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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러시아가 무너지는걸 원하지 않는다
냉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1960년대공산진영의 두 축인 중국과 소련의 신뢰관계는 예전에 무너졌고적대적 대치상황이 1969년에 이르로 무력충돌로 발전하였음중국-소련 국경분쟁이 바로 그 사건임소련에서 다만스키 섬(Даманский), 중국에선 전바오 섬(珍寶島, 珍宝岛)이라 불리는 섬은우수리 강 하류의 중소 국경지대에 위치한, 길이 2킬로미터, 폭 800m의 작은 섬으로국제법상 관례에 따라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였고러시아도 이에 반발하진 않았으나, 양국간 갈등이 격해진 1969년도엔이 섬이 양국 국경수비대의 싸움터가 되어버렸음양국 수비대는 갈고리 장대, 곰 사냥용 창, 못을 박은 몽둥이 등을 들고 가서 충돌했고 군용 트럭이 수백 명씩 병력을 수송하여 확성기로 군악을 틀고 서로를 도발하기도 하였지만중화기가 동원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유혈사태로 번지진 않았으나결국 맨몸 육탄전이 이겼고 패싸움으로까지 발전된 이 난투극에서 승자는 소련측이었음자존심이 상한 중국은 국경수비대에특수부대원과 무술 유단자를 파견하였고양측간 다시 일어난 패싸움에서 소련의 일반 보병들은 중국의 무림고수들에게 된통 당해 이번엔 소련이 패배하였음정황을 보고받은 소련 경비대장은 중국측 경비대원이 특수부대원이라는 것을 직감하였고상부에 특수부대원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여 복싱선수 출신의 장교가 파견되는 등엎치락 뒤치락 하는 난투극이 이어졌음3월 2일, 그 날도 양측 국경수비대 간 패싸움이 벌어졌지만상황이 불리해진 소련측 국경수비대가 권총을 꺼내들어중국 국경수비대에 발사하였고 중국측도 권총 꺼내들며양측간 총격전이 발생하였음권총이 소총이 되고 기관총이 되며수류탄이 박격포가 되고 야포가 되고차량에 이어 장갑차, 전차가 동원되는 등 교전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양측의 지도부는 전면전을 상정한 회의를 개최했고강경파들은 당장 모스크바, 베이징에 핵공격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음하지만 중국은 전면전에서 소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중국군 원수 중 한명인 예젠잉은 마오쩌둥에게삼국지를 인용하며 제갈량이 오나라와 손잡고 위나라에 북벌을 거행한 것을 본받아미국과 손잡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에서 드러나듯미국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길 원했음미국 또한 중국보단 소련을 견제 하는 것이 우선이었고소련을 견제할 수 있는 친구를 두는 것이 나쁘지 않았기에만약 전면전이 발발할 시 미국은 중국 편을 들 것이란 의중을소련측에 전했고 미국, 중국 두 나라와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소련이전바오 섬의 중국 영유권을 인정하며 중-소 국경분쟁은 마무리 되었음오늘날 러시아와 중국의 상황은 반대가 되었음러시아는 더이상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수 없으며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임그렇다면 중-소 국경분쟁 당시에 미국이 중국의 편을 들어줬던 것 처럼이번엔 미국이 러시아의 편을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만약 이대로 러시아가 무너진다면 중국은정떡이라 삭제될거 같아서 좀 그런데이거 계속 써도 됨? 안잘림?
작성자 : 쌍너메거고정닉
아스날 구장의 역사
구단 최초 비서인 엘리야 왓킨스가 쓴 책에 따르면 구단 창단 후 최초의 경기는 Isle of Dogs라는 섬에 있는 땅에서 치뤄졌다고함. 이게 거의 오피셜인 분위기근데 이 책에 오류가 굉장히 많아서 사실인지는 모름.첫경기를 굳이 배타고 섬까지 가서 치뤘을까? 라는 의문과 증거 부족때문에 Plumstead common에서 첫 경기를 했다는 설이 조금 더 신빙성 있어보여서 둘 다 적어봄Isle of Dogs당시 울위치 아스날에서 배를 타고가야하는 위치. Plumstead common그냥 플럼스테드라는 지역에 있는 공터였음1886~1888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했음.엘리야 왓킨스에 따르면 주택의 뒷마당을 합친 느낌이였다고함.또한 주변이 도랑으로 둘러쌓여 있었다고 하는데 도랑이 아니라 열린 하수구 느낌으로 존나 더러웠다고함.대충 이런 뒷마당에쓰래기로 가득찬 도랑으로 둘러쌓여있던 느낌인듯1888년, 로컬팬들도 점차 생기고, 발전을 위해선 다른곳으로 옮겨야겠다고 결심 후, 약 1.6km 떨어진 Manor ground로 옮김.둘 다 같은 동네에 있는 땅이여서 크게 옮긴건 아님.여기서도 크게 발전한건 아니였음플럼스테드 커먼은 공유지여서 축구경기를 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음.하지만 매너그라운드는 사유지여서 편하게 이용 가능, 또한 골대 설치, 울타리 설치등 경기 진행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함. 그리고 당시 근처에 있는 star 라는 술집에서 옷을 갈아입었다고 함.그런데 1890년, 땅 주인이 구단이 성장했다는 이유로 임대료를 2배나 더 달라고 했음. 그 당시 감당이 불가능했던 아스날은 800m정도 떨어진 Invicta ground로 옮겼음.현재 주택가로 개조되어서 이렇게 관중석만 조금 남아있음소규모 관중석과 울타리가 있어서 전보다는 훨씬 축구장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있었음.참고로 invicta는 라틴어로 “무패” 라는 뜻. 이때부터 근본 지리네그후 1891년 풋볼리그 세컨드 디비전(프로리그)에 합류하게되었음.인빅타 그라운드는 약 1000명정도 수용 가능했지만 풋볼리그는 최소 50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경기장이 있어야한다는 규정이 있었음.그래서 매너그라운드 주인과 협상 끝에 땅을 아예 매입하고 관중석과 시설을 확장했음.매너그라운드라고 불렸음.이제 정말 경기장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발전함.여기서 계속 지내다가 재정이 어려워진 아스날은 1910년 파산 직전까지 갔음. 근데 이때 헨리 노리스라는 부동산 부자가 나타나서 아스날을 인수함.참고로 헨리 노리스는 1차 세계대전 후 퍼스트 디비전이 20팀에서 22팀으로 늘어났을때 다소 억지로 토트넘을 제끼고 아스날이 1부리그에 참가하게 만든사람임ㅋㅋ나중에 이때 뇌물혐의로 축구계 퇴출당함노리스가 살짝 보니까 런던 중심에서도 멀고 교통이 ㅈㄴ 불편해서 관중석이 텅텅 빈걸 봄(평균관중 약 11,000명)그래서 런던 북부 이즐링턴으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당시 £80,000를 들여서 땅을 매입하고 경기장을 지음. (그록3피셜 현재 가치 약 227억 700만원)1913년 당시 하이버리 모습1985년, 원래 6만명정도까지 수용이 가능했지만 힐스버러 참사에서 파생된 안전 규제로 약 3.8만명으로 줄어들었음. 그 후 수익 극대화, 현대화, 시설 개선등의 이유로 1990년대 뱅거와 이사회가 경기장 확장을 시키려했는데 불가능하다는것을 인지하고 근처에 있는 폐공장 부지인 Ashburton Grove를 인수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을 지었음.이때 1930년, 허버트 채프만이 하이버리 현대화의 일환으로 설치한 시계를 그대로 옮겨와서 남쪽 스탠드에 붙여놨음.아니 씨발 이거 말고도 존나 자세하게 처음부터 적어둔거 있었는데 사라짐 씨발련이 아 씨발 그래서 그중 일부인 시발 경기장만 다시 써봄 씨발 아
작성자 : 미켈아르테타아마트리아인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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