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최근 방문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AI한대] 부서진 서울의 조율사

피채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4.02 22:00:03
조회 77 추천 0 댓글 2

부서진 서울의 조율사


1화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낡은 옥탑방 섀시를 때리는 빗소리가 유리창을 넘어, 벽의 미세한 균열을 타고 스며드는 듯 축축하게 공간을 잠식했다. 강민준은 싸구려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었다. 고막을 찢을 듯 울려대는 데스 메탈. 그마저도 끈질기게 파고드는 도시의 소음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다. 이건 단순한 소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생체가 내뱉는 온갖 감정과 시간의 뒤섞인 잔해, 민준만이 희미하게 감지하는 '현실 지층'의 불협화음이었다. 뒤틀리고 마모된 지층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저열한 소음은 귀를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존재 자체를 짓누르는 압력이었다.


축축하고 눅눅한 공기가 폐 속까지 파고드는 듯 방 안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며칠째 갈아입지 못한 티셔츠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스멀거렸고, 바닥에는 빈 컵라면 용기와 과자 봉지 따위가 지뢰처럼 널려 있었다. 세상을 등지고 스스로를 유폐한 지 얼마나 되었더라. 벽에 걸린 싸구려 전자시계는 오래전에 배터리가 나갔고, 스마트폰은 충전기조차 연결하지 않은 채 방치된 지 오래였다. 시간 감각마저 도시의 소음처럼 희미하게 뭉개져 갔다.


그는 눈을 감았다. 음악의 광란적인 리듬에 억지로 의식을 맡기려 애썼다. 그러나 눈꺼풀 뒤편으로 어른거리는 잔상은 악몽처럼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았다. 검붉은 불길, 고막을 찢는 비명,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잔해. 그리고… 온기를 잃어가던, 끝내 지키지 못했던 손의 감촉. 그날 이후, 그의 안에 박혀버린 '부서진 현실의 파편'은 얼음 조각처럼 차갑게 존재하며, 끊임없이 과거의 통증을 현재로 끌어왔다. 파편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일부가 되어버린, 다른 시간의 저주받은 잔해였다.


"……젠장."


메마른 입술 사이로 낮은 욕설이 새어 나왔다. 이어폰 볼륨을 더 높였다. 고막이 터져버릴 듯한 소음만이 이 지긋지긋한 감각을 마비시켜 줄 유일한 진통제였다.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때였다.


창밖의 빗줄기가 순간, 타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재처럼 무겁게 내려앉는 환영이 시야를 덮쳤다.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코끝에 희미한 매캐함마저 스치는 듯했고,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질감마저 미세하게 변했다. 눈을 번쩍 떴다. 심장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감각. 하지만 창밖은 여전히 투명한 빗줄기만이 굵게 흘러내릴 뿐이었다.


‘또 시작인가.’


단순한 환각이 아니었다. 현실이 잠시 제 궤도를 이탈했다가 불안정하게 돌아오는 감각, ‘현실 글리치(Reality Glitch)’. 파편이 그의 인식 체계를 뒤흔들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 겪지 못할, 어쩌면 미처 인지조차 못 할 현실의 뒤틀림. 민준에게는 지긋지긋한 일상이었다. 그는 이마를 짚었다. 손바닥에 축축하게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제발… 오늘은 그냥 넘어가 줘.’


간절한 바람은 언제나처럼 철저히 외면당했다.


갑자기, 가슴께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이질적인 감정의 파동이 느껴졌다. 데스 메탈의 소음 장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주파수의 파동이 그의 내면을 직접 타격했다. 선명하고 절박한 불안감. 민준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망가진 ‘현실 조율(Strata Tuning)’ 능력이 멋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과거, 능력을 제어할 수 있었을 때는 타인의 감정을 섬세하게 읽고 어루만지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파편이 박힌 이후, 타인의 강렬한 감정은 이제 그에게 고통일 뿐이었다. 여과 없이 증폭되고 왜곡되어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내면을 할퀴었다.


“크윽…!” 온몸의 신경이 뒤틀리며 폐부가 얼어붙는 듯한 감각. 파편이 내는 차가운 비명이 머릿속을 찢었다.


민준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어디지? 이 불안의 진원지는. 멀지 않았다. 이 낡고 비좁은 다세대 주택 어딘가였다. 아마도 바로 아래층, 혹은 옆 건물일 터였다.


‘신경 꺼. 제발, 신경 꺼. 나와는 상관없어.’


스스로에게 필사적으로 되뇌었지만, 감정의 파동은 점점 더 거세졌다. 단순한 불안이 아니었다. 깊은 상실감, 막막함, 그리고 희미하지만 절박한… 도움을 구하는 외침. 어떤 노인의 불안이 그의 망가진 현실의 현(絃)을 건드렸다. 튕겨져 나온 소음은 온전히 그의 것도, 수신된 타인의 감정 그대로도 아니었다. 뒤틀리고 증폭된 왜곡된 공명은 민준 안의 파편을 자극했고, 방 안의 낡은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위태롭게 깜박이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빈 캔들이 귀신 들린 듯 미세하게 떨렸다.


‘젠장…! 멈춰!’


의지와 상관없이 반응하는 몸. 그리고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희미하지만 익숙한 잔향. 저건… 단순한 감정의 파동만이 아니었다. 특정 ‘현실 지층’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감각. 아주 오래된 슬픔, 혹은 잊힌 염원 같은 것이 두껍게 퇴적된 지층이었다. 장소에 깃든 기억이, 노인의 현재 감정과 공명하며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다.


결국, 민준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몇 년은 방치된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무릎에서 녹슨 소리가 났다. 낡은 슬리퍼를 구겨 신고, 녹슨 철문을 열었다. 훅 끼쳐오는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빗소리가 와락 끼얹어졌다. 그는 흔들리는 난간을 붙잡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한 층 아래, 302호. 복도 끝에 자리한 작은 방 앞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주저앉아 있었다. 쏟아지는 비를 맞은 건지, 젖은 복도 바닥에 웅크린 건지, 비에 젖은 생쥐꼴이었다. 노인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듯, 젖은 복도 바닥을 애타게 더듬거리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짙은 회색빛의 불안과 상실감이 마치 유독한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민준의 눈에는 그것이 보였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색깔과 형태. 그리고 그 감정의 안개가 닿는 벽면과 바닥 타일이 물결치듯 희미하게 일렁이는 것 또한.


이 골목길은 그저 낡고 후미지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겹겹이 쌓인 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벽돌 틈새마다, 시멘트 바닥 아래마다 수십 년 묵은 한숨처럼 배어 나오는 듯, 공기 자체가 다른 무게로 가라앉아 있었다. 노인의 강렬한 불안이 그 묵은 감정의 퇴적층을 건드리자, 발밑에서부터 서늘한 냉기가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장소의 메아리’. 이 장소에 겹쳐진 과거의 기억 혹은 강렬했던 감정이 현재의 감정과 공명하며 일으키는 현실 간섭 현상이었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많은 사연이 깃든 곳일수록 이런 현상은 잦았다.


민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저 노인과 엮이고 싶지 않았다. 타인의 감정에, 현실의 뒤틀림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미 실패한 조율사였다. 그의 선의는 재앙을 불러왔고, 그의 능력은 저주가 되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이미 계단을 향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상주의자의 잔재인지, 아니면 그저 이 고통스러운 공명을 멈추고 싶은 본능인지, 이제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노인의 불안은 민준의 신경을 갉아먹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마치 날카로운 유리 조각 위를 걷는 듯 고통스러웠다. 가까워질수록 노인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 물건에 담긴 시간의 무게와 염원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주 오래되고, 손때 묻은… 사진인가? 빛바랜 흑백 사진.


마침내 노인의 등 뒤에 섰을 때, 민준은 차마 먼저 말을 걸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당신의 불안 때문에 내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당신이 찾는 물건 주변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내가 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미1친놈(디씨 금지어라 필터링함) 취급받기 딱 좋았다. 아니, 그는 이미 세상의 눈으로 보면 미1친놈이나 다름없었다.


노인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뒤섞인 얼굴. 깊게 팬 주름 사이로 당혹감과 희미한 경계심이 스쳤다.


“…누구신가?” 쉰 목소리가 물기에 젖어 가늘게 떨렸다.


“…….” 민준은 잠시 망설였다.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버거웠다. “윗집… 삽니다.”


“아… 옥탑 총각.” 노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기억하는 눈치였다. “미안허이. 밤중에 시끄럽게 했는가 보구먼.”


“아닙니다.” 민준은 짧게 대답하고는 노인이 더듬던 바닥을 살폈다.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낡은 타일과 고인 빗물뿐,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의 ‘조율’된 감각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느껴졌다. 노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 녹슬고 찌그러진 낡은 배수관 근처에서 희미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일렁이는 에너지가 있었다. 사진이 맞았다. 낡은 흑백 사진. 젊은 시절의 노인과… 아마도 이미 세상에 없는 그의 아내일까, 젊은 여인이 함께 활짝 웃고 있는 모습. 그 사진에는 수십 년의 그리움과 애정, 그리고 이제는 희미해진 행복의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약하지만 분명한 ‘지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지층이 지금, 노인의 불안과 공명하며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현실에서 ‘미끄러져’ 영원히 사라지려는 것처럼. 사소한 물건 하나가 현실의 경계선에서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민준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그의 손끝에서 미약한 푸른빛의 에너지 입자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려던 찰나, 가슴 속 파편이 비명처럼 반응했다.


“컥!”


숨이 턱 막히는 격통과 함께 시야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벽면의 타일들이 녹아내리는 듯 일그러지고, 빗소리가 날카로운 금속성 파열음처럼 변조되어 고막을 찔렀다. 시멘트 벽 너머로, 찰나였지만, 촌스러운 궁서체 구호가 푸르스름하게 번졌다 사라졌다. ‘반공방첩’. 70년대의 메마르고 살벌했던 시대정신이 21세기 서울의 축축한 빗물에 녹아 흐르는 듯한 기괴한 환영. 이곳에 깃든 또 다른 ‘장소의 메아리’가 그의 미약한 조율 시도에 간섭하며 튕겨져 나온 것이다.


“허억… 허억…” 민준은 차가운 벽을 짚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손상된 능력의 반동은 언제나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고 고통스러웠다. 아주 미약한 조율 시도조차 이 모양이었다. 과거, 능숙하게 현실의 현을 어루만지던 감각은 이제 아득한 기억일 뿐이었다.


“…총각? 괜찮은가?” 노인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노인의 눈에는 그저 젊은 남자가 갑자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간신히 몸을 바로 세우고, 아까 사진의 에너지가 느껴졌던 배수관 근처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잠겨 나왔다. “혹시… 저기 확인해 보셨습니까?”


노인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민준과 그가 가리킨 곳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무릎을 짚고 힘겹게 일어나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 뒤, 노인의 낮은 탄성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아이고… 여기 있었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걸 여태 못 보고…”


노인의 떨리는 손에는 낡고 작은 흑백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비에 젖어 가장자리가 약간 번졌지만, 사진 속 젊은 남녀의 행복한 미소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노인은 사진을 소중하게 품에 안고 민준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고맙네, 총각. 정말 고마워. 이게 나한테는… 내 지난 세월 전부나 마찬가지라네.”


노인의 얼굴에 잠시 안도와 기쁨의 파동이 스쳤지만, 민준은 그 긍정적인 감정의 파동조차 버거웠다. 증폭된 감정은 그의 신경을 마구잡이로 뒤흔들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서둘러 등을 돌렸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또 어떤 현실의 뒤틀림과 마주하게 될지, 혹은 제 안의 파편이 어떤 발작을 일으킬지 몰랐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민준은 문을 잠그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간 듯했다. 짧은 외출이었지만, 현실과의 접촉은 언제나 혹독한 대가를 요구했다. 가슴 속 파편은 여전히 불쾌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차갑게 맥동하고 있었고, 아까 보았던 현실 글리치와 장소의 메아리의 잔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젠장할.’


그는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하지만 시끄러운 음악은 더 이상 위안이 되지 못했다. 창밖의 빗소리 너머로, 조율되지 않은 도시의 현(絃)들이 미세하게, 그러나 더욱 불규칙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평소보다 더 크고 불규칙했다. 무언가 거대한 부조화가 도시 전체를 잠식해 들어오는 듯한 불길한 예감. 그리고 내 안의 파편 역시, 그 불협화음에 공명하며 잠 못 드는 밤을 예고하고 있었다.


무언가… 달라지고 있었다. 부서진 서울이라는 도시의 현실 지층 밑바닥에서부터, 아주 느리고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애써 외면하고 싶었지만, 그 불길한 예감은 끈질기게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도시가…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었다.


2화


옥탑방은 여전히 그의 세계 전부였다. 노인에게 사진을 찾아준 그 찰나의 외출 이후, 강민준은 다시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뒀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굳게 닫힌 문 너머의 서울이 전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웠다. 단순히 자동차 경적이나 사람들의 소음 같은 표면적인 것들이 아니었다. 도시의 근간을 이루는 '현실 지층' 자체가 미세하게, 그러나 분명히 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어긋나며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처럼, 불안정한 주파수가 그의 신경을 끊임없이 긁어댔다. 귀를 막아도 소용없었다. 소음은 그의 존재 자체를 통해 스며들었다.


민준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의 안에 박힌 '부서진 현실의 파편'은 이 도시의 불협화음에 동조하며 차갑고 무거운 존재감을 더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寒氣)와 같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헤드폰을 썼다. 볼륨을 최대로 높였다. 격렬한 드럼 비트와 날카로운 기타 리프가 그의 감각을 잠시나마 점령하는 듯했다. 이 소음으로 저 소음을 덮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러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억지로 외부의 소음을 틀어막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파편의 반발을 불렀다. 컥, 하고 숨이 막혔다.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며 방 안의 풍경이 순간적으로 격렬하게 뒤틀렸다. 낡은 벽지가 오래된 신문지처럼 너덜거리며 벗겨져 내리는 환영, 천장의 형광등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바닥으로 쏟아지는 감각.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인식 속 현실은 잠시 붕괴했다가 고통스럽게 재조립되었다. 이것이 파편이 만들어내는 내면의 글리치였다.


“크윽… 하아, 하아…”


민준은 헤드폰을 벗어 던졌다. 가슴을 움켜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차갑게 흘렀다. 이게 그의 현실이었다. 안식처여야 할 비좁은 방 안에서조차 그는 안전하지 못했다. 망가진 조율사는 도시의 불안정한 연주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릴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도시가 아니라, 제 안의 파편에 휘둘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만인지 모를 외출이었다. 냉장고는 텅 비었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컵라면 용기조차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싫든 좋든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낡은 후드 티셔츠의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최대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옥탑방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그림자처럼 가볍고 소리 없었지만, 내면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계단을 내려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골목길을 벗어나자, 탁 트인 하늘 아래 회색빛 도시가 펼쳐졌다. 여전히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였다.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무심하게 스쳐 지나갔다. 민준은 그들의 무심함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음, 보이지 않는 균열 속에서 그는 홀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저들 중 몇이나 알고 있을까.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얇고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그가 향한 곳은 집 근처의 오래된 재래시장이었다. 허기를 달랠 만한 값싼 먹거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좁은 통로 양옆으로 늘어선 가게들, 시끌벅적한 흥정 소리, 비릿한 생선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뒤섞여 축축하게 내려앉은 공기.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이었지만, 민준의 예민해진 감각에는 다른 것들이 잡혔다. 시장 특유의 활기찬 소음 아래, 무언가 이질적인 주파수가 미세하게 뒤섞여 있었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 속에 불협화음을 내는 악기가 숨어 있는 것처럼.


순간이었다.


시장 통로 한가운데, 좌판을 벌여놓고 향긋한 쑥갓 나물을 팔던 할머니의 모습이 갑자기 필름이 늘어지듯 흐릿해지더니, 흑백 화면 속 인물처럼 색을 잃고 느려졌다. 주변의 소음은 먹먹하게 멀어졌고, 대신 희미하게 군가(軍歌) 비슷한 노랫소리가 배경음처럼 덧씌워졌다.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 위로 젊은 군인의 상처 입은 얼굴이 겹쳐 보였다가 사라졌다. 좌판 위의 파릇한 나물들이 잠시 시커먼 포탄 파편처럼 보였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의 지층이 잘못 접합되거나, 강렬한 과거의 잔상이 현재를 침범하는 ‘현실 글리치’. 저 할머니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몰랐지만, 그 사연이 이 장소의 어떤 기억과 공명하며 순간적인 뒤틀림을 만들어낸 것이다.


“……!”


민준은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심장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 바쁘게 지나쳐갔다. 하지만 몇몇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끼는 듯 이마를 짚었다. 미약하지만, 글리치의 영향력이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민준 혼자만 감지하거나 아주 민감한 소수에게만 미약하게 영향을 주던 것이,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식에도 미세한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의 병이 깊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때,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멎었다. 시장 통로 중간쯤, 낡은 상가 건물 1층에 위치한 작은 카페. ‘시간의 향기’라는, 다소 촌스럽고 감상적인 이름의 간판을 단 곳이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젊은 여자가 카운터에 위태롭게 기댄 채 이마를 짚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 다른 사람들의 막연한 어리둥절함과는 다른, 훨씬 구체적이고 깊은 공포와 혼란이 그녀에게서 해일처럼 밀려왔다.


민준의 망가진 공감 능력이 그녀의 강렬한 감정에 예리하게 반응했다. 날카로운 파동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 단순한 감정의 동조가 아니었다. 그의 파편이 그녀의 공포에 반응하며 차갑게 맥동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희미한 어지럼증이나 잠깐의 이질감 정도였을 글리치가, 저 여자에게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강렬하게 작용한 모양이었다. 왜? 그녀가 유독 민감한 걸까? 아니면… 저 장소 자체가 문제인 걸까?


그는 카페 입구 옆 벽에 기대서서 안을 살폈다. 여자는 스무 살 초중반쯤 되어 보였다. 단정하게 하나로 묶은 머리, 하얀 바리스타 셔츠. 왼쪽 가슴팍에는 ‘김서라’라는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방금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 여기가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민준은 카페 주변의 ‘현실 지층’을 감지하려 애썼다. 이곳은 시장의 다른 곳보다 유독 시간의 퇴적층이 두껍고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마치 여러 시대의 낡은 필름이 제대로 영사되지 못하고 뒤죽박죽 엉켜 겹쳐 있는 듯했다. 오래된 건물의 흔적, 잊힌 상점가의 기억, 어쩌면 전쟁의 상흔, 급격한 개발의 소음들이 위태롭게 중첩되어 있었다. 그리고 카페가 자리한 바로 그 지점은, 유독 그 불안정성이 응축되어 현실의 막이 극도로 얇아진 ‘얇은 점’ 같았다. 이런 곳에서는 과거의 잔상이 현재로 새어 나오거나, 현실 자체가 뒤틀리기 쉬웠다.


‘왜 하필 여길까. 그리고 왜 저 여자일까.’


그의 머릿속으로 희미하고 불길한 가설이 스쳤다. 어쩌면, 도시의 원시적이고 비인격적인 집단지성, 혹은 무의식이라 할 수 있는 ‘도시아(Urba-Ego)’가 이 불안정한 지점을 감지하고, 무언가를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몸의 염증이나 종양을 제거하려는 면역 반응처럼, 도시 스스로가 이 뒤틀린 시간의 매듭을 ‘교정’하거나 ‘정화’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에너지의 충격파나 부산물이 바로 이 ‘현실 글리치’일지도. 그 거대하고 무심한 도시의 의지 앞에서, 개인의 감정이나 안전 따위는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할 터였다. 만약 그렇다면, 저 여자, 김서라는 위험했다. 하필이면 가장 불안정한 지점에 서 있었으니까.


민준은 고개를 저었다. 섣부른 추측일 뿐이다. 그는 도시의 의지 같은 거창한 것을 논할 자격도,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감각은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이곳은 위험했다. 저 여자, 김서라도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의 파편이 그녀의 공포에 반응하며 내는 차가운 공명이 그것을 증명했다.


며칠 동안,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카페 주변을 맴돌았다.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에 들를 때마다, 혹은 그저 무의미하게 거리를 배회할 때마다 그의 발걸음은 어김없이 카페 앞으로 향했다. 직접 말을 걸 용기는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멀찍이서, 그림자처럼 지켜볼 뿐이었다. 서라가 느끼는 불안과 혼란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커피를 내어주다가도 갑자기 허공을 응시하며 몸을 떨거나,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은 듯 귀를 기울이곤 했다. 민준은 그녀가 겪는 감각의 왜곡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타자기 소리, 누군가의 흐느낌, 희미한 화약 냄새, 그리고… 무언가 불타는 듯한 매캐한 공기. 카페 자리에 겹쳐진 과거의 ‘장소의 메아리’들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더 창백해지고 지쳐가는 듯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민준이 여느 때처럼 카페 앞을 무심히 지나칠 때였다. 서라가 잠시 밖에 나와 쓰레기를 버리려던 참이었다. 그녀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서라는 며칠 동안 자신을 훔쳐보던 민준의 존재를 이미 의식하고 있었는지, 경계심과 의아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요.” 서라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불안감 때문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혹시… 저한테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며칠 전부터 계속…”


민준은 당황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아… 아닙니다.” 그는 어색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그냥… 지나가던 길입니다.”


서라는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간절함마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혹시… 여기… 뭐 이상한 거 못 느끼세요? 저만 그런 건지…”


“…….” 민준의 심장이 다시 한번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도 느끼고 있는 건가? 어디까지? 현실의 뒤틀림을? 아니면 그저 예민한 감각 탓일까?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눈앞이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어서요.” 서라는 불안한 듯 자신의 팔을 문질렀다. 그녀의 눈동자가 도움을 구하듯 그를 향했다. “제가 요즘 좀 피곤해서 그런가… 병원에 가봐야 하나 싶기도 하고…”


민준은 차마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은 현실이 뒤틀리고 있는 위험한 지점이고, 당신은 그 영향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어쩌면 도시 전체가 당신을 포함한 이 지역을 ‘정화’하려 할지도 모른다고? 당신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단순한 환각이 아니라, 과거의 망령이거나 다른 시간대의 침식일 수 있다고? 미친 소리로 들릴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여자는?


“글쎄요…” 민준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얼버무렸다. 그의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형편없이 갈라졌다. “저는 잘… 못 느끼겠는데요.” 거짓말이었다. 그는 그녀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페 안에서 날카로운 유리 깨지는 소리가 굉음처럼 터져 나왔다! 동시에 서라의 눈이 극도의 공포로 커졌다. 그녀가 느낀 감정의 파동이 지진파처럼 민준에게 직격했다. 단순한 놀람이 아니었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현재로 침범해 들어오는 듯한, 생생하고 압도적인 공포였다. 그녀의 내면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꺄악!”


서라가 비명을 지르며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민준은 망설일 새도 없이, 본능적으로 그녀를 뒤따랐다. 그의 안에서 차갑게 웅크리고 있던 파편이 이 상황에 반응하며 기분 나쁘게 꿈틀거렸다.


카페 내부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몇 안 되던 손님들이 겁에 질려 테이블 밑이나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고, 테이블 위의 컵들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공기 자체가 달라져 있었다. 숨 막힐 듯 탁하고 매캐한 연기 냄새가 코를 찔렀고, 카페의 벽지가 시커멓게 그을린 것처럼 보였다. 통유리창 밖 풍경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멀리서 희미하게 사이렌 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민준은 언젠가 이 지역의 역사를 검색하다 보았던 기록을 떠올렸다. 1970년대, 이 시장 일대에 큰 화재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참혹했던 과거의 ‘장소의 메아리’가,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카페 공간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글리치가 아니었다. 훨씬 더 강력하고 위험한 현실 침식 현상이었다.


“꺄아아악!”


서라가 카운터 안쪽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단순히 그을린 벽지의 환영이 아니라, 실제로 타오르는 불길과 비명횡사하는 사람들, 무너지는 건물의 공포가 생생하게 보이고 있을 터였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공간과 공명하며 그녀의 정신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이 화재 현장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두면 그녀는 이 과거의 악몽에 영원히 잠식당할지도 몰랐다. 그는 서라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그의 안에 박힌 ‘부서진 현실의 파편’이 그의 의지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냐고 비웃는 듯했다. 고통이 전류처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니, 아랑곳할 여유가 없었다.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희미하고 불안정한 푸른빛 에너지가 마치 꺼져가는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현실 조율’. 망가졌지만, 유일하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의 의식을 고통스럽게 집중하여, 카페 공간을 뒤덮은 과거의 화재 ‘지층’의 불안정한 주파수를 감지하려 애썼다. 마치 폭풍우 속에서 단 하나의 나뭇잎을 찾아내려는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조심스럽게 흘려보내, 그 격렬한 공명을 아주 조금이라도 상쇄시키려 시도했다. 마치 소음으로 소음을 덮으려는 것처럼, 위태롭고 고통스러우며 성공 가능성조차 희박한 작업이었다.


“크으으윽…!”


예상했던 대로, 엄청난 반동이 그를 덮쳤다. 온몸의 뼈가 뒤틀리고 장기가 터져나가는 듯한 격통과 함께, 파편이 그의 정신을 헤집었다. 시야가 암전되었다가 격렬하게 명멸했다. 귓가에는 화재 현장의 비명뿐 아니라, 수많은 시대의 아우성, 전쟁의 포화, 오래된 기계 소리,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들이 뒤섞여 그를 혼돈 속으로 끌어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의 미약하고 서툰 조율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일시적인 현상일까. 카페 안을 채우던 매캐한 연기 냄새와 그을음의 환영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귀를 찢던 소음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서라의 처절한 울음소리도 점차 잦아들며 가느다란 흐느낌으로 변했다.


마침내, 현실의 감각이 위태롭게 돌아왔다. 카페는 여전히 깨진 유리 조각으로 어지러웠지만, 숨 막히던 연기 냄새도, 시커먼 그을음의 환영도 사라져 있었다. 잿빛으로 변했던 창밖 풍경도 원래의 시장 골목으로 돌아와 있었다. 겁에 질렸던 손님들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거나 황급히 카페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끔찍한 경험이 마치 한순간의 악몽이었던 것처럼.


민준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조율의 대가는 혹독했다.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가시지 않았고, 머리는 깨질 듯 아팠다. 그는 서둘러 카페를 빠져나왔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또 다른 불안정을 야기할 수도 있었다.


그가 막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등 뒤에서 서라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저기요!”


민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카운터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킨 서라가, 아직 공포가 가시지 않은, 그러나 깊은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아주 희미한 의문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이 사라진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의 눈빛은 묻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냐고.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옥탑방으로 돌아온 민준은 문을 잠그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가슴 속 파편은 분노한 듯 날뛰며 차가운 통증을 토해냈고, 도시의 불협화음은 이제 그의 귓가에서 더욱 크고 위협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치 그의 서툰 개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개입해 버렸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다.


부서진 서울의 광란적인 연주는 이제 막 위험한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망가진 조율사는, 원치 않게 그 폭풍의 중심으로 한 발짝 더 깊이 휘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3화 (完)


강민준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며칠 동안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현실의 미세한 경련은 이제 노골적이고 지속적인 발작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옥탑방 창문 너머 서울의 하늘은 숨 막히는 납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고, 그 아래 복잡하게 뒤엉킨 '현실 지층'들은 마치 고장 난 영사기 필름처럼 위태롭게 떨리고 뒤섞였다. 그의 귓가에는 끊임없이 불협화음이 흘러들었다. 오래된 기계의 마찰음, 누군가의 희미한 통곡, 정체 모를 금속성 파열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듯한 거대한 존재의 불쾌한 숨소리 같은 저주파음이 뒤섞여 그의 신경을 면도날처럼 난도질했다.


가슴 속 '부서진 현실의 파편'은 도시의 불안정한 맥동에 격렬하게 공명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존재감을 키웠다. 차갑고 단단한 이물감. 때로는 살을 에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으로, 때로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깊은 한기(寒氣)로 그의 내면을 잠식했다. 그는 약을 입에 털어 넣듯 싸구려 인스턴트커피를 연거푸 들이켰지만, 카페인조차 이 내면의 떨림을 멈추지는 못했다. 손끝이 제멋대로 떨렸다.


‘그 카페… 시간의 향기.’


김서라. 그녀의 창백했던 얼굴과 극도의 공포에 질려있던 눈동자가 뇌리에 박힌 듯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그의 망가진 감각은 속일 수 없었다. 시장 안, 그 카페가 위치한 ‘얇은 점’에서 흘러나오는 불안정한 파동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마치 끓어 넘치기 직전의 냄비처럼, 혹은 폭발 직전의 시한폭탄처럼, 위태로운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며 응축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간헐적으로 그 지역의 원인 모를 정전이나 통신 장애, 심지어는 미세한 지반 침하 현상까지 보도했지만, 민준은 그것이 훨씬 더 근본적인 균열, 현실 구조 자체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징후임을 알았다.


‘도시아(Urba-Ego)’가 마침내 움직이고 있는 걸까. 도시의 그 무심하고 거대한 의지가, 제 몸에 생긴 상처이자 이물질인 ‘얇은 점’을 도려내기 위해 칼을 빼어 든 것일까. 아니면, 도시 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시간과 정보의 과부하, 혹은 풀지 못한 과거의 뒤엉킨 매듭 때문에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그 불안정한 시공간의 폭풍 중심에 선 인물, 김서라가 극도로 위험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마치 태풍의 눈 한가운데 놓인 작은 돛단배와 같았다.


민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드는 감각조차 희미했다. 또다시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던 과거의 '사건'이 선명한 악몽처럼 떠올랐다. 그때도 그는 이상을 품고, 자신의 능력을 믿고 뛰어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그가 믿었던 ‘시스템’의 배신, 제어하지 못한 능력의 폭주,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상실과 파괴. 그는 다시는 그런 끔찍한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이대로 또다시 무력하게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의 망가진 능력은, 그의 저주받은 파편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통받는 존재의 주파수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특히 김서라의 공포는 그의 파편을 기이할 정도로 강하게 자극했다. 마치… 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결국, 그는 다시 거리로 나섰다. 모자를 더 깊이 눌러쓰고 시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지옥으로 향하는 죄수처럼 무거웠다. 시장 입구에 다다르자, 공기부터 달랐다. 평소의 활기는 온데간데없고, 스산하고 불안한 기운이 짙게 감돌았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유 모를 긴장감과 초조함이 서려 있었고, 몇몇 가게는 아예 일찌감치 문을 닫은 상태였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위험을 감지한 것일까.


카페 ‘시간의 향기’ 앞은 이미 혼란의 전조를 넘어, 현실 붕괴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간판의 글자들이 지직거리며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깜박였고, 카페 주변의 공기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아지랑이처럼 심하게 일렁였다. 땅바닥의 보도블록 몇 개는 제자리를 벗어나 기괴한 각도로 튀어나와 있었고, 어디선가 쇠 비린내와 함께 오존 냄새 비슷한 것이 역겹게 풍겨왔다. 마치 시공간 자체가 찢어지기 직전처럼.


민준이 망설이며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바로 그 순간, 안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건물이 통째로 울리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쾅!


카페의 통유리창이 푸른 섬광과 함께 안쪽으로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민준은 반사적으로 팔로 얼굴을 가리며 뒷걸음질 쳤다. 귀가 먹먹해지는 굉음과 함께 강렬한 에너지 폭풍이 그를 덮쳤다. 눈을 간신히 떴을 때, 카페 내부는 이미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니었다.


‘현실 지층 융합’!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이 미친 듯이 뒤섞이고 있었다. 카페의 벽면은 한국 전쟁 당시 폭격 맞은 듯 시커먼 폐허의 잔해와, 빛바랜 단청이 남은 오래된 한옥의 서까래, 그리고 차갑고 녹슨 강철 구조물이 액체처럼 흘러내리며 기괴하게 뒤엉켜 있었다. 바닥에서는 축축한 흙냄새와 비릿한 피비린내, 그리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동시에 올라왔고, 천장에서는 깨진 형광등 불빛과 가물거리는 가스등 불빛, 심지어는 오래된 초롱불 같은 것이 위태롭게 교차하며 빛과 어둠을 토해냈다. 한국 전쟁 당시의 포화 소리, 70년대 화재 현장의 아비규환, 조선시대 저잣거리의 왁자지껄함, 훨씬 더 이전 시대의 알 수 없는 속삭임과 원한 서린 울음소리들이 한데 뒤섞여 공간 전체를 압도적인 소음과 혼돈으로 채웠다. 이것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가능성이 충돌하며 서로를 파괴하고 집어삼키는, 현실 구조 자체의 붕괴였다.


김서라!


그녀는 카운터 뒤쪽 구석에 쓰러져 있었다. 온몸을 필사적으로 감싸 안은 채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녀 주변의 공간은 더욱 격렬하게 왜곡되어, 마치 부서진 거울 조각들처럼 각기 다른 시대의 풍경과 인물들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명멸했다. 그녀의 순수한 공포와 고통이 현실 붕괴의 핵이 되어 주변의 혼돈을 더욱 증폭시키는 듯했다. 그 감정의 폭풍이 해일처럼 밀려와 민준의 가슴을 강타했다. 그의 파편이 그녀의 고통에 공명하며 얼음 송곳처럼 그의 심장을 찔렀다.


동시에, 그는 느꼈다. 하늘로부터, 아니, 도시 전체로부터 내리누르는 듯한 거대하고 무감각한 압력. ‘도시아’였다. 도시의 비정한 의지가 마침내 이 불안정한 시공간의 혹(瘤)을 강제로 제거하려 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오작동하는 부품을 인정사정없이 강제로 분쇄하듯, 강력하고 무자비하며 일체의 감정 없는 순수한 힘이 융합의 중심점을 향해 무섭게 수렴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이 모든 혼돈의 핵이 되어버린 김서라가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녀는 도시의 자정 작용에 휘말려 존재 자체가 소멸될 터였다.


민준은 이를 악물었다. 잇몸에서 피 맛이 느껴졌다. 과거의 실패가, 지키지 못했던 그 손의 감촉이 눈앞을 스쳤다. 그때 그는 힘으로 혼돈을 억누르려 했다. 제어하려 했다. 그리고 그 오만함의 대가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의 능력은 부서졌고, 그는 도망쳤다.


‘…이번에는 달라야 해.’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혼돈의 공기를 받아들였다. 고통을 각오했다. 아니, 고통을 끌어안았다. 그는 더 이상 가슴 속 ‘부서진 현실의 파편’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상처나 이물질이 아니었다. 그것 또한 부서진 현실의 일부, 다른 시간, 다른 가능성의 잔해였다. 그의 실패와 상실의 증표이자, 그가 이해해야 할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는 파편의 차가운 무게감과 뼛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붙잡았다. 자신의 존재를, 의식을, 그 깨진 조각에 단단히 묶었다.


손을 뻗었다. 푸른빛 에너지가 이전보다 훨씬 더 불안정하게, 그러나 역설적으로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는 융합된 지층들의 광란적인 불협화음을 향해 에너지를 쏘아 보내지 않았다. 제압하려 하지 않았다. 억누르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 혼돈의 폭풍 속으로 자신의 의식을 던졌다. 망가진 조율사는 연주를 멈추거나 지휘하려 하는 대신, 미친 오케스트라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크아아아아악!”


온몸의 신경 다발이 끊어지고 재조립되는 듯한 격통! 파편이 그의 영혼과 격렬하게 공명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의식 속으로 쏟아지는 시간의 파편들, 뒤섞인 감각과 기억의 홍수 속에서 그는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이 광란의 소음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단 하나의 가냘프고 위태로운 화음, 김서라라는 존재가 내는 고유한 생명의 주파수를 찾아내는 것. 그녀의 공포와 삶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내는 그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는 것. 그리고 그 주파수를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혼돈으로부터 보호하는 아주 작은, 그러나 안전한 ‘침묵의 공간’, ‘현실의 고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는 들었다. 포화 소리와 비명, 쇠 갈리는 소음과 원혼의 울부짖음이 뒤섞인 폭풍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필사적으로 떨리고 있는 현(絃)의 소리를. 서라의 공포, 그녀의 삶에 대한 갈망, 그녀 존재 자체의 고유한 진동. 그는 자신의 모든 존재를, 자신의 깨진 파편마저 기꺼이 연료로 삼아 그 소리에 공명했다. 자신의 에너지를 조심스럽게 흘려보냈다.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감싸 안듯이. 상처 입은 조율사는 상처 입은 현을 달래듯, 깨진 것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현실의 뒤틀림을 어루만지고 달랬다. 이것은 제어가 아닌 공존이었고, 억압이 아닌 조율이었다. 그가 새롭게 찾아낸, 혹은 되찾은 방식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초였을 수도, 몇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다. 격렬했던 공간의 뒤틀림이 서서히, 아주 서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뒤섞였던 벽면과 바닥, 천장이 마지못해 제 원래 모습을 되찾았고, 귀를 찢던 소음도 썰물처럼 아득히 멀어져 갔다. 하늘을 짓누르던 도시아의 무감각한 압력도 목표를 잃은 듯 희미해졌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함처럼, 위태로운 평온이 카페 안에 내려앉았다.


카페 내부는 여전히 폭격을 맞은 듯 난장판이었지만, 시간의 폭풍은 지나간 듯했다. 민준은 왈칵 피를 토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시야가 흐릿했고, 온몸의 기력이 완전히 소진되었다. 파편이 남긴 통증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을 에는 듯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감각이 함께 느껴졌다. 완전한 소모 뒤의 기묘한 충족감, 혹은 연결감 같은 것.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음미할 여유가 없었다.


김서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공포로 젖어 있었지만, 이전의 압도적인 혼란과 광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민준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방금 끔찍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는 것과, 눈앞의 이 남자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듯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계심 대신, 깊은 혼란과 아직 정리되지 않은… 희미한 감사의 빛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달싹였다.


민준은 그녀의 질문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비틀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복잡한 시선을 애써 피하며, 그는 엉망이 된 카페를 빠져나왔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 기력도, 이유도 없었다. 그의 역할은 끝났다.


며칠이 지났다.


강민준은 다시 옥탑방에 틀어박혔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영혼에 깊이 새겨진 듯한 피로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서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고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민준에게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도시가 아니었다. 도시의 번화한 표면 아래, 여전히 수많은 현실의 균열들이 존재하고, 시간의 잔해들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음을 그는 알았다. 완전히 조율되지 않은 거대한 악기처럼, 상처 입고 뒤틀린 서울은 언제든 다시 끔찍한 불협화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을 완전히 등지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도시의 소음을 외면하지도 않았다. 대신, 창가 낡은 의자에 앉아 도시가 내는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그 소음 속에서, 그는 이제 이전과는 다른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불협화음만이 아니었다.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조화의 가능성. 상처 입은 도시가 스스로를 치유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리고 그 뒤틀린 현실의 틈새에서 위태롭게 피어나는 작은 생명들의 속삭임.


가슴 속 파편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현실의 조각. 그의 실패와 고통의 증거. 하지만 이제 그것은 저주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부서진 세상과 연결되는 고통스러운 통로이자, 그만이 감지할 수 있는 균열의 증표였다. 그는 여전히 망가지고 실패한 조율사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깨진 현으로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아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았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혼돈 속에서 길을 잃고 고통받는 누군가를 위해 아주 작은 등불 하나 정도는, 위태롭지만 잠시나마 밝힐 수 있을지도 몰랐다.


비가 완전히 그친 하늘 아래, 상처 입은 서울은 묵묵히 숨 쉬고 있었다. 수많은 시간과 감정, 기억의 지층을 품은 채, 위태롭게. 강민준은 그 거대하고 상처 입은 도시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숨을 내쉬었다. 그의 조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도시가 존재하는 한, 혹은 그 자신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그저, 이 부서진 세상의 일부로서, 자신의 미약하고 서툰 떨림을 계속해서 이어갈 뿐이었다. 그것이 한때 이상을 꿈꿨던, 패배한 조율사가 마침내 찾아낸, 서툴지만 진실된 연주법이었다. 그의 연주는 이제 막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1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 ㅇㅇ(125.181)

    아무튼이 아니라 지좆대로 계엄한게 문제죠 ㅌㅋㅋ

    04.03 22:58:03
1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잘못하면 바로 인정하고 사과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5/04/07 - -
7478429 ziga 이거 만화 ㄱㅊ나 [2] aa(39.7) 04.06 19 0
7478427 윤석열 한번 더 나오는거 재밌긴 할 듯 ㅇㅇ(121.150) 04.06 13 0
7478426 윤어게인 할거면 차라리 오바마오빠 데리고 오면 안대? ㅠ 움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6 0
7478425 오늘 롤대남 축제 몇시냐 [4] 엘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4 0
7478424 던전에 관심이 많은 몰리를 [2] 사자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9 0
7478423 나는 당원으로서 국힘대표 전한길 밀고있음 [6] 은하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71 0
7478422 그니까 사이버 불링 피해자가 폭유밀프모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29 0
7478419 영어유치원 보내고 원어민 과외받는거 의미있긴함? 미드と애니の노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22 1
7478417 아니 이새끼들은 용이 뭔지 모르나??? [12] 엘레베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01 0
7478415 마이고뜻 [1] 궤적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26 0
7478413 지금 배란다에 구라안치고 검지만한 벌이 [15] 불가능충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46 0
7478412 점심 먹는데 아빠 또 정떡 굴리네 [2] 치매반룡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53 0
7478411 바람을 부르던 선율 절벽 끝 집은 암녹색 지붕 군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6 0
7478410 근데 윤어게인 나오면 진짜 재밌긴할듯 [1] 써릿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54 0
7478409 ai로 똥짤도 만들수있겠지? [5] 김해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8 0
7478408 내가 먹어본 음료수 중 제일 맛없는 거 경신했네 [3] Thestral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3 0
7478406 윤어게인 할 거면 mb 어게인을 해다오 차라리 [5] 그림먼저본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53 0
7478405 축리웹 굴단들 보니까 ㄹㅇ 짱깨 소리가 절로 나오긴하네 ㅋㅋㅋ [1] 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96 0
7478403 사불 피해자가 '사불이 도움된다'고 생각하면 나아지는 건 맞음 이상한_누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43 0
7478402 찢파이더맨.jpg [6] 올고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73 0
7478401 근데 슼갈은 여성인격체 맞아야 꼴림 [5] 위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64 0
7478400 완전 앰밥유레전즈. [1] 투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28 0
7478399 윤 어게인은 ㄹㅇ 미ㅃ;1친놈들인가 ㅋㅋㅋㅋ [1] 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56 0
7478398 젖탱이 있는힘껏 꽉쥐고싶은대 어떡해 [1] 유동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41 0
7478397 ❗❗통두 이 미친 새끼❗❗ [3] 재미교쓰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40 0
7478395 님들 그거 암? 옛판갤은 취향 비슷한 사람끼리 판갤러(125.130) 04.06 18 0
7478393 한국 망했다는 영상 보는데 참 기묘하군 [5] 써릿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81 0
7478392 이 작가 좀 썬컷이네 [1] 투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7 0
7478391 하지말란다고 안 하면 그 일은 안 일어남 [3] ㅇㅇ(121.145) 04.06 39 0
7478389 챗GPT는 지브리 스타일 안막고 뭐함 [1] ㅇㅇ(118.235) 04.06 29 0
7478388 하얀 애액 실제로 보고싶다 [14] 브라우니를민초에찍어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62 0
7478387 . ㅇㅇ(175.210) 04.06 16 0
7478386 럽크의 사례로 봤을 때 글을 꼭 잘 쓰지 않아도 됩니다 [5] McQueen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6 0
7478384 진짜 서윗틀딱들 개좆같네 시스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7 0
7478383 순혈인간 121화 연중이었냐? aa(118.235) 04.06 14 0
7478381 키작은 여자 왜 안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를 깨달음 [8] 칠사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63 0
7478380 ??? : 애초에 니들이 왜 배신감이 든다는 거지? 판갤러(211.230) 04.06 20 0
7478379 명빵 얘 인기많네 [3] 투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8 0
7478378 내일 금니 고치러 바로뛰어간다 [4] 은하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26 0
7478377 "100명의 군중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타락한다." [4] 피채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0 0
7478375 나진짜징짜 보지년아닌데 이 소요무츠맘에듬 [2] 재미교쓰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54 0
7478374 모모모모모리어티 하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3 0
7478373 이제 밀가루 과자 말고 스테비아 방울 토마토나 먹을까? [1] 닉이거되나?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7 0
7478370 아니풍수마구이름의상태가왜이모양이지 [3] 빵케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38 0
7478369 근데 마이고가 무슨 뜻임 [4] 젖보똥0.8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47 0
7478368 고추애 반지 끼는거 왤캐좋냐고 [12] 유동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79 0
7478367 아오 피부염 또도졋네 엘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5 0
7478366 작가 프로필에도 동시연재중 머지 [3] 워드페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49 0
7478365 팬덤은 잘나가는 인물에 꼭 자기인생 투영하더라 [5] 엘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69 0
7478364 지콱스 마브 전술 파훼 ㅈ밥 아님? 무적칼퇴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4.06 13 0
뉴스 재료값만 100만원…신종철, 이승철 위한 도시락 공개 (‘사당귀’) 디시트렌드 04.06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