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

어제 백신을 맞고 사망한 30대의 기사를 보았다.

나는 그 불행한 친구가 맞은 똑같은 백신을 내일 맞을 예정이다.

오늘 출근을 하자마자 나는 왼쪽 팔을 문지르며

문득 주변 정리를 좀 해 놓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딸아이가 혹시라도 보게된다면

“나한테는 매일같이 책상정리 하라고하더니 자기는 이러고 살았네” 따위의

핀잔을 듣고 싶지 않았다.

아주 더럽지 않은 수준으로 청소를 마치고

미처 정리 못한 서류들을 차곡차곡 쌓아 스캔하여 폴더안에 집어 넣었다.

주변에는 내일 백신을 맞으러 가니 며칠 못볼수도 있다고 알리며 일들을 조금씩 당겨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혼자 일하던 사무실이다보니 할 일이 많구나.

직원들이 여럿있던 시절이 생각난다. 사고만 치던 놈들

그래도 있었으면 이럴때는 든든했을지도 몰라. 쓴웃음이 난다.

모든 것을 정리하니 퇴근이 4시간이 남았다.

아이들에게 줄 편지 그리고 아내에게 쓸 편지를 적는다.

직접 줄 생각은 없다. 직접 줘봐야 분명 이게 무슨 재수없는 짓이냐고

한마디 들을것이 뻔하다.

혹시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발견할곳에 두기로 한다.

어머니에게는 따로 쓰지 않았다.

그토록 오래 저지른 불효를 글 몇자로 용서받고자 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몇 년 동안이나 서로 연락도 하지 않은 아버지는

그저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왠지 더 통쾌할 것 같았다.

중학생 때

학교 글짓기 대회에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을 쓴 것이 생각난다.

재능이 없었는지 나는 미래의 소설가가 아니라

잠재적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되어있었다.

그때였을까.

그냥 이대로 이렇게 남들 바라는대로 살기로 한 것이,

문득 내 인생을 결정지은 것이

이런 시답잖은 이유라는게 어쩐지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든다.

시답잖은 삶에 멋진 동기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단 하나 비극적인 것은 내가 바라는 삶과 세상이 바라는 삶은

너무나도 달랐다는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인간실격에서

오바 요조의 모습이 묘하게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도 욕망도 인간답지 못한 주제에

부끄러움만 가득 싣고 살고있구나

내일 죽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면

무언가 뚜렷하게 보일지 모른다는 착각을 했다.

내일 죽을 운명은 아닌지 변한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