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평등하지 않은 누진세 현대의 장기적 추세들 가운데 하나는 사회주의적 특질들이 점점 짙어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점진적이지만 막기 어려운 추세다. 사회주의적 제도는 한 번 도입되면 걷어내기 어렵다. 시민들의 다수가 그것을 통한 소득 재분배를 지지하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의 배분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몫이 모든 나라들에서 꾸준히 늘어난다는 사실에서 이런 사정이 잘 드러난다. 현대 사회를 그렇게 사회주의적으로 만드는 기구들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누진세다. 누진세는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적이어서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근년에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자 누진세의 가파른 세율은 많은 시민들을 짓누르고 있다. 이제는 보편적 기구가 되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곰곰 따져보면 우리는 누진세가 정당화되기 어려운 제도임을 깨닫게 된다. 누진세의 본질적 문제는 자의성이다. 그것은 소득이나 재산의 양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대한다. 그런 차별의 정도도 무슨 원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하는 사람들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현대에서 처음 누진세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독일에서 그것을 반대했던 법률가 루돌프 폰 그나이스트가 지적한 것처럼 누진세의 도입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기본 원칙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 자의성은 필연적으로 실제적 문제들을 낳는다. 모든 사람들이 소득이나 재산에 비례하여 세금을 낸다는 원칙을 한 번 벗어나면 세율을 산정하는 데 기준이 될 공식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뚜렷한 논리적 기준 대신 과세자의 자의적 판단이 들어서고, 조만간 가파른 누진율이 적용되게 마련이다. 객관적 기준 대신 과세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세율이 결정되고 소득과 재산이 많은 사람들을 차별적으로 겨냥하므로, 누진세는 대중에 영합해서 정치적 자산을 손쉽게 늘리려는 정치 세력에게 이용될 위험이 무척 크다. 문예부흥기에 자유와 번영을 누렸던 피렌체 공화국은 15세기에 메디치 가문의 전제를 받았다. 메디치 가문은 대중에게 환영받는 정책들로 권력을 장악했는데, 누진세는 중요한 수단이었고, 세율은 무려 50%까지 인상되었다. 누진세를 통해서 메디치 가문은 정적들을 몰락시켰다. 이 역사적 사실은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해 뜻 깊은 얘기를 해 준다. 누진세의 세율은 물가가 안정적이라는 가정 아래 정해진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소득이 오르지 않았는데도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자연히 시민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점점 무거워진다. 근년에 부동산 가격이 갑자기 오르면서 누진세가 자본주의 체제와 시민들의 경제적 자유에 대해 제기하는 위협은 부쩍 커졌다. 그대로 지니고 살아온 집에 느닷없이 떨어진 ‘세금폭탄’으로 가계가 휘청거리는 가정들이 많다. 경제가 부진하고 시민들이 살기 어려운데도 국가에서 거두는 세금만은 크게 늘어났다. 당장은 부동산의 보유세와 양도세가 주목을 받지만 머지않은 장래엔 상속세도 큰 짐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집은 값이 가장 빨리 오르는 재화이므로 중산층이 보유한 집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 세대 뒤엔 무거운 상속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가능성이 지닌 함의는 걱정스럽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어 사는 한 세금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재산권을 되도록 적게 해쳐야 한다. 누진세는 그것의 자의성 때문에 재산권을 끊임없이 해친다. 이제 우리 시민들은 누진세를 당연한 제도로 여기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것의 폐해를 살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006.12.03 (일) 19:40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612031514000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