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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턴 우즈 체제의 간략한 이해

만남의광장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2.28 04: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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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패권에 의한 금융팽창과 금융종속(15)

1. 브레턴-우즈 체제

달러가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 경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라 할 수 있다. 미국이 달러를 통해 얻는 이득과 세계를 경영하는 지배력은 구체적인 체제를 통해서 생겨난다. 달러가 세계시장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를 이끌어낸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브레턴 우즈에서 열린 한 회의였다. 이 체제를 보통 회의가 열린 장소명을 따라 ‘브레턴 우즈 체제’라 일컬는다.

(1) 브레턴-우즈 체제의 성립 배경

<대내 측면>

미국이 브레턴 우즈 체제를 주도할 때 미국은 국내적, 국제적 요인을 고려해야 했다. 미국은 국내적으로는 산업들(구체적으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사이의 이해관계, 계급들 사이의 세력 관계를 고려해야 했고, 국제적으로는 미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을 활용할 수 있는 유리한 방향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먼저 브레턴 우즈 체제가 성립한 배경의 대내적 측면 가운데, 미국 안의 사회 세력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브레턴 우즈 협상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사건은 1929년 세계 대공황이라 할 수 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노동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데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이 끼친 영향은 미국 사회를 혁명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민스키(Minsky, H.P)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공황 이후 미국은 “붉은 1930년대”를 맞아야 했다(Hyman P. Minsky 1975). 홉스봄(Hobsbawm E.)은 그의 저서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에서 이 시기가 포함된 1914~1945년을 “파국의 시기”로 파악했다(Eric Hobsbawm 1994). 홉스봄은 이 시기에는 보수적인 지식인들조차 그 사회가 살아남는 쪽에 돈을 걸려고 하지 않았으며, 미국까지도 붕괴할 것처럼 보였다고 증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케인즈(Keyenes J. M.)의 대표 저서인 『일반 이론』이 출판되었는데, 이 책의 주장들은 나중에 브레턴 우즈 협상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1) 케인즈는 『일반 이론』을 마무리하는 장에서 그가 지향하는 사회철학에 대해 설명한다(John Maynard Keynes, 1936). 거기에서 케인즈는 우리가 살고 있는 경제사회의 두드러진 결함이 “완전고용을 실현하는 데서 실패하고 있다는 것”과 “부와 소득을 제멋대로 불평등하게 분배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결함을 치유하는 정책으로서 케인즈는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과제를 설정한다.

그런데 소비와 투자는 저절로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기능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케인즈는 생각했다. 정부가 소비와 투자를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기존의 경제적 형식들 전체가 파괴되는 것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케인즈는 믿었다. 케인즈는 또한 “이자 생활자들의 안락사”를 얘기한다. 이자는 그 어떤 진정한 희생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자본의 희소가치를 이용해 먹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고, 따라서 자본이 풍부해지는 미래에는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고 케인즈는 생각했다.

케인즈 얘기를 정리하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산업자본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산업자본이 만들어내는 상품을 소비할 노동자들의 능력을 키워야 하고(실업의 해결도 노동자들의 소비 능력을 키우는 하나의 수단임), 거꾸로 산업자본으로부터 이자와 임대료를 받아가는 세력의 힘은 일정하게 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전파 경제학의 완성자로 불리는 리카도(Ricardo D.)는 일찍이 정치경제학의 주요 문제가 자본가의 이윤, 노동자의 임금, 지주의 임대료 사이의 분배를 규제하는 법칙들을 확정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 나라 정책의 목표도 결국은 이윤, 임금, 임대료 사이에 영향을 끼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볼테르는 『돈』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정부의 역할이 한 부류의 시민이 가지고 있는 부를 다른 부류의 시민에게 넘겨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케인즈는 산업자본를 살리기 위해 국가의 정책으로 노동자에 대한 분배를 늘리고 이자와 임대 소득으로 돌아가는 몫은 줄이려는 전망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케인즈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금융 부분으로 흘러 들어가는 소득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케인즈는 산업의 필요에 따른 돈거래만 인정하고, 그 밖의 “돈놀이”를 위한 거래는 엄격하게 규제하는 것과 이자율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의 필요성을 생각했다.2)

1930년대에 산업자본가들은 균형 재정과 금본위제와 같은 전통적인 정책들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고 보았다. 균형 재정은 노동자나 산업자본에 대한 정부 지원 능력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금본위제는 화폐의 발행량을 중앙은행의 금 보유에 연결시킴으로써 산업자본의 축적에 필요한 화폐량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대체로 금융자본의 이해에 편향적인 제도들이라고 산업자본가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루스벨트(Roosevelt F.) 행정부는 금본위제가 “국제 은행가들의 낡은 물신” 가운데 하나라면서 1933년에 금본위제에서 탈퇴했고, 따라서 화폐제도에 발목이 잡히지 않으면서 적자 재정을 적극적으로 편성했다. 노동자, 농민, 산업자본가 세력의 지원을 받은 뉴딜 세력은 대공황 책임의 많은 부분을 뉴욕 금융계, 특히 모건 금융제국(House of Morgan)에 지웠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헬라이너(Helleiner E.)는 브레턴 우즈 체제가 1940년대 미국 산업자본의 힘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Eric Helleiner 1994).

이처럼 대공황 이후는 노동에 대해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할 필요성, 산업자본의 회생을 위해 금융자본을 억압해야 할 필요성, 국가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브레턴 우즈 협상 시기까지 이어졌다.

<대외 측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은 압도적이었다. 유럽의 주요 나라들이 전쟁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본 데 비해 미국은 직접적인 피해는 피할 수 있었고, 거기에다 유럽에 전쟁 물자를 댄 미국의 기업들이 크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5년이 지난 시점의 상대적인 경제력을 보면 미국은 선진국 총생산의 58%, 총자본스톡의 60%, 총노동자의 33%를 차지했다. 1인당 총생산 수준은 미국을 100으로 잡을 때, 영국은 55, 독일은 37, 이탈리아는 25였다. 제조업에서 미국의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은 영국의 2배, 독일의 3배를 넘었고, 일본과는 이보다 더 큰 격차를 보였다(Amstrong et. 1994).

미국은 대외 측면에서 미국이 가진 압도적인 생산력을 브레턴 우즈 체제를 통해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영향력으로 바꾸는 데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미국의 근본 이익은 상품 수출 시장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 전략적인 중요성을 갖는 원료를 확보하는 것, 이를 위해 어디에든 자유롭게 투자할 자유를 얻는 것, 무엇보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달러의 유통을 보장하는 것에 있었다. 미국은 브레턴 우즈 체제가 미국의 근본 이익에 공헌하는 메카니즘으로 기능하기를 기대했다.

(2) 브레턴 우즈 체제의 내용과 함의

브레턴 우즈 체제에서 핵심을 차지하는 것은 달러의 역할과 관련된 것이었다. 브레턴 우즈 체제의 특징은 금을 세계의 표준(본위) 화폐로 삼되, 당시 대부분의 금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달러에도 본위화폐의 기능을 부여하자는 데 있다. 미국에서는 금 1온스가 35달러로 정해져 있었는데, 이를 국제적으로 확장하여 미국은 외국의 통화당국이 35달러를 가져오면 금 1온스를 내준다는 약속을 한다. 이렇게 해서 달러를 국제통화로서 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였다. 이 때문에 브레턴 우즈 체제를 명목상은 금본위제이지만 사실상 금환 본위제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국제통화제도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1) 가치척도 기능(각국 통화의 환율 평가의 기준이 되는 기능), 2) 나라들 사이 상품·서비스의 거래 통화 기능, 3) 통화당국이 환율을 안정시킬 때 사용할 수 있는 개입 통화 기능, 4) 국제 거래의 최종적인 결제 수단 기능, 5)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그것이다. 무엇으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화폐 표준(본위)의 문제라 한다. 이러한 본위는 역사적으로 금화3), 금(금덩어리), 금환(금으로 바꿀 수 있는 어음이나 종이 화폐), 순수한 종이 화폐 순으로 발전해 왔다.

금본위제는 영국에서 1817년에 수립된 이래, 1870년대에는 주요 나라들이 이를 뒤따르면서 국제체제로 구축되어 1914년(제1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금본위제도가 무너지기 직전인 1913년, 영국의 금 보유고는 3,750만 파운드였는데, 발행 통화량은 9억 9,100만 파운드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영국은 금태환 요구를 별로 받지 않았는데, 이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국의 금융시장이 발달해 있었고 세계 경제가 런던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금환본위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2년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등의 정부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제노바 회의에서 영국의 파운드를 금과 함께 각국 중앙은행의 대외준비자산으로 추가하기로 결의함으로써 성립했다.4)

달러의 지위와 관련하여 브레턴 우즈에서 합의된 내용은 제노바 합의에 따른 금환본위제를 참고로 한 것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파운드의 금 역할은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된 반면 달러의 금 역할은 시기 제한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 데에 있었다. 미국이 달러를 금과 바꿔주지 않겠다는 1971년 닉슨 선언 이후에 달러는 사실상 미국 국채를 담보로 발행된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본위제를 (미국) 국채 본위제 또는 달러 본위제라 일컫는다. 브레턴 우즈 체제의 달러-금환본위제든 1971년 이후의 달러 본위제든 주변국들이 대외 준비금을 달러로 쌓아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으며 이러한 사실이 달러의 지위를 특권 수준으로 올려놓는 중요한 요인이다.

또한 브레턴 우즈에서는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를 도입했는데, 이는 여러 나라들 사이 차익을 노린 자본 이동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금융의 팽창을 억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국가의 확장적 재정 정책, 노동에 대한 일정한 타협적 포섭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었다. 곧, 브레턴 우즈 체제는 국내적으로는 노동에 대해 어느 정도 양보를 보장하고 산업자본을 보호하면서도 국제통화로 기능하는 달러의 발행을 통해 미국이 얻게 될 이득을 구조화시키는 데 있었다.

2. 브레턴-우즈 체제의 모순

브레턴 우즈 체제는 금융자본가에 대한 산업자본가 이해의 상대적인 우위의 인정, 노동에 대한 타협적 포섭, 다른 나라들에 대비한 미국 노동 생산성의 상대적인 우위를 조건으로 성립한 것이다. 만약 이런 조건들이 흔들린다면 브레턴 우즈 체제의 운명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실제의 역사적인 과정은 이러한 조건이 계속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이 수출 시장을 확대한다는 것은 미국의 상품을 사줄 주변국의 발전을 의미한다. 주변국의 발전은 미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경쟁자가 성장한다는 것과 같다. 만약 미국이 달러의 발행량을 늘려 유통을 확대한다면 이는 달러 가치의 안정성이 달린 문제가 된다.

금환 본위제에서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통화는 금으로 교환이 가능한 몇몇 통화로 구성되는데, 이렇듯 국제통화 또는 준비통화로 사용되는 통화를 기축통화(Key Currency)라 한다. 물론 브레턴 우즈 체제에서 가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축통화는 달러뿐이었다. 만약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공적 금 보유에 비해 너무 많은 화폐를 발행하면 그 화폐를 금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신인도가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미국 경쟁자들의 노동 생산성이 높아져서 주변국들이 미국에 대한 수출을 늘리면 그 주변국들에는 달러가 쌓이게 된다. 이는 달러의 신인도가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거꾸로 미국의 압도적인 노동생산성 우위가 지속된다면 세계시장에는 달러가 말라서 상품·서비스 거래가 위축되는 상황으로 연결될 것이다.

이처럼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상품 수출을 늘리거나 수지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면 세계시장은 달러 부족에 빠지고 미국이 상품 수입을 늘리면 달러 과잉이 되어 달러의 신인이 낮아지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일찍이 1960년대 초에 벨기에 출신의 트리핀(Triffin R.)이라는 경제학자는 이러한 상황 전개를 전망한 바 있는데, 이를 “트리핀 딜레마”라 부른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의 해법으로 금 가격 인상이 제시된 적이 있다. 금 가격의 인상은 여러 나라들로 하여금 더 많은 금을 준비금으로 흡수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금에 대한 민간 수요가 줄어들고 산금국들은 자극을 받아 금의 생산을 늘릴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결국 금 가격 인상을 실행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금 가격 인상이 한 번에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그에 따라 금 가격 인상을 기대하는 투기 수요가 증대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물가가 상승할 걱정도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금 가격 인상이 산금국인 소련에 큰 이득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냉전 국면에서 소련에 큰 이득이 돌아갈 정책을 미국이 펴기는 쉽지 않았다.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가 늘어나서 세계시장에서 유통되는 달러량이 증가하고 따라서 달러의 가치의 신인이 문제가 된다면 미국은 수입을 줄이기 위해 국내 정책에서 긴축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긴축은 노동에 대한 타협적 포섭을 무너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러의 과잉 발행으로 신인도 문제가 실제로 생겨나는 1960년대 후반이 되면 뉴욕 은행계의 대표들은 국내에서는 긴축 정책을 펴고 대외적으로는 군사/경제 원조의 삭감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기존의 원칙이 계속 유지되었는데, 그 이유는 노동계와 산업계가 여전히 뉴딜 원칙의 지속과 자본 통제를 지지했기 때문이다(Eric Helleiner 1994).

3. 브레턴-우즈 체제의 무너짐

(1) 세계시장 달러의 과잉

브레턴 우즈 체제의 유지 조건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국내적으로 산업자본의 지위를 보장하면서 노동에 대한 일정한 양보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5),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상대적인 노동 생산성 우위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달러의 가치를 급격하게 떨어지지는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브레턴 우즈 체제를 떠받치기 위한 조건들은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약해지기 시작한다. 미국의 상대적인 노동 생산성의 우위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미국이 국내 정치적 목적을 위한 1960년대의 “위대한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에서 달러 발행을 늘리고 베트남 전쟁 등 세계질서 유지를 위한다는 달러 발행도 늘리면서 이른바 세계시장에는 “과잉 유동성”이 형성되었는데, 이것은 달러의 가치를 위협했다. 이런 것들이 브레턴 우즈 체제의 해체로 이어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먼저 미국의 노동 생산성을 보기로 하자. 미국이 자국의 수출을 늘리려고 하는 한 상대국의 경제도 어느 정도 팽창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상대국 기업들의 생산성도 함께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미국과 주요 선진국들 사이의 상대적인 생산성이 1960년대 들어서면 빠르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어 1965년에 일본 제조업의 시간당 생산성은 미국의 21% 수준이었지만 1973년 되면 42%로 격차가 축소된다. 독일, 영국 등 다른 유럽국가들의 상대적인 생산성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표 1].

주변국 기업들의 상대적인 생산성이 미국 기업에 비해 높아진다는 것은 이들 기업들이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이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실제로 수출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임금 수준이나 환율이 유리하게 작용해야 하겠지만 객관적인 수출 능력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하다. 1950~60년대에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나라들이 수출기업들에 여러 우대 조치를 펴면서 수출을 장려하자 이들 국가들의 미국에 대한 수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의 상품/서비스 수지 흑자는 점차 줄어들다가 1971년이 되면 적자로 바뀌게 된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는 상품/서비스 적자의 결과는 아니었다. 차관, 증여, 군사 목적용의 대외 지출 증가가 금과 달러가 미국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미국 밖의 달러 유통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들의 외환시장에 달러가 추가로 공급되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 달러 값이 싸지게 되는데, 이는 수출기업들이 수출을 늘려 달러를 많이 벌어오더라도 국내에서 달러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주변국은 수출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해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여 달러를 매입함으로써 자국에서 달러 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주변국에서는 화폐량이 증가하는데, 이는 물가 상승압력으로 이어진다. 주변국 입장에서는 달러의 발행량이 늘어나는 것이 자국의 물가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미국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줄 수 있을 것인가에 의심을 품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달러 유통량의 증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다. 1960년에 각국의 달러 보유량은 110억 달러였는데, 미국의 금 보유량은 190억 달러였다. 1964년을 지나면서 각국 중앙은행 달러 보유량이 미국 금 보유량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1964년에 미국의 금 보유량은 149억 달러였지만 각국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량은 160억 달러대였다. 1971년에는 미국의 금 보유량이 100억 달러, 외국 중앙은행의 달러 보유량은 500억 달러대를 나타냈다. 이는 각국 중앙은행이 가진 달러를 미국에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할 경우 미국이 이를 모두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 국면에서 세계 시장의 달러 유통량이 과잉이 아니라는 의견이 1960년대에 나타나는데, 미국이 주변국들에 대해 은행 역할을 한다는 이른바 “세계의 은행론”이 바로 그것이다.

(2) 1960년대 말의 통화위기와 1971년의 금 교환 중단 선언

1960년대 후반에 외국의 달러 보유량이 늘어나고 이와 나란히 미국의 금 보유량이 줄어들면서 달러의 금 교환 가능성은 점점 의심을 받게 된다. 이 시기에 금 가격 상승을 예상한 금 투기가 극심하게 벌어진다. 또한 서독의 마르크화 등의 가치가 달러의 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올라가면서 이들 통화에 대한 투기 거래도 급속하게 증가한다. 이리하여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는 세계적으로 통화위기가 계속 발생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먼저 주변국들에게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자제해 달라고 비공식적으로 요청을 함으로써 대응했다. 이러한 미국의 요청에 대해 서독은 1967년에 달러를 금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도 미국의 요청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요청과 함께 미국은 주요 나라들을 설득하여 금 풀(Gold pool)을 만들어 민간 부문의 금 투기에 대응했다. 그러나 금 풀제를 통해 민간 부문의 투기 압력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은 1968년에 해체되었다. 미국은 또한 자본이 미국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지만 큰 실효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달러의 가치하락을 막아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미국의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의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근본적인 원인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제수지 불균형을 교정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 지출을 줄이는 것이었지만, 미국은 이를 실행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었다. 또한 미국 내에서 수입된 외국 상품의 소비를 줄여야 했지만, 이것도 미국은 이러저러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실행할 생각이 없었다. 미국은 달러 가치의 하락이 뉴욕의 금융 중심지로서 지위를 위협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금과 달러의 연계를 끊음으로써 달러의 발행을 더 자유롭게 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1971년 8월 15일에 이른바 닉슨 선언을 통해 미국은 외국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했다.6) 이렇게 해서 브레턴 우즈 체제는 사실상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브레턴 우즈 체제의 생명력을 이어나가기 위한 시도가 전개되기도 했다. 1971년 12월에 열린 스미소니언 회의에서는 금 1온스의 가격을 35달러에서 38달러로 올리고 환율 변동 폭을 1%에서 2.25%로 확대함으로써 브레턴 우즈 체제를 유지해보려 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느슨한 통화정책을 이어갔기 때문에 1972년 후반부터 다시 달러 유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2년 6월 영국이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고, 1973년 2월에는 일본이 뒤따랐다. 같은 해 3월, 주요 나라의 중앙은행들은 달러에 대해 ±2.25%로 환율을 유지하도록 하는 의무를 버렸다. 이로써 브레턴 우즈 체제의 기본 원칙은 사실상 무너졌다.7)

브레턴 우즈 체제가 무너지면서 산업자본, 금융자본, 노동조합 사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했는데, 이러한 변화는 보통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으로 총괄된다.

[본문 주석]

1) 케인즈는 브레턴 우즈 협상의 영국 쪽 대표이기도 했다.

2)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얼마 동안은 금융을 규제했다. 매키넌(Mckinnon R.)이라는 학자는 이를 “금융 억압”이라 표현했다.

3) 역사적으로 금화 본위제가 현실에서 실제로 시행된 적은 없다.

4) 영국 파운드는 원리상으로는 잉글랜드 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금을 담보로 발행한 것이다. 따라서 잉글랜드 은행은 파운드 보유자가 그것을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면 거기에 따라야 한다. 제노바 회의에서 금환 본위제를 결의했다는 의미는 파운드를 금으로 간주한 것이므로 잉글랜드 은행은 파운드 보유자에 대해 금 교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5) 노동에 대한 양보가 노동조합 활동이나 노동자의 정치적 활동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뉴딜 시기에 보장된 노동권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제2차대전 직후에 테프트-하틀리 법이 제정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는 급진적인 노동운동을 억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지속되었다.

6) 1971년 8월 초 첫 번째 두 주 사이 주변국 중앙은행들이 달러를 금과 교환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기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금 준비는 급속히 낮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8월 15일에 닉슨은 결국 달러 금 교환 중지를 선언했다(Philip Amstrong et 1993).

7) 물론 브레턴 우즈가 무너진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자본 운동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 다국적 기업들은 1960년대부터 기술 수준이 낮은 분야를 주변국으로 옮기는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구했다. 이에 따라 주변국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공장 설립형 직접투자나 인수합병 투자가 늘어났다. 이는 미국 내에서 기술 수준이 낮은 제조기업의 위축과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노조의 약화를 불렀다. 노동 세력의 약화와 따라서 자본과 국가가 노동에 대한 양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은 브레턴 우즈의 전제와 관련된다.

[참고 문헌]

Philip Amstrong, Andrew Glyn, John Harrison(1991), Capitalism since 1945, 김수행 역(1993), 『1945년 이후의 자본주의』, 동아출판사.
Eric Helleiner(1994), States and the Reemergence of Global Finance, 정재환 역(2010), 『누가 금융 세계화를 만들었나』, 후마니타스.
Eric Hobsbawm(1994), The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 이용우 역(1997), 『극단의 시대 : 20세기 역사 (상),(하)』. 까치 글방.
Hyman P. Minsky(1975), John Maynard Keynes, 신희영 옮김(2014), 『케인스 혁명 다시 읽기』,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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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블로그 https://blog.naver.com/polec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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