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것들의 대표적인 두가지 특징은 남을 자신처럼 만들어 버리는것과, 엄청나게 피곤하다는것이다
한국것들은 잘나지고 싶은 욕구가 엄청나다. 이건 500년 동안 축적된 노비 트라우마로부터 나온것이다. 한국인의 호승심이나 승부근성이란 정상인류의 호승심과는 결이 약간 다르다.
그러나 한국것들은 남 위에 있으려는 비정상적으로 강한 욕구를 전부 일회적인 외적 상호작용으로 충족시키려 한다
실력을 쌓는다던지 뭔가를 성취하거나 내공을 축적한다던지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여, 그것들이 자신의 시간속에 뿌리가 되어 자신에게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노비의 종자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분량이 엄청나게 커서 마음의 문이 꽁꽁 닫혀있기 때문이다
생명이라는게 없고 스스로 창조라는걸 할수 없지만 자존감 충족 욕구만큼은 굉장히 비대한 이 크리쳐들은, 거의 대부분 쉽고 간편하고 힘들이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타인을 '소비'하여 자신의 욕구를 일시적으로 충족시키려 한다
그 순간, 그 공간 속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허상적이고 일시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충족시키는식이다
행복, 자신의 가치, 자존감, 높아지는것 등 모두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일회적으로 충족시키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잘남'이란 기본적으로 깔판에 있어야하거나 소비되는 대상이 있어야하고, 착취적이고 일회적인 속성을 지닌다
땔감이 되는 대상은 시간 속에서 상처를 받고 그것이 뿌리가 되어 계속 고통받거나 굽혀지는데, 땔감으로 사용한 존재는 일회적으로만 잠깐 만족을 느끼는것이다
자신의 공간을 위해 타인의 시간을 연료로 삼는 굉장히 비효율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이지만 중하위 계층 이하의 한국인들에게는 이러한 행태가 아주 보편적이다
직장, 군대, 학교, 동호회 등 한국인들이랑 같은 그룹으로 묶여서 지속적으로 같이 지내다보면 이 관계중심적인 착취를 통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으려는 짐승들을 겪어야 할때가 많다
잘나지고 싶어하고, 리더가 되고 싶어하고,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싶어하고, 가르치고 싶어하고, 주목받고 싶어하고, 에고가 엄청 비대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노비 트라우마에 허덕이는 존재들이 한국에는 엄청 많으며
이들은 아주 쫌스럽고 사소하고 별것도 아닌것에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며 남 위에 있으려고 한다
크고작은 애매한 층위의 상황 속에서 뭔가를 결정하고 기를 내세운다던지, 상황이 벌어졌을때 자신이 판단한다던지, 남을 가르친다던지, 도덕이나 규칙 등을 이유로 타인을 움직이고 만족감을 느낀다던지, 아쉬운 구도를 만들어 자신에게 매달리게 한다던지, 미묘한 상황속에서 주목받는 포지셔닝을 차지한다던지(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쫌스러운 경쟁을 하지 않는데 이러한것의 연속이 되면 결국 자연스레 먹히는것이다), 지시하는 위치를 차지한다던지, 주도하고 결정한다던지, 어떤 무형적인 분깃을 혼자 차지한다던지, 사물이나 현상 등을 보고 느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이 있는 그룹에 동화시킨다던지(거의 대부분은 주워들은것으로 조잡하게 만든 복제인간 반응) 등등...
한국인들은 잘나지고 싶은 욕구와 함께 자의식이 엄청 비대해서 먼저 선점하고 차지하는 드센 기가 있는데다 자신이 잘났다는것을 외적인 상호작용으로 확인받고 싶어하는 갈망이 엄청나기 때문에, 보통의 정서가 평안한 상태인 정상적인 인간은 언제나 손해를 보게 되어있다
왜냐면 정상인들은 애매한 층위의 쫌스러운 일들을 차지하려고 엄청난 정신 에너지를 피곤하게 쏟아붓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행위는 왠지 그릇이 좁은 소인배스럽다는것을 감각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에 오염수를 자정작용 이상으로 쏟아 부으면 결국 강이 오염되듯이, 같은 그룹으로 묶여 한국인에게 사소하게 사용당하고 소비되면 결국 피해자도 한국인처럼 되어버린다. 축적된 착취는 피해자의 피해의식의 역치를 낮게 만들어버려 사소한 일에도 그냥 넘어가지 못할 정도로 그릇을 좁게만든다
쫌스러운 부분에서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그릇이 좁아지고, 작은 일에도 착취를 신경쓰며 피곤하게 정신 에너지를 써야되고, 무형적인 자신의 분깃을 빼앗기지 않게 견제도 해줘야되고, 특정 쿠세를 통해 기를 발산해야되고, 상대에 의해 움직여지지 않게 하거나 상대의 기를 제한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에도 신경을 많이 쓰게 되어버린다
죽음 그 자체인 한국인과 같이 지내려면 두가지 결과를 감내해야된다
하나는 한국인의 허상적인 만족감을 위해 일상 속에서 일회용으로 착취당하고 소비되며 땔감으로 계속 사용당하여 결국 생명이 사라지는것
다른 하나는 한국인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인처럼 되는것. 이는 고유의 인간성을 포기하고 한국인처럼 애매한 상황이나 미묘한 층위에서까지 정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쫌스러운 정치술로 자신을 방어하는것이다
자신을 지키다가 생명을 '잃거나', 껍데기를 지키기 위해 생명을 '버리거나'
잃거나, 버리거나 둘중 하나의 결과를 감내해야한다
한국인과 같이 지내다보면 착취에 의한 피해의식이 쌓여 한국인처럼 되거나, 방어하기 위해 한국인처럼 되는 두가지 결과만 존재한다. 한국에서 살다보면 '한국인의 양식을 받아들여라!' 라고 무언가가 계속 강요하는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는 곧 목숨을 끊으라고 옆에서 부추기는 악마와도 같다
어느쪽이든 사람의 동향을 잃게 만들고, 움직임을 잃게 만들고, 정지상태로 만들어놓는 결과를 가진다. 패턴 안에 가두어놓고, 생명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가진다
영감적인 사고나 자연스러운 마음이나 우러나오는 사고는 싹 다 사라지고, 딱딱하고 의식주의적이고 단순 직선적인 메뉴얼적인 사고로 바뀐다
한국인의 행복은 상황속에서 일회적으로 흘러 지나가는 일시적인것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자존감이 부족한만큼 그에 비례해 끊임없이 계속해서 장작을 태워야만 한다. 계속해서 아둥바둥 아둥바둥하며 남을 땔감으로 삼는것이다
이런 한국인과 같이 지내면서 착취, 침투를 당하지 않으려하다보면 필연적으로 피해자의 의식이 패턴과 메뉴얼 속에 갇혀지게되고 정형적으로 바뀐다. 껍데기 인종과 같이 지내다보면 피해자도 껍데기가 되는것이다
한국인은 굉장히 피곤한 존재들이며 남을 자신처럼 만드는 속성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냥 주어지는것들도 한국에서는 피곤함을 무릅써야하며, 그 무릅쓰는 과정에서 사람의 영혼이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게된다
말하자면 껍데기를 위해 영혼을 포기하는것이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개성을 포기해야하며, 익명성을 지키기 위해 개체성을 포기해야만 하고, 착취를 피하기 위해 한국인이라는 형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선형적이거나 영감적인 사고는 나올수 없다. 감시와 통제 등의 인위적인 조건들에 의해 유지되는 영역에서 메뉴얼 껍데기적인 핑퐁을 하는것, 그것만이 남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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