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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 도입부 받았는데 이분 글 잘쓰네

비류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16 03:2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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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비류세가가 아직 동방에 있을 시절.


비류소소가 천하제일인이 되기 전.


중앙 대륙에서 겪었을지도 모를, 가능성의 이야기.









하얀 비둘기가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빠르게 날아갔다. 비둘기를 낚아채려는 매와 괜히 심술이라도 부릴려는 까마귀 떼가 있었으나, 비둘기는 너무나도 쉽게 그것들을 따돌렸다.


날개를 홰치면 풍랑이 이는 듯 했고, 먼 길을 날았음에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두 눈은 정광이 어린 듯 맑게 빛났다.


비둘기는 평범한 새가 아니라, 백구(白鳩)라 불리는 영물이었다. 백구 한 마리를 사려면 금화를 가득 채운 수레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과연 예사롭기 그지 없는 움직이었다.


백구가 향한 곳은 쪽빛 기와가 인상적인 장원이었다. 백구가 허공을 두어 바퀴 빙빙 돌자, 영물의 기세를 느낀 남자가 본채에서 걸어 나왔다.


창천(蒼天)을 담은 푸른 머리카락에, 녹옥빛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청년이었다. 


비류세가 가주, 비류진시.


고작 스물이라는 젊은 나이로, 비류세가를 이끄는 가주였다. 가문을 이끌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그의 동년배들은 강호초촐인 후기지수가 대분이었다.


그러나 비류진시를 마주하고 모자르다 평하는 이는 없었다. 비류진시는 분명 젊었지만 능력이 부족하지 않았다. 그는 영민했고, 무공이 고강했다. 


그의 성정에 오만함이 없었다. 겸손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비굴하지 않았다. 비류진시는 스스로의 재능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알았다. 


부족한 경험을 다른 이에게 구함에 거리끼지 않았다. 사람을 사귀는데 편견이 없었다. 비류진시의 곁에는 당대의 기라성 같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늘을 날던 백구는 비류진시를 보자 선회하여 그의 팔뚝에 앉았다. 가까이에서 본 백구의 다리에는 연통(煙筒)이 달려 있었는데, 비류진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그것을 분리한 후 백구에게는 빻은 호두가루가 든 주머니를 주었다.


"고생 많았구나. 집에 들어가서 쉬려무나."


구우-!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짧게 운 백구는 호두 주머니를 부리에 문 채, 비류세가 연무장 한 구석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총총 걸어갔다.


"녀석... 집이라고 걸어다니는군."


비류진시는 날지 않는 비둘기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흡사 닭이 생각나는 걸음걸이었지만, 영물인 만큼 들고양이에게 물어잡힐 일을 없었다.


연통의 마개를 돌리고 흔들자 돌돌 말은 종이가 나왔다. 한지는 아니었다. 양피지도 아니었다. 다소 낯선, 서역에서 사용하는 종이였다. 생경한 질감이었지만, 종이에 적힌 필체는 분명 익숙한 것이었다.


붓과 먹이 아닌 서역에서 사용하는 깃털펜과 잉크로 섰을 그 문장에서, 획과 획에서 드러나는 기세와 분위기는 그의 하나뿐인 누이 동생, 비류소소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소소에게서 연락이 왔구나!" 


비류세가는 중앙대륙으로의 진출을 고려하고 있었다. 동과 서과 만나는 그곳에서, 여행 중 사귄 벗, 아르살로스와 함께 새로운 거점을 만들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거목을 옮겨 심으면 죽는다는 말처럼, 기반을 함부로 옮길 수는 없었다. 비류세가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몸만 덩그러니 간다해도, 가진 무위가 있으니 자리를 잡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큰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수중의 돈을 버리는 상인은 존재하지않는 것처럼, 자산을 포기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또한 비류세가가 지금까지 쌓아온 인망, 신의, 명성은 비류남매가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선조들이 이룬 것이었으며, 그것들을 버리는 것은 선조들에 대한 불효인 동시에 비류세가와 역사를 함께한 다른 세가, 문파에게도 큰 결례다. 


'그럼 제가, 비류세가가 뿌릴 내릴 땅을 찾아올께요.'


마치 뒷산으로 마실이라도 나가는 듯 가볍게 말하던 그의 누이 동생이었다. 비류진시는 가주라는 직책의 책임과 업무로 인해 자리를 비우지 못하기에 동생의 말에 반색하였다.


'그래주겠니?'


당시 비류소소의 나이는 고작 15살이었다. 홀로 연고도 없이, 비류세가의 입김이 닿지 않는 외지를 독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하물며, 여인의 몸이라니. 비록 강호초출은 아니여도, 다른 세가였다면 허락될 리 없는 이야기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신감 있게, 당차게 말하는 비류소소의 눈에는 어떤 불안도, 걱정도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있는 포부도 아니었다. 당연하고 덤덤했다. 아무런 근심도, 위험도 없다는 듯이.


"소소는 잘했겠지. 소소니깐."


연통에 담긴 편지를 펼치는 비류진시의 입가에 자그만한 호선이 걸렸다. 그의 누이 동생은 언제나 기대한 것 이상을 해주었다. 세상 사람들은 천하제일의 기재를 언급할 때 비류세가의 비류진시를 꼽았지만, 비류진시는 그것이 자신의 누이 동생인 소소를 가늠하지 못해서 임을 알았다.


비류진시의 재능을 언급할 때면  '태산과도 같다'고 사람들은 운운한다. 범인(凡人)은 운무에 휩쌓인 정상을 보지 못한다. 비류진시의 재능은 오직 태산의 정상에 이른, 등봉조극에 이른 고수뿐이다.


이 대륙에, 그와 같은 경지를 지닌 자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사람들은 그저 가늠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산의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태산이 높다는 사실은 알 수 있으니깐.


반면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비류진시의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히끗히끗한 머리카락의 노고수, 역발산기개세라 불리는 역전의 장수, 평범해 보이지만 실력을 숨기고 있는 은거기인.


비류진시는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이 보였다.


땅에서도, 태산의 정점에서도 고개를 들면 하늘이 보인다. 감히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높고, 너른 창공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하늘의 크기를 알지 못한다. 크다는 것만을 알 뿐, 체감하지는 못한다. 장대한 태산의 기세에 짓눌리는 사람은 있었도, 끝없이 펼쳐진 하늘에 위압되는 사람은 없다. 태산에 감화되는 사람은 있었도, 하늘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그의 누이 동생은, 비류소소는 하늘이었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일만큼 바보 같은 행위가 어디 있을까. 


"소소가 무슨 일로 백구를 보냈을까." 


비류진시는 기대감을 안은 채 천천히 편지를 마저 읽어내려갔다.










복도를 걷는 소리에, 나는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소리는 두 사람이었다. 발소리 안쪽으로 잘그럭거리는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갑옷을 입고 있나?


다른 한 명은 가벼운 옷차림인지 이물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보보마다 체중이 과하게 실려서 터벅터벅 큰 소리가 울렸다. 좋게 표현하자면 자신감이었지만, 내게는 무지몽매한 우자(愚者)의 허세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발걸음은 내가 갇혀있는 옥(獄) 앞에 멈췄다. 나무 격자로 짜여진 창살 너머로 두 인영이 비쳤다. 


철과 괴물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걸친 호위는 수준이 뛰어나 보이지 않았다. 잘해봐야 이류. 다만 온갖 사술이 넘쳐나는 땅인 만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호위를 받고 있는 중년인은 서대륙식 예복을 입고 있는 색목인이었다. 푸른 눈동자가 차갑고 예리했지만, 눈매와 달리 몸은 군살이 많았다. 옷으로도 감출 수 없는 군살은 무인이 아니어도, 눈썰미가 좋다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흐음, 깨어 있었군."


"가주님, 위험합니다."


"괜찮으니깐, 자넨 밖에서 망이나 보게."


"허나....알겠습니다."


호위의 얼굴은 투구로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와 행동에서 뻣뻣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걱정말게나. 무슨 일이 있으려고. 이미 마나는 무효화한 상태가 아닌가? 게다가 상대는 무기도, 갑옷도 없는 소녀야."


호위는 탐탐치 않은 기색이었지만 토를 달지 않고 조용히 물러났다.


"저 친구는 너무 걱정이 많은 게 탈이야. 자네가 봐도 그렇지 않은가?"


"아니, 본녀가 보기에는 그의 마음가짐은 호위로서 충분하다. 정작 그 주인은 안일하기 짝이 없고."


사람을 죽이는데 큰 힘은 필요 없다.


"마음이, 뜻이 있다면 아이도 어른을 죽일 수 있다."


"이런 옥중에 갇혀서 말인가? 무슨 방식으로?"


"방식을 상상할 수 없다. 그건 당연하다.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서 수 십, 수 백일을 생각해서 나왔을 창발적인 발상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짐작할 수 없기에 그 수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지."


"흐음. 그렇군. 유념하도록 하지. 그렇지만 자넨 나를 죽이지 않을테지. 안 그런가?"


남자는 턱을 매만지며 흥미 가득한 눈으로 물어왔다.


"땅을 지키는 결계가 뚫렸을 때는, 새로운 혼종(混種)이 나타난 줄 알았지. 정작 그 사태의 주범이 동방에서 온 칼 한 자루 든 무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더 놀랐고."


그 말이, 무인의 자존심을 건든다. 


서대륙 만큼은 아니지만 중앙대륙도 무인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갑옷을 걸치지 않은 행색이 떠돌이 용병을 연상케 한다든가, 강한 무인은 동대륙에서 활동하기에 진정으로 고수라고 할 만한 자들은 본 적이 없다든가.


단지 무시라면 참을 수 있지만, 그것은 곧 멸시가, 조롱이 되기 마련이었다.


예법이란 서로가 동등할 때 나온다. 동등이란 지위, 무력, 재력 등 다방면으로 평가된다. 


무력을 볼 수 있는, 가시적인 방식은 바로 칼이었다.


동대륙에서는 일단 칼을 차고 있다면, 그것이 아이든, 소녀든, 노인이든 간에 존중 받았다. 고수의 기색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홀로 강호를 독보한다는 것만으로 그 강함이 증명되니깐.


중앙과 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의 무학에서는 반박귀진, 노화순청이란 말이 없었다. 그들의 강함은 겉으로 드러나야만 했다. 굴강한 육신, 철로 된 갑옷, 바리바리 챙긴 아티펙트 등.


그런 강함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단지,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알 뿐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그 길을 모르기에, 언제나 무인을 부정한다.


"결국, 이렇게 붙잡혀서 옥살이 중이지."


마치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런 불손한 눈빛에 울컥, 노기가 치민다.


"본녀가 순순히 붙잡힌 이유는 어디까지나 본녀의 과실로 인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이다."


"이런, 내가 자존심을 건드렸나? 내가 본 무인이란 작작들은, 어중이 떠중이가 아닌 고수들은 언제나 칼 한자루 든 망나니들 뿐이었는데 말이지."


"그들은 동대륙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 무림공적들이다. 쫓기는 범법자와 같은 취급하지 말지?"


"흠, 자네는 다른가?"


"본녀는 비류가문의 비류소소다."


"난 스와인 가문의 호그라고 하네. 자넨 우리 스와인 가문에 대해서 아는가? 모르겠지. 나도 마찬가지로 비류라는 가문이 어떤 곳인지 모른다네. 참고로, 우리 가문은 축산업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


나는 반박할 말이 없기에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나는 죄인의 신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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