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단 감독을 삼국지의 장수에 비유한다면 강병철(47)감독은 유비처럼 넉넉한 덕장이다.

그의 야구는 기다리는 야구다. 선수들에게 좀처럼 승리를 채근하지 않는다. 그는 또 큰 야구를 한다. 한판 한판이 살얼음을 밟는 것 같은 포스트시즌에서 매번 다음날 선발투수를 솔직히 밝혔다.

롯데를 들여다보면 선수단 분위기가 8개 구단 가운데 가장 자유스럽다. 그러나 결코 어수선하지는 않다. 기강이 살아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어느 야구인은 가정교육이 잘된 집에서 자란 형제들 같다고 평했다.

주눅드는 일 없이 선수마다 제 소질과 개성이 살아나고 이것이 단단한 조직력으로 묶여 저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이는 강 감독의 독특한 용병술의 산물이다.

사실 강 감독이 맡기 전인 1990년까지만 해도 롯데는 개성도 매력도 별로 보여주지 못하는 모래알 팀이었다. 1984년 우승 이후 성적도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체념과 패배의식으로 찌는 팀 분위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새 바람을 일으켜야 했다.강 감독은 시시콜콜 간섭하는 대신 실력에 따라 기용한다는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이름값만으로 자리를 지키던 고참들을 무더기로 정리하고 잠재력 있는 신예들을 중용했다.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으나 재탄생의 산고쯤으로 흘러버렸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 새내기들은 필사적으로 뛰었다.

김응국 이종운 박정태 전준호 등 롯데 우승의 주역이 된 패기의 프로 2-4년생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후배들의 반란에 조성옥(32),한영준(31)등 고참들도 방망이를 고쳐잡고 다시 일어났다.

강 감독은 또 선수들의 잠재력을 끝까지 믿고 아꼈다.

데뷔전에서 엉망으로 던지고 어쩔 줄 몰라하던 염종석에게 큰 선수가 되려면 져보는 연습도 해야한다며 계속 출전기회를 줘 결국은 큰 재목으로 키워냈다.

또 언제 일을 낼지 모를 햇병아리인 공필성과 박계원에게 핵심내야인 3루수와 유격수를 과감히 떠맡겼다. 이들은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에서 펄펄날아 강 감독에게 보은했다.

그간 혹사에 시달리던 윤학길에겐 시즌 내내 1주일간의 등판 간격을 꼭 지켜 기둥투수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들쭉날쭉하며 덩치값을 못하던 박동희를 다독거려 자신감을 키워주기도 하고 연습을 게을리 할땐 단호히 2군으로 내쫒아 상벌을 분명히 했다.

1984년 최동원을 혹사시켜 혼자 4승을 올리게 한데 힘입어 우승을 따내긴 했으나 결국 그의 선수생명에 나쁜 영향을 준 일을 지금도 자책하고 있는 강 감독은 포스트시즌에서까지 투수교체 기용원칙을 지키려 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 때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 윤형배를 선발로 낸 것도 야구 한두해 하고 말것이 아니다는 그의 선수아끼기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포스트시즌은 번외경기고 진짜 우승은 126경기를 치르는 정규시즌 1위팀이라고 솔직히 말하는 강병철 감독.

그는 당장 눈앞의 실리는 적지만 막판에 힘을 발휘하는 두터운 바둑처럼 두텁게 야구를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