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언제..."
오지 않기를 바랬다. 아니, 오더라도 내가 없어진 후에 오길 바란 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네가 서 있었다.
쓰잘대기 없을만큼 때묻은 손, 인자하게 감긴 눈, 언제부턴가 짓기 시작한 옅은 미소까지.
"너무 오래 걸렸지?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몸이 커진 건 두 눈으로 보자마자 깨닫을 정도였지만 본연의 모습은 변하지 않은 채, 너는 아직도 과거에 남겨진 나를 찾아 여기까지 왔다.
"왜..."
너를 다시 보게 되는게 두려웠다. 다시 살고 싶다고, 다시 네 옆에 있고 싶다고 생각해버리니까.
"...다시 한번 더 억지부리고 싶어서 왔어."
너는 내게 있어 악독한 천사이자 순수한 악마요ㅡ
"...왜 이제야 온 거야..."
떨쳐내지 못한 겹쳐진 추억이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너는 이제 본인을 위한 삶을 살라는 듯이, 억지부리지 말라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억지야말로 내 '의지'고, 내가 나를 위해 살고 싶었던 삶의 방향이니까.
"...다시금 미안, 말도 없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반복하듯이 너에게 용서를 구한다. 네 성격같아선 받아주지 않거나 신경 쓸 일도 아니겠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졌으면 했다.
"...됐어, 이제와서."
하지만 생각보다 조용히 넘어가버렸다. 옛날의 너였다면 제 기분을 이기지 못하고 조롱하거나 화를 버럭버럭 냈을텐데, 너는 그러지 않았다. 내가 알던 그 애가 맞나..?
"...너 어디 아파?"
아, 호기심이 먼저 앞서버렸다.
"예전하고 같을 리가 없잖아, 띨빡아."
"아하하.."
머쓱하다. 비난의 화살을 여실없이 퍼부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천천히 노란 꽃밭에 발을 들이려던 순간, 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말야. 내가 누군지 알지?"
"...왜 그런 걸 묻는거야? 잘 알지, 넌 아스리엘이잖아."
"아니, 난 플라위야."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너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계에 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있잖아 프리스크, 그냥 가 줄순 없을까?"
"...무슨 소릴 하는거야?"
"말 그대로의 의미야. 내가 돌아가봤자 좋을 건 없어, 너도 알잖아."
"그건..."
분하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할 수 있는 말조차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고 있었더라도 직접 대면한 상황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기에, 입이 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스리엘은 이미 죽은거야. 플라위라는 빌어먹을 꽃도 언젠가 없어질거고. 너는 그냥...여기에 성묘라도 하러 온 셈 치고 가 줘."
말을 마친 너는 점점 구겨지는 얼굴을 가리려 뒤로 돌았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서 온 거야. 나는 널 데리러 가려고 온 거란 말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꽃밭에 발을 들였을 때, 다시금 네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도대체 왜 그렇게 고집불통인거야?"
"..."
침묵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나로선 그것이 최선이였다.
"...솔직하게 말해서, 그날부터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아스리ㅡ"
"플라위라고 했잖아, 프리스크."
말말마다 철저하게 경계선을 그어놓는다. 말에서 느껴지는 너의 위압감은 여전히 강했다.
"......차라리 나를 잊어주길 바랬어, 나 같은 건 찾으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랬어."
"......."
목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떨리는 네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건 분노였다.
"그 편이 너에게도 좋고 나에게도 좋으니까 문제 없다고, 다 잘된 거라고, 스스로에게 새기면서 그저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가겠다, 그리 다짐까지 했어..!"
"아스리엘, 나는..."
"그런데 왜, 하필 이제서! 미련도 잡생각도 다 내려놨을 때에 너는!! 왜!!!"
분노에 찬 울컥하는 목소리가 땅바닥을 타고 울린다.
그래, 네가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아.
차라리 그렇게 응어리진 분노를 전부 쏟아내 주었으면 했다.
"왜...너는 이 때에 날 찾아와서..."
하지만 곧바로 체념한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돌아 본 너의 얼굴은.
"다시, 살고싶다고...생각하게 만드는건데...!"
감정이 터져 흐르듯,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그건 어느 때에도 본 적 없는, 플라위인 네게서 처음으로 보는 우는 얼굴이였다.
방금 전의 대화는 제발 넘어오지 말아달라는, 무너질 듯한 감정선이였음을 깨달았다.
"...부탁이야, 프리스크...제발 그냥 가 줘..."
마음이 아프다. 영혼을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그런 기분이였다.
나도 어렴풋이 생각한다. 차라리 너와의 작별인사를 한다면...나름대로 편해지지 않을까 하고.
"그냥...나는 잊어버리고...너만의 삶을 살란 말이야..."
하지만 싫다.
그러고 싶지 않다.
아직은 널...떠나보내기 싫다.
그걸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건... 내 '의지'니까.
사박-하는 소리가 텅 빈 공기를 메운다.
천천히, 너에게로 향한다.
"...너...왜...그렇게까지 나한테...나 같은 놈에게..."
곧 터져나올 듯한 울음을 꾹 참는 듯한 미어진 목소리로 네가 물었다.
답은 정해져 있다. 이래저래 우여곡절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친구잖아."
사박-
너를 거기에서 두고 가기 싫어.
사박-
"그러니까 잊어버리기 싫어."
사박-
좀 더, 너와 같이 있고 싶어.
사박-
"너와 '다시' 만났을 때, 이미 마음을 정했어."
사박-
그러니까, 한번 더 억지부리고 싶어.
사박-
"같이 돌아가자, 아스리엘."
사박-
나는, 너를 구할거야. 아스리엘.
사박...
"...집으로."
사박거리는 소리가 사라진 이곳, 저무는 햇살이 틈을 타고 내려오는 이 꽃밭에.
이 장소에서 처음 만났던 우리는, 그저 서로 안았다.
"...너...진짜...머저리야..."
"...알아, 터무니 없을 정도로."
차디찬 너의 덩굴이 황혼색 햇빛을 받아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너는 자신이 사라질 지도 모를 마지막까지...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나를 기다려 준 것이다.
"...이 띨띨아...왜 너까지 우는 거야..."
"...나...울고..있었어..?"
너를 안고서야 앞이 물감이 번지듯이 보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 정말로 울고 있었구나...
바보같다, 울지 않기로 마음속으로 다짐까지 했는데...
어느샌가 나는 너보다 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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