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濊貊)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요동 지방에 살던 한국인의 근간이 되는 민족 중 하나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예(濊)와 맥(貊)을 갈라 보는 견해에서는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며, 예맥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던 종족으로서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다고 본다.
예맥은 맥(貊·貉) 또는 예(濊·穢·薉)로도 불렸는데, 서쪽으로는 동호(東胡), 동쪽으로는 숙신(肅愼)과 접해 있었다.
예맥은 기원전 2~3세기 경부터 쑹화강, 압록강 유역과 동해안 일대(한반도의 평안도·함경도·강원도, 중국의 랴오닝 성과 지린 성)에 걸쳐 정착하며 활동한 민족이다. 부여·고구려·옥저·동예 등으로 부르는 여러 족속들은 모두 예맥에 포괄되며, 여기에 부여의 한 갈래로 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커진 백제 역시 예맥족의 나라이다.
(위키백과)
예맥[濊貊]
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민족.
맥(貊:貉), 또는 예(濊:穢 ·薉)라고도 약칭하였다. 중국 고전의기록에 의하면 《시경(詩經)》 《논어(論語)》 《중용(中庸)》 《맹자(孟子)》에는 맥(貊)으로, 《사기(史記)》의 <흉노전(匈奴傳)> <화식전(貨殖傳)>에는 예맥으로 기록되어 있다.
맥족의 원주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으나 《위지(魏志)》 <고구려전>에 따르면 대수(大水:漢代에 鹽難水라고 하였던 鴨綠江) 유역에 거주한 부족과 소수(小水:漢代에 馬訾水라고 하였던 渾江) 유역에 거주한 2개의 집단이 있어 각기 수장(首長)을 추대하고 있었는데, 한인(韓人)들이 소수지역에서 거주한 집단을 소수맥이라 칭하였다.
예맥족은 이후 부여(扶餘) ·고구려 ·동예(東濊) ·옥저(沃沮) 등으로 중국 북동부와 한반도의 동부 및 중부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남으로 망명할 무렵 북방에서 함께 내려온 이주민들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 토착민과 연합하여 삼한(三韓)이라는 연방체를 만들었다.
여기에 고구려의 한 갈래인 위례(尉禮)가 한강 유역에 자리잡으면서 차차 커져서 백제가 되었는데, 이 또한 예맥족의 나라이다.
이 사실로 미루어 예맥족은 초기에 숙신(肅愼)과 동호(東胡) 사이에 끼어 중국의 쑹화강[松花江] 및 헤이룽강[黑龍江]과 압록강 ·두만강 유역 및 한반도 북부 지역인 함경도 ·강원도 등지에 걸쳐 살고 그 갈래가 남부에 백제를 이루며 번창한 대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족상으로는 알타이어계(語系)의 퉁구스족(族)에 속하는 한 갈래이다.
농경문화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발전하면서 한민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두산백과)
예맥(濊貊)이란 한반도 중북부, 만주 중남부, 연해주 등지에서 거주하던 반농반목 민족이며, 한반도 중남부에서 거주하던 한(韓)족과 함께 현대 한국인의 직계 조상이 되는 고대 민족이다.
예맥 민족이 자칭·타칭 삼한(三韓)이라 불린 것으로 보아 예맥족이 한반도에서 우세를 차지하면서 한족의 정체성 또한 동화해 계승한것으로 보인다.
(마한, 진한, 변한을 흡수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들을 가리키던 삼한(三韓)이라는 정체성까지 이어받았다.)
현대 한국인을 이루는 한민족은 예맥민족 중심 국가였던 고조선과 부여, 그리고 이들의 후손인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 또한 옥저와 동예를 모두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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