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브러진 현호 쪽으로 선풍기를 가져다 놓으며 선풍기 바람 많이 쐬면 안 좋다면서 회전으로 돌려놓고

타이머 맞추고 나가는 장면과, 야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준영이가 버스 창밖을 바라볼 때

그 장면에서 흐르는 배경음악의 톤은 전반적으로 팔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다림과 아버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정원의 소박하고 애틋하면서도 쓸쓸한 정서를 생각나게 만듬.

반면에 정경이가 참석한 서령대 교수의 생일 축하 자리에서 교수와 그 제자들의 속물근성이 은근하게

드러나고 늘상 도도함을 잃지 않던 정경이 마저 교수 앞에서 살갑게 표정관리 하는 모습은, 하얀 거탑에서

외과 과장 자리를 얻기 위해 병원 부원장의 아내의 모임에 참석해 환심을 사려 애쓰던 준혁의 아내의

모습을 연상케 함.

준영이가 송아에게 들려주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삶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는 토크 콘서트에서 좌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들을 적당하게 따뜻한 말로 포장해서 들려주는 준영의 공적인 태도와 강렬하게 대비되는데,

그러한 연출은 음악적 열정과 성취를 끈임없이 보여주고 증명해야만 하는 피아니스트의 치열하지만 감추고

싶은 삶의 속살을 드러내는 느낌임.

그러한 삶의 치열함은 비단 성공한 피아니스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당장 그의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 송아에게도,

서령대 교수 자리를 얻어서 안정적으로 자신의 음악적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도도함을 굽히기도 하는 정경에게도,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첼리스트지만 어머니의 편의점 일을 도우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호에게도 해당되며,

그리하여 그들의 삶의 속살을 엿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중적 공감의 영역으로 확장됨.

송아가 '남자사람친구'인 윤사장이 시키는 대로 자신의 바이올린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윤사장을 향한

송아의 마음을 중의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 성스러운 뭉클함이 있음.

음악이 가진 위로의 힘에 대해 말하던 모습이나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촛불을 앞에 두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손을 모으고 있는 송아의 모습 역시 잠깐이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진지함과 경건함을 느끼게 함.

바이올린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 '남자사람친구'에게 남 몰래 적립했던 자신의 애틋한

마음을 정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티를 낼 수는 없는 난처한 상황, 정규직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인턴인 자신을

업수이 여기려 드는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처지,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음에도 경건한 기품과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가 보는 이로 하여금 애틋한 뭉클함을 자아내게 함.

그리고 그것이 매순간 쉽지 않은 용기와 노력으로 드러나는 산물이라는 점에서 품위있는 삶과 태도에 관해 역설한

미쉘 오바마의 연설이 가지는 의미를 새삼 드라마를 통해 간접적이고 미시적으로 체험하는 느낌을 들게도 함.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팔월의 크리스마스의 주인공들이 하얀 거탑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이야기이며, 그러면서도 품위와 존엄을 잃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발버둥 치는 이야기이고, 일과 사랑, 가족, 친구라는

관계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의 고단함과 부대낌을 잘 아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이해하고, 보듬어 주며

운명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