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으로 여자친구를 만났어. 만난지는 좀 오래 됐어. 나 이 사람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이성애자인줄 알고 살았는데, 아니더라.

우리 첫눈 오는 날 키스도 했다. 너무 좋아서, 그냥 그 사람 자체가 좋은거 있지. 외모고 뭐고 돈이 있고 없고 다 떠나서 그냥 그 사람 자체가 너무 좋았어.

여자친구 만나고 나서 삶이 충만했어. 그전까지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처럼. 하루하루가 충만하고 너무 행복했어.

내 여자친구는 일찍부터 자기 성 정체성을 알았던 사람이고, 그래서 너무 당당하고 너무 멋있었어. 너무 예뻤어. 우리는 가치관도 나름 잘 맞았고, 싫어하는 음식도 같았어.

나는 내 여자친구한테 요리해주는걸 좋아했고, 여자친구는 내 요리를 아주 맛있게 먹어줬었어. 밤이면 우리는 꼭 끌어안고 잠들었고, 그게 아주 행복했어.

난 벽장이고, 여자친구는 커밍아웃을 이미 예전에 했던 사람이었어. 나 처음엔 엄청 무서웠다. 그래서 여자친구랑 길에서 손 잡는 것도 무척 겁냈어.

한 달, 두 달 연애하면서 나도 용기내서 친구들한테 커밍아웃하고, 내가 인복이 있는지 친구들도 다들 축하해주고 인정해줬어. 내 여자친구랑 친구들이랑 같이 밥도 먹었어.

이제 나 부모님께도 용기 내서 커밍아웃 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헤어졌어.

캄캄하더라. 나한테는 이제 이 사람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 진짜 우린 결혼할거라고, 매일같이 웨딩 스튜디오 사진도 보고 웨딩 드레스 사진도 보면서 우리 같이

웨딩드레스 입고 나란히 식장에 들어가는 상상도 많이 했는데.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화장도 바꾸고 옷 스타일도 바꾸고, 그냥 여자친구가 너무 좋아서, 너무 사랑해서

내가 다 맞춰주면서도 그게 진짜 행복했어.

근데 한바탕 꿈이라도 꾸고 방금 막 깨어난 것 같다. 이제 어떻게 지내야 하지? 냉장고 열면 여자친구가 좋아하던 음료수가 생각나고, 부엌에 가면 여자친구가 좋아하던 요리가 생각나고,

못해준 음식들이 생각나고, 옷장 열면 여자친구가 좋아하던 옷들이 생각나고, 영화나 뮤지컬 보면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배우가 생각나는데..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있다가 업무도 날려먹고 화장실에서 혼자 울다가 화장 다시하고 또 앉아있다가 또 울고 앞이 막막하다

그냥 어디에 털어놓을 데가 없어서 푸념 했어.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