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그 질문만 하더군."
왕자가 머리를 쓸어넘겼다. 검은 머리에 잡초처럼 숨겨져 있는 옅은 금발이 램프의 빛을 받아 은은히 빛났다.
음산한 주변과 어두운 이 대담이 익숙지 않은듯 세스가 손가락을 책상에 대고 다그락거렸다.

"왜, 당신은 자신을 더욱더 높은 곳으로 부상할 수 있게 해 줄 쉴드를 배신하고 대의를 깨뜨린건가요? 뭐, 그런 질문."
램프를 든 남자는 잠자코 세스의 눈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그 자 너머 자그마한 소년 시절의 세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네놈이 산속 바닥에서 쌓은 교양이라고는 성경 나부랭이 밖에 없을테니, 이 이야기를 이해할거라고 단정하겠어."
콧잔등을 긁적이던 세스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차가운 흔들의자에 앉는다. 램프를 든 거구의 남자가 몸을 불쑥불쑥 움직이더니 땅안으로 기어들어가듯 꺼졌다.

놓여진 램프 위에 글자가 뜬다.

\'계속해\'

"..아담의 아들 중 이름을 알린 건 세 명 뿐이었어. 뭐 카인이 있고 아벨이 있지. 여기까진 불자들도 아는 사실이라구. 혹시 아담의 셋째 아들의 이름을 알고 있나?"

램프에서 피워져 나오는 연기는 뭉게뭉게 피어올라 세스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래. 세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었지. 그로 말할것 같으면 생각이 침착하고 중재적이며, 카인처럼 행동력이 강했고 아벨처럼 정의로웠지. 밸런스 자체였어."

어둠 속 흔들의자에 앉아 세스는 계속 떠벌렸다.

"그런데, 세스의 이야기가 성경에 있던가?"

"...."

"밸런스는 결코 좋은게 아냐. 세스는 평균적인 아이일뿐 특출남이 없었어. 있었다해도 발휘하지 못했겠지. 이미 특출난 아이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이지."

탁자가 그림자 속에서 피워올라졌다.
세개의 인형이 있었다. 왠지 짜증나보이는 얼굴의 딘과 항상 무뚝뚝한 벽창호 로만. 그리고 그들 뒤에는 항상 중재자였던, 그가 있었다.

"..카인처럼 특출나게 잔혹하지 못하고, 아벨처럼 특출나게 정의롭지 못해. 이대로 있다가 나의 이야기는 성경에 쓰이지도 못하고 끝나버리는게 아닌가?"
열에 받쳐 세스는 소리쳤다.
그리고 탁상을 내리쳤다.

"딘과, 로만은.. 절대로 내 자양분이 되지 못해. 난 내 생존을 위해 그들을 뛰어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너의 교단과의 대결에서 가장많은 공격을 받아낸 사람이 누구지? 빌어먹을 진화족들에게 2층에서 몸을 날린건? 그런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더군. 자칭 조물주라는 신은 말야. 아벨의 재롱은 예뻐하고 카인의 재롱은 꺼리셨지. 그래, 딘 녀석. 한동안 인정못받고 이리채이고 저리채였잖아? 그런데 나는 뭐지? 신은 그 스테이블에서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어. 그리고 난, 새 역사를 쓸거야! 누구보다 나를 원맨으로 끌어줄 수 있는! 그저 높은 곳을 오를거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세스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답이 되었나?"

"마지막 대목만은, 인상깊군. 내 곁에서도 잘했을거야. 이제와서 뭐 어쩌겠나. 우리는 그냥 산골촌뜨기일 뿐이지. 왕자는 자신에게 걸맞는 왕국을 찾아가면 되는 일이고."

브레이가 어둠을 헤치고 일어나서 눈을 떴다.

"그러나 바벨은 언제나 무너진다. 탑에 언제까지고 올라가 있다간 그 탑과 함께 자멸할거야. 그럴 땐 너의 미약한 수급을 내가 직접 거둬주지. 꽤 귀한 안식이 될거야."

그가 킬킬 웃는다.

세스가 그의 램프를 들고 후, 불었다.

"..이런 부조리함에도 당신은 신을 믿나?"
왕자가 물었다.

"신이 없는 세상이라야 사람들은 비로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찾아다니는 법이지."
악마가 킬킬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