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인간의 눈과 손이 닿지 않는 곳.

어쩌면 태양이 남몰래 내려와 거체를 누이고 잠들지도 모르는 이곳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삼 년 구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구병의 힘겨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병자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리고 그는 정신적인 병자였다. 

봄빛이 대지를 물들었다.

가장 먼저 봄을 받아들인 씨앗과 나무는 누구보다 앞서 싹을 틔웠고, 계절 감각이 무뎌진 사람들조차 두꺼운 옷을 벗은 채 다가올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밤, 태양이 물러가고 어둠이 대권을 잡는 시간.

저마다의 개성을 담고 있었던 색채들은 검푸른 하늘에 모두 잿빛으로 물든다.

태양빛을 잊은 누이가 잎사귀에 매달린 채 사스락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낯 뜨겁게 움직였던 짐승들이 푸르른 벌레 소리와 함께 잠이 든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웅덩이는 어느덧 청명하게 떠오른 별빛을 담아내 다가오는 여행자를 기다린다.

산봉우리에 걸터 앉은 태양이 세상을 오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 숙인 사물은 어둡게 물들어져가며, 달빛과 별빛이 그 위엄을 이어 받아 밤하늘을 무수히 수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