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지금이야 시설관리를 하는 입장이지만 이곳 시갤에서는 도쿄대공습처럼 자격증대공습이 자주 일어난다.
자격증을 둘둘 말아서 민간 무수기를 학살하는 이곳에서 낭만을 하나 외쳐볼까 한다.
대학 졸업하고 입사한지 2년 지난 28살이었을 때다
신입이 들어온단다
시발 여자인가?? 기대하고 물어보니 고개를 젓는다
50대후반의 아저씨였다

전기공사 경력있으세요? 물어보니 자격증이 있다고.
빳빳한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안쪽 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다

그 전에는 뭘 하셨을까요?

영업 일을 했다고 하셨다
무역영업. 술먹고 비위맞추며 인주랑 서류를 항상 챙기는 직업이란다
전자서류와 전자서명과 전자메일.
그런 것들이 삶을 앗아갔다고.

아저씨. 동기들과 세상을 봐봐요.
자기계발 능력개발 영업성과
결국 경쟁에서 밀린 것 아니요. 자신과의 싸움에서 진 것 아니요.

거칠게 말하고 싶었지만 자랑스레 내민 자격증에 침을 뱉을 수가 없었다

메일 한방이면 서울에서 대전까지 내려가서 서류를 받아오던 것이 2초면 끝.
전자서명은 에이 실물아닌 고작 컴퓨터 파일이 뭐가 효력이 있냐며 발끈했을테고.
전자서류는 보다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언변도 필요하고 귀퉁이특약같은 것도 치밀하게 봐야 한다. 말하자면 그때의 20대보다 요즘 20대 애들이 일을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잘해서 밀린 것이다.

앞으로 자격증을 빌려주고 돈도 받고 일하면서 기술도 늘고...
쏼라쏼라 미래계획을 꽤 구체적으로 떠벌린다.
그는 꿈에 젖어있었다.
전기기능사 자격증도 빌려줄 수 있는건가? 하면 생김새가 비슷한 외노자에게 그렇게 해준다고 듣기도 하고...

잘 부탁합니다.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간단한 인사로 출근일에 보자고 했다
우리 팀에 거친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이 사람을 뽑았는지 생각하는 건 상사에 대한 월권이겠지.
생각을 그만두었다.

우리 회사는 단가가 명확했다
초급 13 중급 20 고급 25
위계도 철저했다. 이른바 군대식 위계.
다시 말해 이 사람은 내 아래인 것이지만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었다
30년의 갭이 역전된 관계. 환갑후배를 가르쳐야만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된 건 그 이래로 일주일도 되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