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의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 해외파 주부들 몸에 밴 알뜰정신 … 품앗이로 아이들 가르쳐

대덕연구단지 내 주택가 전경. 유흥업소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CAPTION>

대덕연구단지에 처음 온 ‘외부인’은 우선 넓디넓은 대덕연구단지 내 녹지공간에 놀란다. 휴지조각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깨끗한 거리와 조용한 주택가에는 술집이나 오락실 등 유흥업소를 찾아볼 수 없다. 이따금씩 눈에 띄는 것은 세련된 찻집과 앤티크 숍, 도서관, 어린이집 등이다.

대덕연구단지는 연구소 부지와 주거지 외에는 대부분 녹지로 구성되어 있다. 집들 사이에 숲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숲과 공원 사이에 드문드문 단독주택과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는 모습이다. 연구원 가족들은 연구단지 내의 도룡동, 신성동, 어은동, 전민동에 주로 거주한다. 특히 KAIST 교수 아파트와 LG화학 사택이 있는 도룡동의 거주자들은 절대 다수가 연구원 가족들.

연구원들은 가족적인 성향이 강하다. ‘칼퇴근’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퇴근 후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거나 운동 등을 함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서 차원의 ‘회식’도 드물어 연구원들의 절대 다수는 퇴근과 동시에 집으로 직행해 가족과 시간을 보낸다.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많은 연구단지 주부들은 과외 대신 품앗이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폐품을 재활용하는 등 유학 시절에 몸에 익은 검소한 생활을 한다. 또 연구원 부인들 중에는 유난히 교사가 많다고.

연구단지 내의 대덕초등, 어은초등, 어은중, 대덕중·고 등은 서울 어느 지역보다 높은 학력 수준을 자랑한다. 대덕고등학교의 대학진학률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또 적지 않은 연구원 자녀들은 대전외고, 대전과학고 등의 특수목적고나 외국인학교에 다닌다. 최근에는 해외에서 귀국할 때 가족을 두고 혼자 돌아오는 ‘기러기 아빠’가 늘고 있다. 11년간 미국에서 유학하다 2년 전 한 연구소 책임연구원을 맡게 돼 돌아온 A씨는 최근 두 아들과 아내를 미국으로 돌려보냈다. 귀국 당시에 초등학교 4학년이던 큰아들이 도저히 한국 학교의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 “외국인학교로 전학시키는 방법도 고려해봤지만 외국인학교의 비싼 학비를 부담할 거면 차라리 아이에게 익숙한 미국 학교로 돌려보내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유난히 주말부부가 많은 것도 대덕연구단지의 독특한 풍토. 자녀교육이나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직장 때문에 가족은 서울에 있고 연구원 남편은 기숙사에 사는 경우다. 연구원 B씨는 벌써 5년째 주말마다 서울과 대전을 오가는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의 연구환경은 만족스럽다. 몇 번 서울 근교 대기업 연구소로 갈 기회도 있었지만 사기업의 치열한 경쟁 체제나 실력보다 다른 부분으로 평가되는 풍토를 견딜 자신이 없다. 그러나 대전에는 미국 대학 석사 출신인 아내가 일할 만한 곳이 없다. 주말부부로 사는 것은 괴롭지만 아내의 능력과 꿈을 펼칠 기회를 막고 싶지 않다.” B씨는 월요일 새벽마다 차를 몰아 대전으로 돌아온다. 그는 “월요일이면 유난히 피곤해하는 연구원들이 많다. 또 적지 않은 연구원들이 서울의 집에 가야 하는 주말에는 어떠한 행사도 열지 않는 것이 대덕연구단지의 관례”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