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알아 버렸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혼, 가족, 더 나아가 모든 사회 규범에 대한 내 두려움은 거기서 온다. 자기 자신의 결함을 자식에게 전달하는 것, 그래서 자신이 겪었던 시련을, 어쩌면 더 지독한 시련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내 불행과 내 고통을 이어받을 사람을 낳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부모들이란 모두 무책임한 자들이거나 살인자들이다.”
‘타인이란,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나는 내가 나를 혐오하는 것만큼 남을 혐오한다. 자신을 혐오하는 자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다.’
‘혼자 있을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지라도, 시간을 낭비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남과 함께 있으면 거의 언제나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났다는 재앙을 피하기 위해 달아나고 있다."
"삶으로부터 초연해져 자신을 무한에 맡기면 인간은 정상적인 테두리를 벗어나 상승한다. 무한을 바라보면 세상에서 혼자가 된다. 무한성을 날카롭게 의식할수록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느낌은 강해진다. 그러한 의식은 때로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괴롭게 하지만, 우수에 잠겨 있을 때는 덜 고통스럽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내 자신을 견딥니다. 하루하루가 내게 사라져야 할 새로운 이유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태어남이 하나의 파멸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인정할 때, 삶은 마침내 견딜 만한 것이 되고, 마치 항복한 다음 날처럼 투항한 자의 홀가분함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태어남을 재앙으로 취급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태어남이야말로 최고의 선이고, 최악의 것은 우리 생애의 시초가 아닌 종말에 있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불행, 진정한 불행은 우리 앞이 아니라 우리의 ‘뒤’에 있다.
예수는 그것을 간과했고 부처는 그것을 간파했다. “만일 세 가지 괴로움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 제자들이여, 여래도 이 세상에 오지 않으리라.” 이렇듯 삼고를 말한 부처는 그 중에서도 늙음과 죽음보다는 태어남을, 모든 불완전과 환난의 원천으로 태어남을 먼저 꼽았다."
‘나는 아무런 존재도 못 된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도 오랫동안 무언가가 되려고 원해왔던 까닭에 이 의지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다. 일단 자리 잡은 이 의지는 끈질기게 지속되어, 아무리 내던져 버려도 나를 괴롭히고 지배한다. 그것을 과거 속에 집어넣으려 애써도 헛수고다.'
"다락방에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성당지기가 되는 것이나 포주가 되는 것이나 모두 명예로운 일처럼 보인다."
“고독하게 산다는 것은 삶에 더 이상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것이다. 고독 속에서 유일한 뜻밖의 사건은 죽음 뿐이다. 유명한 은둔자들이 세상을 멀리했던 것은 결코 삶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념한 채 결말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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