져 있었다.



 아이를 돌려보낸 후 남자는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기다렸다.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남자가 기다리던 노크 소리가 집안에 울려퍼졌다. 남자는 부드럽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기대하던대로, 거기엔 이제 익숙한 얼굴의 사절이 서 있었다. 사절은 급하게 말을 시작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을거라고 믿네. 우린 정말로 궁지에 몰렸어. 전투 훈련이 전혀 되지 않은 일반 농민들까지 징집해야 했네. 자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해. 이게 마지막 부탁일세. 지금 우리를 돕지 않는다면 이 마을을 포함한 나라 전체가 파괴되어 버릴꺼야. 자네가 이 부탁을 거절하면 우린 자네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든 나라에 알려버릴걸세. 어느 나라로 떠나도 평화로운 삶을 사는건 불가능해질거야. 지금 나를 죽여버려도 아무 소용 없네. 내가 살아 돌아가지 못하면 이 일을 수행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왔으니."

 남자는 눈을 감았다. 예상한대로였다.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제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야 할 때였다. 남자는 눈을 뜨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할 기간이 조금 필요합니다. 그리고 농민들에 대한 징집령은 거두어 주십시오."

 "알겠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자네를 데리러 오겠네. 그 이상은 곤란해. 그럼 나도 처리해야할 일이 많아서 이만 돌아가겠네."

 사절은 말을 마치고는 서둘러 돌아갔다.



 집에 홀로 남겨진 남자는 카펫을 걷어 숨겨진 문을 열고 지하실로 들어갔다. 비좁은 공간 안에는 심하게 그을린 흔적이 있는 보라색 모자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듯한 미스릴 도끼, 다른 것들보다도 특별한 빛으로 빛나는 황금 용의 갑옷이 있었다. 남자는 갑옷과 도끼를 꺼내어 천천히 손질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손을 움직이며 바라는 것 없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속으로 콰즈랄의 이름을 되뇌었다.



 며칠 뒤 전장. 남자는 부하들을 좀 붙여주겠다는 사절의 말도 거부한 채 혼자 적의 본대 앞에 섰다. 적의 군대에서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그 인원을 막아섰으니 정신이 나가기라도 한 줄 알고있는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고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끄러운 적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판데모니엄의 악마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한 적들이다. 심지어 심연 가장 깊은 곳에서의 끝없는 전투에서는 이것보다 더 많은 적들과 싸워서 살아 돌아왔다. 적들은 도끼질 한번에 하나 이상씩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그들은 미친 줄 알고 비웃던 남자가 혼자서 본대를 박살내기 시작하자 당황해서 허둥대었다. 사령관들은 뒤늦은 대처를 시작했지만 병사들은 서로를 밀치고 소리를 지르느라 바빴다. 소란스러움이 그대로 남자에게 전해져 왔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걸음씩 걸어가며 적들을 썰어버렸다.

 남자가 적들을 하나씩 베어넘길 때마다 가슴 속에서 자신 혼자만의 것이 아닌, 지고의 기쁨이 느껴졌다. 남자는 한때 자신이 모든것을 바쳤던 신의 기쁨이 몸을 가득 채우는 것을, 그의 신이 그가 돌아온 것을 반기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근처의 바람이 모두 그에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의 주변에 불꽃의, 냉기의, 번개의, 대지의 폭풍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분명히 시끄러워야할 폭풍이 그에게는 너무나 조용하게 다가왔다. 왜 지금에서야 알았는가. 이 폭풍 안에서는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할 필요도, 자신이 가진 것을 요구하러 다가오는 사람들도 없다. 그를 괴롭히려는 적들도, 어떠한 성가신 불안감도 맹렬히 휘몰아치는 바람의 벽을 뚫고 들어올 수는 없다. 이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곳. 이세상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곳. 그곳이 폭풍의 눈이었음을 왜 몰랐을까. 그가 폭풍에 점점 더 깊게 몸을 맡길때마다 폭풍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갔다. 폭풍이 전장 전체를 뒤덮었을 때, 전사는 재앙 그 자체가 되었다. 그 재앙은 콰즈랄의 뜻에 따라 자연의 힘으로 세상을 뒤덮어 나가기 시작했다. 시대의 끝이 되어.





주의 : 고증 오류가 있습니다.

실제 게임에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 신앙도가 0까지 떨어지면 신앙을 잃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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