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하와의 만남 뒤에 킬리언은 피의 숙청을 강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니아르를 만났을 당시 니아르가 소하를 곤경에 처하기 위해 했던 말들이 도리어 니아르를 옥죄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니아르는 곧바로 크나큰 분노에 휩싸였다. 자신이 소하를 그간 너무 얕잡아 봤었다고 생각하며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그동안 어떻게 준비해 온 쿠테타인데 소하때문에 모든것이 수포로 돌아가고말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니아르는 자신의 책상 위를 무참히 내리치며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어했다. 그의 눈은 혈관이 터질 듯 불그스름하게 충혈되었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쿠데타를 위해 준비해온 모든 계획이 킬리언의 냉혹한 숙청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려는 이 순간, 그는 소하에게 치명적인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다.

구석에 몸을 숨기듯 앉아 있던 그의 참모들 중 한 명이 겁에 질린 얼굴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폐하, 너무 경솔하게 행동하지 마시옵소서. 아직까지도 할 수 있는 방도가 있습니다. 소하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것은 아닙니다.

니아르는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책상을 넘어뜨리며 으르렁거렸다.

그 망할 년... 내가 감히 그녀를 얕잡아 본 게 아니냐! 이 모든 게 그녀의 개입 때문에 엉망이 되었어. 이제... 이제 어쩔 수 없다.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해야겠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날카로운 눈빛으로 참모들을 하나씩 째려보았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소하를 말살하고, 킬리언이 손에 넣는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다. 완전한 파괴와 혼란으로 그들의 계획을 무너뜨리겠다.

니아르는 참모들에게 날카로운 명령을 내리고 손에 들린 종이 쪼가리를 찢어내었다. 그 안에는 소하를 납치해 끔찍한 비밀의 장소로 옮기는 계획이 명시되어 있었다.

한편, 킬리언은 그의 비밀 회의실에서 최측근들과 함께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전략 회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빈틈없는 결의와 차가운 엄격함이 서려 있었다. 지금 전쟁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궁내의 내부 분열을 잠재우고, 니아르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회의를 이어가던 킬리언은 잠시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소하를 생각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소하, 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난 어떤 무자비한 행동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니아르의 마지막 숨통을 끊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그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니아르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하라.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그들의 본거지를 완전히 쓸어버릴 것이다.

그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은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황궁 곳곳에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지만, 결전의 날은 더 이상 멀지 않은 듯 보였다. 모두가 숨을 죽이며 다가올 피의 격돌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