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공 하나.txt

한화 이글스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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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 짤털 받아라 춍춍치홍 작성자 : ㅇㅇ

ㅇㅇ(58.148) 2019.04.17 23:06:01

조회 130 추천 5 댓글 1

내가 수원에서 본 일이다.

머리가 없는 투수 하나가 심판실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야구공 하나를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공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주심의 입을 쳐다본다.
주심은 투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공을 두들겨 보고
"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공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자기팀 코치를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공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1세이브를 만든 공이오니까? " 하고 묻는다.
코치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공을 어디서 훔쳤어?" 투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귀한 공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코치는 웃으면서
"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공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유니폼 위로 그 공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샤워실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탈의실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공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거저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세이브를 줍니까? 올해 기회 한번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컨디션 관리차 나갔더니 투수를 타석에 올리는 분이 있지를 않나.
타자들은 한이닝에 16점을 쳐내지를 않나,
조금만 세이브 기회가 올거같아도 바로 불펜에서 공을 던졌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1세이브' 한 공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공을 얻느라고 20게임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공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공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공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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