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에서 두려운 것은

상대 기력을 모른다는 점이다.

물론 30수 정도 포석을 둬보면 대강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석 포석 병신에, 수읽기는 동급보다 약간 센 케이스가 아마추어에는 많다.

그 두근거림..

함정수나 하나 써볼까..

얘는 이걸 알까?

이 포석은 흑이 나쁘다고 하던데..

얘는 그걸 알고 유도하는걸까?

얘는 대체 어디까지 읽을 수 있을까?

이 길로 가면 안 되는게 뻔하긴 한데..

얘는 이걸 봤을까?

그래 이놈이 이걸 봤을리가 없지. 한번 이 길로 해보자.

오래 알고 지낸 기우라면 지피지기가 되어있으니

이런 고민은 그닥 없다.

상대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

그것은 양날의 검.

이창호와 두는 상대는 무엇을 느꼈겠는가.

중반까지 내가 좋다..

그러나 상대는 이창호다..

후반에 따라잡힐 것이다..

불안하다..

여기서 좀 더 차이를 벌리지 않고선 힘들다..

무리가 나오게 된다.

이세돌과 두는 상대는 무엇을 느꼈겠는가..

분명 이거 무리수같은데..

아니 그래도 이세돌이 두는 수이니 뭔가 있을지 모른다..

이것저것 신경쓰이는게 많다..

여기서 스텝이 꼬여버린다.

접바둑에서 하수가 상수의 무리수를 응징 못하는 점.

복기 때 물어보면

'백이 이렇게 두길래 뭔가 있는 줄 알았어요'

실상은 백이 공포탄을 쏜 것 뿐이다.

지인의 9단 아이디로 로그인해서

장난삼아 한판 둔 적이 있었다.

상대방은 내가 9단인 줄 알겠지.

운이 터졌는지 100수도 안 되어 대마를 때려잡고 이겨버렸다.

분명 잡으러 가는 과정에서 내 실수가 많았지만

상대는 그닥 반발하려 하지 않고 순하게 응하다가 끝나버렸다.

상대방이 내가 실9단이 아닌 점을 알고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

무서운 바둑이다.

바둑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