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게임메카=류종화 기자] 책이나 미디어의 순기능 중 하나는 대리체험이다. 가보지 못 한, 혹은 갈 수 없는 장소에 방문한 기분을 낼 수도, 파란만장한 인생사의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아름다운 가수나 캐릭터를 눈 앞에서 만나보기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혹은 미래에 되고 싶은 직업들의 생생한 모습을 만나보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학 드라마나 만화 등을 보며 실제 의사들이 하는 일을 파악하거나, 요리 관련 콘텐츠를 보며 일류 셰프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게임의 경우 이러한 직업들을 직접 만나보거나 체험할 수 있기에 더욱 생생하다.
그러나, 게임 속 직업은 현실과 다르다.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 실제는 게임에 등장한 것만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진 않다. 게임에 구현할 때는 따분하고, 지루하고, 스트레스 받아 가며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드러낸 채 버라이어티한 점만 강조해 그려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창작의 영역이거나. 오늘은 게임과 실제가 다른, 그 중에서도 너무나도 많이 다른 직업들을 한데 모아 보았다. 부디 이 직업들이 게임에서 비춰지는 모습만 보고 꿈을 꾸진 마시길.
TOP 5. 고압 세척건으로 집 내부를 씻어내는 청소부
고압 세척건으로 오물을 씻어내는 청소부의 일상을 그린 파워워시 시뮬레이터. 이 게임이 인기를 끌자 고압 세척기를 이용한 청소 게임이 상당수 출시됐다. 세척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때를 벗겨내는 과정은 압도적 쾌감을 가져다준다. 일상 생활에서 고압 세척건을 볼 일은 세차장 말곤 없는 일반인들에게, 집과 놀이터, 화장실, 조각상, 성 등을 고압 세척건으로 청소하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색적이고 재미있다. 이런 청소라면 한 번쯤 진짜로 해 봐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장비를 사서 사업을 시작해 보고 싶은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그러나, 게임은 게임일 뿐이다. 차량이나 분수대 같은 대상이라면 모르겠지만, 실내에서 고압 세척건을 분사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 행위다.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 집이라면 세척건에서 흐른 물이 바닥을 뚫고 나가 아랫집이나 지하실로 새어나가기 마련이고, 나무바닥이라면 며칠 안 가 곰팡이와 뒤틀림 등이 발생한다. 소파나 벽지 같은 재질에 물을 발사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강화유리가 아니라면 창문이 깨질 우려가 크며, 깨지지 않더라도 샷시가 뒤틀리거나 고장날 우려가 크다. 씻어내고 나온 하수 처리도 골치아프기에, 게임에서 배웠다며 아무데나 고압세척건을 쏘면 절대 안 된다.
TOP 4. 몸매와 머리결을 드러내고 활개하는 수녀
게임 내에서 수녀는 힐러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신성마법이나 성물을 활용해 팀원들을 지키고 언데드를 무찌르는 성 속성 캐릭터 말이다. 물론 이 부분은 판타지 배경 게임적 허용이기에 실제 수녀들이 퇴마사나 힐러로 일한다고 믿진 않을 것이다. 뭐 실제 바티칸에는 퇴마 관련 성직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가톨릭 신부와 수녀, 수사들은 마법사가 아니라 종교에 귀의한 성직자라는 점은 비종교인이라도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은, 수녀복이다. 유달리 수녀복은 게임이나 만화, 애니메이션 등에서 왜곡되어 비춰지는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부분이 얼굴에 두르는 베일(노비씨아) 부분이다. 게임 속 수녀복을 보면 십중팔구 앞과 뒤로 머리카락이 나와 있는데, 기본적으로 수녀복은 머리카락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세속적인 사치와 허영을 끊는다는 수도활동의 일환이다. 원피스형 옷 역시 펑퍼짐해서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다. 옆트임이나 가터벨트 같은 건 당연히 없다. 더불어 수녀가 고해성사를 해 준다던가, 정의로운 도둑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 또한 없다. 현실과 구분하도록 하자.
TOP 3. 대장장이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게임 속 대장장이들은 다소 짜증 나는 존재다. 무기를 수리하거나 강화할 때, 일정 확률로 실패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 뭐 사람인데 실수할 수도 있지. 그렇지만 수십 년이나 대장장이일을 해놓고 실패 확률이 줄지 않는 것도 열받고, 실패 후에도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라며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마비노기의 퍼거스로 대표되는 이 대장장이들은 언제나 손님의 혈압을 높이는 존재로 취급된다.
물론 실제 대장장이는 절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실력과 도구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한 후 성공 가능성을 면밀히 점친 후 작업에 들어가며,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의뢰물이 파손될 경우 보험 등을 통한 보상을 치르기 마련이다. 책임질 수 없을 만큼 고가의 장비라면 아예 의뢰를 받지 않는 것이 최선책이며, 평판 등을 의식해서라도 실패가 예상되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대충 두들기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라고 말하는 대장장이가 있다면, 십중팔구는 민사의 쓴 맛을 보게 될 것이다.
TOP 2. 유적을 마구 뛰어다니고 악당을 때려잡는 고고학자
어드벤처 게임의 근본 배경이라고 하면 역시나 고대 유물 탐사다. 신비로운 비밀이 가득 숨겨져 있는 고대 유물에 들어가, 그 안에 숨겨진 음모를 파헤치고, 욕심쟁이 악당들을 막고,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역사적으로 검증된 재미 아니겠는가. 아무나 들어가면 안 되니, 고고학자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툼 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 언차티드의 네이선 드레이크, 인디아나 존스의 존스 박사 등이 대표적이다. 아, 물론 악당이나 괴물, 야생동물 등과 맞서 싸우기 위한 기본적인 무력과 근력, 순발력은 갖춰야 하겠지만 말이다.
당연하겠지만, 실제 고고학자들은 저런 사람들이 아니다. 유적 발굴의 경우 최대한 유적이 손상되지 않도록 삽조차 쓰지 않고 조그마한 호미나 끌 같은 것으로 살살 흙을 긁어내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이루어진다. 당연히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혼자서는 절대 다니지 않고 동료나 연구실 대학원생들, 인부들과 함께 팀을 꾸린 후 조심조심 진행한다. 토기 쪼가리 하나 나오더라도 붓으로 살살 먼지를 털고, 각종 사진과 도면을 남기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털어낸 먼지조차도 챙겨야 하는 것이 고고학자의 발굴이다. 고고학자들에게 "왜 툼 레이더나 언차티드 같은 작업은 안 하세요?"라고 묻는다면 그 즉시 주먹도끼로 정수리를 찍힐 수 있으니 조심하길.
TOP 1. "이의 있소!" 추리하고 수사하고 삿대질하는 변호사
역전재판 시리즈는 변호사와 법정 싸움을 다룬 게임이다. 억울한 변호인을 도와 재판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변호사의 덕목일진대, 이를 게임에서 체험할 수 있다니. 발로 뛰며 사건 현장을 들여다보고, 샅샅이 뒤져 증거물을 수집하고,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고, 그 안에서 모순을 찾아내는 추리를 거치고, 법정에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으로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검사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이의 있소!"를 외치면서 일어나고, 상황 증거를 모두 뒤집어 판사를 설득해 재판을 승리로 이끄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변호사 아닌가.
아니다. 변호사가 발로 뛰며 증거를 수집하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대부분은 서면자료를 바탕으로 일한다. 변호사의 일 중 99%는 책상 앞에서, 1%는 법원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 수사는 경찰이 하는 것이기에, 현장을 들쑤시고 다니는 행위는 여간해선 어렵기 때문. 게다가 법정에서 판사에게 반말을 한다거나, 검사에게 삿대질을 하는 풍경은 있어서는 안 되며, 증거나 증인 역시 사전 제출해야 하기에 사전에 얘기되지 않았던 결정적 증거나 증인이 등장해 상황을 뒤집는 것 역시 거의 볼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채찍으로 판사나 증인이나 변호사를 폭행하는 검사가 더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실제 법정은 게임과 같지 않다는 점을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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