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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128: 이걸 어디다 써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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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2 크기의 목표물에 대한 R-4 명중률은 25%, 그러니까 4발을 쏴야 1발을 맞추는 정도였다. 거기다가 B-52같은 폭격기 요격 원툴로 만들어진 만큼 (애초에 원판이 폭격기인걸 감안해야겠지만) 선회력, 상승력, 기동성 모두 낙제점에 익면하중도 좆같이 높아서 분명 요격기인데 허용 G 한계가 2.5G에 불과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여객기인 B-747이 2.5G다 보통 전투기들은 7~9G 정도? 한마디로 폭격기 상대로 기동한번 잘못하면 기골이 그대로 박살나서 공중분해되는게 가능했다 실제로 관련 사고사례도 존재했는데, 1971년 봄, 치타 지역의 템렘바 훈련장에서 훈련을 실시하고 복귀하던 Tu-128 1기가 5,000m 상공에서 조종사의 조작 실수로 실속, 이후 실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항공기를 최대 허용 G 한계의 2배가 넘는 5G로 급기동을 실시했고, 이후 구조적 한계를 버티지 못한 비행기가 그대로 공중분해되면서 조종사와 항법사 2명이 찌그러진 동체 속에서 압착되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착륙 또한 엄청나게 어려웠다. 착륙시에는 활주로에서 20km 떨어진 곳에서부터 기체를 활주로와 일자로 정렬해야만 했고, 항공기가 활주로 반경 4km 이내에서 정렬이 3° 이상 틀어지면 오버런의 위험이 있어서 복행해야만 했으며, 이착륙시 속도가 450km을 초과하면 플랩이 그대로 뜯겨져나갈 위험이 있었다. 안그래도 극한지에서의 이착륙거리를 줄이기 위해 설계단계에서 플랩 크기를 엄청나게 키워버린 탓에 플랩과 에일러론의 반응이 너무 느렸고, 따라서 저속 상황에서의 방향전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럼 착륙만 어려웠냐? 그것도 아니었다. 이새끼는 비행하는것 자체가 좆같이 어려운 비행기였다. Tu-128은 기체설계 결함으로 인해 비행안정성 자체가 심각하게 뒤떨어져서 선회 시 뱅킹각이 60º로 제한되는 문제가 있었는데, 만약 잠시라도 뱅킹각이 60°가 넘어간다면 Tu-128은 급격히 양력을 상실하면서 빠르게 추락했다. 이게 진짜 문제였던 점은....설계 결함으로 인해서 기동성 자체가 여객기 수준으로 제한되다보니 Tu-128이 B-52를 전방에서 요격하는데 실패한 이후 폭격기의 후방으로 기동할 때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비교적 작고 빨랐던 Su-9나 Mig-21은 9G 정도의 중력을 거뜬하게 버티면서 마하 2로 B-52를 요격할 수 있었지만? Tu-128은 그놈의 2.5G 제한과 뱅킹각 때문에 B-52의 순항고도인 해발 13km 상공에서 마하 1.2 이상으로 기동이 불가능했다 거기다가 마하 0.87에 달하는 B-52의 최대속도와 폭격기치고 나름 괜찮았던 기동성까지 겹쳐져서 재공격시 최대 접근속도 188노트(348km/h)라는.... 정말 신기한 기록을 세워버렸다. 조종사가 유체역학 박사 학위라도 땄으면 모를까, 이런 스펙으로는 폭격기 상대로도 선회전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궁여지책으로 나왔던 방법이 목표물보다 저고도에서 비행하는 도중에 적기와 방향을 맞춘 이후, R-4의 상승력을 이용하여 표적을 격추시키는 전술이었다. 이게 효과적이었는지는 나도 ㅁ?ㄹ 게다가 연료 시스템 또한 결함이 있었다. Tu-128은 쌍발 요격기였던 만큼 유사시를 대비해 2개로 분리된 연료 라인을 가지고 있어서 엔진은 각각 별도의 탱크에서 연료를 공급받았으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료가 고르지 않게 소모되어 P-51 머스탱처럼 연료탱크에 남은 연료량에 따라 항공기의 무게중심이 흔들리면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양력을 잃고 급강하하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상황을 대비하여 조종석에는 비상시에 사용하는 연료 시스템 제어반이 있었지만 이를 사용해 항공기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Tu-128의 조종사들은 때때로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조종간을 끝까지 돌린 채로 비행해야만 했다. 이런 어이없는 설계 결함으로 인해 Tu-128은 소련 방공군에서 운용하는 동안 생산된 198기의 항공기들 중 22%에 달하는 45대 이상의 항공기가 사고로 손실되었다. 뭐 전체 생산량의 1/3을 사고로 날려먹은 F-106이나 별명 자체가 과부제조기였던 F-104나 F-100과 비교한다면 종합적인 수치 자체가 낮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정한 비행기인건 변함없었다. 그리고 폭격기 요격용으로 만들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아예 기총까지 무게절감을 위해 빼버렸다.... 근데 뭐 당시의 미사일 만능주의와 Tu-128의 절망적인 기동성을 감안한다면 이건 꽤나 합리적인 선택일수도 있었지만 기총을 없애면서 ECM 장비나 RWR도 같이 빼버리는 병신같은 결정을 내려버린탓에 전자전에 대한 대응책이 없다시피했으며, 혹여나 적이 미사일이라도 쐈을 경우에는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고 쳐맞아야했다. 근데 무게는 왜 줄인거냐고? 왜냐하면 Tu-128에 사용되었던 률카 AL-7 터보제트엔진의 연비가 정말로 모친출타한 수준이여서 최대한 연료탑재량을 늘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1950년에 만들어서 B-52나 동급 요격기인 F-101에 사용되었던 P&W J57이랑 비교해보면, J57-P-55 기준으로 깡출력 자체는 AL-7이 1.5배 정도 높긴 했는데.... 대신 연료 소비량이 J57 대비 30%정도 높았다. 이게 30%라 하니까 체감이 잘 안날텐데 최대이륙중량 23톤짜리 F-101과 20톤짜리 Yak-28p, 43톤짜리 Tu-128의 작전반경이 비슷했다. 떨어지는 연비를 엄청난 연료 탑재량으로 땜빵했던 셈 Tu-128을 도입하면서 생긴 또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이전에 운영하던 MiG-17PF보다 5배 이상 무겁고 훨씬 더 커다란 Tu-128을 운용하기 위해서 소련 방공군은 안그래도 없는 예산을 털어서 낙후된 시베리아의 비행장들을 확장해야만 했다. 개선해야 하는건 활주로 크기만이 아니었다. 끽해야 Mig-15/17/19같은 단발단좌 전투기만 조종하던 소련 방공군 조종사들에게 최대이륙중량 43톤의 거구를 자랑하는 Tu-128은 낮선 존재들이었고, 이러한 경량 요격기 조종사들에게 있어서 Tu-128의 조종 연습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Tu-128은 일반적인 소련제 전투/요격기들처럼 날렵한 급기동이 불가능했고, 조종성이 떨어졌으며, 전투기에 장착되는 일반적인 조종간 대신에 여객기에나 쓰였던 요크가 달려 있었다. 하지만, 어떤 새끼가 적어놨는지는 몰라도 소련 방공군의 Tu-128에 관한 국가 시험 보고서에는 "...Tu-128은 조종하기 쉽고 훈련용 항공기가 필요 없다..." 라는 어이없는 평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소련군의 멍청한 윗대가리들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었기에 Tu-128 배치 초기에는 전환훈련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기종전환을 어떻게했냐고? Tu-128 조종사들은 폭격기 항법사용 훈련기.... 아니 그냥 아예로플로트의 여객기로 쓰이던 Tu-124로 전환훈련을 받았다. 전투기라곤 타본적조차 없는 민항기나 수송기 조종사들로 구성된 교관들은 교육생들에게 여객기로 전투기동을 가르쳐야만 했고, 이러다가는 비행기를 날려먹기 십상이었기에 상당한 비행 경력(제트기 비행시간 최소 400시간 이상) 을 가진 조종사만이 Tu-128을 조종할 수 있었다. 근데 Tu-128 조종사가 딱히 좋지만은 않았다. 오직 소련 방공군의 베테랑 조종사들만이 Tu-128을 운용하는 부대에 배치되었고, 이들이 소련 조종사들을 통틀어서 가장 높은 급여(190루블)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외딴 전방 공군 기지로의 배치를 견뎌야 했고, 추위와 어둠 속에서 비행기를 몰아야만 했다. 여튼, 그래서 Tu-128에 가장 빨리 적응한 이들은 그래도 기체 크기가 거대한 편에 속했던 수호이사의 Su-9/11을 몰던 조종사들이었는데, 이는 Tu-128이 Su-9/11과 같은 엔진을 사용하고 이륙 및 착륙 속도까지 똑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조차 더럽게 크고 둔한 요격기를 처음부터 능숙하게 조종하는것은 힘든 일이었고, 결국 조종사들의 불만을 수용한 소련군은 Tu-128의 레이돔을 철거하고 기체 하단에 교관용 조종석을 장착한 Tu-128UT를 개발, 배치했다. 근데 문제는 단면도에서도 보이듯이.... 교관용 조종석의 위치가 지나치게 낮았던데다가 윈드실드 앞이 가려져있어서 전방시야가 매우 좋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좆같이 못생겼다. 나토에서도 펠리컨이라는 코드네임을 별도로 붙여줄 정도로 정말 신박하게 못생겼다. '형태는 항상 기능을 따른다'라는 루이스 설리번의 명언이 정말로 잘 어울리는 비행기라고 생각한다. 여담으로 Mig-25의 복좌형 훈련기인 Mig-25PU도 이런식으로 만들어졌다 다만 전작의 피드백을 반영하여 전방석의 시야각을 개선한게 차이점. 이후 1960년대 후반, 개량된 Smerch-M 레이더와 지상 클러터를 걸러내는 기능을 강화하여 1km 가량의 저?고도에서도 표적을 탐지할 수 있는 R-4RM 및 R-4RT 미사일을 장착한 개량형인 "Tu-128M"이 등장, 추락에서 살아남은 Tu-128 전량이 M사양으로 개조되었다. 이후 Tu-128은 소련 방공군의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장거리 요격기로써 꽤나 귀중하게 운용되었다. 뭐 결함이 엄청나게 많고 조종하기도 힘들었지만 조종사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나름 괜찮았는데, 이륙 시 강력한 가속력과 크기에 비해서 빠른 상승력을 가졌고, 애프터버너를 켜지 않고도 10~11km의 고도에서 초음속으로 비행이 가능했던 점이 크게 작용했다. 기존의 Su-9/11/15와는 좀 다르다 해야하나? 아무튼, Tu-128의 주된 임무는 다른 요격기들과 마찬가지로 시도때도없이 소련 영공에서 깔짝대는 미국의 정찰기들을 요격하는 것이었다. 물론 마하 1.5따리 Tu-128이 온몸을 비틀어도 마하 3.3으로 나는 SR-71을 따라잡지는 못했고, 그냥 다른 요격기들이 기름없어서 복귀할때 먼발치에서 SR-71이 전속력으로 도망치는걸 지켜보는게 주된 일과였다. 또 다른 임무는 나토의 정찰풍선을 격추하는 일이었는데, 이는 Tu-128의 유일한 실전기록이기도 했다. 근데 이게 좀 흥미로운점이 있다면 미국이 '공식적으로' 진행한 정찰풍선 프로젝트는 1956년에 실시한 Project Moby Dick과 Project Genetrix, 이렇게 2개가 끝이다. 모두 500여개의 정찰풍선을 날려보내는 프로젝트였고, 처참하게 실패하여 1956년 말에 중단되었다. 문제는 소련측 기록에 따르면 1980년대 후반까지 정찰풍선을 요격한 적이 있다는 것인데.... 풍선이 아직 공개되지 않은 기밀 프로젝트로 비행했는지, 아니면 단순히 소련 방공군이 단순히 영공을 침범한 기상관측용 풍선을 격추했는지는 불분명하다. 근데 소련이 망하기 직전까지도 소련군은 풍선 요격용으로 초고고도 정찰기 겸 요격기인 미야시셰프 M-17/55를 운용한걸 생각해본다면 진짜로 CIA가 계속해서 풍선을 날려댔을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Tu-128은 무장능력도 빈약하고 조종성도 나쁜데다가 둔해서 요격기로 써먹기에는 영 아닌 물건이었지만 후속작이었던 Mig-25나 Su-15와는 달리 특유의 장거리/장시간 체공능력 때문에 소련 방공군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력으로 취급받았고, 소련 방공군의 꿈과 희망이었던 만능 요격기 Mig-31이 1981년에 배치되고 나서야 서서히 일선에서 물러나기 시작해서 1990년에 쓸쓸하게 퇴역했다. 도저히 요격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저성능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꽤나 장기간 운용된 셈. Tu-128은 객관적으로는 실패작이 맞았다. 폭격기 요격이라는 임무에만 치중해서 만들었던 만큼 항속거리를 제외한 모든걸 내다버린 설계였으며, 태생부터가 개발취소된 폭격기를 적당히 손봐서 만들어진만큼 어디 써먹기에도 애매했다. 투폴레프의 엔지니어들은 아마도 요격기와 폭격기의 장점만을 합치려고 시도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무기가 대개 그렇듯이 이도저도 아닌 망작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Tu-128은 운이 좋았다. 소련이라는 나라의 지리적 특성 때문에 Tu-128은 소련의 방위에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였고, 냉전이 절정에 달했던 1960년대에 개발되어 소련이 멸망할때까지 조국의 광활한 영토를 지켰다. 이번에도 러시아는 외부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을 무너뜨린건 인간답게, 배고프지 않게 살고 싶다는 국민들의 열망이었고, 1991년에 소련을 멸망시킨 주체는 미군의 스텔스기나 핵미사일, 전함이 아니라 구체제의 모순과 부패와 압제에 지친 소련의 국민들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5월 9일, 그러니까 2차대전 종전기념일이면 모스크바에서는 성대한 퍼레이드가 열리고, 배경에는 낫과 망치가 걸린 소련 국장과 2차대전을 상징하는 T-34가 등장한다. 러시아는 소련을 잊지 못했고, 다시 소련의 영광을 재건하려는 중이다.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명나라 서화 특별전 명경단청(明境丹靑) 후기
지난 주말에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경기도박물관에 방문했음박물관은 수인분당선 상갈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고 버스 노선도 괜찮음특별전을 다 보고 상설전시도 잠깐 봤는데 지역 박물관 평균 정도였고 이 정도면 나쁘진 않았음이번처럼 해외 기관과 협력하는 전시는 보통 여기보다 좀 더 격이 높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진행되는데도립박물관에서 이런 전시를 보니까 뭔가 신선하더라고아무튼 시작하기 전에 명나라 시대의 회화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그래도 잠깐 입을 털어보자면명나라는 수많은 화파가 등장했던 시대였는데, 특히 명나라 말의 화가 동기창(董其昌)은 중국 미술사의 화파에 대하여, 과거까지 소급해서 크게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 2개로 구분했음이는 지리적인 구분이라기보단 당나라 시대에 불교 선종(禪宗)이 남종선과 북종선으로 나뉘었던 것에서 착안하여 이름을 붙인 것으로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고 하여 두 선종은 각기 수행 방법이 구분되었는데, 남종선의 돈오(頓悟, 단번에 깨달음)와, 북종선의 점수(漸修, 차츰 깨달음)를 각 화파의 스타일에 비유한 거임보통 문인들이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취미로 그린 게 남종화(그래서 '남종문인화'라고도 함), 직업화가들이 형식과 기술을 추구해서 그린 게 북종화라고는 하지만사대부들에게 있어 그림이란 금기서화(琴棋書畵) 중 그림(畵)으로 일종의 교양으로 취급되었고, 가난한 문인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기도 했기 때문에 문인과 직업화가의 경계가 희미한 면이 있음게다가 작가의 신분으로 남북을 구별하기도 하고, 작가의 출신지로 남북을 구별하기도 하는 등 남북을 가르는 기준선도 뭔가 애매함어쨌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종화 계열이 점점 더 우세해졌고, 동기창은 남종화를 숭상하고 북종화를 폄훼하는 상남폄북론(尙南貶北論)을 주장하기도 했음남북 둘 다 한반도에 유입되었지만 특히 남종화가 조선 후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겸재 정선이나 추사 김정희가 대표적이지하 시발 잘 모르는 걸 억지로 적어내려니 좀 머리가 아픈 듯다시 전시 이야기로 돌아가서, 전시는 우선 명나라 전기부터 시작함명나라 전기에는 강력한 힘을 가진 황실이 절강(浙江, 저장)의 화가들을 궁중으로 불러모았고, 이들이 절파(浙派)를 이루어서 궁중 회화가 발전하게 됨절파의 시초로 여겨지는 대진(戴進)의 고향이 절강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지이들은 나중에 동기창에 의해 북종화로 분류되었음사자머리 거위(獅頭鵝圖)여기(呂記), 명나라, 비단에 채색여기는 절강 출신의 궁중 화가로 꽃과 새 그림에 뛰어났다고 함이 그림에는 그의 주특기인 꽃과 새가 둘 다 보이네거위는 머리가 부푼 재미있는 모습이고, 매화나무는 세밀하고 아름답게 그려졌으며, 괴석도 독특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음확실히 이번 전시의 메인으로 취급될만 한 듯여섯 명의 선종 조사(禪宗六祖圖)대진, 명나라, 비단에 채색방금 전에 남종화와 북종화의 구분이 불교 선종에 빗댄 것이라고 말했었는데 이번 전시에는 그 선종에 대한 그림도 있었음조사, 즉 선종의 기반을 다진 존경할 만한 승려들을 묘사했는데, 각각 달마,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 이렇게 여섯이라고 함각 인물 옆에는 한자를 적어놓아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구별하기 쉽게 했음근데 난 불교를 잘 몰라서 이해하기 어려웠다그림에 대해 평가하자면 돌과 초목의 표현이 뛰어난 게 좋았음만년송(萬年松圖)선덕제 주첨기(宣德帝 朱瞻基), 명나라, 종이에 먹기다란 두루마리 작품이라 어쩔 수 없이 일부만 올렸음주첨기는 명나라의 다섯 번째 황제인 선종 선덕제임그는 뛰어난 황제이면서 뛰어난 화가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고 함이 작품은 어머니를 위해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를 그린 것이라고 하네힘차게 그려낸 소나무 가지와 사방으로 가시처럼 뻗친 솔잎이 마음에 들었음다음으로는 명나라 중기의 작품들임이 시대에는 무역항인 소주(蘇州, 쑤저우)가 예술의 중심지로 성장하여, 많은 화가들이 소주로 몰려들었고 이들이 오파(吳派)를 이루었음소주가 오(吳) 지역에 속한 도시였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거임오파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화가들이 명나라의 유명한 화가 네 명인 명사대가(明四大家)인데, 모두 오 지역 출신이기에 소주사가(蘇州四家), 오문사가(吳門四家)라고도 부름원나라 시대에 발전했던 문인화를 본받으려고 했던 오파는 절파와 경쟁했는데 결국에는 오파가 우세해짐남종화를 남종문인화라고도 한다고 말했는데, 이쯤 되면 눈치챘다시피 오파는 동기창에 의해 남종화로 분류되었음적벽부(赤壁賦圖)구영(仇英), 명나라, 비단에 채색구영은 명나라 중기의 화가로, 명사대가 중 한 명이며 특히 옛 그림 묘사를 잘했다고 함적벽이라고 하면 삼국지의 적벽이 유명하지만 이 작품은 소동파의 글인 적벽부의 한 장면을 그려낸 거임뱃놀이하는 사람들 옆에 바위와 나무가 아름답게 칠해져 있네저 멀리 보이는 산들도 그림을 조화롭게 해주고사실 동양화에 반사라는 개념이 늦게 도입돼서 이렇게 물 표면은 공백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이런 공백이 작품의 분위기를 띄워주기도 하는 듯국화 감상(盆菊幽賞圖)심주(沈周), 명나라, 종이에 채색심주는 오파를 이끌었던 화가로 역시 명사대가 중 한 명임선비들이 술을 마시면서 국화를 감상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음자세히 보면 정자 앞 화분에 심어진 꽃이 보일 거임여러 식물들이 섬세하게 잘 그려져 있어서 좋았음호계초당(滸溪草堂圖)문징명(文徵明), 명나라, 종이에 채색기다란 두루마리 작품이라 어쩔 수 없이 일부만 올렸음문징명은 심주로부터 그림을 배웠고, 마찬가지로 명사대가 중 한 명임바로 위의 '국화 감상'과 비슷하게 강변에 머무는 선비들을 묘사하기 때문인지 구도가 비슷한 듯아무튼 이 작품의 제목인 호계초당에 문징명이 방문하고는 그 감상을 그려냈다고 함전체적으로 초록색을 띄고 있는데, 이는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에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로 청록색을 가볍게 칠하는 소청록이 적용되었기 때문임흐르는 물에 띄운 술잔(曲水流觴圖)문백인(文伯仁), 명나라, 비단에 채색문백인은 문징명의 조카로, 문징명에게 그림을 배워 문씨 가문의 화풍을 계승했다고 함부채에 그린 작품이라 좀 작지만 그래도 계곡 풍경과 그 속에서 노는 사람들이 잘 묘사되어 있음이렇게 부채 작품이 몇 점 더 있었는데 정말로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풍화된 게 좀 많아서 약간 아쉽더라죽로산방(竹爐山房圖)심정(沈貞), 명나라, 종이에 채색심정은 화가 가문 출신으로 글과 그림 모두 능숙했음작품 속 죽로산방에는 스님 하나와 선비 하나가 있는데 선비는 심정 본인이라고 함무난하게 괜찮은 그림이었던 것 같음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봉우리를 표현한 게 좋네한 마디 더 하자면 여기에서 흐르고 있는 강은 혜산천(惠山泉)인데 '천하제2천'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네초가집 부들방석(茅屋蒲團圖)당인(唐寅), 명나라, 종이에 채색상인 가문에서 태어난 당인은 글, 그림, 글씨에 모두 뛰어난 명사대가 중 한 명이었음이렇게 해서 그 4명의 작품을 이 전시회에 같이 볼 수 있게 되었군작품의 제목대로 저 초가집 아래 선비가 깔고 앉은 게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부들로 만든 방석인 듯(제목에 들어간 것 치고는 그냥 작게 그려진 방석이다만)산등성이는 안개로 감싸여 있고 폭포에서 떨어진 물은 돌아 흐르니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소나무 옆 냇가와 선비(松泉逸士圖)문백인, 명나라, 비단에 채색거대한 작품이라 오른쪽 아래의 두 선비는 잘 안 보이는 듯그림을 높이 솟은 산이 묘사된 위, 나무와 폭포수가 묘사된 아래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음중간에 안개가 둘 사이에 경계선을 그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나무와 돌에서 질감이 느껴지는 듯한 작품이었음우거진 수풀과 맑은 그림자(喬林淸影圖)문가(文嘉), 명나라, 종이에 채색문가는 문징명의 둘째 아들로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받았다고 함작품 제목에 그림자(影)가 들어가지만 이 시대에는 동양화에 명암법이 없어서 그림자라고 할 만한 게 딱히 보이지는 않네뭐 그건 그렇고 산등성이를 채우고 있는 나무와 초가집이 마음에 듦원추리와 치자나무(萱茂梔香圖)진순(陳淳), 명나라, 종이에 채색진순은 글, 그림, 글씨에 모두 뛰어난 화가였음아까부터 자꾸 이렇게 화가를 소개하는 것 같은데 그 당시에 교양있는 사람이었다면 이것들을 전부 습득했겠지?아무튼 이 작품은 커다란 괴석 위에 꽃들이 방사형으로 퍼져 있어서 뭔가 독특한 구도임그리고 돌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표현한 방식이 괜찮은 듯호구의 화창한 봄날(虎阜春晴圖)사시신(謝時臣), 명나라, 종이에 채색사시신은 오 지역 출신으로 심주에게서 그림을 배웠음이 작품도 그와 마찬가지로 '강남의 산천 가운데 으뜸', '오 최고의 명승지'로 불리는 호구 앞산의 봄날을 그린 거임화폭의 아래에 건물과 자연이 꽉 차있지만 반대로 위는 저 멀리 있는 산 하나뿐이라 약간 언밸런스한 느낌도 났음아무튼 강변 도시 풍경을 잘 그린 그림이었음꽃과 풀(花卉圖)왕곡상(王穀祥), 명나라, 비단에 먹왕곡상은 문징명의 제자로 꽃과 새를 잘 그렸다고 함이건 복숭아꽃, 백목련, 장미, 자스민, 오크라꽃, 수선화, 국화, 매화까지 8가지 종류의 꽃을 그리고 시를 함께 수록한 화첩임전부 다 세밀하게 잘 그렸지만 8점 다 올릴 수는 없어서 제일 마음에 든 수선화(수선화 맞겠지?) 그림만 가져왔음마지막으로 명나라 후기의 작품들임후기의 대표적인 인물은 동기창은 높은 관직은 예부상서까지 오르며 당시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음미술사에 남긴 족적은 이미 설명했으니까 넘어가고그는 글씨 쓰는 법과 그림 그리는 법은 같다고 주장하며 송강파(松江派)라는 화파를 이끌었는데주요 화가들이 송강(松江) 출신이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지이들의 작품 역시 오파처럼 문인화라고 할 수 있지만, 오파와 다른 점은 옛날 화풍의 복습과 그림 기법 연구를 중시했다는 거임그리고 또 명나라 말기의 변화로는 유럽에서 온 천주교 선교사들이 전파한 새로운 화법이 있는데 이건 이번 전시에서는 몰라도 크게 상관은 없음연이어진 묵직한 봉우리(峰巒渾厚圖)동기창, 명나라, 비단에 채색기다란 두루마리 작품이라 어쩔 수 없이 일부만 올렸음아까부터 계속 이름이 나왔던 바로 그 동기창의 작품임제목 그대로 묵직해서 마치 커다한 바위같이 보이는 산들 사이에 굽이굽이 강물이 흐르고 또 강가에는 구불구불 소나무 잣나무가 자라나 있음이것 역시 감상하기 좋은 무난한 작품 같았음추운 계절 풍경을 묘사했는지 중간중간 단풍이 보이는데 이것도 약간 포인트를 주는 듯그리고 명나라 '서'화 전시회라 동기창의 행서 글씨도 있었는데이건 사진 수를 조절하느라 뺐음꽃과 풀(花卉圖)손극홍(孫克弘), 명나라, 종이에 채색기다란 두루마리 작품이라 어쩔 수 없이 일부만 올렸음손극홍은 꽃과 새 그림에 뛰어났던 화가라고 함그 명성에 걸맞게 뛰어난 실력으로 잘 그려진 꽃들이 다채로운 색깔로 칠해져 있는게 마음에 들었다폰 카메라로는 전체 모습을 한 번에 담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이 작품 참 괜찮았음어떻게 보면 식물 사전에 실린 일러스트 같기도 했었고대나무 정자에서 바둑 두기(竹亭對棋圖)전곡(錢穀), 명나라, 종이에 채색전곡은 문징명에게 산수화를 배운 화가임고아라서 가난했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서야 그림을 공부를 시작했다고 함작품 속에서 두 선비가 바둑을 두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흰 돌과 검은 돌이 보여서 재미있었음정자를 빙 돌아 시냇물이 흐르고 주변의 대나무와 풀은 시원하게 그려져 있어서 사람들이 피서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줬음높은 바위산 앞에서 지팡이를 끌고 가는 선비(高岩曳杖圖)소미(邵彌), 명나라, 종이에 채색소미는 산수화와 인물화를 잘 그린 화가로, 명말청초에 활동했던 아홉 화가인 화중구우(畵中九友) 중 한 명임아까 설명을 안 했는데 동기창도 여기에 포함됨어쨌든 왼쪽 전체를 위아래로 가득 채운 바위 절벽에, 거칠고 벼락처럼 뒤틀린 나뭇가지가 펼쳐진 게 참 인상적이었음배를 멈추고 낚시줄 드리우기(停舟垂綸圖)관사(關思), 명나라, 비단에 채색관사는 그림과 글씨에 능숙했는데, 글씨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를 잘 다루고 그림은 산수화를 잘 그렸다고 함이 작품에서도 다양한 나무가 있는 바위에 낚싯배가 절반만 드러난 게 뭔가 느낌이 있네나무와 바위 자체도 잘 그려서 좋았음고목과 대나무와 돌(枯木竹石圖)정가수(程嘉燧), 명나라, 종이에 먹정가수는 명나라 말 가정(嘉定)에 살었던 네 명의 예술가인 가정사선생(嘉定四先生) 중 한 명으로, 산수, 대나무, 돌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함그의 주특기가 모두 다 이 그림에 들어가 있네먹을 잘 사용해서 돌을 강렬하게 그려낸 게 아주 마음에 듦솟아오른 나무도 몇 번의 붓질로 절묘하게 표현했고매화와 꿩(梅花野雉圖)주지면(周之冕), 명나라, 종이에 채색주지면은 화초를 잘 그린 사람으로, 꽃은 선으로 그리고 잎은 점으로 그리는 구화점엽파(鉤花點葉派)의 대표적인 화가라고 함작품 속 꿩은 붉은 얼굴과 깃털의 무늬 등 특징적인 요소들이 실감나게 표현돼서 참 마음에 들었음매화나무도 아름답게 잘 그려냈고 바위고 굵은 선으로 화폭에 담아냈지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제일 좋았음신선이 사는 누각(仙山樓閣圖)주랑(朱朗), 명나라, 종이에 채색주랑은 오 지역 출신인데, 문징명과 이웃 사이였기 때문에 그에게서 배운 꽃 그림으로 유명해졌다고 함오른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태양, 바다, 누각, 산이 그려져 있는데, 붉은 해가 빈 공간에 포인트를 주는 듯(아니면 내가 인주 자국을 잘못 봤을 수도 있고)멋지게 그려진 나무 사이에 화가가 누각을 올려놓았는데, 바로 옆에서 파도가 넘실거리니 참으로 신선이 사는 곳 같음그리고 산과 바위가 청록색으로 칠해져 있는 점이 눈에 띌 텐데, 이 작품 역시 청록색을 엷게 칠하는 소청록이 사용되었음소개한 작품들 말고도 보기 좋은 그림들이 많았는데 여기까지만 하겠음전시는 경기도박물관에서 3월 2일까지니까 원한다면 빨리 가서 보길 바람끝
작성자 : 후라이드치킨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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