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이희승 "딸깍발이"앱에서 작성

허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2.22 14:22:36
조회 77 추천 0 댓글 0



'딸깍발이'란 것은 '남산골 샌님'의 별명이다. 왜 그런 별호가 생겼느냐 하면, 남산골 샌님은 지나 마르나 나막신을 신고 다녔으며, 마른 날은 나막신 굽이 굳은 땅에 부딪혀서 딸깍딸깍 소리가 유난하였기 때문이다. 요새 청년들은 아마 그런 광경을 못 구경하였을 것이니, 좀 상상하기에 곤란할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제 시대에 일인들이 게다를 끌고 콘크리트 길바닥을 걸어 다니는 꼴을 기억하고 있다면 딸깍발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까닭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남산골 샌님이 마른 날 나막신 소리를 내는 것은 그다지 얘깃거리가 될 것도 없다. 그 소리와 아울러 그 모양이 퍽 초라하고, 궁상이 다닥다닥 달려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인생으로서 한 고비가 겨워서 머리가 희끗희끗할 지경에 이르기까지, 변변치 못한 벼슬이나마 한 자리 얻어 하지 못하고(그 시대에는 소위 양반으로서 벼슬 하나 얻어 하는 것이 유일한 욕망이요, 영광이요, 사업이요, 목적이었던 것이다) 다른 일 특히 생업에는 아주 손방이어서, 아예 손을 댈 생각조차 아니 하였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극도로 궁핍한 구렁텅이에 빠져서, 글자 그대로 삼순구식(三旬九食)의 비참한 생활을 해 가는 것이다. 그 꼬락서니라든지 차림차림이야 여간 장관이 아니다.

두 볼이 여윌 대로 여위어서, 담배 모금이나 세차게 빨 때에는, 양 볼의 가죽이 입 안에서 서로 맞닿을 지경이요, 콧날은 날카롭게 오똑 서서 꾀와 이지만이 내 발릴 대로 발려 있고, 사철 없이 말간 콧물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진다. 그래도 두 눈은 개개 풀리지 않고, 영채가 돌아서, 무력이라든지 낙심의 빛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아래윗입술이 쪼그라질 정도로 굳게 담은 입은 그 의지력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다. 많지 않은 아랫수염이 뾰족하니 앞으로 향하여 휘어 뻗쳤으며, 이마는 대개 톡 소스라져 나오는 편보다, 메뚜기 이마로 좀 편편하게 버스러진 것이 흔히 볼 수 있는 타이프이다.


이러한 화상이 꿰맬 대로 꿰맨 헌 망건(網巾)을 도토리 같이 눌러 쓰고 대우가 조글조글한 헌 갓을 좀 뒤로 잦혀 쓰는 것이 버릇이다. 서리가 올 무렵까지 베중의 적삼이거나 복(伏)이 돌도록 솜바지 저고리의 거죽을 벗겨서 여름살이를 삼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자락이 모지라지고, 때가 꾀죄죄하게 흐르는 도포나 중치막을 입은 후, 술이 다 떨어지고, 몇 동강을 이은 띠를 흉복부에 눌러 띠고, 나막신을 신었을망정 행전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이 치고 나선다. 걸음을 걸어도 일인들 모양으로 경망스럽게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느럭느럭 갈짓자(之) 걸음으로 뼈대만 엉성한 호리호리한 체격일망정, 그래도 두 어깨를 턱 젖혀서 가슴을 뻐기고, 고개를 희번덕거리기는 세로에 곁눈질 하나 하는 법 없이 눈을 내리깔아 코끝만 보고 걸어가는 모습 이 모든 특징이 '딸깍발이'란 속에 전부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샌님들은 그다지 출입하는 일이 없다. 사랑이 있든지 없든지 방 하나를 따로 차지하고 들어앉아서, 폐포파립(弊袍破笠)이나마 의관을 정제하고, 대개는 꿇어앉아서 사서오경을 비롯한 수많은 유교전적을 얼음에 박 밀 듯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내리 외는 것이 날마다 그의 과업이다. 이런 친구들은 집안 살림살이와는 아랑곳없다. 가다가 굴뚝에 연기를 내는 것도, 안으로서 그 부인이 전당을 잡히든지 빚을 내든지, 이웃에서 꾸어 오든지 하여 겨우 연명이나 하는 것이다. 그러노라니 쇠털같이 허구헌 날 그 실내의 고심이야 형용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런 샌님의 생각으로는, 청렴개결을 생명으로 삼는 선비로서 재물을 알아서는 안 된다. 어찌 감히 이해를 따지고 가릴 것이냐. 오직 예의·염치가 있을 뿐이다. 인(仁)과 의(義) 속에 살다가 인과 의를 위하여 죽는 것이 떳떳하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배울 것이요, 악비(岳飛)와 문천상(文天祥)을 본받을 것이다. 이리하여 마음에 음사(淫邪)를 생각하지 않고, 입으로 재물을 말하지 않는다. 어디 가서 취대(取貸)하여 올 주변도 못 되지마는, 애초에 그럴 생각을 염두에 두는 일이 없다.

겨울이 오니 땔 나무가 있을 리 만무하다. 동지 설상 삼척 냉돌에 변변치도 못한 이부자리를 깔고 누웠으니, 사뭇 뼈가 저려 올라오고, 다리 팔 마디에서 오도독 소리가 나도록 온몸이 골아 오는 판에, 사지를 웅크릴 때도 웅크리고 안간힘을 꽁꽁 쓰면서 이를 악물다 못 해 박박 갈면서 하는 말이


"요놈, 요 괘씸한 추위란 놈 같으니, 네가 지금은 이렇게 기승을 부리지마는, 어디 내년 봄에 두고 보자." 하고 벼르더란 이야기가 전하지마는, 이것이 옛날 남산골 딸깍발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이야기다. 사실로 졌지마는, 마음으로 안 졌다는 앙큼한 자존심, 꼬장꼬장한 고지식,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을 안 쬔다는 지조, 이 몇 가지가 그들의 생활신조였다.

실상 그들은 가명인(假明人)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를 소중화로 만든 것은 어쭙지 않은 관료들의 죄요, 그들의 허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너무 강직하였다. 목이 부러져도 굴하지 않는 기개 사육신도 이 샌님의 부류요, 삼학사도 딸깍발이의 전형인 것이다. 올라가서는 포은(圃隱) 선생도 그요, 근세로는 민 충정(閔忠正)도 그다. 국호와 왕위 계승에 있어서 명·청의 승낙을 얻어야 했고, 역서의 연호를 그들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마는, 역대 임금의 시호를 제대로 올리고, 행정면에 있어서 내정의 간섭을 받지 않은 것은 그래도 이 샌님 혼의 덕택일 것이다. 국사에 통탄한 사태가 벌어졌을 적에, 직언으로서 지존(至尊)에게 직소한 것도 이 샌님의 족속인 유림에서가 아니고 무엇인가. 임란 당년에 국가의 운명이 단석(旦夕)에 박도되었을 때, 각지에서 봉기한 의병의 두목들도 다 이 딸깍발이 기백의 구현인 것이 의심 없다.

구한국 말엽에 단발령이 내렸을 적에, 각지의 유림들이 맹렬하게 반대의 상소를 올리어서, "이 목은 잘릴지언정 이 머리는 깎을 수 없다."고 부르짖고 일어선 일이 있었으니, 그 일 자체는 미혹하기 짝이 없었지마는, 죽음도 개의하지 않고 덤비는 그 의기야말로 본받음직하지 않은 바도 아니다.

이와 같이 딸깍발이는 온통 못생긴 짓만 하고 있었든 것이 아니라 훌륭한 점도 적지 않아 가지고 있었든 것이다. 쾨쾨한 샌님이라고 넘보고 깔보기만 하기에는, 너무도 좋은 일면을 지니고 있었든 것이다.

현대인은 너무 약다. 전체를 위하여 약은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자기본위로만 약다. 백년대계를 위하여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의 일, 코앞의 일에만 아름아름하는 고식지계(姑息之計)에 현명하다. 염결(廉潔)에 밝은 것이 아니라, 극단의 이기주의에 밝다. 이것은 실상은 현명한 것이 아니요, 우매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제 꾀에 제가 빠져서 속아 넘어갈 현명이라고나 할까. 우리 현대인도 딸깍발이의 정신을 좀 배우자.

첫째 그 의기를 배울 것이요, 둘째 그 강직을 배우자. 그 지나치게 청렴한 미덕은 오히려 분간을 하여 가며 배워야 할 것이다

- dc official App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2024년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넷 이슈는? 운영자 24/12/23 - -
AD [삼성선물]제로데이옵션 주간거래&10일 만기제공! 운영자 24/11/15 - -
AD 이번엔 골드바, 주유상품권 드려요 운영자 24/12/06 - -
7677554 근데 여자들은 경제 안좋은 거 모르더라 [2] ㅇㅇ(39.7) 12.22 80 0
7677552 짱개집 갑자기 사라지는 이유 ㅋ [1] 원룸맨(110.35) 12.22 103 0
7677550 모든소비를중단하라조센징한테1원도쓰지마라 부갤러(183.102) 12.22 25 1
7677549 이재명 대통령되면 ㅋㅋㅋㅋㅋㅋㅋㅋ [3] 부갤러(118.235) 12.22 92 0
7677547 윤두광이 나거한 모든걸 박살 ㅋ [3] 원룸맨(110.35) 12.22 70 2
7677545 한녀혼 의미가 없다니까 ㅋ [9] 원룸맨(110.35) 12.22 511 26
7677543 여자의 젊음은 찰나의 순간이고 그래서 안타깝지 [2] ㅇㅇ(39.7) 12.22 70 3
7677542 30대 미혼 여성은 50대랑 만나세요 부갤러(218.235) 12.22 56 2
7677541 내란중상모략, 김여사특검=국정마비! 이카다가 또 비상계엄!!! [1] 경북애국시민와룡(臥龍)(175.207) 12.22 24 0
7677539 2찍새끼들 이해가 안가는게 ㅋ [3] 원룸맨(110.35) 12.22 70 3
7677538 근데 나라가 공산화될거라고 굳게 믿고있으면서 [1] ㅇㅇ(182.222) 12.22 65 0
7677534 근데 전상황이 어지러워서 이거는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2 34 1
7677533 아들이 문해력 수리력 테스트 결과 가져왔는데 ㅇㅇ(39.7) 12.22 36 0
7677532 헌재 최후의심판 내렸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2] 부갤러(118.235) 12.22 181 0
7677530 키는 유전이라는데 개소리다, 운동을 해야 커지는거다. 부갤러(118.235) 12.22 35 0
7677529 여자는 긴말필요없고 소소익선입니다 ㅇㅇ(39.7) 12.22 37 1
7677527 마포구 서강대교 하이엔드 팬트하우스 건설 ㅇㅇ(223.38) 12.22 67 0
7677524 넷플릭스 트렁크 재밌네 [1] ㅇㅇ(39.7) 12.22 131 1
7677522 맞습니다 자기주변사람 세명평균이 바로 나다 말레이시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2 47 0
7677521 윤석열 마지막기회 ㅋㅋㅋㅋㅋㅋ [1] 부갤러(118.235) 12.22 80 0
7677520 여자는 나이로 남자 붙는게 아니고 [1] ㅇㅇ(14.39) 12.22 77 1
7677518 모든 서민은 인생목표를 경제적자유로 삼는게 좋습니다 [1] 말레이시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2 52 0
7677516 또 그말 나오노 ㅋ 원룸맨(110.35) 12.22 57 0
7677515 둔촌소유주들 양심있으면 둔촌팔아서 두창이 도와라 ㅇㅇ(182.222) 12.22 42 0
7677513 34평형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 jpg ㅇㅇ(106.101) 12.22 102 1
7677512 윤석열 크리스마스 이브전이 최후의 날이네 ㅋㅋㅋ [1] 부갤러(118.235) 12.22 85 3
7677509 남태령 탄핵집회서 연설하는 중국여자.jpg [3] ㅇㅇ(211.234) 12.22 130 3
7677508 30대 미혼 여성은 50대랑 만나세요 부갤러(218.235) 12.22 51 1
7677507 헌재 27일 최후의통첩 선고 ㅋㅋㅋㅋㅋㅋㅋ [2] 부갤러(118.235) 12.22 129 1
7677505 퉁쏴리 체격을보면 역도선수임 자칼(211.245) 12.22 39 3
7677502 댓글추 념추 부탁드립니다 ㅇㅇ(124.5) 12.22 21 0
7677500 이번엔 ㅅㅅ동영상 풀리냐? [1] ㅇㅇ(223.33) 12.22 136 3
7677498 중국이 대만보다 한국을 먼저 먹으려는 이유.jpg [3] ㅇㅇ(211.234) 12.22 90 6
7677497 공산당 독재국가 보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2 51 1
7677496 홍어새끼들은 하루라도 조작질 안하면 아가리에 가시가 돋히냐 [1] 부갤러(119.201) 12.22 32 2
7677495 국내에서 하루 40만원씩 쓰면 말이지.. 내글(223.62) 12.22 45 0
7677493 젊어서는 돈없이 여행해도 재미가 있지 말레이시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2 42 0
7677491 BYD 똥망 ㅇㅇ(114.203) 12.22 90 1
7677490 이회창-노무현-권영길 연설 좀 보고 가라 부갤러(116.34) 12.22 28 0
7677488 가든선생 그러다가 해쏴리한테 얻어맞는다 자칼(211.245) 12.22 43 2
7677485 조센징은 왤케 좆같이 생겼냐 부갤러(118.235) 12.22 29 0
7677484 요즘 진짜 경제 상황 [3] 부갤러(211.234) 12.22 237 6
7677483 해외여행이 재미 있다고?국내는 노잼?ㅋㅋㅋ [6] 부갤러(116.84) 12.22 91 0
7677482 틀딱 미혼50대 한남은 [3] ㅇㅇ(14.39) 12.22 80 3
7677481 내글선생에게...해쏴리 VS 호크캐슬 [4] 가든선생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22 59 3
7677480 니들 아파트 빚내서 사지마라; 자동차에서 석유화학까지 무차별중국대공습 [1] oo(222.107) 12.22 88 1
7677479 촛불시위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창녀시대의 개막이었다 ㅇㅇ(39.7) 12.22 47 3
7677478 장어죽이 맛있더라 [1] 부갤러(211.234) 12.22 51 2
7677475 전세방을 빼서라도 하란 말이야. 나라가 북한으로 넘어가면 전세방이 [2] 부갤러(211.234) 12.22 44 2
7677473 시청율 얼마 나올거 같냐ㅑ 부갤러(119.201) 12.22 34 1
뉴스 ‘불후의 명곡’, 최고의 프로그램상 수상 [2024 KBS 연예대상] 디시트렌드 12.2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