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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하,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이호철의 작품 《탈향》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탈향은 1.4 후퇴로 부산에 피란내려온 이들의 삶을 묘사한 작품으로 실제 이호철 작가 또한 원산 출신의 실향민이기도 합니다 원산은 한반도의 주요 다설지인 반면, 부산은 눈이 적은 지역이죠 원산 출신 등장인물의 부산이라는 낯선 도시에서의 피란살이를 하나로 표현한 구절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원래 영남 지역이 눈이 적은 편이지만 그 중에서도 부산은 독보적입니다 이런 사진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2010년 1월 4일,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폭설이 내렸던 날로 이 날 서울에서는 무려 25.8cm의 폭설이 쏟아져 당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많은 적설량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해안 지역은 사진과 같이 한반도 전역이 하얗게 물드는 와중에도 굳건하게 녹색의 땅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 보기 참 어려운 곳이라는 타이틀을 다시금 상기시켜줍니다 기상청 관측 통계에서도 부산 지역의 강설 기록은 매우 저조한데 평년값(1991~2020) 기준인 지난 30년 통계를 보더라도 연중 강설 일수는 불과 4.1일에 불과합니다 더욱 중요한건 최근 10년과 최근 5년 통계로 한정하면 강설 일수 2일대를 기록하며, 그마저도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부산은 최한월인 1월 평균기온이 3.6도입니다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부산보다 최한월 평균기온이 높은 곳은 없다는 것이죠 즉, 한반도 본토에서는 겨울이 가장 온난한 지역이 바로 부산이기 때문에 눈이 가장 드문 지역이 된 것입니다 또한, 정작 제주도는 겨울철 해기차로 부산보다 눈이 잦은 편이고 한라산 일대는 아예 손꼽히는 다설지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네요 또한 지형적인 영향도 한몫했습니다 '푄 현상'이라는 단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바다에서 비롯된 차고 습한 공기가 산간 지역에 강수를 일으키고 산간을 넘어서는 따뜻하고 건조한 공기로 변화하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봄철 태백산맥을 사이에 두고 강원 영서와 영동에서 일어나는 것이 대표적이지만 겨울철 영남 지방에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겨울철 대륙고기압에서 발생하는 차고 건조한 북서풍은 황해를 통과하면서 해기차로 인해 습기를 머금게 됩니다 이것이 영남으로 넘어가는 도중 소백산맥에 부딪혀 호남과 충청 등 소백산맥 서쪽 지역에 눈을 뿌린 후에 영남에는 비교적 따뜻하고 건조한 성질로 변화하여 도달하는 것인데 특히, 영남 지역에서도 남동쪽 끝에 있는 부산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산을 중심으로 한 영남 해안 지역에는 겨울철 건조특보가 발효되는 경우가 잦은 편입니다 또한 이처럼 서쪽 지역은 대설특보가 내려진 반면 영남 지역엔 건조특보가 내려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물론 부산에 눈이 아예 온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부산 지역에 강설이 발생하는 유형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됩니다 (2019년 1월 31일의 사례, 부산 적설량 0.2cm) 첫째는 남해안 저기압형 강설입니다 남해를 지나는 저기압에 의해 발생하는 강설이 발생하는 경우인데 대개 추위를 몰고오는 대륙고기압이 약간 물러난 경우에 주로 나타나며 기온에 따라 적설이 기록되지 않거나 아예 비로 내리기도 합니다 (2023년 11월 18일의 사례, 부산 적설량 0.3cm) 두 번째는 대륙고기압에 의한 강설입니다 앞서 푄 현상과 함께 겨울 부산 지역의 건조 현상을 언급했는데 황해에서 발생한 눈구름대가 서쪽 지역을 넘어서 간혹 부산 지역까지도 도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눈구름대의 지속시간이 짧아 일시적인 강설에 그치는 편이나 한파를 동반하기 때문에 내린 눈이 쉽게 얼어붙어 눈에 취약한 부산의 특성상 결빙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2011년 2월 14일의 사례, 부산 적설량 7.0cm) 마지막은 북동 기류에 의한 강설로 이는 부산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에서는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주로 2~3월 전후 한반도 일대에 북고남저형 기압 배치가 조성될 경우 대륙고기압이 개마고원을 돌아 북동 기류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때 해기차로 인해 동해의 습기를 잔뜩 머금으며 동해안 일대에 거대한 눈구름대를 형성하게 됩니다 황해보다 수심이 깊고 수온이 높은 동해의 특성으로 인해 해기차가 극명하게 발생하여 습설(濕雪)의 형태를 띄게 되며 강설이 오래 지속되고 적설량 또한 많아지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북동 기류에 의한 강설은 강원 영동 지방에 집중되지만 드물게 북동 기류가 강하게 발달하는 경우에는 영남 동해안과 대구 등 영남 내륙까지 눈을 뿌리기도 합니다 위 사진은 부산교통공사에서 촬영한 지하철 차량기지의 사진으로 한 눈으로 봐도 상당히 많은 눈이 내린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눈이 내렸을까요? 눈이 드문 부산에도 대폭설이 쏟아진 사례가 있습니다 통칭 101년만의 폭설이라고 하는 2005년 3월의 폭설입니다 동해안에는 2~3월 전후로 으레 폭설이 쏟아지는 편이지만 2005년은 1월 중순부터 영남 지역에까지 눈이 내리면서 1월 16일에는 부산 3.6cm, 울산 10.1cm의 적설을 기록하며 3월의 대폭설을 예고하는 전조전이 펼쳐졌습니다 대망의 3월 5일은 절기상으로 '경칩'에 해당합니다 이는 동면하던 개구리가 깨어나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을 의미합니다 https://naver.me/xnhaDeJ3 강원 영동 폭설[앵커멘트]오늘 새벽 강원 영동지역에 대설경보와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밤사이 많은 눈이 내렸고, 지금도 눈이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강원 영동지역에는 내일까지 많게는 50cm이상의 폭설이 예보돼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만큼 단단히 대비하셔야겠습니다.취재기자 전화로 연결합니다. 송세혁 기자!자세한 소식 전해주시죠?[리...naver.me전날인 3월 4일부터 강원 영동 지역에는 대설특보가 내려져 5일 오전까지 대관령 59.4cm, 강릉 44.2cm 등의 적설을 기록했고 역시 대설경보가 내려진 경북 울진에도 29cm의 폭설이 쏟아졌습니다 5일 오후 3~4시 경부터 남하한 눈구름대의 영향으로 부산 지역에도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면서 기상청은 오후 4시 부산에 대설예비특보를 발령하였는데 3시간을 갓 넘긴 시점에서 무려 17cm의 적설을 기록하면서 자정 즈음으로 예고했던 대설주의보를 오후 7시에 조기발령하였고 7시 반에는 부산에 관측 사상 처음으로 대설경보를 발령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당시 기준으로 부산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렸던 사례가 1945년 2월 22일의 22.5cm였다고 하는데 이 날은 3월 적설량으로는 이미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기상청은 1945년 이후 가장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내다봤기에 이 당시 폭설이 심상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눈은 빠르게 쌓여 결국 20cm를 돌파했고 항공기 결항과 도로 통제가 속출하고 있었음에도 최고 20cm의 눈이 더 내릴 것으로 예보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예보 수준만큼 더 내리기도 했구요 결국 적설량 24cm를 돌파하며 1945년 2월의 기록을 경신했는데 이는 1904년 부산에서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고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대기 기자님 못지 않은 김인철 기자님의 직업 정신도 사뭇 대단하게 느껴지네요 그럼에도 눈은 계속되어 6일 새벽 시점에 이르러서는 부산의 누적 적설량이 무려 30cm를 돌파하게 됩니다 이미 부산 시내의 교통이 완전히 마비된 상황에서 부산으로 가는 교통로 또한 오도가도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5일 밤 11시를 기해 경부고속도로 대구 이남 구간의 통행을 전면 차단하였는데 당시 중부지방에서 부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유일했고 호남에서 이어지는 남해고속도로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였기에 사실상 부산으로 진입하는 모든 교통로가 차단된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다음날 뉴스 보도에서도 "ktx를 제외한 모든 교통이 막혔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말이죠 새벽 내내 쏟아지던 눈은 6일 오전 7시 쯤에 이르러 잦아들었는데 5일 오후부터의 누적 적설량은 무려 37.2cm로 1904년 기상 관측 이래 101년 만에 최대 폭설로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37.2cm는 누적 적설량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24시간마다 갱신 측정되는 일일 신적설로는 3월 5일이 29.5cm, 3월 6일이 11.9cm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적설과 신적설의 차이는 적설은 관측 시점에 관측노장에 눈이 쌓인 높이를 측정한 것이고 신적설은 정해진 시간동안(24시간) 쌓인 눈의 높이를 측정한 것입니다 24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쏟아진 폭설은 눈 보기 힘든 부산에 여러 피해를 남겼습니다 거센 눈발로 시계가 차단되면서 부산항의 물류가 완전히 마비되었고 고갯길 도로 통제로 산간마을이 고립되었으며 강서구 화훼단지의 비닐하우스 6천여 평이 파손되고 영도구에서 150가구가 정전되는 등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2005년 3월의 때아닌 폭설은 부산을 비롯한 동해안 각 지역에 적설량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4일부터 눈이 내린 강원 영동 지역에서는 설악산에 무려 155cm, 동해에 90cm의 눈이 내렸고 영남에서는 경북 영덕이 67.5cm로 가장 많고, 울진도 57.6cm 포항과 울산도 20cm 안팎의 적설량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단연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곳은 부산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005년 3월의 이 적설 기록은 2024년 현재도 경신되지 못했는데 울산과 포항에서 2011년에 각각 21.4cm와 28.7cm로 이 기록을 경신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또한, 부산에서는 2012년 이후로는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적이 없고 2018년 이후로는 적설량이 1cm를 넘긴 적조차 없어 제대로 된 함박눈을 다시 보기란 다소 요원해보입니다
작성자 : 크로켓고정닉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5) 남유럽-2: 발칸 반도
[시리즈]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1) 서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2) 중부 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3) 북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4) 남유럽-1: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시리즈, 이번 글은 남유럽-2편입니다.남유럽에는 국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구획을 나눠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도에서 서 -> 동 방향으로 나열하였습니다.)(1) 이베리아 반도: 피레네 산맥 서쪽으로 대서양과 지중해를 끼고 있는 반도(2) 이탈리아 반도 및 부속 도서: 알프스 산맥으로부터 지중해로 길게 뻗어나가는 반도 및 부속 도서(3) 발칸 반도: 남유럽 동부의 지중해와 흑해를 끼고 있는 반도이번 글에서는 발칸 반도에 있는 국가들의 발작 버튼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1) 유고슬라비아에 속하지 않았던 국가들1) 그리스 - 마케도니아 공화국마케도니아 (지역):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에 걸쳐 있습니다'마케도니아'라는 명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관련 있습니다.다만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의 일원이었던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명칭으로 독립하면서 명칭을 놓고 분쟁이 생깁니다.a)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같은 그리스계인가? 아님 (슬라브계)b)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같은 그리스계 언어를 쓰는가? 아님 (슬라브계 언어)c)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 같은 헬레니즘 문화인가? 아님 (슬라브 문화)d)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땅이라도 많이 가졌는가? 아님 (그리스에 더 많이 속해있고,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 펠라도 그리스 땅)우리나라로 치면 러시아인들이 연해주에 독립 국가를 세웠는데 나라 이름을 고구려, 시조를 주몽 하는 꼴이었으니 그리스가 빡친 것도 이해는 갑니다.그리스에는 동마케도니아 트라키 주, 서마케도니아 주, 중마케도니아 주도 있으니 국가 정체성 문제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다만 2019년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타협하여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하면서 분쟁이 일단락되었습니다.대신에 '마케도니아인', '마케도니아어'라는 명칭은 인정했는데, 그리스 측 강경파들은 여전히 불만이 많습니다.2) 불가리아 - 러시아 알파벳?주한 불가리아 대사관에서 만든 키릴 문자 광고키릴 문자 (Cyrillic script/alphabet)는 러시아를 비롯한 정교회권 슬라브 국가와 중앙아시아, 몽골에서 사용되는 문자입니다.키릴 문자는 키릴로스와 메토디우스 형제 (Cyril and Methodius)가 슬라브족 선교를 위해 고안했던 글라골 문자 (Glagolitic script)에서 유래하며, 9세기 불가리아 제1제국에서 처음 받아들여진 것입니다.러시아가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국가 중에서 가장 국력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나 서구권에서는 키릴 문자하면 러시아 알파벳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불가리아 문자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불가리아가 유럽 연합 회원국이기 때문에 아직 불가리아가 유로화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유로화 지폐에 키릴문자가 들어가 있습니다.3) 루마니아 -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처형되는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4) 알바니아 - 폰지사기폰지사기알바니아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알바니아 인민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는데, 알바니아 인민 사회주의 공화국을 철권 통치하던 엔베르 호자 (Enver Hoxha)는 소련, 중국, 유고슬라비아, 북한 등을 모두 까는 위엄을 보이며 알바니아를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만들었습니다.그러다가 1989년 동유럽 혁명의 여파로 1991년이 되어서야 공산 독재가 종식되었는데, 알바니아는 낙후되었던 경제 때문에 극심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던 상황이었습니다.다단계 회사들은 이러한 혼란을 틈타 파고들어 알바니아 정부와 유착하였고, 고수익을 보장한다면서 (폰지사기) 알바니아 사람들을 끌어모아 급기야 알바니아 인구 2/3 정도가 다단계 회사에 투자하게 됩니다.그러나 다단계 회사들이 그렇듯 정상적인 수익을 낼 수는 없었고, 결국 1997년 1월을 기점으로 다단계 회사들이 연쇄 도산하여 실체가 드러납니다.1997년 알바니아 폭동 당시 혼란에 빠진 알바니아국민의 2/3 정도가 전재산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대대적인 시위가 일어났고, 폭력 사태로 번져 급기야 정부가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갱단과 폭도들이 날뛰게 되는데, 이 사건을 1997년 알바니아 폭동이라고 합니다.결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튀르키예, 오스트리아가 군대를 투입하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었고, 알바니아에서 민간인, 경찰, 군인을 포함하여 2,000-3,800명 정도가 희생되었습니다.알바니아 폰지사기 사건은 자본주의 경험이 없는 나라가 어설프게 체제 전환을 시도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였습니다.(2)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던 국가들1) 세르비아 - 코소보는 독립국세르비아와 코소보코소보는 13~14세기에 걸쳐 세르비아의 영토가 되었으며, 세르비아의 정치, 문화, 종교적 중심지였습니다.세르비아 공국은 오스만 술탄국에 맞서 1389년, 1448년에 두 차례 코소보 전투를 치뤘으나 크게 패하였고, 오스만 제국에 의해 1459년에 멸망합니다.코소보는 1455년 이래 오스만 제국 치하에 들어갔으며 무슬림인 알바니아계 주민이 많이 유입되었습니다.이후 19세기에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였고, 고토 회복을 명분으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1차 발칸 전쟁을 일으켜 코소보를 확보합니다.다만 세르비아 입장에서는 조상들의 성지를 회복하는 것이었지만, 코소보에는 이미 알바니아계가 다수인 상태였습니다.세르비아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과 함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을 결성하였고, 코소보는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치주였습니다.냉전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이 붕괴되고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이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를 구성국으로 결성되었습니다.코소보는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와 이질적인 알바니아계가 많았고, 코소바 공화국 (Republika e Kosovës, 코소보 제1공화국)을 결성하여 세르비아에 맞섭니다.코소보 전쟁 당시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 공습결국 1998년 코소보 전쟁이 발발하여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이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을 학살하고, 북대서양 조약 기구가 개입하여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을 코소보에서 격퇴합니다.코소보 전쟁 이후 코소보는 유엔 코소보 임시 행정부의 관리를 받아가 2008년 독립을 선언하였는데, 당연히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세르비아는 코소보를 "코소보 및 메토히야 자치주 (Аутономна Покрајина Косово и Метохиja / Autonomna Pokrajina Kosovo i Metohija)"라는 자국 소속 자치주로 간주합니다.2-4)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세르비아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을 구성하던 국가들의 현황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언어학적으로 같은 언어인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지만, 정치, 문화, 종교적인 요인으로 인해 서로 다른 이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각각 세르비아어, 몬테네그로어, 크로아티아어, 보스니아어)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정교회, 크로아티아는 가톨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이슬람/정교회/가톨릭이 혼재하고 있습니다.세르비아 왕국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을 강제 병합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을 수립한 바 있습니다.우스타샤 (좌)와 한트샤르 (우)유고슬라비아 왕국은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는데, 이때 크로아티아인 조직 우스타샤 (Ustaša)와 보스니아인 조직 한트샤르 (Handschar)가 세르비아인을 70만 명 이상 학살한 바 있습니다.그리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를 요시프 티토 (Јосип Тито / Josip Tito)가 하나로 묶어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구 유고 연방)이 수립되었습니다.구 유고 연방을 하나로 묶었던 요시프 티토가 사망한 뒤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발발하는데, 이 과정에서 세르비아인들이 우스타샤와 한트샤르가 돌아온다면서 민병대를 조직해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을 학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보스니아 전쟁 이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현황: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하늘색)과 스릅스카 공화국 (분홍색), 그리고 공동 통치 구역이 브르치코 행정구 (연두색)으로 사실상 갈라져 있습니다또한 유고슬라비아 전쟁의 일부인 보스니아 전쟁의 결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 (보스니아 및 크로아티아계 중심)과 스릅스카 공화국 (세르비아계 중심)으로 개편되기도 했습니다.이로 인해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세르비아/몬테네그로또한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상대적으로 사이가 좋았던 편이라, 세르비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 (신 유고 연방) 그리고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국가 연합을 결성하기도 했습니다.그러나 세르비아-몬테네그로 해체 이후 세르비아는 친러 노선, 몬테네그로는 친서방 노선을 걸으면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특히 몬테네그로가 코소보 독립을 승인하면서 더욱 벌어졌습니다.또한 2020년에 주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대사가 '몬테네그로가 1918년 세르비아에 병합된 것은 해방이며 국민의 자유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몬테네그로에서는 해당 인물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 (Persona non gratta)로 선언하였습니다.그리고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서로 자국 주재 상대국 대사를 추방하여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5) 슬로베니아 - 슬로바키아?슬로바키아 (좌)와 슬로베니아 (우)의 비교슬로베니아와 슬로바키아는 국명이 매우 헷갈리는데, 둘 다 슬라브족의 국가에다가 종교까지 가톨릭이며 국기 색깔도 하양, 파랑, 빨강을 사용해서 비슷합니다.또한 두 국가의 자국어 명칭은 각각 Slovenija (슬로베니아), Slovensko (슬로바키아) 이기 때문에 매우 비슷합니다.이런 이유로 인해 워싱턴 DC에 있는 양국 대사관은 주기적으로 만나서 주소가 상대국으로 잘못 적힌 편지를 교환하기도 합니다.한편 슬로베니아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일원이었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일부인 슬로베니아 독립 전쟁 (10일 전쟁)으로 독립했으나, 현재는 과거사 사죄와 교역으로 잘 지내는 편입니다.6) 북마케도니아 -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의 방언불가리아/북마케도니아북마케도니아는 2019년에 그리스와의 국명 분쟁을 해결하면서 대신 '마케도니아어', '마케도니아인'이라는 표현은 인정받았습니다.그런데 마케도니아어는 불가리아어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에, 불가리아에서는 아예 마케도니아어를 독자적인 언어로 인정하지 않고 '불가리아어의 북마케도니아식 표준 정서법'이라고 여깁니다.당연히 북마케도니아는 마케도니아어가 불가리아어에서 파생된 언어가 아닌 역사적으로 존재해왔던 자국 언어라고 합니다.그리고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와 2017년에 우호선린협정을 맺었는데, 이때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의 유럽 연합 가입 노력을 지지하는 대신 북마케도니아 역사 교과서에 실린 불가리아에 대한 적대적인 내용을 수정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그러나 2020년에 불가리아는 북마케도니아가 해당 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북마케도니아의 유럽 연합 가입에 반대하였습니다.이후 2022년에 불가리아 의회가 북마케도니아의 유럽 연합 가입 협상을 진행하도록 허용하였으나, 마케도니아어를 독립적인 언어로 인정하지 않고, 북마케도니아가 자국 내 불가리아인에 헌법상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다는 조건부 허용이었습니다.당연히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이러한 형태로는 용납할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6) 동유럽 [시리즈]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1) 서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2) 중부 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3) 북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4) 남유럽-1: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5) 남유럽-2: 발칸 반도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시리즈, 이번 글은 동유럽 편입니다.1) 러시아 -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에 언제 돌려줄 것인가?흑해의 긴장: 친서방파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친러파 우크라이나 시민 (크림반도)이 갈라집니다.친러 성향이 강했던, 크림 반도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운동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컸습니다.당시 크림 반도는 크림 자치 공화국 (중심 도시: 심페로폴 (Симферополь))과 세바스토폴 특별시 (Севастополь)로 행정구역이 나눠져 있었습니다.크림 반도에서는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에 반대하는 친러 시위가 이어졌고, 러시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대를 진주시켜 크림 반도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이 과정에서 크림 자치 공화국 의회 의원이었던 세르게이 악쇼노프 (Сергей Аксёнов)가 친러 민병대를 이끌고 크림 자치 공화국 의회를 장악한 뒤, 의원들을 겁박하여 총리로 취임하였는데, 크림 공화국이 러시아 연방의 자치 공화국으로 편입된 현재에도 크림 공화국 수반입니다.이윽고 크림 자치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은 2014년 3월 11일에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여 '크림 공화국'이 되었고, 2014년 3월 16일에 주민 투표를 감행하여 러시아로의 귀속을 결정하였고, 2014년 3월 18일에 러시아로 편입됩니다.러시아-크림 공화국 합병 조약 체결. 좌측부터 우측으로 세르게이 악쇼노프 크림 공화국 수반,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Владимир Константинов) 크림 공화국 의회 의장, 블라디미르 푸틴 (Владимир Путин) 러시아 연방 대통령, 알렉세이 찰리 (Алексей Чалый) 세바스토폴 시장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 그리고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을 강도 높게 비난하였고,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또한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주요 8개국 정상회담 (G8)에서 배제되었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나섰습니다.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은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을 침해한 것으로 사실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의 시발점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2)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일개 지방우크라이나 전치사 논쟁우크라이나 (Україна)'에서 '크라이 (краї)'는 슬라브 계통 언어에서 '영역', '땅', '토지 구획'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러시아에서는 '지방'을 뜻하는 표현으로 '크라이 (край)'를 사용하기도 합니다.'-на'는 접미사이며, 'У'에 대해서는 전치사 у (영어의 'in')가 그대로 쓰였다는 의견과 о (영어의 'about, around')에서 바뀌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그래서 크게 보면 '지역, 영역'이라는 뜻 또는 '주변 지역'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이러한 이름의 어감 때문에 러시아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나라가 아닌 일개 지방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러시아어 표현에도 반영되어 있습니다.러시아어에서 보통 나라 이름 앞에는 전치사 в를 쓰고, 지역의 명칭 앞에는 전치사 на를 사용합니다.나라 이름 앞에 на를 쓰는 경우는 쿠바, 키프로스, 필리핀 등 일부 섬나라를 제외하고는 우크라이나가 유일합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1993년 우크라이나 정부에서는 러시아 정부에 국명 앞의 전치사를 на 대신 в를 쓰도록 요구하기도 했습니다.주미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내세운 표어: "Ukraine"이고, "the Ukraine"이 아닙니다.영어로는 'Ukraine'이라고 하는데, '주변 지역'이라는 말이 일반 명사라서 우크라이나가 소련 소속일 때는 'the Ukraine'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다만 이러한 어감을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영어로 부를 때는 'Ukraine'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3) 벨라루스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키예프주 프리피야트 (현. 우크라이나 키이우주 프리피야티)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로, 사고 레벨 7등급의 최악의 원자력 사고였습니다.이 사고로 인해 소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소련 붕괴로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인한 방사능 (세슘-137) 오염그런데 의외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보다는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현. 벨라루스)였습니다.사고 당시 남풍이 불었기 때문에 방사능 낙진의 80% 가량이 인접한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에 떨어졌습니다.그 결과 현재도 벨라루스 국토의 20% 이상이 방사능 오염으로 출입금지 구역이며, 이는 벨라루스 국토 개발에 있어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4) 몰도바 - 트란스니스트리아는 독립국몰도바 내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위치몰도바에는 루마니아계가 다수이고, 루마니아어가 국어이며, 원래 루마니아와 한 나라였기 때문에, 루마니아와 통합하자는 목소리가 있습니다.소련 해체 당시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하는 러시아계가 분리주의를 내세우며 세운 것이 미승인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입니다.트란스니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1992년에 몰도바와 전쟁을 벌였고, 같은 해 휴전하면서 사실상 독립하게 됩니다.몰도바는 당연히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주둔한 러시아군의 철수를 강력히 요구하기도 합니다.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자 우크라이나 측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로 가는 물류를 끊어버려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번외편 [시리즈]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1) 서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2) 중부 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3) 북유럽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4) 남유럽-1: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5) 남유럽-2: 발칸 반도 · 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6) 동유럽 안녕하세요, 에스프리입니다.유럽 국가별 발작 버튼 시리즈, 이번 글은 번외편으로, 유럽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분류되지 않기도 하는 국가들을 다룹니다.1) 튀르키예 - 아타튀르크에 대한 모독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Mustafa Kemal Atatürk)는 갈리폴리 전투와 튀르키예 독립 전쟁의 영웅으로 '아타튀르크'라는 성 자체가 '튀르크인의 아버지'라는 뜻이 있을 정도로 튀르키예의 국부로 칭송되는 인물입니다.특히 튀르키예 독립 전쟁은 오스만 제국이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브르 조약으로 해체 위기에 몰렸을 때 일어난 전쟁으로, 그를 중심으로 튀르키예 대국민의회 (Türkiye Büyük Millet Meclisi)가 결성되어 그리스, 영국, 프랑스, 아르메니아 등의 협상국을 몰아내어 튀르키예 공화국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이러한 이유로 튀르키예의 화폐는 아타튀르크 도안으로 통일되어 있고, 튀르키예 각지에서는 아타튀르크의 사진, 어록, 동상 등을 볼 수 있습니다.튀르키예 형법에는 아타튀르크 모독죄라는 게 있어서, 아타튀르크의 업적을 공공연히 모욕하거나, 아타튀르크를 대표하는 기념물을 훼손하거나, 이를 선동하면 처벌을 받습니다.2) 키프로스 -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키프로스 분단: 남부에는 키프로스 공화국, 북부에는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있으며, 키프로스 섬 남쪽/동남쪽에 영국 해군 기지인 아크로티리 데켈리아도 있습니다.키프로스 섬에는 그리스계 주민과 튀르키예계 주민이 있었는데, 다수를 차지하는 그리스계 주민이 정치/경제적 우위를 점하며 튀르키예계 주민을 차별하자 갈등이 심각해집니다.결국 내전이 발발하고, 그리스와 튀르키예가 개입한 결과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분단되었습니다.남부에는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으며 그리스계가 다수인 키프로스 공화국이, 북부에는 국제적으로 튀르키예만 인정하며, 튀르키예가 다수인 북키프로스 튀르크 공화국이 있으며, 수도인 니코시아도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남북 키프로스 사이에는 국제연합 완충지역이 있으며, 키프로스 섬 남쪽과 동남쪽 끄트머리에는 영국 해군 기지인 아크로티리 데켈리아 (Sovereign Base Areas of Akrotiri and Dhekelia)가 있습니다.3-4)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 아제르바이잔 - 아르메니아소련 치하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내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영역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두 나라는 특히 소아시아와 캅카스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는 나고르노-카라바흐 (Нагорно-Карабах)의 영유권을 놓고 오랜 세월 대립해왔습니다.두 나라는 19세기 말에 러시아 제국으로 편입되었다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뒤 일시적으로 독립하여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영유권을 놓고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이 전쟁은 두 나라가 각각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르메니아 SSR)과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SSR)이라는 소련의 구성국이 되는 것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소련은 1923년 아르메니아계가 많이 거주하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제르바이잔 SSR 산하 자치주로 만들었고, 아르메니아 SSR이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아르차흐 공화국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NKR)의 판도 (1994년-2020년)결국 소련 해체 직전인 1988년에 아르메니아 SSR과 아제르바이잔 SSR 사이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이 발발하고, 이 전쟁은 소련이 해체되고 아르메니아 SSR과 아제르바이잔 SSR이 각각 아르메니아 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으로 대체된 후인 1994년까지 이어집니다.이 사이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는 1991년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여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이 되었고,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자치주 지위를 폐지합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에서는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이 승리하였고, 휴전 협정 결과 아르메니아와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 사이 영토가 연결되었습니다.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은 2017년에 대외적인 명칭을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바꾸었습니다.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직후 판도. 아르메니아 (분홍)과 아르차흐 공화국 (주황)은 아제르바이잔 (연두)에 패배하여 진한 녹색과 파란색 부분을 상실하였고, 라츤 회랑 (보라색)을 통해 이어져 있었습니다.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에도 무력 충돌을 간간히 하다가, 2020년에는 전면전이 발발합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이 전쟁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에 설욕하는데 성공하여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 이후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공화국이 점유하던 상당 부분의 영역을 탈환하였고,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공화국은 라츤 회랑을 통해서만 간신히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은 2022년 말부터 라츤 회랑을 봉쇄하기 시작했고, 결국 2023년 9월 28일에 아르차흐 공화국 대통령이 국가 소멸 법안에 서명하였습니다.그리고 아제르바이잔 경찰이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스테파나케르트 (아제르바이잔어로는 '한캔디')에 2023년 9월 29일에 입성하고,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2023년 10월 15일에 한캔디에 도착해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게양하면서 아르차흐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소멸하였습니다.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한캔디 (스테파나케르트)에 도착하여 아제르바이잔 국기를 게양하는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5) 조지아 -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독립국조지아 내 남오세티야, 압하지야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각각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현. 조지아) 산하의 자치주/자치 공화국이었습니다.다만 그루지야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0년에 남오세티야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남오세티야는 1991년에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남오세티야와 그루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합니다.이후 러시아의 중재로 1992년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남오세티야는 사실상 독립하게 됩니다. 압하지야의 경우, 그루지야가 독립할 때 상당 수준의 자치를 유지할 것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였고, 압하지야는 1992년에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여 압하지야와 그루지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합니다.이후 러시아의 중재로 1994년에 휴전 협정이 맺어지고, 압하지야는 사실상 독립하게 됩니다.남오세티야 전쟁 풍자화그러다가 2008년에 그루지야는 남오세티야를 상대로 전면전을 벌이지만, 러시아에게 탈탈 털리고, 대외적인 명칭을 '조지아'로 바꾸게 됩니다 (남오세티야 전쟁).이와 동시에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조지아로부터 완전히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작성자 : 에스프리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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