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에스터의 전작들을 소급해 볼 때 완벽히 통제된 공간과 상황 속에 인물을 봉인한 채, 공포감을 조성해 온 방식을 고수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에서는 '집'이라는 공간의 상징성과 필연적으로 맺어진 '가족'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유례 없이 고약한 하우스 호러를 구축했고, 에서는 동명의 축제를 모티브로 외지의 낯선 공동체에서 의식주가 통제된 채로 불가해한 전통 의례를 겪어내야 하는 한정된 상황이 주는 공포를 다뤘다. 한편, 의 미니어처나, 속 그림 표식은 인물들의 시한부적 운명을 암시하는 예언적 장치로 기능했다.
신작 역시 그러한 문법을 바탕으로 운용된다. 다만 이번엔 인물을 가두는 방식이 더 지독한 동시에 러프하다는 인상이 든다. , 의 경우는 어떠한 공간과 상황이 인물을 압도해가는 과정, 그리고 이에 잠식된 인물의 카오스를 차근차근 담는 데 주력했다면, 는 애초에 내면부터 온전히 통제된 한 사람을 비춘다. (소재 측면에서는 거역할 수도, 끝내 회피할 수도 없는 '핏줄'의 문제를 또 조명한다는 점에서 과 궤를 같이 하기도 한다.) 극중 '보'를 내내 짓누르는 그것은 어긋난 모성애와 학습된 죄의식 그리고 무력감이다. 보다 직관적인 암시에 바탕을 두었던 전작과 달리 더 은유적이고 불친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렇듯 내면에서 발한 트라우마가 현실 세계에서 (혹은 현실인지 공상인지 알 수도 없을 혼재되고 분열된 디오라마 속에서) 어떤 히스테리적 반응들을 동반하는지의 과정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감독의 전작 의 경우는 자명한 호러에 속하고, 그로테스크한 설정이 더 만연하며 노골적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성장 서사, 치유의 서사로 압축될 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리고 종국에는 왕관을 거머쥔 인물을 비추며 끝맺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한 일말의 희망마저 소거되어 있다. 이제 막 자궁 밖으로 나와 탯줄을 절단하려는 찰나, 영화는 다시 '보'의 머리채를 쥐고 다시 그 아득한 세계로 구겨 넣는다. 탈각의 시도를 하기도 하고, 회심의 반격을 가하기도 하지만 끝내 그는 '어머니'라는 불가항력적인 세계로부터 내내 탈주할 수 없는 거세된 남성이자, 연민에 빠진 유아이자 무력한 패잔병이 되고 만다.
호러의 총아답게 금번에도 아리 에스터는 거북하지만 동시에 생경한 방식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낸다. 한편, 극중 주인공 '보'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는 타락한 모성에 대한 반감과 죄책감 사이에 선 아들이자 유아기적 정서에 정체되어 있는 중년 남성을 그대로 체화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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