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생 때였다
나는, 내 첫 짝꿍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좋아한다거나 사랑같은 어려운 감정 따윈 모를 나이였고
지금 와서 그때의 감정을
다시 기억해낼 순 없지만
나는 아마 한 번 더 그 얘와 짝이 되고 싶었나 보다.
내 담임은 쌍팔년도 소개팅하던 방식으로 짝을 정했다
먼저 남자는 제비뽑기로 자리를 정한 뒤,
자신의 물건을 하나 교탁 위에 올려두었다.
(대부분 연필이나 필통, 지우개 따위의 것들의 작은 잡동사니들이었다)
선생님은 제출된 남자아이의 소지품을 섞고,
여자애가 물건을 뽑으면 그 물건의 주인과 짝이 되는
그런 방식이었다.
선생님은 절대 남자아이들이 낸 소지품을 미리 보면 안된다고 여학우들에게 당부했다.
물론 남자아이들에게도 미리 보여줘선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소심하고, 규칙을 위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학생이었다. 착해서 바른 일을 하는 것보다는 혼나는 것이 두려워 나쁜 일을 하지 않을뿐인,
그런 겁쟁이였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들키면 어쩌지' 같은 생각따위 하지 않았다.
사랑도 본능이라면
소지품을 제출하러가는 그 짧은 순간에
내 한번도 쓰지 않은 검은 캐릭터 연필을
짝꿍에게만 보일수 있도록
등 뒤로 몰래 흔들었던 것은
충동적인 본능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짝을 뽑는 방식 자체도
어느정도 의도가 다분해보이지만
그때는 그 단순하고 순간적인 규칙의 위반에
심장이 터질듯 뛰었다.
들킬까봐?
그 애가 알아보지 못했을까봐?
알아보더라도 일부로 피해서 소지품을 뽑을까봐?
그때 내 심장이 평소보다 뚜렷하게 뛰었던 까닭은
시간이 너무 지난 지금은 알 수 없다.
거의 십 사년도 더 된 일일테니
하지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 다음번에도 그 애는 내 짝이 되었다는거다
어쩌면 그 애는 내 신호따윈 보지 못했고
그냥 검은 캐릭터 연필이 마음에 들어
골랐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너도 나와 한번 더 짝이 하고싶어서
내 연필을 골랏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나는 다시 짝이 된 그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냈었다.
"우리 또 짝이네!"
하고.
그 애는 조용히 " 응, 그러네." 하고 말했다.
조금 웃으며 고개를 숙였던 것만 같다.
나는 짝을 바꿀 때마다
계속 검은 연필을 냈고,
그 여자아이는 1학기 내내 내 짝이 되었다.
딱히 연필을 미리 보여주지 않아도 내 짝이었다.
나는 그 연필을 결코 깎지 않았다.
학년이 끝날 때까지, 그 연필은
여전히 새것인 상태로 필통속에 잠들어 있다가
매달 자리 바꾸는 날에만 필통을 나갈 수 있었다.
2학기가 되서 우리가 더이상 짝이 아니게 된 것은
그 애가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슬퍼하진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인사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서 여자애한태 감정을 내비치는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마 그랫다가는 남자애들 사이에서 너 재 좋아하냐면서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내 짝은 매달 바뀌었다.
아무도 내 검은 연필을 보고 특별히 골라주진 않았다.
그 검정연필은 여느 다른 연필처럼
깎고, 조금씩 짧아져 가다가
몽당연필이 되기 한참 전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다른 평범한 연필들처럼 잃어버리고선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 딱히 소중히 여길 만한 물건도 아니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서야
나는 그 여자애를 좋아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생 시절의 짝.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졸업앨범에도 전학을 갔으니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일만은 기억에 남아
가끔 그랬었지 하곤 한다
그 애도 그랬던 일을 기억할까 하고
솔직하지 못했던 나를 바보같았다 비웃으며
첫사랑은 그 때, 초등학교 교실에 머물러있다.
그런 아련한 기억 때문에
스무살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초등학생을
좋아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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