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야

심지어 그 선생님 과목은
바닥을 기어다녔음


수업 태도도 엉망진창이었고
딴 짓하고 책도 잘 안 갖고 다니고 노트필기도
안하고 구석에 쳐박혀 띠껍게 쳐다보거나
인사도 안하고 눈도 안 마주치고 땡땡이 까고


그 선생님 극성으로 좋아하는 애들 때문에
그 선생님 싫어 했었음

왜 인기 있는거지?  속으로  비웃으면서
재수없다고 느끼기까지 했었음


쌍방이 아니라서
정확히는 첫 짝사랑이지만



좋아진 계기는
아무 조건없는 베풂 때문이었어


우리 아빠도 나를 있는 그대로
내 존재 자체를 존중해준 적 없는데


사비를 들여 내 식비를 대주면서
(물론 난 동의한 적 없음 이미 학기 내내
선결제 해놨다고 내가 안 먹으면 다 버릴거래서
그 당시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꼈음)

그 대신 공부 열심히 하란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어


조건없이 나같은 미운 오리 새끼 애물단지 같은
애한테도 베푸는 사람이 있다는 게
중딩이었던  나에겐 임팩트가 컸나봐


유년기때부터 세상에 거저 얻어지는 게
없다고  뼈저리게 배웠던 나한텐 적어도


그런 어른 사람 볼 일 없을 줄 알았거든


내 짝궁은 그 당시 이미 오래전부터
그 선생님 엄청 좋아했었는데


걔가 어느날 그러더라고

자기랑 딴 애들은  그 선생님한테 편지 여러 번
썼어도  한번도 답장 못  받았는데

너 좋겠다고
도대체 뭐라고 썼길래 답장 받아낸 거냐고
(당사자도 못 본 답장을 대체 어떻게 알게 된건지)

원래 짝궁이랑 엄청 친하진 않았어도
부담없는 관계였는데


그날부터 시작해서 얘 때문에 전학가고
싶어질 정도로 학교 가기가 고역스러워짐


그 선생님이 나한테만 답장을 써준 게 아닐텐데
그런 증거는 어디에도 없는데

맨날? 넌 좋겠다 담임이  니 좋아하는 거 같다 이러고
그 선생님 관련 기승전 나를 끌어다붙이며
곤란하게 만들어서


아무튼 진짜 걔 소설처럼 그랬으면
짝사랑으로 끝날 리 없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