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뒤바뀐 그림자

[장소: 고등학교 체육관 – 방과 후]

(체육관 구석, 희미한 불빛 아래 ‘송지효’가 쪼그려 앉아 있다. 교복은 먼지로 더러워졌고, 입술에는 살짝 터진 자국이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주지훈’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녀를 내려다본다.)

주지훈: (무심하게) 너,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어?

지효: (조용히) …

주지훈: (한숨) 답답하네. 한 대라도 때려보든가.

지효: (천천히 고개를 들며) 그럼… 너부터 때릴까?

(지훈은 순간 멈칫하지만 이내 비웃는다.)

주지훈: (코웃음) 너, 나한테 맞은 적은 없잖아.

지효: (차갑게) 네가 직접 손대지 않았다고 해서 다를 것 같아? 네가 부추겼잖아. 네가 웃을 때마다, 네가 가만히 있을 때마다… 다 네가 한 거야.

(지훈의 표정이 잠시 흔들린다. 하지만 곧 다시 평정을 찾는다.)

주지훈: (애써 가볍게) 그래? 그럼 네가 나한테 복수라도 해볼래?

지효: (작게 웃으며) 아니. 난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지훈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이 불편하다. 원래라면 무시하고 가버렸을 텐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훈: (낮게) 네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버티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

지효: (단호하게) 달라질 거야. 네가 지금처럼 계속 나를 내려다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지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지훈은 처음으로 그녀를 똑바로 마주 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지효: (조용히) 기다려. 너한테 맞은 건 아니지만, 언젠간 네가 내 앞에서 고개 숙이게 될 거야.

(지효는 먼저 걸어나간다. 지훈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체육관에는 적막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