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나는 솔로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나는 솔로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아름다운 불륜을 소재로한 영화 TOP 15..gif 이시라
- 에디 조던을 기리며, 조던 그랑프리를 알아보자 vidente
- 최근 몇년사이에 엄청나게 심각해졌다는 한국의 사교육 시장 ㅇㅇ
- 베르세르크 후기 만화 얼탱이가 없군요 아즈망가
- 엔믹스 해원이 굳이 정정하지 않는 오해.JPG ㅇㅇ
- 싱글벙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밈들 12 고이im
- 저비용 장거리 미사일 경쟁..바다쿠다와 래피드 드래곤 배터리형
- CBDC 4월 시작 ㅜ 우리를믿어라
- 러 전략폭격기 기지 '불바다'..우크라 장거리 드론 공습 배터리형
- 커비 아버지가 말하는 게임 시상식 하버
- 김수현, 30일 대만행... 팬미팅서 '김새론 논란' 입여나 야떡이
- 가출 여중생 협박해 집단 성폭행한 성인 남성들.. 감돌
- 일본 건담베이스 MG 건담 비다르 리뷰 Next2U
- 유전자검사해서 순수백인 아니면 쫓아내던 땅주인의 유전자검사결과 감돌
- 클레이로 만들어본 사도들 리온, 사료스탕스, 버터 밋치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학자들이 예견한 전쟁....jpg
개전(開戰) 제4기, 1941년 9월. 미국과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시점은 최대한 뒤로 미루어야 한다. 소련과는 불가침, 태국과 제휴, 독일과는 동맹 유지, 베트남에 대해서는 공동 방위 강화, 인도네시아와 경제 협력, 미국•영국•인도네시아•중남미로부터의 수입 단절 대비, 재정 및 보급 체계 재정비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전 제5기, 1941년 10월. 물자 동원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미국, 영국, 인도네시아, 중남미로부터의 수입이 단절되며 선박 징발에 따라 근해 수송력은 저하될 것이다. 노동력 및 국내 수송력 또한 징발로 인해 영향을 받을 것이고 증산, 회수, 저금 및 인근 동맹국과 식민지의 대일 공급 능력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수중에 있으므로 미영 양국과 개전 시 비협조적으로 나올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2월 1일 이후 인도네시아로 침공한다. 석유는 최대 11월 개전시 인도네시아로부터 인수한 석유까지 총 30개월, 3월 개전 시 21개월치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전 제6기, 1941년 11월. 독소전쟁은 모스크바 및 레닌그라드 동쪽에서 교착 상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영국과 독일의 전쟁은 수에즈 및 지브롤터까지 확대될 조짐 이외에는 소강 국면이 될 것이다. 여기서 일본의 의도가 미국, 영국, 인도네시아에 간파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작전을 서둘러 진행시키도록 한다. 군부는 11월 중순까지 긴급 조치가 끝날 것이다. 여기까지 진척됐다면 개전은 피할 수 없으므로 선제공격이 불가피하다. 군부는 개전을 촉구하지만 행정부는 아직까지도 미국과의 개전은 회피하려 하므로 11월 중순까지는 미국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인도네시아의 석유를 확보해야 한다. 미국과의 개전은 빨라도 11월 하순에 실시하며 동시에 평화 교섭을 시도한다. 개전 제7기, 1941년 12월 인도네시아 침공은 순조로울 것이나 12월 초순 미국이 필리핀해 인근을 중립으로 선포하고 일본의 군함을 격침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일본 내 개전 여론이 높아진다. 행정부는 여전히 개전을 반대하지만 군부의 강경한 주장으로 결국 12월 중순 대미 개전이 결정된다. 행정부 각료들은 전쟁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인도네시아의 원유를 확보한다 한들, 원유가 ABCD 포위망을 뚫고 본토까지 도달할 해상 교통로를 확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선박이 부족했고, 수송 중 얼마나 격침될지, 일본이 그 선박의 소모를 메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개전 제8기, 1942년 1월~1942년 3월 소련이 미국과 연계할 조짐이 보인다. 소련에게 항의하는 한 편 미국이 소련으로 보내는 물자를 열어주는 밀약을 체결한다. 소련이 동남아에서 자원 수급을 요구한다면 거부한다. 중남미 선적의 배로 미소 간 교역이 확대된다면 근해에서 중립국 선박의 이동을 차단한다. 이 때문에 중남미에서 단교를 요구하거든 그에 응해도 좋다. 개전 제9기, 1942년 4월~1942년 10월 미국이 잠수함 및 항공기로 공격을 개시한다면, 미소 간 연계가 확실시되기 때문에 기존 소련 선박의 통행을 차단하며 불가침 조약 위반을 항의한다. 그러나 미국이 시베리아를 이용하는 것을 이유로 소련에 강경 항의한다면 소련이 일본을 공격할 가능성도 고려해야만 한다. 독일이 소련을 상대로 개전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 소련의 압박을 근거로 독일과 협정을 체결한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일본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자원도 없다. 결론 "우리 국력이 허락하는 바가 아니라는 견해가 유력하며, 내각 인원들은 전혀 합의를 보지 못했다." 라는 선언 이후 가상 내각은 총사퇴 단행.해당 내용은 일본이 만든 <총력전 연구소> 학자 및 연구원들이 만약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 어떻게 될까?를 가정하고 만든 시나리오였다고함... 연구소 직원들은 전쟁 일으키면 좆된다는 의견을 제출하지만 당시 일본 내각은 걍 이걸 씹고 전쟁으로 돌진하며 일본 제국은 무너져부림...
작성자 : 수류탄이야고정닉
훌쩍훌쩍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울리 슈틸리케사실 그가 처음 한국 국대 감독이 되었을때는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슈틸리케? 누구임? 치킨할배? 뭔 듣보잡임? ' 하는 반응들이 다수였으며심지어 그가 맡아온 팀들의 성적은 2부리그 우승을 제외한다면 매년 하위권 및 강등을 변변치 못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틸리케 감독은 지속적으로 추락하고 있던 대한민국 대표팀과 자신을 ' 대한민국과 나는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 라는 명언을 던지며, 모두가 거절해오던 대한민국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는다.그는 지휘봉을 잡는 즉시 차두리+곽태휘 등 고참들을 필두로 대표팀을 꾸렸다.그리고 마침내 아시아 축구 최강임에도 1988년 아시안컵 이후 무려 27년 동안 결승 진출을 해보지도 못 하여 끙끙 앓고 있던 대표팀과 축구팬들에게 감동의 전승 준우승을 선물했다.그는 그 누구보다 따듯한 포용력과 리더쉽을 갖추고 있었다.아시안컵 준우승 이후 본인이 직접 한국 축구팬들에게 어눌하지만 진정성 있는 한국어로 '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 라는 따듯한 멘트를 남긴다.같은 해, 꼴보기 싫은 새끼들만 모인 동아시안컵에서도 가볍게 우승을 차지한다.승질+투정 부리는 팀의 에이스를 다독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던 아버지의 마음씨를 가졌던 분이다.그는 축구감독임에도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선수 및 축구팬들과의 교감+소통을 위하여 각종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그는 대표팀 감독 부임 당시, 그리고 사임 후에도 한국에 대한 애정과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정말... 그립습니다... 슈버지..........
작성자 : ㅇㅇ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부자노
나갤러는 갤러리에서 권장하는 비회원 전용
갤닉네임입니다. (삭제 시 닉네임 등록 가능)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