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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석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2.08 02: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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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보스가 늙어 죽었다


나는 지금, 게임 속 세상에 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싸운 지 10년. 이젠 최종 보스만이 남았다.


“퀘스트”


-

메인 퀘스트


마왕을 잡고 세계를 구원하세요.


마왕 0/1

-


“후우...”


나는 검과 방패를 뽑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이 문만 넘어가면 곧바로 전투가 시작된다. 

나는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방패를 들어 올려 밀려오는 충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공격은 없었다.


나는 방패를 내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옥좌. 원래라면 최종 보스가 앉아 있어야 할 옥좌엔 아무도 없었다.


“이 새끼 어디 갔어?”


#1화


나는 황당했다. 원래라면 이 스테이지에 진입하자마자 곧바로 마왕과 전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정작 마왕이 없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며 옥좌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다 발에 무언가가 걸린 것을 느꼈다.


그것은 뼈였다.


뼈와 아이템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아이템을 보자마자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아이템은 마왕의 코어와 낡은 책 한 권이었다.


마왕의 코어는 마왕이 드랍하는 아이템이었다.


즉, 마왕은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나는 코어 옆에 떨어져 있던 책을 주워들어 읽기 시작했다. 이건 일종의 일기였다.


대충 어떤 이유가 있어 이 세계를 침략했다는 내용이었다. 


자잘한 스토리에는 관심 없었던 나는 책을 후루룩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 마왕이 죽은 이유가 나왔다.


“수명이 다했다고? 마왕이?”


이 세계로 넘어올 때 많은 힘을 소모해서 수명이 줄어들어 결국 죽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허탈한 마음에 절로 긴장이 풀렸다.


어찌 됐든 마왕은 죽었다. 이제 수정을 만지고 컷신과 함께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왜 수정이 보이지 않지?


그제서야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크 월드. 내가 들어온 게임의 이름이었다.


단순한 제목처럼 스토리도 단순했다. 위험에 빠진 세계를 이 세계에서 온 용사가 해결한다는 스토리.


단순하고 평범한 제목과는 다르게 게임의 장르는 요즘엔 보기 드문 하드코어 다크 판타지였다.


그것도 한 번이라도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로그라이크 형식의 RPG 게임.


개발사는 찾아봐도 별반 자료가 안 나오는 작은 인디 게임회사였다.


스토리도 단순하고 버그도 꽤 있는 평범한 인디게임이었지만 전투 하나만큼은 뛰어났다. 


극한의 스릴감과 재미를 추구하는 전투. 여러 다양한 컨셉을 즐길 수 있는 게임성. 


나는 그 장점에 매료되어 게임을 즐겼고, 커뮤니티에서도 알아주는 고인물이 되었다.


나는 새로운 컨텐츠가 추가될 때마다 바로 다운받아 즐겼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패치, 그것도 대규모 패치였다. 나는 연차를 쓸 정도로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목욕재계와 구배지례를 끝내고 게임을 실행했을 때.

 

나는 다크 월드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버그가 다크 월드는 버그가 하나도 없는 갓겜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저 압도적인 장점으로 단점을 무마시켰을 뿐이었다.


그리고 게임이 현실이 되자, 나는 그놈의 버그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지만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었다. 


고인물이었던 나는 게임의 모든 버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다.


“설마 아니겠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퀘스트 창을 열었다.


“...퀘스트”


-

메인 퀘스트


마왕을 잡고 세계를 구원하세요.


마왕 0/1

-


“...시발.”


퀘스트는 해결되지 않았다. 마왕의 코어가 떨어져 있다는 것은 마왕이 죽었다는 것일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퀘스트는 깨지지 않았다. 

“보스가 죽었는데 클리어가 안 되는 건 너무하잖아. 개새끼들아...”


뼈가 실제로 마왕의 뼈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코어는 마왕에게서만 나오는 드랍템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왕은 한 놈뿐이었다. 리젠도 안된다. 당연했다. 최종 보스였으니깐.


원래라면 마왕을 잡고 수정을 만지면 컷신 하나 보고 끝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마왕이 죽었음에도 수정은 나타나지 않았다.


....


이제 어떻게 하지?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 세상은 이미 마왕에 의해 대부분 오염되어 멸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세상을 구하는 것보다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내가 그렇게 강해지려 했던 것은 엔딩을 보고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마왕을 죽이고 수정을 만지면 용사는 원래 세계로 돌아간다.


그게 시발, 이 좆같은 게임의 엔딩이었단 말이다.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10년간 버텨왔다. 그런데 그게 버그 하나 때문에 물거품이 된다고?


“ㅡㅡ!!!!”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다.


나는 괴성을 지르며 옥좌를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게임이었을 시절에는 파괴 불능 오브젝트 였던 옥좌도 현실로 변하니 한낱 파편으로 변할 뿐이었다.


“허억... 허억...”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이어지는 감정은 허탈함이었다. 피로와 허탈함이 한 번에 몰려오자 나는 검을 내동댕이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발...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마왕 죽었잖아. 왜 집에 안 보내주는 거냐고. 왜!”


울분에 차 바닥을 내려찍자 먼지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사이로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옥좌를 향해 다가갔다.


단단하기 그지없던 옥좌는 내 공격에 부서져 파편이 되었다. 나는 파편을 치웠다.


그러자 그 아래엔 다락문이 있었다. 게임이었던 시절엔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 안에 수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이었던 시절엔 마왕을 잡으면 화면이 전환되며 짧은 컷신이 나오고 수정이 나타났다.


그 수정은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게임이라면 그냥 데이터를 불러오면 될 뿐이겠지만, 지금은 현실이다.


그렇다면 수정이 있는 곳이 실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나는 다락문을 부수고 그 아래로 떨어졌다.


그곳에는 내 예상대로 수정이 있었다.


나는 환희에 차서 수정을 만졌다.


이제 이 좆같은 게임과는 이별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

악몽 난이도에 진입하시겠습니까?

-


이 시스템 문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갑자기 찬물이라도 끼얹어진 것처럼 정신이 확 들었다. 


나는 수정에서 손을 떼 자세히 바라봤다. 이 수정은 내가 아는 수정이 아니었다.


형태는 똑같지만, 색이 달랐다. 원래 수정은 검은색인데 이건 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붉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 손을 수정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시스템 문구는 변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희망이 사라지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나는 패닉에 빠지려는 걸 가까스로 억누르며 생각을 정리했다.


지금까지 게임을 수천번은 클리어해봤지만, 이런 수정은 처음 봤다.


그렇다는 것은 새로운 컨텐츠라는 것 일터.


“이게 그 대규모 패치의 정체였나?”


이상하다고는 생각했다. 대규모 패치라고 난리 친 것치고는 게임일 시절과 지금까지 별반 다르지 않았었다.


운영을 잘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없는 말은 하지는 않던 녀석들이었기에 이상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악몽 난이도라는 것이 대규모 패치의 정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게임이었다면 기뻐하며 실행했겠지만, 지금은 현실이었다. 나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서 육즙이 줄줄 흐르는 치킨이나 뜯고 시원한 콜라를 마시고 싶을 뿐이었다.


더럽게 맛없는 마수 고기와 생피를 마시는게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이젠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갈 방법 따위는 이제 아무것도...


그 순간 머릿속에 무엇인가 번뜩였다.


“마왕은 늙어 죽었지. 그럼 일찍 잡는다면?”

마왕은 수명이 다해 죽었다. 이 난이도, 이 세계에선 말이다.


하지만 악몽 난이도에선 다를 것이다. 멀쩡히 살아 숨 쉬고 있겠지.


악몽 난이도가 새로운 패치라면 정성도 많이 쏟았을 것이다. 적어도 보스가 죽었는데도 엔딩을 보지 못하는 버그 따위는 없겠지.


그렇다면 악몽 난이도로 넘어가 마왕을 잡는다면.


그러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


내가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버그와 새로운 패치로 바뀐 점을 수습하느라 그렇게 길게 걸린 것이다.


실제 목숨이 달려서 비효율적인 스펙업을 진행한 것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악몽 난이도라면 버그도 없을 것이고, 새로운 패치도 파악이 끝났다.


물론 조금 달라지긴 하겠지만 기본 기믹은 똑같을 테니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이젠 게임과 현실의 다른 점도 파악이 끝났으니 효율적으로 스펙업을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5년. 아니 3년 정도의 시간만 들여도 마왕을 잡을 수 있다.


책으로 봤을 때, 마왕이 죽은 것은 3년 전이라고 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나는 수정을 건드렸다.


이 쓰레기 망겜을 한 번 더 하는 것은 싫었지만, 이것만이 방법이었다. 


-

악몽 난이도에 진입하시겠습니까?

-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이 좆망겜아.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자.”


그렇게 수락을 하자, 세상이 어두워지며 한 문장의 시스템 문구만이 떠올랐다.


-

악몽 난이도를 시작합니다.

-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곳은 폐허의 한복판이었다.


일종의 유적 같은 곳이었다. 바닥에 있는 마법진이 서서히 빛을 잃어버리며 꺼져버렸다.


나는 내 몸을 내려다봤다. 나는 어느새 평범한 체크 무늬 잠옷을 입고 있었다.


10년 전에는 이랬었지.


약간 그리운 마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제 곧 들이닥칠 테니 말이다.


컹! 컹컹!!


개새끼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흉측하게 생긴 늑대가 나타났다.


나중엔 한 방에 정리되는 몬스터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듀토리얼은 처음엔 조작과 회피 방법에 대해 가르친다. 


애초부터 도망치라고 만든 구조인 것이다.


10년 전엔 당황하다가 죽을 뻔했으나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나는 게임, 다크월드의 고인물일 뿐만 아니라 현실인 다크월드의 고인물이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곧장 늑대가 나타난 입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접근하자 늑대는 나를 물어 뜯으려 했다.


나는 달려가다가 페이크를 넣어 공격을 피했다. 늑대가 허공을 물어뜯는 동안 나는 재빨리 어느 방으로 바로 들어갔다. 


그곳은 창고였다. 이곳에는 히든 아이템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과거엔 도망치느라 얻질 못했다.


비록 초반 템이긴 하지만 듀토리얼에선 충분히 쓸만하다.


서둘러 목걸이를 착용하자 때마침 늑대가 방으로 들이닥쳤다.


ㅡㅡ!


늑대는 괴성을 지르며 발톱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번엔 피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한 마디를 읊조렸다.


“프로텍트.”


투명한 보호막이 내 앞에 나타나 늑대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자 늑대는 멈칫하며 빈틈을 드러냈다. 


패링.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공격을 방어했을 때, 빈틈을 만드는 기술이었다.


나는 그 빈틈을 이용해 늑대에 올라타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늑대는 깜짝 놀라 발버둥 치며 나를 떼어내려 했으나 나는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늑대는 질식해 쓰러졌다. 그리고 죽은 늑대 옆에 아이템이 떨어졌다.


특이하게도 현실이 되었음에도 죽으면 아이템을 떨구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곧바로 슬리퍼를 벗고 신발로 갈아 신었다.


감촉이 조금 별로긴 했지만, 슬리퍼를 신고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나는 몸을 풀며 말했다.


“상태창”


-

이름:강진성

레벨: 1

체력: 10

근력: 10

민첩: 10

마력: 10

친화력 : 無


여분 스탯 포인트 : 1

-


여전히 직관적인 상태창이었다. 나는 민첩에 스탯 포인트를 찍고 방을 나왔다.


그리고 정석 루트를 따라 길을 걷기 시작했다. 

 

듀토리얼 보스와 만나기 전에 무기를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무기를 얻는 장소가 듀토리얼 보스 너머에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듀토리얼 보스는 지금 잡는 것이 아니었다.


늑대로부터 도망치면서 조작과 회피를 배우고, 듀토리얼 보스를 통해 숙련하는 그런 구조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듀토리얼 보스는 무기를 얻고 좀 더 숙련을 쌓고 도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초보가 아니다. 게다가 3년 안에 마왕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목표. 빠르게 강해지려면 지금 잡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어차피 나 같은 고인물에게 듀토리얼 보스는 매우 쉬웠다. 데미지가 세긴 하지만, 패턴이 정형화되어 있어 피하고 패링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패턴이 까다로워 지긴 하지만 기껏해야 듀토리얼 보스. 오히려 잡고 가는 것이 고인물에겐 정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 장소에 다다랐다. 일종의 정원같이 생긴 스테이지.


그 중앙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 형태의 거대한 늑대였다.


내가 정원에 한 발짝 들이밀자마자 그 녀석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이 녀석을 잡은 지도 어언 10년째. 나는 반가움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반갑다. 개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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