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셔서 잘 쓸 수 있을랑가 모르겠는데
오늘 보내주신 게 아니라, 전에 쓰신 소천되랑 마법소녀물 감상문이에요.
사실 제가 님 글에 꽂힌 건 사유, 감수성, 장르적 특색이 아닌 '문체'이고 당시에 - 지금도 그렇지만 - 문체론에 빠져서 좀 인상깊게 봤었어요...뭐, 웹소 뿐 아니라 다른 글들도 접는다고 하시니 전부터 모더니즘 문학 위주로 길게 분석해보려다가 덕성이 부족해서 번번히 미뤘는데. 글을 접으시기 전인 이번 기회에 짧막하게 토막 감상문이라도 남기는 게 좋다 생각해서 키보드 두들겨서 올려요.
저에게 있어서 문학은 세계*인간*실존의 단면을 조명하는 예술인데. 그 중에서도 문체에 주목하는 이유는 같은 단면을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더하여 문학이라는 예술 갈래의 독자*특이성이 발아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라고 생각함. 이게 별건 아니고 한 예술 갈래는 그 예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독자성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한다는 거임. - 그런 의미에서 영화랑 게임보고 음악+영상+미술+etc 짬뽕된 종합 예술이라는 소리는 그만했으면 좋겠음 그딴 소리는 게임을 해도 이도저도 아닌 하이브리드 클래스나 고를 새끼들임 -
그런 부분에서 소천되는 모더니즘적으로 제 문학 기준에 부합하는 문체를 여럿 찾을 수 있었음. 특유의 만연체에서 오는 장황한 서술과 맞물린 의식의 흐름, 과거로부터 침투된 기억이나 루프로 인해 모호해지는 시제와 시간 개념 같은 부분 - 특히 34, 35화 - 는 포크너나 PDK가 떠올라서 독특한 음울함이 전달되었음. 16화를 비롯하여 종종 띄어쓰기 없이 연속적인 문자의 나열로 서술하는 부분은 이상의 거울이 떠올랐고, 자아의 타자성 - 그루샤의 경우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 과 자아와 불화하는 세계가 느껴져서 인상깊었음.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았던 부분은 꼽으라면 역시 42화. 반카가 알파 계급에게 압박 받아서 그루샤를 넘기는 포주 역할을 맡게 되는 부분. 이 부분을 읽고, 문체론적으로 충격을 받아서 댓글에서 추측한 매카시와 사라마구(의 '눈먼도')를 확인했는데. 따지고 보자면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에 가까운 서술이었지. 기억상으로 42화 파트에서 개별자로서 지칭되어 서술하는 건 오로지 '반카'. 그리고 나머지 알파 계급의 리더들은 모두 그, 그녀 혹은 그들로 뭉퉁그려서 서술하는데. 이는 마치 반카라는 개별자가 지칭할수도, 지칭될수도 없는 악의로 가득찬 모호한 집단으로부터 압박받는 것으로 묘사되어지는데. 이 갑갑함이 문체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되어서 무엇을 대적해야 될지, 대체 누구에게 저항해야 될지 모르는. 마치 안개 너머로 주먹을 뻗는듯한 무력감과 허무함이 전달되는데. 나같은 경우에는 이런 문체를 '세계와 대극하는 인간'이라고 축자적으로 평을 내리지. 반카를 둘러싼 압박과 세계, 그 자체에 반카는 결국 그 압박에 순응하여 수동적이며 피동적인 한편, 파티와 보신을 위해 그루샤를 희생시키는 인물상으로 그려지는 건. 다른 의미로 눈먼도보다 인상깊었던 부분임. 철저한 계급과 수직적인 압박이 작용되는 세계(알파 계급)에 순응하여 동화되는 모습은 원시적인 권력에서 말미암은 폭력. 그리고 그러한 폭력에 노출된 그루샤라는 피지배계급, 약자의 불합리와 부조리가 느껴졌지. (나는 아마 여기서 문체론에 더 깊이 빠진 것 같아)
소천되 이후 마법소녀물을 연재했을 때. 주변 인식에 따른 주인공의 변화, 그리고 인터넷 방송을 모티브로 삼은 방송(이건 장르적 변화를 줄 수 있기에 더 기대했지.). 이런 소재는 소천되의 문체에 주목한 독자한테 있어서 또다른 문체론적 요소를 고대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지. 프롤로그부터 서술되는 00년대 라노벨 같은 장광설 자체가 스낵컬쳐인 웹소와 맞지 않고, 본토 라노벨*서브컬쳐 트랜드에서 한물갔지만 오히려 복고적인 요소를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으며, 그런 장황한 문체를 읽을 때면 장르성의 변화, 메타적 장르 특색, 주변 인식, SCP스러운 소재들과 맞물려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감을 줬으니까. 어....음.....근데 끝이 안 좋아서 일단 이 이야기는 그만할게요.
뭐 정리하자면 소천되 문체가 너무나 좋았고, 다른 작가들 레퍼런스로 안 사용했으면 그건 굉장히 놀랐다.
마법소녀물 그건 소천된 문체를 인상깊게 본 입장에선 문체론적으로 와쿠와쿠했지만 끝은 '아...이런...' 뭐 이런 느낌이었다.
추가로 마법소녀 이후에 쓴 글인 브레스펑크, 성녀물은 맥시멀리즘 자체를 버려서...아, 죄송한데 진짜 흔하디 흔한 글. 이런 느낌이라 딱히 매력을 느끼지 않았음. 적어도 파타퓌님 글에서 매력을 느낀 건 맥시멀리즘일 때 뿐이었네요, 물론 문체적으로.
건필하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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