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계획된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고, 보조배터리 충전을 안 하고 가서 2시간 만에 휴대폰이 꺼졌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씀.
즉 2시간 이후의 사진은 하나도 없다는 것!
일단 산불 조심기간 때문에 통제된 곳들을 제외하고, 이래저래 말이 많은 곳도 제외하고, 원점회귀가 아닌 코스로, 1박2일로 갈만한 곳을 찾다가 잡게되었음.
물론 원점회귀가 아니니까 대중교통으로 갔다오기 좋게 코스를 짰음.
코스
코스는
가평역-수리봉-송이봉-깃대봉-약수봉-대금산-대보리 잣나무숲
가평역에서 바로 가까운 능선으로 올라가서 능선을 따라서 종주를 하고 대보리 잣나무 숲으로 내려가는 코스였음.
GPX를 만들 때는 22.4km에 획득 고도가 1109m 였지만... 현실은 달랐음...
가민 인스팅트 2로 측정된 거리는 25.8km에, 획득 고도는 1437m 였음.
가장 크게 간과한 것이, 능선이 짧게 많이 배치가 되어있으면 GPX 정보와 차이가 커진다는 것임.
GPS 데이터로는 길의 상태나 상황을 알 수 없다는 것도 크게 느낌.
가평역에서 출발
가평역에서 북쪽으로 다리 건너서 가면 철제 계단이 보임.
아래로 가는 길이겠거니 했는데 저기가 맞더라...
근데 철제 계단이라고 하긴 뭐하고 공사장에 있는 임시계단처럼 쇠파이프에 볼트 조여서 단 계단임.
낙엽도 엄청 많이 쌓여있고 끊어진 곳도 있어서 시작부터 인적이 드물어보이긴 했음.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 먼저 다 털고 쓸게... 어차피 2시간 분이라...
관리를 안 하는 등산로고 인적이 드물다고 느낀게 낙엽이 너무 많고 두껍게 쌓여있더라
그냥 푹신푹신 발이 들어갈 정도로 낙엽이 많아
나중엔 그것 때문에 엄청 넘어졌음
가까운 곳도 나무가 쓰러져있거나 죽은 나무들이 길을 막거나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어
가지 말라고 놔둔건가 싶을 정도로 길이 막힌 곳들도 있었음
1박 2일 다니는 내내 길이 너무 안 좋더라
나중에 하산을 할 때에도 계곡 물길 따라 내려가는데 죽은 나무들이 길을 너무 막고 있더라
중간에 점심으로 과자 2개랑 소시지 먹었음.
이 이후부터 사진이 없음...
음악 조용히 듣고 새소리 들으면서 올라가다가 배터리 다 됐다고 해서 보조배터리 연결했는데
음???
뭔가 이상하더라? 왜 충전하면서 쓰는데 자꾸 충전이 꺼지는???
이 멍청이가 백패킹 간다고 보조배터리 다 충전시켜놨는데 막상 가져간 배터리만 당연히 했겠거니 하고 충전 안하고 들고 나왔음.
4% 남은거라도 지켜보려고 바로 껐는데 추워서 못버티고 결국 중간에 방전됨.
깃대봉 지나 1박
순간 이거 그냥 그대로 내려갈까 말까 고민했음.
근데 나란 새끼는 자신에게 이상하게 가혹한 새끼인 것 같은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냥 하기로 했으니 끝까지 가보자 싶어서 다시 출발함.
진짜 완전히 단절되니까 내내 매순간 고민하게 되더라.
그냥 강행하자니 예상보다 거리가 너무 안 줄어들기도 하고, 사람도 한명도 안 보이고, 너무 길어지면 먹을거랑 물도 부족하고 그랬거든.
중간에 모르는 길이지만 짧아보이는 길로 빠질까... 그대로 돌아갈까... 고민하다가
길 상태가 너무 안 좋고 잘 안보이는 수준이니까 시계에 있는 지도 대로 끝까지 가보자 싶어서 계속 고민에 고민하면서 지도 따라 갔어.
예상했던 박지는 대금산에서 잣나무 숲으로 꺾는 능선길 마지막에서 가까운 헬기장이나 잣나무 숲이었는데 못 가겠다 싶더라.
그래도 토요일에 올라가는 길은 다 끝내고 싶어서 최대한으로 이동해서 박지 잡음.
(부러진 폴은 중간에 또 사라져서 사진 퍼옴)
아참! 사진이 없어서 아쉬운데 트레킹 폴 하나 부러져서 박지 도착하기 전에 비슷한 길이 나무 하나 들고 다니다가 폴대로 썼음.
나참... 비자립 텐트 사면서 이런일 생길까봐 보조 카본폴대 하나 샀는데 설마하고 안 가져갔더니 바로 이런일이 터지네 ㅋㅋㅋ
진짜 한번 고생하면서 별걸 다 경험해본다 싶더라.
박지는 송전탑 바로 옆, 텐트 하나 정도 칠 수 있는 공간 있어서 쳤음.
꼭대기 능선에 갈대도 있고 짧은 풀도 있고 바람이 안 부는 것 같아서 쳤는데 다행이 바람이 심하진 않았음.
근데 밤 되니까 바람소리가 진짜 굉음소리로 바뀌면서 고속도로 옆에 텐트 친 것마냥 시끄럽더라
텐트로 부는 바람은 거의 없었는데 송전탑 사이로 흐르는 바람소리인지 산 지형 때문에 나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굉장했음.
문제는 7시에 벌써 세팅 다 하고 침낭 들어가서 누웠다는 거임.
다음날 해 뜨는 시간이 6-7시인데 아무것도 할게 없으니까 눈만 감고 있었음.
저녁을 추가로 먹을까도 했는데 내일 물이 부족할 것 같아서 편의점 편육만 까서 먹었어.
4시쯤 핫앤쿡에 소시지 넣어서 하나 먹긴 했는데 내일 마실 물이 좀 부족해보였음.
호스달린 물가방에 물 가져간게 좀 문제였던 것 같아.
힘들기도 했고 마시기 쉬우니까 너무 습관적으로 마셔서 2L중에 거의 1.7L를 마셔버렸음.
날진통에 한 400ml 남고, 물가방에 물은 200ml 안 되게 남았는데 물가방은 추워서 얼어버렸음.
한 10시인가 11시까지 눈만 감고 뒤척이다가 어느순간 잠 들었고 7시쯤 일어났음.
물도 좀 부족하고 먹을 것도 없어서 일찍 일어나서 하산하려고 했는데 늦어져서 마음이 급해지더라.
전날에 허벅지 약간씩 근육 올라오는 느낌 들어서 걱정했는데, 푹 자니까 또 컨디션 괜찮더라.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든게 정말 컸음.
낙엽이 너무 많고 낙엽 아래 얼음끼고 그러니까 한 20번 이상 넘어진 듯.
폴대도 부러져, 계속 넘어지고 길도 안 보여서 진행은 늦어, 물하고 밥 부족해, 사람은 한명도 없어, 휴대폰은 꺼져서 못 봐.
이러니까 멘탈이 진짜 좀 흔들리더라
스쿠버 다이빙 할 때도 비슷하게 '이정도면 누군가는 진짜 패닉 왔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딱 그런 수준이었음.
근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능선에 가끔씩 남아있는 눈에 찍힌 발자국 하나가 계속 보이는데 진짜 위로되고 힘나더라
근데 진짜 휴대폰으로 지도를 못 보니까 중간에 빠지는 길 있어도 내려가고 싶어도 못 내려가겠더라.
길을 믿을 수가 없고 잘 보이지도 않으니까 지도에 없는 모르는 길을 막 내려가지 못하겠더라고,
다음에는 코스 하나만 딱 넣어올게 아니라 중간에 빠지는 길이라거나 전체적인 등산로를 다 넣은 지도도 넣어가야겠다고 생각했음.
잣나무 숲 - 계곡 하산
대금산 지나서 잣나무 숲으로 빠지는 길이 결국 나왔는데 분위기가 확 다르더라
숲이 울창하고 또 서쪽이다 보니 빛도 안들어오고 스산한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음.
길은 딱히 없고 완만한 숲이라 대충 방향 맞춰서 아무렇게나 내려가면 됨.
바닥은 낙엽이 많아서 그런지 엄청나게 푹신푹신 했음.
길 따라 내려가다보면 임도길하고 갈라지는 길이 있는데, 차가 다니는 임도길이 확실히 완만하겠지만 너무 늘어질 것 같아서 계곡 따라 내려갔음.
중간에 목 말라서 계곡에 있는 얼음 좀 뜯어서 먹고 그랬음.
뒤에 얘기하겠지만 내 루트로 가는건 일단 비추하고 올라가는 길도 계곡은 비추함. 임도길로 가서 돌아오는게 좋을 듯 해.
계곡 길도 정비가 된 길은 아니라서 대충 계곡 따라 이리 저리 건너면서 내려가는 거임.
이전 길 내내 그랬지만 계곡에서도 부러진 나무들이 길을 너무 많이 막고 있어서 위험할 수 있겠다 싶더라
계곡 다 내려가서 파란 지붕 하나 보고 문명의 흔적을 보니 너무 반갑더라
그러고 일반 도로로 한 2시간 걸어서 시내가서 밥 먹고 버스타고 왔음.
막상 갤러들이 원하는 잣나무 숲 사진이나 캠핑 후기는 못 남겨줘서 미안하네
백패킹은 대부분 임도길 근방에서 할거라고 봐. 다른 곳은 힘들어.
임도길로 내려갈까 했는데 고생하고서 임도길 내려가면서 다 보고 내려가면 다음에 갈 마음이 안 들 것 같아서 좀 피한 것도 있어.
다음에 처음 가는 기분으로 차타고 가고, 완만한 임도길을 걸어서 오르는게 좋지 안을까 싶음.
잣나무 숲 가려면 임도길 걸어서 올라가고, 연계해서 등산하려는 친구들도 그냥 대보리에서 등산해서 대금산 까지만 오르는걸 추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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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서 별별일 다 겪었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1박 2일 산 오르고 내려가는 동안 사람 단 한명도 못 보고니까 없던 불안감도 생기더라
육체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 건 드문 경험 같아.
보통 의지를 하는 편이 아니라 의지가 되는 편의 사람이라도, 혼자보다는 나한테 의지를 하는 사람 한명이라도 있는게 나한테도 도움이 되는 구나 싶었음.
먹는 거야 좀 부족하게 가져가도 큰 문제 없다지만 물이 좀 없다는 생각 드니까 초조하더라.
페트병에 필터 달아서 쓰는 걸 가져갈까 하다가 말았는데 가져가는게 맞았던 것 같아.
정 물이 없으면 눈이라도 담아서 녹인 다음에 필터로 걸러먹으면 되는 거니까.
배탈날 것 각오하고 중간에 그냥 머리박고 계곡물 좀 마셨음...
마치 대충 만든 GPX 지도처럼 크게보면 별거 아닌데 심적으로는 엄청 힘들었던 것 같음.
갑자기 겸손해지고 겸허해지더라.
유붕이가 내상 크면 시즌오프 되니까 잘 추스리라고 했는데 나도 집에와서까지 걱정했음...
그래서 그냥 월요일 하루 푹 쉬었고, 푹 쉬니까 내상 없이 잘 넘어간 듯.
집에 오니까 블다 트레킹폴도 새로 왔고, 곧 미국에서 산 비화식도 오고, 토렌쉘에 마케까지 오니까
겨울동안 힘내서 또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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