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요즘 3할타자의 가치는 흔해진 바나나 가격처럼 떨어졌다.

‘지키는 야구’가 KBO리그를 지배하던 2006년으로 시간을 잠시 돌려보자. 그해 리그 전체의 3할타자는 5명 뿐이었다. 그때는 8개구단의 시대로 지금보다 2개 구단이 적었지만, 3할타자의 대명사인 양준혁(당시 삼성)이 3할3리로 당당히 타율 5위에 오를 만큼 3할 타자가 귀했다. 그 즈음까지만 해도 타율 3할이라면 강타자를 입증하는 ‘공인 신분증’ 같았다.

최근 몇 년 사이 타고투저 현상이 팽배해지면서 3할타자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올 시즌에도 지난 31일 현재 리그 전체 3할 타자는 32명에 이른다. 그렇다고 모든 구단에 3할타자가 즐비한 것은 아니다. 이 또한 구단별 편차가 있다.

리그 최강 야수진을 거느리는 두산은 3할타자를 무려 7명이나 앞세우고 있다. KT와 NC에 타율 3할을 넘는 타자가 각 1명씩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3할타자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요즘에도 구단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두산 라인업에는 타율 3할8푼으로 리딩히터인 양의지를 필두로 김재환과 오재원, 허경민, 최주환, 김재호를 지나 3할1푼1리로 타율 26위인 박건우에 이르기까지 3할타자가 줄줄이 이어진다.

두산이 이대로 3할타자 7명을 배출한다면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을 남기게 된다. KIA는 지난해 통합우승을 이루며 역대 최다인 3할타자 7명을 개인 타격순위표에 올려놨다. 올해 두산이 그보다 대단해 보이는 것은, 로저 버나디나와 함께 했던 지난해 KIA와 달리는 외국인타자 없이 순수 국내타자만으로 3할타자 7명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두산은 막강 화력으로 리그를 지배하던 2016년 3할 타자 6명을 배출한 바 있는데, 그 해 타율 3할 그룹에는 외국인타자 닉 에반스가 포함돼 있었다.

두산은 아시안게임 브레이크가 끝날 즈음에는 사실상 ‘3할타자 9명’이 뛰는 팀을 꿈꾸고도 있다. 9명으로 구성되는 두산의 타선에서 3할에 미치지 못한 자리는 오재일이 주로 지킨 1루수와 외국인타자 공백으로 국내 선수들이 번갈아 맡은 우익수 뿐이었다. 이제는 그 자리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후반기 출발점까지 2할대 초반을 맴돌던 오재일은 최근 6경기에서 타율 4할7푼8리(23타수 11안타) 4홈런 6타점을 뿜어내고 있다. 오재일은 3할대 타율을 연이어 기록한 터여서 본연의 리듬으로 돌아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2군으로 내려가있는 외국인타자 스캇 반슬라이크가 복귀 뒤 외국인타자에 대한 ‘기본 기대치’만 채워준다면, 두산은 후반기 막판부터 3할타자 9명이 라인업을 지키는 위압감 속에 경기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반슬라이크가 조금씩 타이밍이 좋아지고 있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고 올리겠다”고 말했다.

KBO리그에서 두산의 3할타자 점유율은 22%에 이른다. 그럼에도 두산 타자들은 스스로 부진함을 느끼면서 괴로움에 인상을 쓸 때가 많다. 이에 해당 선수 성적을 살피면 3할을 넘기고 있을 때가 많아 이내 갸우뚱하게 된다. 타율 3할로는 위로가 안되는 팀내 환경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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