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에 게시한 上편이 있는 글입니다. 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이걸 읽기 전에 上편을 읽고 와주시면 더 좋습니다.
上편: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wwe&no=582508
4위: 브록 레스너 (C) VS 존 시나 VS 세스 롤린스 (1/25, WWE Royal Rumble) - 18 (평점: 4.5)
역사적 입지: 4.5/5
경기 내적 서사: 4.75/5
기술 구사력: 4.25/5
관중 반응: 4.5/5
WWE의 1월 연례행사인 로얄 럼블에서 열린 WWE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경기입니다. 이때 당시 브록은 시나와 1:1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15년도를 여는 첫 로우에 어소리티가 복직하면서 세스를 끼워넣고, 이후 월챔을 둘러싼 대립이 ‘WWE의 양심 VS 부패한 절대권력 VS 드디어 얼굴 비춰주는 먼치킨 알바생’ 삼각형 구도로 전개되며 흥미를 돋구었습니다. 게다가 막판에 스팅까지 깜짝 출현하며 흥미를 배가시킨 것도 있고요.(다만 저 시기 쇼의 전체적인 퀄리티는 딘을 계속 패배시키고 세자로를 대놓고 죽이는 등 OME여서 차마 쇼를 다 챙겨보진 못했는데, 경기 후 다시 쇼를 복습해보니 세 명의 세그먼트만큼은 생각보다 양질이라서 놀랐습니다. 특히 악역이었던 세스&어소리티와 브록&폴 헤이먼 측이 서로 타이틀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매니아 분들도 이때 ‘세스가 챔피언 되도 이렇게만 마이크웍 해주면 잘하겠다’하고 더 인정하게 되었고요.) 특히나 저는 방학 당시 기숙사비 때문에 대학교 도서관 교내근로를 하고 있었는데, 로얄 럼블을 보기 위해 그날 하루만큼은 과감히 근로를 째고 다음팟 채팅 생방송에에 들어갔고, 이 경기는 제 예상을 훨씬 상회하며 제 날아간 알바비를 보상해주고도 더 남았었습니다.(하지만 그 챗방에서 1시간 후, 전 다시 날아간 알바비가 아까워져서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이유는 다들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경기는 처음부터 필라델피아 관중들의 열띤 반응에 뜨겁게 시작했습니다. ‘4달 전에 마저 못한 복수를 마저 하려는’ 시나와 ‘여전히 압도적인’ 브록은 특유의 ‘실제 격투기 같은 프로레슬링’을 보여주며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었고, 세스는 틈틈이 기습 공격을 하다 ‘4달 전 방해한 댓가를 치르며’ 처참히 당하는 등 경기가 흘러갔는데, 이 동안에 경기 템포가 빨랐고 지루할 틈이 없어서 정말 몰입이 잘 되었습니다. 일단 브록이 슈플렉스 하는 동안은 그 특유의 포스 때문에 집중하게 되었고, 세스는 공중기 및 접수로 눈길을 잡고, 시나는 AA를 연거푸 먹이거나 F5에 킥아웃, 니어폴을 만들면서 ‘작년처럼 레스너에게 처참히 당하는가 복수하는가’하는 서사를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3명 모두가 단 한 순간도 느릿느릿 움직이지 않았으며, 단 0.1초도 시간끌기용 서브미션 따위로 소모되지 않았습니다. 커트 앵글은 02년도 벤전스에서 더 락, 언더테이커와 가진 3자간 경기 후 '정말 좋았다. 이십 몇분 동안 단 1초의 시간도
바보같이 낭비되지 않았다'라고 스스로 평가했는데, 이 경기가 딱 그런 맥락으로 좋았습니다. 중후반부로 가면서 이 ‘WWE에서 흔히
보기 힘들어져버린’ 속도감은 죽기는커녕 더 엄청난 범프들에 가속도를 받아 경기를 보는 우리 모두를 더 몰입시켰고, 움짤의 세스
엘보우 드롭 이후로 경기는 그야말로 불타올랐습니다. 브록을 잠시 리타이어시킨 후 세스와 시나는 정말 간만에 ‘월챔 경기에서 프로레슬링’을 보여주었는데, 세스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시나가 진짜 ‘평소처럼 국콤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어야 했을 시점에서’ 움짤의 그답지 않은(?) 기술시전을 보여주면서 자기 몫 이상을 해주었고, 이윽고 챗방의 모두가 ‘진짜 부상이냐 아니냐’를 따질 만큼 자신이 타고난 프로레슬러임을 입증하던정신 못 차리던 브록이 피닉스 스플래쉬와 동시에 링으로 복귀할 때는...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 때문에 개인적으론 섬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후 가방샷까지 씹고 F5로 진짜 먼치킨 Beast를 보여준 마무리에선 말할 것도 없구요.
개인적으로 브록 VS 시나의 섬슬-나오챔 2연전을 좋아하진 않았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 시기에 브록을 ‘WWE 챔피언 가져가놓고 대놓고 알바짓하는 XXX’라고 욕하며 싫어했지만, 이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인해 제 마음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현시점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서 ‘확실히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포스’가 있다고 뇌리에 박혀서요. 종합격투기와 프로레슬링만의 묘미와 화려한 공중기가 필라델피아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실려 기묘하게 공존했던, 레매 20 이후 최초의 4.75성 3자간 경기입니다.
3위: 타나하시 히로시 (C) 對 오카다 카즈치카 (1/4, 신일본 Wrestle Kingdom 9) - 18.5 (평점: 4.63)
역사적 입지: 4.75/5
경기 내적 서사: 4.25/5
기술 구사력: 4.75/5
관중 반응: 4.75/5
사실 지금도 제가 Wrestle Kingdom 9을 김그님 챗방에서 실시간으로 봤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마도 약 120년 프로레슬링 역사에서도 회자될 수 있을, 2010년대 전세계 프로레슬링 업계를 총정리할 때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할, 2015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어워드의 몇몇 결과를 너무 싱겁게 만들어버리고 만, 신일본 Wrestle Kingdom 9의 메인 이벤트이자 타나하시 히로시 대 오카다 카즈치카 7차전입니다.(오글거렸다면 죄송하지만... 저한텐 이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경기는 전세계 프로레슬링 덕후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타나하시-오카다, 2010년대 신일본 프로레슬링 재부흥기를 대표하는 라이벌 관계의 연장선상이자 2014년도 기준으로 경기당 평균 평점 4.71이라는(...), 뭔가 헛웃음이 나올 정도의 명경기 보장 카드인지라 뜨거운 기대를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참 아쉬운 경기이기도 합니다. 군대에서 타나하시-스즈키로 일본 프로레슬링에 눈 뜨고, 타나하시-오카다 13 시즌을 싸지방으로 보며 신일본에 빠지게 된 저로선 처음으로 생방송으로 보는 둘의 경기라서 엄청 기대를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챗방에서 다 보고 나서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황홀했습니다.
그때 챗방에서 볼 당시에는 향후 후술할 경기 때문에 ‘관중들이 식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괜히 사서 했는데, 역시 둘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들을 모두 불사르며 왜 이 위대한 흥행의 메인 이벤터가 자신들인지,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왜 현재 세계 최고의 단체로 꼽히고 있는지 증명해냅니다. 초반 체인 레슬링부터 그들은 정석적인 관절기를 주고 받으며 일본 프로레슬링 특유의 긴장감을 끌어올렸고 도쿄 돔의 3만 관중들 역시 서로 ‘오카-하시!’ 소리를 만들며 전력으로 이 둘의 동작을 CLASSIC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윽고 일본 프로레슬링 특유의 포어암 연타를 주고 받다가 밖으로 나가고, 입장로까지 갔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둘은 그야말로 경기장 전체를 활용하면서 맞대결을 펼쳤습니다. 이전의 경기에서 나왔던 명장면들을 더 크게, 더 거칠게 재연하면서 자연스레 경기는 13년도의 그것보다 더 불꽃튀기는 접전으로 흘렀고, 중반에 서로가 각자의 피니쉬를 한번씩 킥아웃하면서는 마치 미사와-코바시 라이벌리 특유의 투혼까지 엿보일 정도로 달아올랐습니다. 이후 서로의 시그내쳐 무브를 교환하면서 경기는 점입가경이 되었는데, 이때 타나하시-오카다 대결 특유의 기술 공방전이 들어가면서는 정말로 ‘눈호강한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무브가 연이어 나오며 몰입감을 절정으로 만들었고, 두 선수는 상대방의 기술을 맞으며 정신을 잃을 듯한 셀링을 보여주면서도 끝까지 쓰러지지 않는 투지를 훌륭히 연출하며 ‘IWGP 챔피언이 어떤 가치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관중들을 문자 그대로 ‘들었다 놨다’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전개는... 비록 정말 좋았던 마무리였고 설득력 있었지만, 바로 몇분 전까지의 경기 운영이 너무나 엄청났기에 상대적으로 ‘끝까지 접전으로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반사적으로 드는, 아쉬운 마무리였습니다. 물론 경기 도중에는 정말 숨막히는 분위기에 압도되니까 별로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경기를 곱씹어보면 볼수록 마음 한 켠에 남는 건 어쩔 수 없던 것 같습니다.
이 경기로 인해서 타나하시와 오카다의 공식 전적은 3:3:1(무승부), 완전 동률이 되었고, 우리는 다음에도 이 둘의 경기가 열리길 기대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프로레슬링에서의 라이벌 관계란 건 언젠가 완전결착이 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때도 ‘이 둘이 이전 경기보다 못한 경기를 보여주면 어떡하지?’나, ‘방금 정말 좋은 경기였는데 이 둘 경기가 상대적으로 빛을 못 보면 어떡하지?’ 같은 생각만큼은 접어둬도 좋을 듯 합니다. 이 둘은 앞으로도 ‘궁합이 잘 맞는 선수들끼리의 경기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고, 이미 이 경기로 한 번 증명한 바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마무리만 좀...
2위: 이시이 토모히로 對 혼마 토모아키 (2/14, 신일본 New Beginning in Sendai) - 18.5 (평점: 4.63)
역사적 입지: 4/5
경기 내적 서사: 5/5
기술 구사력: 4.75/5
관중 반응: 4.75/5
앞서 말씀드렸던, 올해 2월 레슬링 매니아들을 잠깐 달아오르게 한 레슬링 골든 위크(신일본 뉴 비기닝, NXT Rival)의 마지막 센다이 흥행에서 말 그대로 깜짝 등장한, 정신나간 경기입니다. 이 경기는 실제 당일까지만 해도 그 누구도 치러질지 알 수 없었던 경기입니다. Wrestle Kingdom 9에서 마카베 토우기가 이시이를 꺾고 챔피언이 되었으나 인플루엔자 때문에 뉴 비기닝 흥행 당일날까지 경기가 불투명한 상태였고, 경기 직전에야 겨우 결장이 확정되어 급히 조성된 챔피언 결정전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시이의 상대로 낙점된 혼마 역시 마카베와 약간의 인연만 있었을 뿐인 상황에서, 이 경기는 말 그대로 깜짝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아무도 기대할 시간이 없었던’ 경기는, 두 선수의 경기 운영만으로 센다이를 뒤집어버리고 올해 두 번째 5성 경기가 되는 사고를 쳐버립니다.
저는 이 경기를 보고 감히 ‘90년대 전일본 왕도 프로레슬링, 미사와-코바시의 대결을 실시간으로 본 레슬링 매니아들의 기분이 이랬겠구나...’라고 짐작해봅니다. 이 경기는 왕도 프로레슬링의 거의 모든 대결들이 그랬듯, 정말 미친 경기였고 육체로 벌이는 하드코어 매치였습니다. 두 선수는 처음 락업 후 1분 후부터 경기 끝까지 두 사람의 몸만으로 관중들을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작년의 이시이 대 고토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둘은 서로의 몸에 ‘짝’ 소리를 내는 것만으로 경기를 진행하였지만, 그 일관된 진행이 이시이 특유의 ‘쓰러질 수 없다’는 투혼을 실어 공격하는 운영과 맞물려 한 선수가 쓰러질 때 마다 ‘저 선수가 무너지다니!’같은 충격이 전달되는, 숨막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시이의 공격에 맞추어 맞공격하는 혼마가 정말 엄청났는데,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으면서도 이시이의 사람 잡는 타격기에 쓰러질 듯 계속 맞받아치는 혼마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언더독 롤이 되었고, 여기에 실제로 ‘몸을 던져 명경기를 만들지만 항상 패배하는’ 혼마의 평소 입지가 극적으로 겹쳐지면서 관중들이 자연스럽게 혼마에 감정 이입을 하여 진심으로 응원하는 그림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실제로 경기 중반에 이르러서 다음팟 챗방의 ‘재밌는 경기를 볼 목적이었던’ 모두가 ‘마치 당연하단 듯’ 혼마를 진심으로 응원하였고, 저도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급조된 경기가 ‘물러설 수 없는 정면승부’와 ‘언더독’ 서사가 마술처럼 나타나면서 도저히 딴짓이 안 잡히는 몰입을 불러왔고, 혼마의 자살이라고밖에 말 못할 공격과 이시이의 거친 반격이 쉴 틈 없이 이어지면서 관중들의 열기는 높아져만 갔습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분명히 혼마나 이시이가 피니쉬를 맞았는데 니어폴로 벗어날 때는 ‘이거 왜 이러지? 정말 이 미친 경기가 어디까지 가는 거야?’하는 느낌에 압도되어 두려워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완벽한 경기 마무리라 생각하고 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데, 더 뭔가 보여줄 게 있으니 기다리라고 경기가 말을 거는 느낌이였다 하면 적절한 표현일까요... 이후 메인이었던 나카무라 대 나가타의 경기가 (이 경기를 뛰어넘긴 글렀다는 의미로)챗방 내에서 다크 매치가 되고, 경기력으로 칭송받던 이시이가 ‘혼마한테 져주지 개객끼야 ㅠㅠ’라고 욕을(?) 먹을 정도로 이 경기의 여파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좋은 경기에서는 분명 릭 플레어의 경기가 그렇듯 경기 기술의 수가 무의미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런 경기 운영을 봐서 좋았는데, ‘이젠 진짜 끝이겠지’하는 상상마저 초월하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이 경기는 그래서 ‘좋았다’가 아니라, 놀랄 경기라 봅니다. 어떤 의미론 1위 경기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당일 급조’로 치러진 경기입니다.
1위: 나카무라 신스케 (C) 對 이부시 코타 (1/4, 신일본 Wrestle Kingdom 9) - 19 (평점: 4.75)
역사적 입지: 4.25/5
경기 내적 서사: 4.75/5
기술 구사력: 5/5
관중 반응: 5/5
이 경기를 생방송으로 볼 수 있었던 1월 4일 오후는 제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11년도 펑크 VS 시나는 하루 지나서 다운받아봤기 때문에, 이 경기는 제 인생 처음으로 실시간으로 목격한 5성 경기였습니다.(그래서 저한텐 특히 뜻깊습니다.)
3위 경기에서 이미 언급한 흥행, Wrestle Kingdom 9의 최고 경기이자, 이미 제가 아니라도 전세계 프로레슬링 매니아들이 MOTY(Match of the Year)로 기정사실화하고, 유명 프로레슬링 사이트 Cagematch에서 지금도 실시간으로 평점이 갱신되고 있는, 나카무라와 이부시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쉽 경기입니다. 작년도 신일본 Power Struggle에서 나카무라가 타이틀을 방어하고 인터뷰를 가지다 이부시의 미친짓기습 및 도전 제의로 확정된 이 경기는, 경기 프로모에서도 잘 부각시켰듯 나카무라의 자기 세계가 확고한 똘끼(이건 도저히 다른 점잖은 표현이 안 찾아 지네요...)와 이부시의 뭔가 홀리싯한(?) 짓을 태연히 저지르는 똘끼(이것도...)의 만남으로 ‘도저히 상상은 안가지만 쩌는 게 나온다’하는 기대감과(...), 13년도 G1에서 도쿄스포츠 선정 프로레슬링 대상을 받을만큼 좋은 경기를 펼친 전적으로 시작 전부터 ‘타나하시-오카다와 더불어 엄청난 경기가 될 것이다’하는 기대를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Wrestle Kingdom 9 당일, 우리는 말 그대로 ‘도저히 상상 못했던 쩌는 경기’를 보았습니다.
일단 나카무라가 ‘킹 오브 스트롱 스타일’을 위시한 듯한 왕 복장으로 등장할 때부터 이미 이 경기는 절대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링 벨이 울린 후 두 선수가 서로 ‘일단 한 대 후리고 보자’라는 듯 슁슁 킥을 날릴 때, 도쿄 돔의 관중들과 경기를 보는 모두는 두 사람에게서 발산되는 기묘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두 선수는 경기 완급 조절이나 체인 레슬링은 애초부터 개나 줘버린 듯이 쉴새없이 차고 찍고 밟으면서 경기에 눈뗄 새를 주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뭐에 홀린 듯 때리고 맞아주고 다시 때리고 하면서 표정이나 연기 등으로 진짜 이 경기를 프로레슬링이라기보단 ‘막싸움’의 그것으로 만들며 색다른 몰입감을 주었고, 이후 본격적으로 나카무라의 무릎 공격과 이부시의 하이 플라잉 무브가 나오면서 경기는 자연스레 ‘다소 진짜같은 프로레슬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다 나카무라가 발로 거친 도발을 걸고 카메라가 이부시의 초점 이상한 눈을 클로즈업하면서부터는... 뭐랄까요, 진짜 광기와 광기의 부딫힘이라고 하면 너무 중2병 같겠지만 딱 그렇게밖에 표현이 안 되는 장면들이 연이어 나오며 ‘미친 경기’가 됩니다. 개인적으로 거친 타격기가 난무하는 경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때만큼은 분위기에 휩싸여서 집중하게 되었고, 특히 이부시의 강완 래리어트 반격이나 저 움짤의 장면은 보면서 전율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도쿄 돔 역시 둘의 그 미친 분위기에 때론 감탄, 때론 경악으로 이 경기의 소감을 표현해주었고, 이 관중 반응과 서로의 화난 타격음이 맞물린 경기는 전세계 레슬링 매니아들에게 도저히 잊기 힘든 순간을 각인시켰습니다.
솔직히 이 경기는 참 그 느낌을 말로 풀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일단 경기를 봐야 그 ‘미친 느낌’에 휩싸여 전율할 수 있으니까요. 경기력이 좋다, 기술이 좋다라는 말론 도저히 온전히 담을 수 없는 한 순간이 그 경기에 있었고, 그 미친 순간이 이 경기를 확고부동한 5성 경기로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경기보다 더 평점이 좋은 경기는 나올 수도 있겠지만, 비슷한 느낌의 경기가 다시 나올까는 확실히 의문인, 현재 전세계에서 둘만이 만들 수 있을 유일무이한 경기입니다.
순위권은 아니었지만 정말 좋았던 경기들(Honorable Mention):
샬럿 (C) VS 베일리 VS 샤샤 뱅크스 VS 베키 린치 (2/11, WWE NXT Take Over 4 : Rival)
로만 레인즈 VS 다니엘 브라이언 (2/23, WWE Fastlane)
영 벅스 VS 몬스터 마피아 (2/27, PWG Out of Nowhere)
Kzy (C) VS 토자와 아키라 (2/28, Dragon Gate Champion Gate in Osaka - Day 1)
레드래곤 (C) VS 영 벅스 (3/1, ROH 13th Anniversary)
A.J 스타일스 (C) 對 이부시 코타 (4/5, 신일본 Invasion Attack)
세자로 & 키드 (C) VS 뉴 데이 (4/26, WWE Extreme Rules)
불렛 클럽 VS 오카다 카즈치카 & 롯폰기 바이스 (5/16, ROH-신일본 합동 흥행)
뉴 데이 (C) VS 세자로 & 키드 (5/17, WWE Payback)
케빈 오웬스 VS 존 시나 (5/31, WWE Elimination Chamber)
케빈 오웬스 VS 존 시나 (6/14, WWE Money in the Bank)
세스 롤린스 (C) VS 딘 앰브로스 (6/14, WWE Money in the Bank)
불렛 클럽 VS 더 킹덤 (6/19, ROH Best in the World)
글을 마치며...
2015년도 이제 상반기가 지나갔을 뿐이지만 작년에 이어 수많은 역대급 경기들이 나왔던 해였습니다. 특히 작년 12월의 네빌 대 제인에 이어 1~2월에 프로레슬링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경기들이 나왔었고,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어 제 겨울방학은 프로레슬링 팬으로서 무척 행복했고, 잊을 수 없는 행운과도 같은 때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WWE에선 NXT, 특히 케빈 오웬스 같은 선수들이 활약하면서 쇼의 전체적인 경기 질을 끌어올리고 있는게 참 고무적입니다. 일본 쪽은 말할 것도 없고, 작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루차 언더그라운드도 좋은 쇼를 계속 보여주고 있으며 ROH 같은 단체에서도 신일본이나 타 인디 단체와 협업하면서 좋은 경기들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프로레슬링 팬이 가질 수 있는 제일 큰 행복이 이런게 아닐까 합니다.
어느덧 2015년도 훌쩍 거의 반이 지나갔는데, 나머지 하반기엔 또 어떤 명경기가 다시 우리를 전율돋게 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여러분들과 2015년을 마저 보내며 그 명경기들을 같이 목격하고 싶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