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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절제 2

frea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04.06 15: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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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는 자정 직전에 헤이븐우드 외곽에 도착했다. 일부러 늦게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드는 시각이었다.

그녀는 마을에서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악마사냥꾼은 늘 그랬다. 날이 아무리 좋아도 그네들은 어둠의 징조이자 죽음의 조짐일 뿐이다.

대기는 아직 따스했다. 발라는 수확이 끝나고 황량한 옥수숫대가 가득한 들판과, 짚더미가 마치 충직한 병사들처럼 줄지어 선 농지를 지났다. 수확의 계절이었다.

발라의 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강이다.

말을 타고 달리던 목수의 딸은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공허한 느낌을 받았다.

여관 주인은 발라를 보자마자 파랗게 질렸다. 그녀가 조금이나마 상대를 편하게 해 주려고 두건을 벗고 스카프도 끌어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질문에 짧게 답했다. 마을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이상한 일도 전혀 없다. 걱정할 이유가 없다. 그녀는 동이 트자 마자 마을의 치유사에게 전해달라며, <em>문제가 생기면 날 찾아오시오.</em>라고 적힌 쪽지를 여관 주인에게 맡겼다.

숙소에 들어선 발라는 일상적인 확인 작업을 하며 몇 가지 점에 주목했다. 필요할 때 방벽으로 쓸 수 있을 튼튼한 탁자. 옆방으로 이어지는 문 없음. 입구 반대쪽에 자리잡아서 입구쪽 시야가 확보된 침대. 1인용 책상과 의자. 지상으로부터 약 5미터 위치에 있는 창문 하나.

그리고 발라는 판금 갑옷을 벗고 여러 무기를 내려놓았다. 한 쌍의 쇠뇌, 단검들, 독침, 올가미 폭탄, 화살통 가득한 화살. 특히 화살몸에 룬 문자가 새겨진 핏빛 화살 하나는 주의 깊게 침대에서 손이 닿는 위치에 놓아두었다. 그녀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수의 딸은 내내 말을 타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녀를 괴롭힌 찜찜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뭔가 잊어버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뭔가 중요한 일, 뭔가 핵심적인 일. 그녀의 마음 속이 텅 빈 느낌, 한때 어떤 중요한 정보가 있던 곳이 공허하게 빈 느낌이었다.

짐 정리를 마친 그녀는 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자신의 규칙적인 맥박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녀가 잊어버린 게 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생각이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그녀가 모두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닐까? 조센의 말을 거역하고도 얻는 것이 없다면?

걱정해 봐야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녀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잠시 자리를 비운 기억도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다.

발라는 책상에 앉아 사랑하는 동생 할리사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여행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늘어놓고, 별 일 없다고, 그녀를 사랑한다고, 또 곧 찾아가겠다고 썼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길 바랐다. 이번 악마를 추방시키고 나면... 어쩌면 잠깐 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편지를 곱게 접어 봉투에 넣고, 봉투는 여행 가방에 보관했다.

발라는 촛불을 끄고, 문을 바라보며 모로 누웠다. 머릿속으로는 잊어버린 것이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녀는 깊이 한숨을 쉬고, 매일 밤 그렇듯 애타게 바랐다. 마을이 공격당하는 악몽을 꾸지 않고 달콤한 잠을 자기를 바랐다. 매일 밤 그렇듯, 한 번 쯤은 좋은 꿈을 꾸길 바랐다.

발라는 사람들이 학살당하지 않는 꿈을 꾼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조차 잊어버린 듯했다.

케건 그레이는 더듬더듬 자신의 집 현관으로 들어왔다. 방금 정원 꽃밭에 볼일을 보고 온 터였다. 그 사실을 알면 세레타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겠지만, 이제는 어떻게 처신하는 게 좋은지 잘 알고 있을 테니, 입은 다물 것이다. 물론 결혼 초기에는 잘 몰랐었지만, 몇 년에 걸쳐 케건이 잘 가르쳐 줬다. 고통스러운 과정이었겠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다.

현관 옆 등이 꺼져 있었다. 아침이 되면, 케건은 이 문제에 대해 세레타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집이 어두우면 가장의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 세 번이나 더듬거린 끝에, 케건은 심지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케건은 부엌으로 향하면서 렉스가 어디에 있을지 막연히 떠올렸다. 케건이 술집에서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렉스는 예의 문간으로 달려와 혓바닥을 죽 내밀고 꼬리를 신나게 흔들면서 그를 맞이하고는 했다. 물론 렉스는 조슈아의 방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니까... 아마 지금쯤 조슈아의 침대 발치에 웅크리고 자고 있을 것이다.

부엌 식탁 위는 텅 비어 있었다. 케건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턱을 앙다물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세레타에게 저녁을 준비해 놓으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하다니. 조슈아가 케건 몫의 저녁밥을 먹어치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이를 혼내줘야겠다. 이런 문제라면 단단히 혼쭐을 내줘야 한다.

지금은 우선 케건이 손수 끼니를 때워야 할 모양이다. 마을에서부터 말을 타고 오느라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다. 그는 식탁에서 칼을 주워들고, 등불을 앞세워 식품 저장실로 향했다.

케건은 칠흙같이 어둡고 긴 방에 들어섰다. 등불이 방을 밝히자, 오른쪽에 도살장에서 잡은 커다란 통돼지가 갈고리에 걸려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두툼한 다리 고기 앞에서 미소지었다.

고깃덩이를 잘라내려고 등불을 내려놓다가, 케건은 바닥에 마치 포도주처럼 검붉은 액체가 고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등불을 가까이 가져갔다.

피였다.

그 모습에 술기운이 가셨다... 바닥에 피가 고여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돼지는 밖에서 내장을 끄집어내고 닦아냈었다.

다리 사이에 고인 피는 뒤쪽 어딘가에서 흘러오고 있었다. 일어서 뒤로 돌아선 케건은, 등불을 들어올리다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하마터면 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렉스가 턱 아래쪽에 갈고리가 박힌 채 반대편 벽에 걸려 있었다. 피는 렉스의 털을 적셔 몸에 착 달라붙게 하고, 꼬리쪽으로 흘러 바닥에 떨어졌다. 내장은 대부분 끄집어내져 식품 저장실 구석에 쌓여 있었다.

식품 저장실 끝쪽의 문이 밖에서부터 열리자, 따스한 바람이 흘러 들어왔다. 불빛이 그곳까지 미치지 못해 케건은 누가 들어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등불을 내려놓고 눈이 어둠에 익기를 기다렸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조슈아! 어서 이리 와라. 밖에서 뭘 하는 거냐?"

불빛 너머에 선 조슈아는 아직 흐릿한 검은색 형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리 오라고 했어! 누가 개를 죽였다. 어서 내 말대로 해. 이리 오라고!"

그때 어둠에 익은 그의 눈에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문간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선 아이는 양손에 손잡이가 긴 낫을 들고 있었다. 곡선으로 굽은 날이 달과 구름을 배경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아직 잘라낼 게 있어요, 아빠."

비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케건이 입이 떡 벌렸다.

"뭐라고? 너 갑자기 돌았냐...?"

몇 걸음 더 나아가자 등불빛이 조슈아를 비췄다. 아들의 작업복은 얼룩져 있었다. 바닥을 덮은 것과 같은 포도주색 액체였다.

"네가 이랬냐? 네가 개를 죽였어? 이 망할 꼬마..."

아무 말 없이 조슈아는 앞으로 다가와 낫을 휘둘렀다. 케건은 막아내려 왼팔을 들어올렸지만, 마지막 순간 아이는 낫을 아래쪽으로 내리고 옆으로 휘둘렀다. 케건의 갈비뼈 사이를 지나 그의 복부를 꿰뚫은 낫은 등쪽으로 날이 빠져나올 만큼 깊이 박혔다.

꾸룩거리는 소리가 케건의 목을 타고 올라와 열린 입으로 새어 나왔다. 아들이 나를 찔렀다! 빌어먹을 돼지처럼 내 배를 꿰뚫었다. 대가를 치르게 해 줘야겠어. 무슨 일이 있든 벌을 줘야겠다. 가혹한 벌을.

조슈아는 낫을 뽑았다. 무심코 저지른 실수였고, 케건은 이 틈을 노렸다. 재빨리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그는 부엌칼로 조슈아의 목을 꿰뚫고 손잡이가 피부에 닿을 때까지 밀어 넣었다.

아들은 마치 석상처럼 뒤로 넘어졌다. 낫은 이미 빠져나간 후였지만, 케건의 배는 타는 듯 아팠다. 기침을 하자 커다란 핏덩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는 달렸다. 내 손으로 아들을 죽였다! 이제 생각할 수 있는 건 달아나는 것 뿐이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뛰는 것 뿐이었다. 그는 옥수수밭으로 뛰어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옥수숫대를 짓밟고 옆으로 밀어 젖혔고, 넘어지고 구르며 피를 토했다. 어지러움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는 떨리는 발로 할 수 있는 한 빨리 뛰었지만, 결국 배의 통증 때문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옥수수밭의 허수아비 발치였다. 도망쳐야 했다. 다리에 힘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마을까지만 갈 수 있다면, 치유사 벨릭을 찾아갈 수만 있다면...

케건은 허수아비의 바지를 붙잡고 일어서려 했다. 끈적한 타액과 피가 턱을 따라 길게 늘어졌다. 하지만 붙잡은 손 안의 물질은 지푸라기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그리고 피가 그 바지를 적시고 있었다. 그의 피일까?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케건은 힘겹게 일어서며 거칠게 허수아비를 풀어헤쳤고,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입을 헤벌리고 공포에 질린, 죽은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 발라는 벨릭의 연구실 안에서 천으로 덮은 시신 옆에 서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나와 천을 적신 피가 말라가고 있었다.

"누굽니까?" 발라가 물었다.

"더겐. 대장장이야. 여기 도착했을 땐 말도 못 했지... 죽기 전에 겨우 몇 마디 말을 남겼는데, 그걸로 충분했어."

"뭐라고 했나요?"

"뭐?"

벨릭은 깡마르고 허리가 굽었으며, 귀가 유난히 크지만 청력은 좋지 않은, 꼭 골동품 같은 사람이었다. 그녀 때문에 불편해 하는 기색이 분명했다.

"대장장이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뭐였습니까?" 발라가 더 크게 물었다.

"아..."

치유사는 천을 걷어내려 했지만, 말라붙은 피 때문에 시신에 들러붙어 있었다. 벨릭이 힘주어 천을 뜯어내자, 강타를 맞아 머리 절반이 푹 꺼진 중년 남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게... '아들이 이랬소'라고 하더군."

발라는 오랫 동안 시신을 바라보며 침묵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그 생각을 다시 마음 뒤편으로 밀어두고, 지금의 상황에 집중했다. 자신의 아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은 남자에게 집중했다.

밖의 거리에서 비명이 들렸다. 급작스럽게 생명을 잃게 된 누군가의 단말마 비명이었다.

발라는 문을 향해 빙글 돌았다. "여기 계세요."

잠시 후, 그녀는 동트기 전에 서서히 밝아오는 거리에 나섰다. 열세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여성 상인의 시체를 굽어보고 있었다. 소년은 대장장이의 망치를 들고 있었으며, 망치 머리는 끈적한 액체에 뒤덮여 있었다. 죽은 여성이 낡은 담요 위에 늘어놓은 여러 생활용품 위에는, 그녀의 두개골 조각이 흩뿌려 있었다.

발라는 홀브룩의 창고 안에 아이들의 시체가 하나도 없었음을 떠올리고는, 갑자기 진상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바로 살인자들이기 때문에 시체가 없었던 것이다. 악마의 지시를 따르는 졸이 바로 아이들이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큰 충격에 휩싸여, 발라는 잠시 방심했다. 연약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현재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어서 행동하지 않으면 죽는다.

비명 소리에 이끌린 다른 사람들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발라가 주목한 것은 대로 끄트머리에 나타난,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어린 금발 소녀였다. 아이는 한 손에 붉게 물든 칼을 들고, 다른 한쪽 팔로는 피투성이가 된 굶주려 보이는 아기를 들고 있었다. 아이의 크게 뜬 눈동자는 형형한 빛을 띄고 있었다.

발라가 머리 위 노대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밖으로 나서는 소리였다. 짧고 높은 삐걱 소리는 몸무게가 가벼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 한 명의 아이.

대장장이의 아들은 이제 입을 활짝 벌리고 웃으며 발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또 두 명의 아이가 더 나타났다. 한 어린 소년은 칼집에 든 칼을 질질 끌고 있었고, 조금 나이가 든 소녀는 양 손에 커다란 돌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화염 같은 붉은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앞니 두 개가 빠진 소년이 오른손에 손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거리에는 다섯 명의 성인도 나타났고, 창밖을 내다보는 얼굴도 몇몇 보였다.

"다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들어가세요." 두건을 뒤집어 쓴 발라가 명령했다.

"어서요!"

거리에 나왔던 성인들은 그 말을 따랐다.


 

벨릭은 창밖을 내다봤다.

저 여자를 아름답다고 생각했었을 수도 있겠다. 그런 문제에 신경을 쓰고 살았던 예전이라면. 하지만 이제 그녀는 파멸의 조짐으로만 보였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악마사냥꾼이 가는 곳에는 죽음이 뒤따랐다.

마을 주민들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아이들... 아이들은 거리에 남아 공격 태세를 갖췄다. 대장장이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em>아들이 이랬소. </em>

세상이 어떤 광기에 휩싸였기에 아이들이 도살자로 변했단 말인가? 그리고 저 여자... 저 악마사냥꾼은 분명히 아이들을 죽일 것이다.

여자의 발 밑에서 연기 구름이 폭발하더니, 순식간에 사방을 가득 메우며 악마사냥꾼의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벨릭의 시선 위쪽에 있던 노대에서 작은 형체가 연기 속으로 뛰어내렸다. 연기가 걷히는 도중에 손도끼가 빙글빙글 돌며 날아왔고, 조금 전에 뛰어내린 소년을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벨릭이 고개를 홱 돌리자, 흐려지는 연기와 몇 미터 떨어진 곳의 가판대에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여자 악마사냥꾼이었다. 연막은 그녀가 터뜨린 것이었다. 그녀가 손목을 살짝 튕기자 노대에서 뛰어내렸던 붉은 머리의 소년, 트래버스네 아들로 보이는 그 소년이 벌레에라도 물린 듯 목에 손을 가져다 댔다.

벨릭이 숨을 들이켰다.

<em>그녀가 아이들을 죽이고 있어!</em>

대장장이의 아들 킨달이 앞으로 달려나왔다. 두 눈알은 튀어나올 듯 부풀어 있고, 열린 입에서는 침이 튀었다. 큰 원을 그리며 아이는 망치를 휘둘렀다. 악마사냥꾼은 아이에게 접근하여 손목을 붙잡고, 회전하는 힘을 그대로 이용하여 아이를 내던졌다. 아이는 벨릭이 모르는 다른 소년과 충돌했는데, 그 소년은 자기 키보다 더 큰 칼을 칼집에서 꺼내는 중이었다.

그 소년은 땅에 널부러졌다. 악마사냥꾼은 망치를 빼앗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망치 머리는 킨달의 턱에 부딪혔고, 부러진 이가 튀어나왔다. 그 여자는 옆으로 이동했고, 킨달은 얼굴을 땅에 처박고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트래버스네 아들이 여전히 목에 손을 가져다 댄 채로 풀썩 쓰러졌다.

악마사냥꾼의 손이 노대에서 뛰어내린 소년 쪽으로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칼을 든 소년처럼 벨릭이 모르는 아이였다. 어쩌면 홀브룩에서 온 아이인가?

벨릭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바깥에는 두 명의 아이가 여자를 향해 돌진했다. 사만다 할스태프는 피투성이 단검을 흔들어 대며 놀이라도 하듯 앞으로 달렸다. 또 브리 튜니스는 묵직한 돌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뛰었다.

벨릭은 몇 년 전, 먼 곳에서 칼데움을 찾아온 곡예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몸을 이리저리 젖히고 구르며, 경이로울 만큼 쉽게 공중제비를 넘고 옆으로 재주넘기를 해치웠다. 여자 악마사냥꾼이 판금 방어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로 뛰어오르거나 몸을 숙이고 공처럼 몸을 굴러 사만다의 뒤로 이동하는 모습은 마치 그때의 곡예사를 보는 것 같았다. 흐릿하게 보일 만큼 움직임이 빨라서 눈이 쫓지 못할 지경이었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악마사냥꾼이 지나고 난 자리에 사만다가 가는 밧줄로 묶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노대에서 뛰어내렸던 아이가 앞서 트래버스네 아이처럼 풀썩 쓰러졌다.

<em>이제 그만!</em>

벨릭은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마침 악마사냥꾼은 빙글 회전하며 사만다를 브리쪽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그 움직임은 믿기 힘들 만큼 빨랐다. 회오리 바람에 붙들린 깃발처럼 그녀의 팔은 움직였고, 악마사냥꾼이 작업을 마쳤을 때, 두 소녀는 모두 밧줄에 묶인 채였다.

사만다의 동생, 아기 렐린이 기어왔다. 악마사냥꾼의 다리를 물려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아기를 들어올리고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안돼!" 벨릭은 소리쳤다.

단검은 아이의 옷만 꿰뚫고 뒤쪽의 기둥에 박혔다. 아이는 무사히 팔다리를 마구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뒤로 돌아 벨릭을 향해 걸어왔다.

"아이들은..." 그는 숨을 헐떡였다.

"모두 살아 있어요. 강력한 진정제를 바른 침을 썼거든요. 일단은 안전해요. 하지만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벨릭의 주먹에서 힘이 빠졌다. 마음이 놓이면서 어깨도 축 처졌다.

"놀라셨나요?" 발라가 물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네들 중 일부는..." 벨릭은 고개를 숙였다.

"말해보세요." 발라가 쏘아붙였다.

벨릭은 용기를 모았다. "... 악마보다 나을 게 없다고 하더군. 당신네 눈에서는 지옥불이 불탄다고. 당신네들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죽음이 뒤따른다고."

발라는 벨릭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고, 벨릭은 무심코 뒤로 물러났다.

"악마가 당신을 들여다볼 때, 치유사님, 당신의 마음 깊은 곳 어둠 속을 들여다볼 때, 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당신도 마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복수만이 보일 뿐이에요. 사냥 그 자체만 보일 뿐이라고요. 그때 사냥꾼의 눈은 집착으로 불타올라요."

벨릭의 아랫입술이 떨렸다. "당신의 눈은... 불타지 않는군."

발라가 긴장을 풀었다. "네. 난 복수를 위해 살지 않아요." 발라가 뒤로 돌았다. "자, 이 아이들을 붙잡아 둘 곳이 필요해요. 하나씩 따로따로 떼어 놔야 해요."

치유사는 잠시 생각했다.

"감방은 하나 뿐이오... 하지만 야생동물들을 가두는 데도 쓰는 마구간이 있긴 하오. 그래, 거기면 충분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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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6 내 컴견적 히스토리 중 최대의 실수 [6] frea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08 217 1
4374 시발 디아블로3 하고싶은데 최소사양은되는데 그래픽 하급으로 돌려야할거같다 네일을향해쏴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08 51 0
4373 디아블로3 사양 제대로 체크하고싶으신분 클릭 [3] 네일을향해쏴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08 99 0
4371 횽들 나 원활하게 돌리고 싶은데 내 지금 사양좀 돌봐줘 [12] 깜장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04.08 83 0
4370 야 시발 진짜 팔리긴 팔리나보네 나도 팔고싶다 [3] 달쓰래기(112.145) 12.04.08 1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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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68 님들 놋북 그래픽 지포스540m으로 어느정도 가능한가요(무플절망) [1] ..(180.69) 12.04.08 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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