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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 군대이야기 1 입대
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야기는 군대이야기 이며 그와 동시의 나의 투병일기이다.난 중학교때 부터 등이 굽어있다는걸 알게 되었다.그러나 이것을 병으로 인지하지는 못했다.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입학까지, 굽은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한적도 없었다.아프거나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내가 정상인인줄 알았다.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병무청에서 이런저런 검사를 받았고, 물론 엑스레이를 찍기도 했다그러나 당시 내 척추 엑스레이를 봐준 군의관인지 의사인지 뭔지모를 사람은 나의 척추를 보고 “정상” 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때도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최종적으로 나는 과체중으로 현역 2급을 받게되어 현역으로 입대하게 되었다.머리를 깍고102보충대로 입대를 했다.102보충대 안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닥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강한 등통증이 시작되었다.그렇게 3일을 보내고 난 뒤 12사단으로 배치가 되었다.12사단의 마크는 6명의 병사들이 모닥불을 쬐고있는 모양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줏어 들었다.훈련소에 들어가자마자 강한 장마가 찾아왔다.정말 거의 1달을 다 채울정도로 강한 비가 내렸었다.그렇게 나는 훈련소에서의 훈련들을 대부분 받지않고, 정신교육만 받았었다.그치지 않을것 같던 비가 드디어 그첬다. 그때가 정말 참 딱 타이밍 좋게 각개전투를 하는 주였다. 그래서 원래는 훈련소 생활중, 행군을 1번을 했었어야 했는데,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각개전투장으로 이동하는 행군이 나의 첫 행군이 되었다.처음으로 맨 군장. 내등에서는 정말 말도 못할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누구나가 다 이런줄 알았다. 다들 힘들어 보였으니까.그러나 누구나가 다 이런게 아니었다나만 특별히 아팠던 것이다.나는 척추뼈가 부숴지는것 같은 강한통증을 느끼고그대로 기절했다.그렇게 난 12사단 의무대대로 이송되었고그곳에서 깨어났다.앞으로 내 대부분의 군생활을 보낼곳12사단 의무대대.1화 끝.100퍼센트 chat gpt로 그려진 그림입니다.저는 그림을 1도 그릴줄 모르는 사람입니다.2화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Chat GPT) 군대이야기 2깨어나보니 내손에는 산소포화도를 재는 기기가 끼워저있었고, 그 옆에서 훈련소 중대장과 군의관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중대장과 군의관은 내 산소포화도가 정상이고, 숨쉬는게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 산소는 제대로 통화고 있다는둥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와중에 꾀병 아니냐는 소리도 했었던것 같다.일단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해서 환자복으로 겨우 환복하고 일어나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려고 등을 피려고 했으나 너무 큰 통증에 허리를 필수가 없었다그러자 군의병들이 나타나 나의 어꺠를 잡고 나의 척추를 강제로 피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때 정말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으나 그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마치 로봇과도 같았다그렇게 강제로 펴진 척추 사진을 보고, 군의관은 크게 문제는 없는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계속된 나의 통증호소로 인해 우선 입원을 하게 되었다.처음 들어간 입원실은 정말 희안한 곳이었다. 사방이 뻥 뚫려있고, 이곳저곳에 병원침대가 늘어서 있는, 병실보다는 환자들의 광장과도 같은 모습이었다내가 새로 입원하자, 주변 환자들은 나를 반갑게 반겨주었지만, 나는 큰 고통으로 인해 대답도 하지 못한채 끙끙 앓으며 잠에 빠저들어 버렷다. 이때, 링거로 2병의 진통제와, 여러알의 진통제를 섭취한 상태였다.다음날 아침, 인상이 매우 좋지 않은 간부가 소리를 지르며 환자들을 꺠웠다.다 처 일어나 나이론 새끼들아!그리고는 점호가 시작되는데, 자리에 없는 사람도 많았고, 그냥 누워서 하기도하고 하여튼 점호도 개판이었다. 나는 그냥 누워있었다. 그러나 간부는 그리 크게 신경쓰지 않고 대충대충 점호를 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그러고 나서는 뭘 하냐고? 그냥 논다. 티비도 보고 책도읽고 전화도하고, 그냥 그대로 계속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아픈사람들의 끙끙 거리는 소리와, 즐겁게 노는 환자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나에게는 굉장히 기괴한 소리로 들렸다.그렇게 놀다가 아침 10시가 되면, 각자 자기 과에 맞는 진료실로 이동을 한다. 그시간이 되면 기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고 모두들 말이 없어진다.마치 도축되기전의 소와 같은 상태같았다. 처음에는 몰랏지만, 진료를 받는다는건, 퇴원처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그들은 그 누구도 퇴원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진료시간이 지나면 떠날사람, 남을 사람이 결정되고, 살아남은 사랑믄 그대로 즐겁게 놀고, 퇴원당하게 된 사람들은 울적하게 짐을 싸고 나갈 준비를 했다.이렇게 하루하루 연명하며 퇴원 기간을 최대한 늘릴려는 사람들만 있던곳이 바로 의무대대였다.2화 끝.
작성자 : 티타늄맨고정닉
싱글벙글 조선총독부 역대 총독들 모음
(조선총독은 1대~9대까지 있었지만 사이토 마코토가 3대,5대를 중임했기에 실질적으로 8명이 있었습니다.)1대 데라우치 마사타케(재임 기간:1910.08.29. ~ 1916.10.14.) -1911년 조선병합의 공로로 백작위를 받았다.- 무단통치의 시작의 알린 총독이다.-그의 총독 시절에 행해진 무단통치들1. 헌병 경찰제 도입2. 조선인 태형령 집행3. 토지조사사업4. 회사령, 광업령, 어업령-이후 1916년 제18대 총리대신 취임-1919년 사망 (향년 67세) 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재임 기간:1916.10.14. ~ 1919.08.12.)- 3.1운동을 강경 진압한 총독이 바로 이놈이다.- 조선인 기독교도들을 학살한 제암리 학살사건도 이 하세가와 총독이 저질렀다.- 1916년 백작위를 받음- 이후 3.1운동이 일어난 책임을 물어 결국 1919년 해임되었다.- 1924년 사망 (향년 73세) 3대, 5대 사이토 마코토(재임 기간: 3대: 1919.08.12.~ 1927.04.04. 5대: 1929.08.17. ~ 1931.06.16.)-일제강점기가 35년인데 사이토 총독이 혼자서 10년을 차지한다. (거의 3분의 1 수준)-조선 총독 8명 중 유일한 해군 출신이다.- 문화통치의 시작을 알린 총독-문화통치 대표정책들1. 헌병 경찰제에서 보통 경찰제 도입2. 일본 교사, 공무원들의 제복과 칼 착용 금지3. 언론, 출판 자유 보장 (물론 독립 얘기 꺼내면 잡아갔다.)4. 친일파 대거 양성5. 조선인의 지방자치 참정권 부여- 1919년 서울역에서 독립단체 조선 노인 동맹 단 이었던 강우규 의사의 폭탄 투척으로 암살당할뻔한 적이 있다.- 1932년 30대 총리대신 취임- 이후 1936년 황도파 일본 청년 장교단들에게 암살당함 (2.26 사건)4대 야마나시 한조(재임 기간:1927.12.10. ~ 1929.08.17.)- 전임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의 문화통치를 그대로 위임받았다.- 근데 재임 기간을 보면 1년 8개월밖에 안 되는데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있다.1. 1928년 독립운동가 조명한 의사가 조선에서 히로히토 일왕의 장인을 독검으로 찔러버린 사건이 터짐2. 조선총독부 의옥 사건- 당시 한 미곡상이 경성에 쌀 거래소 설립을 허가해주는 대가로 야마나시 총독의 측근에게 당시 금액으로 5만 엔의 뇌물을 주었다가 발각된 사건이 벌어졌다. 이것을 조선총독부 의옥 사건이라고 한다.- 이 2가지의 사건으로 인해 그는 조선 총독 중 유일하게 ‘부정부패’로 해임된다. 이후 전임이었던 사이토 마코토가 5대 총독으로 재부임한다.- 당시 별명이 금권장군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부정부패가 굉장히 심했기 때문- 1944년 사망 (향년 80세)6대 우가키 가즈시게(재임 기간:1931.06.17. ~ 1936.08.04.)- 민족말살정책을 최초로 실시한 총독이다.- 하지만 조선총독부의 조직개편을 하였고 조선의 북쪽 지역에 공업화를 추진했다. (농업 진흥정책, 수력발전소 건설 등등)- 그 외에도 조선 농촌의 소작제 문제가 반일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파악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어느 정도 소작농들의 의사를 반영해주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한다.- 그 유명한 ‘내선일체’란 말이 바로 우가키 총독 때 만들어졌다.- ‘내선융화’라는 것도 있는데 일본에 있는 박문상에 이토히로부미와 이완용의 이름을 같이 넣었다.- 이후 중일전쟁이 터졌을 때 조선인들을 동원해 한반도를 전쟁기지로 만들었다.- 1932년 김구가 한인 애국단을 파견하여 우가키 총독을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실패- 2차대전 이후 미군에 체포되었으나 가벼운 처벌만 받고 출소한다.- 1953년 사망 (향년 87세)- 별명이 ‘원숭이’ 였다.7대 미나미 지로(재임 기간:1936.08.05. ~ 1942.05.28.)- 민족말살정책을 강화해서 황국 신민화 정책, 조선 위안부 정책, 일본식 성명 강요 등을 실시함- 미나미 총독은 역대 조선 총독 중 가장 악랄한 총독으로 유명하다. - 1936년 일장기 말소사건을 빌미로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 폐간시키려 했다.- 2차대전 이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고령으로 인해 1954년 가석방되었다.- 1955년 사망 (향년 81세) 8대 고이소 구니아키(재임 기간:1942.05.29. ~ 1944.07.21.)- 역시나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한 총독 중 한 명이다.- 일본식 성명 강요, 한국어, 한국사 교육 금지 등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였다.- 내선일체 강요, 학도지원병제도를 통해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갔다.- 1944년 제41대 총리대신 취임- 2차대전 이후 A급전범으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50년 감옥에서 식도암으로 사망 (향년 70세) 9대 아베 노부유키(재임 기간:1944.07.22. ~ 1945.09.28.)- 마지막 조선 총독이다.- 1939년 총리대신 취임- 재임 기간이 가장 짧지만, 전임들 못지않은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였다.- 1945년 총독직을 사임하고 미국의 아널드 소장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일본으로 철수하게 된다.- 1953년 사망 (향년 77세)
작성자 : dnjsxn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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