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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절제 1

frea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04.06 15:2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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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썩어가는 시체 냄새가 먼저 찾아왔다.

악마사냥꾼 발라가 황폐해진 홀브룩에 도착했을 때, 구름이 칸두라스를 온통 뒤덮고 있었지만 대기는 따스했다. 한때 작지만 복작대던 이 마을은 이제 버려진 유령의 땅이 되었다. 아니, 그래 보였다. 하지만 대기를 가득 채운 부패의 냄새는 마을에 아직 주민들이 있음을 드러냈다. 단지 살아있지 않을 뿐이다.

발라의 스승 조센은 마을 중앙에서 쓰레기 더미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깨진 돌덩이, 그리고 뒤집어진 흙과 돌이 뒤엉킨 더미였다.

조센은 악마사냥꾼의 전형적인 장비로 무장한 상태였다. 몸 절반을 덮은 판금 갑옷에 부드러운 저녁 햇살이 반사되어 빛났고, 한 쌍의 쇠뇌가 손이 닿기 쉬운 허벅지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두건을 눌러 쓴 채로, 세찬 바람에 실린 망토를 펄럭였다.

발라도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지금도 그녀의 얼굴 아래쪽을 가린 검은색 긴 스카프였다. 목수의 딸, 발라는 말을 세우고 뛰어내려, 잠시 조용하고 차분하게 주변을 파악했다.

<u></u>
<u></u><u></u><u></u>

어렴풋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하지만 인기척은 조센과 다른 두 명의 사냥꾼에게서만 느껴질 뿐이었다. 한 명은 버려진 건물들을 수색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무너져내린 창고 근처에 서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든, 손을 쓰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이제는 생존자를 찾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만 남았을 뿐이었다. 사실 그것이 악마사냥꾼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이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재앙을 겪고 고향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 그들을 이끌고 용기를 북돋우며, 치유, 교육, 훈련하는 일... 그리고 그들에게 의지가 있다면, 첫 번째로 중요한 일, 바로 악마사냥꾼이 되어 이런 악을 세상에 퍼뜨리는 지옥의 자식들을 말살해야 한다.

조센은 다가오는 발라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강렬한 시선으로 쓰레기 더미를 살폈다. "최대한 빨리 왔어요." 그녀는 스카프를 끌어내리며 말했다.

웅웅거리는 희미한 소리가 계속되었다. 조센의 시선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있어선 안 돼." 그의 목소리는 마치 자갈 굴리는 소리 같았다. "델리오스가 임무를 완수했다면 이렇게 오지 않았을 거야." 그의 형형한 눈이 마침내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이게 뭐처럼 보이는지 말해보렴."

발라는 마을에 남은 대격변의 참상을 바라봤다. 돌더미와 나무 조각들은 낯이 익었고... 그 위에 흩뿌려진 검은 액체 역시 익숙했다. 하지만 뭔지 알아볼 수 없는, 마치 타르 같은 검은 물질도 사방에 퍼져 있었다.

"마을 우물이군요." 발라가 말했다. "악마는 여기서 나타났어요... 악마의 피를 보니 상처를 입었나 봐요. 델리오스가 거기까지는 해냈군요. 사냥꾼답게 죽었기를 바랄 수 밖에요."

조센이 흙바닥을 발로 찼다. 표면 아래의 토양은 젖어 있었다. "하루 이상 지나지 않았군. 그 전에..."

발라는 조센이 말을 잇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직접 물었다. "그 전에 무슨 일이 있었죠?"

스승은 알 수 없는 표정을 띄고 답했다. "따라와."

창고에 다가가자 웅웅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귀를 꿰뚫을 듯 진동하는 소리였다. 커지는 소리와 함께 악취도 강해졌다. 창고 앞에 서 있던 사냥꾼이 커다란 문을 열었다.

짙은 검은색 구름처럼 모여든 파리떼가 창고를 빠져나갔다. 썩어가는 육신의 냄새는 발라에게 익숙했지만, 이번 냄새는 너무도 강렬해서 그녀는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 했다. 그녀는 스카프를 단단히 조여맨 채로 넘어오는 신물을 꿀꺽 삼켰다.

헛간 크기의 공간 안에는 마을 주민들이 되는 대로 겹겹이 쌓여 있었다. 남성, 여성... 대부분은 복부가 크게 부풀어오른 상태였다. 사체 중 일부는 배가 갈려 내장이 흘러 나왔고, 그 주위에서는 구더기가 꿈틀댔다. 눈과 코, 입에서는 체액이 흘렀다. 부패의 냄새 아래에는 인분의 냄새가 뚜렸했다. 수백 마리 파리떼가 학살의 현장을 뒤덮었다.

발라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 상처는 끔찍하긴 했지만 지옥의 자식들이 남기는 형태가 아니었다. 악마는 주로 찢어지고, 사지가 떨어지고, 목이 잘린 시체들을 남기는데 비해, 이들은 찔리고, 꿰뚫리고, 두개골이 부서져 있었다.

조센이 말했다. "델리오스가 브람웰 외곽에서 목격됐다. 유곽을 급습해서 모두를 죽이고 사라졌지. 어젯밤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어. 아편굴에서 열다섯 명 사망. 쇠뇌 화살과 칼에 맞아 죽었다더군."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발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조센은 그녀의 소리 없는 물음에 답했다.

"악마의 타락에 굴복한 모양이다. 이젠 잃어버린 사냥꾼이야. 악마와 다를 바가 없어."

끔찍한 이야기였지만, 선과 악의 문턱을 수시로 넘나드는 악마사냥꾼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 사냥꾼이 자신의 두려움과 증오를 통제하는 능력을 잃으면, 경계 너머로 넘어가기가 너무 쉬웠다. 하지만 여기... 이곳의 일은 델리오스의 소행이 아니다. 뭔가 달랐다. 발라는 불안감을 감췄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여기 일은 사냥꾼 짓이 아닙니다. 악마도 아니고요."

"동의한다."

"서로를 살해한 걸까요?"

"어쩌면." 조센은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 발라는 시체 더미를 다시 한번 훑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린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밖으로 나간 조센은 말 옆에 서 있었다. 발라는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지난 번 임무는 모두 마쳤어요. 다음 명령을 내려주세요."

"우린 계속해서 생존자를 찾는다. 동틀녘이 되면, 난 브람웰로 가서 델리오스를 찾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너무 늦지 않았는지도 몰라." 하지만 그 말과 달리, 잠시 동안의 머뭇거림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발라는 몸을 똑바로 폈다. "그러면 제가 악마를 찾겠어요."

"안 돼." 조센이 쏘아붙였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발라가 스승에게 다가갔다. "뭐라고요?"

그녀를 향해 돌아선 스승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상대하는 게 무엇인지도 우린 거의 모르고 있어. 어떤 방법을 쓰는지도. 공포를 섭취하는 악마라고 생각되지만... 델리오스도 그 정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되고 말았지. 이런 악마는..."

조센은 살짝 눈을 감았다. "... 네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모든 공포, 모든 의혹, 모든 후회를 들춰낼 거다. 네가 아무리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더라도 소용 없어. 넌 네 자신과 싸워야 한다." 스승은 눈을 번쩍 뜨고 발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폐허에서의 네 실패를 기억해라."

"그건 달랐어요. 분노의 악마라고요." 발라는 주장했다.

"분노, 증오, 공포. 모두 서로를 먹고 자라지. 악마사냥꾼은 증오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 배운다. 하지만 그 균형은 위태로울 뿐이야. 균형을 잃는 순간, 순환이 시작된다. 증오가 파괴를 낳고, 파괴가 공포를 낳고, 다시 공포가 증오를..."

"벌써 천 번은 들은 얘기라고요!" 발라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잘 새겨 들으렴. 넌 아직 젊고 배워야 할 게 많아. 내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악마사냥꾼은 언제나 증오를 절제로 다스려야 한다는 거다. 그러니 진정하거라. 이 악마는 상처를 입었고, 지금은 활동하지 않고 있다. 다른 사냥꾼을 보내마."

조센은 뒤로 돌아 떠나려 했다. 하지만 발라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델리오스를 쫓겠어요."

조센은 다시 뒤돌아섰다. "여기 남아서 생존자 수색을 도와라. 델리오스는 내 사냥감이다. 이건 명령이다." 이 말만 남기고 스승은 자리를 떠났다. 차분하게. 그래서 발라는 더 화가 났다. 소리를 지르든, 호통을 치든, 어떻게든 빌어먹을 감정을 보여주길 바랐었다.

<em>준비가 안 됐다고? 내가? 지금까지 겪은 일만 해도...</em> 발라는 속삭였다. "어떻게 내게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을 하실 수가 있나요?"

잠시 후, 그녀는 말에 올라탔다.

<em>어느쪽으로?</em> 악마는 어느쪽으로 갔을까? 발라는 잔해 더미 가운데의 피를 흘긋 쳐다봤다. 핏자국은 더미 밖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쪽에는 산뿐이었다. 서쪽으로는 서부 반도 만, 남쪽 먼 곳에는 신 트리스트럼이 있었다. 하지만 악마는 부상을 당했다. 남쪽 멀리까지 떠나는 위험을 감수했을까? 아니면... 이곳처럼 작은 농촌 마을들이 있는 북동쪽으로 떠났을까?

손쉬운 먹잇감이 더 필요해.

가장 가까운 마을, 헤이븐우드까지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다.

선택은 내려졌다.


 

엘리스 할스태프는 아픈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사만다는 아래층 침실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찬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 놓은 아이는 얕은 숨을 몰아쉬었다.

딸아이는 어젯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를 진정시키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고, 결국 아이의 흥분이 가라앉은 후 엘리스가 이유를 물어보자, 아이는 "머리 속에 나쁜 게 있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헤이븐우드의 치유사인 벨릭이 오늘 오전에 왕진을 와서 사만다가 쉴 수 있게 간단한 물약을 처방해 주었고, 여유가 생기면 아이를 찬물에 목욕시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사만다는 이제 편히 쉬고 있었다. 사만다의 남동생 렐린에게 우유를 먹이고, 밤이 늦기 전에 남은 집안일을 해야 했다. 전에는 쉬운 일이었다. 사만다의 아버지가 곁에 있을 때만 해도. 남편이 아무 말도 없이,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떠나 돌아오지 않는 지금은 모든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엘리스는 사만다를 내려다보며, 지난 번 아이 생일에 조숙한 7살 딸아이가 뻔뻔스럽게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이제 심부름은 시키지 말아 달라고 선언하던 일을 떠올렸다. 사만다의 웃음, 쾌활하고 순수하게 깔깔대던 모습을 떠올렸다. 며칠 전에 사만다가 확신에 찬 말투로 조슈아 그레이라는 아이에게 반한 것 같다고, 그 아이의 눈동자는 멋진 꿈과 같다고 말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런 일을 떠올리면서, 아카라트께 사만다를 어서 낫게 해달라고, 또 멋진 꿈을 많이 꾸고 이렇게 병치레하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발라는 헤이븐우드를 몇 킬로미터 남겨둔 곳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앞에 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는 턱을 따라 난 긴 상처를 멍하니 손으로 문질렀다.

<em>넌 아직 준비가 안 됐어.</em>

<em>악마사냥꾼은 언제나 증오를 절제로 다스려야 한다.</em>

조센의 말에 아직 가슴이 쓰렸다. 하지만 그 말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어쩌면... 어쩌면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허에서의 사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와 델리오스는 함께 며칠간 모험하며 공포의 땅 남부 깊숙이 들어갔다. 델리오스는 거칠고, 신경에 거슬렸으며, 그녀를 초조하게 했다. 발라는 혼자 임무를 수행하는 편을 좋아했지만, 조센은 꼭 둘이 함께 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둘은 미지의 문명이 남긴 폐허의 한가운데에서 악마의 은신처를 발견했다. 발라는 조센이 가르쳐 준 대로 자신의 마음을 보호했다. 조센은 앞서 두 사람 모두에게, 이렇게 강력한 악마와의 전투는 단순히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고 경고했었다.

"너희가 바로 악마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의 충고였다.

휘감아 도는 넓고 거대한 돌계단을 따라 둘이 지하로 내려가는 동안, 발라는 불안감이 커져가는 것을 느꼈다. 계단 아래쪽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로 이어졌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 기둥이 수없이 위로 뻗어 있었으며, 그 꼭대기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불타는 화로가 여기저기에 깜빡이는 빛을 뿌렸다.

델리오스가 앞으로 돌진했다. 무모하고 멍청한 짓이었다. 발라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악마가 머릿속을 침투해 오는 것을 느꼈다. 마음의 눈에 보이는 악마의 모습은 그녀를 도발하고, 또 달래는 검은 촉수와 같았다. 발라는 델리오스가 지닌 짜증나는 습관과 부정적인 성격 모두를 곰곰히 곱씹었다. 그녀의 불안감은 곧 화로 변했고, 이내 다시 분노로 커져갔다.

델리오스가 다시 한번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녀는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는 돌아서서 짓궂은 미소만 보낼 뿐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그가 타락했다고 확신했다. 틀림없이 선을 넘었다. 그녀의 분노가 끓어 넘쳐 맹목적으로 폭발할 지경이었고, 그녀는 그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약하고 무력하다. 그의 목숨을 끊어주는 것이 자비로운 일이다.

그녀는 앞으로 나섰다. 델리오스는 그녀를 비웃으며 서 있었다. 발라는 그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그는 이내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그녀는 그 뒤를 쫓았고...

델리오스는 사라졌다. 그녀는 뒤편에서 악마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이세계의 존재였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악마는 꼭두각시 인형의 끈을 조작하듯 간단하게 발라를 조종했다. 그녀가 쫓았던 델리오스는 실제가 아니었다. 이제 그녀가 길을 잃었고, 이대로 죽어갈 터였다.

폭발이 일어났고, 그 다음의 일은 발라에게 단편적인 기억으로만 남아 있었다. 바로 조센이 악마와 싸우는 모습이었다. 델리오스도 돕기 위해 달려왔다. 발라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쇠뇌로 화살을 몇 발 발사했다. 조센은 추방의 말을 외쳤다. "드락시엘, 메피스토의 애완견, 난 네가 보인다.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의 이름으로, 널 추방한다! 사라져라! 지옥으로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말지어다!" 조센이 화살을 발사했다. 눈을 시리게 하는 불빛이 번쩍였고, 악마는 사라졌다.

폐허는 일종의 시험이었다. 조센은 모든 것이 시험이라고, 인생 그 자체가 바로 시험이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발라는 실패했다. 이제... 이제 델리오스 역시 실패했다. 대가는 그의 영혼이었다.

발라는 이 악마를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델리오스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지 않겠다고도 결심했다...

<em>이젠 잃어버린 사냥꾼이야. 악마와 다를 바가 없어.</em>

목수의 딸은 몸서리가 쳐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악마를 추방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조센이 그녀에게 가르쳐 준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는 "악마가 널 들여다보면, 너도 마주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악마사냥꾼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라고도 말해 주었다.

폐허에서의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후로 발라는 너무 많이 성장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동생 할리사의 모습을 조각한 장신구를 꺼내들었다.

"너를 위해서야." 그녀는 속삭였다. 모닥불이 사그라지자, 그녀는 조센이 가르쳐 준 정신적 훈련을 시작했다.


 

<em>난 죽을 거야.</em>, 엘리스 할스태프는 생각했다. <em>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em>

현관으로 빠져나가 헤이븐우드 마을로 달려갈 수는 없었다. 렐린에게 먼저 가야만 했다. 겨우 한살 반밖에 되지 않은 연약한 아기였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데 자기 몸을 지킬 수는 없다.

그녀는 성한 손으로 난간을 붙잡고 몸을 끌어올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쓸모없는 오른발이 질질 바닥에 끌렸다.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딸아이가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골똘히 생각했다.

일을 마친 엘리스는 아이가 잘 있는지, 이제 목욕을 해도 괜찮을지 보려고 사만다의 방에 들렀다. 사만다는 미소 지으며 엘리스의 조각칼을 이불 밑에서 꺼내들고는 엄마의 다리를 찔렀고, 뒤이어 가슴에까지 칼을 꽂았다. 다섯, 여섯 번. 어쩌면 그 이상. 엘리스는 충격을 받아 소중한 시간을 몇 초 낭비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달아났다.

엘리스의 머리는 이제 안개가 낀 듯했다. 그녀가 계단을 절반쯤 올라갔을 때, 아래층 거실에서 사만다가 맨발로 달려오는 날쌘 콩콩 소리가 들렸다.

엘리스는 돌아봤고, 계단 아래에는 예쁜 금발머리 딸아이가 서 있었다. 엄마가 오랫동안 저축해서 추수절 축제때 사 줬던,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었다. 옷에는 짙은 진홍색 얼룩이 램프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사만다는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피가 딸아이의 팔꿈치 아래를 온통 덮고, 칼날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잠깐만, 엄마. 내가 잡을 거야!"

<em>이걸 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em>

엘리스는 몸을 끌어올려 한 계단 더 올라섰다.

사만다는 펄쩍 뛰어올라 두 계단을 한번에 올라왔다. "기다리랬잖아!" 계단에 흥건한 피에 미끄러진 딸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머리 위로 들어올린 오른손에 쥔 칼이 엘리스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계단에 내리꽂혔다.

엘리스가 뒤로 돌아서서 마지막 계단 두 개를 기어올라 2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 자신의 비명이 다른 모든 소리를 뒤덮었다. 그녀는 쓸모없는 오른다리를 질질 끌며 렐린의 방으로 황급히 달렸다.

<em>안에 들어가면 빗장을 걸 수 있을 거야. 그러면...</em>

문간에 다다른 엘리스는 우뚝 얼어붙었다. 아기 침대에 렐린이 없었다. 게다가 침대의 나무 난간은 부서져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더욱 심해진 어지러움 때문에 엘리스는 팔을 뻗어 부서진 난간을 붙잡고 기대섰다. 팔다리는 차가웠고, 아무리 움직이려 해도 영 굼뜨게 반응할 뿐이었다.

"찾았다!"

돌아보니 문간에 선 사만다가 보였다. 딸아이는 아버지가 떠나버리기 전, 야던법석을 떨며 함께 놀던 시절처럼 활짝 웃고만 있었다.

세상이 비틀거렸다. 엘리스는 한 걸음 물러서며 부서진 난간을 붙잡았다. 길고 한 쪽 끝이 날카로운 막대였다. 그녀는 침대에서 그 막대를 떼어내고는, 떨리는 손으로 사만다를 향해 내밀었다.

"사만다, 너 무슨 짓을 한 거니? 동생을 어떻게 했어?"

사만다가 칼을 내렸다. 통통한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입꼬리는 아래로 쳐졌고, 눈쌀을 찌푸리며 촉촉한 눈이 더욱 커졌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는 혼나지 않으려 할 때의 표정이었다.

"나 때릴 거야, 엄마?"

거친 바다에 떠 있는 배 갑판처럼 바닥이 흔들렸다. 엘리스는 손과 막대가 느릿하게 휘청거린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냥 왜 그러는지 알고 싶어..." 엘리스는 희미한 목소리로 말하며 흐느꼈다. "아파서 그러니? 고칠 수 있을 거야. 벨릭 선생님한테 가면..."

그 순간 성한 발목 뒤쪽에 날카로운 고통이 느껴졌다. 무언가에 물리는 느낌과 함께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흘러, 그녀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본 엘리스의 눈에, 침대 밑에서 기어나온 렐린이 보였다. 아기는 그녀를 따스한 눈길로 올려다보며 활짝 웃었다. 작은 치아가 반짝이는 붉은빛으로 덮여 있었다.

세상이 흔들리며 점차 어두워져다. 엘리스의 팔이 아래로 떨어지고, 고개는 뒤로 젖혀졌다. 다행히 그녀는 사만다가 휘두른 칼이 자신의 가슴을 꿰뚫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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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4 시발 디아블로3 하고싶은데 최소사양은되는데 그래픽 하급으로 돌려야할거같다 네일을향해쏴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08 5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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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0 야 시발 진짜 팔리긴 팔리나보네 나도 팔고싶다 [3] 달쓰래기(112.145) 12.04.08 1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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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8 님들 놋북 그래픽 지포스540m으로 어느정도 가능한가요(무플절망) [1] ..(180.69) 12.04.08 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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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8 베타키는 어떻게 얻던거냐 복받은복돌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08 2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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