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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사권 논란’ 탄핵 심판에 영향?…“제한적” 우세
- dc official App- 심우정 尹석방 적법절차 따라 결정"탄핵사유 안돼"[앵커]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취소에 대한 즉시항고를 포기한 심우정 검찰총장이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입장을 밝혔습니다.심 총장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결정한 것이라며 탄핵 사유가 아니라고 했고 사퇴에도 선을 그었습니다.자세한 내용 취재기자 연결해 알아보겠습니다.조성흠 기자.[기자]네, 심우정 검찰총장은 오늘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와 즉시 항고 포기에 대한 입장을 밝혔습니다.심 총장이 이번 사안에 대해서 입장을 밝힌 건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이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를 인용한 지 3일 만입니다.심 총장은 우선 즉시항고 하지 않은 이유로 "기소 이후 피고인 신병에 관한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어서 그 결정을 존중한 것"이라며 "수사 과정과 절차에 적법성 의문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또, "즉시항고는 52년 전 유신헌법 시절 도입된 제도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보석과 구속집행정지는 두 차례 위헌 결정이 된 바 있다"고 덧붙였습니다.정치권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퇴와 탄핵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축했습니다.심 총장은 "수사팀과 대검 부장 회의 등 여러 의견을 종합해 적법절차 원칙 따라 소신껏 결정 내린 것인데, 그것이 사퇴, 탄핵 사유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그러면서 법원의 구속기간 산정 방식은 검찰과 법원 사이 오래 형성된 실무 관행과 맞지 않아 동의가 어렵고, 이러한 논란은 본안 재판서 적극 다투도록 지휘했다고 말했습니다.심 총장은 이번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공수처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기관의 책임을 따지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말을 아끼기도 했습니다. ㅋㅋㅋㅋ민좃한테 이제 안쪼는듯 대세가 바뀐거 아는거지
작성자 : ㅇㅇ고정닉
훌쩍훌쩍 '저는 Korea 에서 온 사람이에요'
라고 어떻게든 남한에 묻어가고 싶어하는해외 파견 북한 주민들의 설움탈북민1<콩고 외교관> : 그런데다가 어떤 경우도 있냐면, 초상휘장 이렇게 다 싣고 다닌다고 하는데MC : 배지 배지탈북민1 : 초상휘장 달고 다니잖아요. 그러면 주재국 사람들이 그래요탈북민1 : "마오 쩌둥? 레닌? 스탈린?" 이러면서 우리를 놀려요탈북민3<몰타 북한식당 종업원> : 놀리지~MC : 선생님(다른 외교관 출신)은 베트남에서 배지 하고 다니셨죠?탈북민2<베트남 외교관> : 처음에는 저도 하고 다녔어요. 모르고탈북민3 : 맞아요. 처음에는 모르고 하죠탈북민2 : 근데 베트남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거예요탈북민3 : 맞아탈북민2 : 그리고 어디 가면 불편한 거예요탈북민4<캄보디아 북한식당 종업원>: 맞아요 불편해탈북민2 : 외국인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면 코리아!라고 답했어요.탈북민4 : 저희도 저희도탈북민3 : 우리도 그랬어요탈북민2 : 굳이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물어보는 거예요탈북민4 : South? or North? 어우 계속 물어봐요탈북민2 : North라고 하면 "어유 너네 얼마나 힘드니 불쌍하다" 이래요탈북민3 : 미사일 얘기만 하고탈북민2 : South 하면 공짜로 맥주 사주는 거야탈북민4 : 맞아요 맞아요 진짜탈북민3 : 싸이 강남스타일 얘기하고탈북민2 : North라 그러면 사주긴 뭐, 안 사주고 "야~ 불쌍하구나" 이러고탈북민3 : 그렇지MC : 누가 그런다구요?탈북민3 : 인종차별탈북민2 : 베트남 일반 국민들이 그러는 거예요. 현지인들탈북민4 : 현지인들이MC : 진짜?탈북민4 : 진짜예요탈북민4 : 저희 캄보디아도 그랬어요. 단체로 외출을 나간단 말이에요. 나갈 때 애들이 원래 배지를 달아야 하는데 다들 감춰요. 다 떼서 나가는데탈북민3 : 빼지~탈북민4 : 막 오면서 꼬레아 꼬레아 하면서 찾는단 말이에요. 그러면 "어 우리 꼬레아~"라고 그러면 (캄보디아인이 묻길)"그래? South? or North?" 이러면탈북민4 : 우리?! 야 코리아 이즈 원!! 코리아 이즈 원!!MC : ㅋㅋㅋㅋㅋㅋㅋㅋㅋ탈북민3 : 우리랑 똑같네! 우리도 이랬어 우리도탈북민4 : North라 그러면 딱 그 자리에서 "아줌마 안녕" 이래요탈북민3 : 맞아탈북민4 : 만약에 내가 South라고 하잖아요? 그럼 "언니~"라고 하거든요탈북민4 : 근데 코리아 이즈 원 하면 "아줌마!"MC : 사우스 코리아는 굳이 나가서 코리아 이즈 원이라고 안 하지탈북민3 : 맞아요 이번엔 해외 파견 노동자의 증언인데 누가 봐도 북한 사람이라 한국인인 척 못하니깐 대접이 더 박하다 함MC : MZ세대 젊은 세대로서 해외에서 노동할 때, 뭐 저희는 현타라고 합니다만. 어떤 순간에 가장 '야~ 이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드는지탈북민5<러시아 파견 노동자/군인 신분> : 북한 사람들이 러시아에선 가장 급수가 낮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식당을 가잖아요. 북한 사람들 들어가면 (종업원이)한참 있다 옵니다탈북민5 : 우리가 먼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 사람이나 중국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한테 먼저 가요MC : 팁 많이 주고 이러니깐…탈북민5 : 팁보다도 그 나라탈북민6 : 국력에 따른MC : 국력을 보는 거죠탈북민5 : 그렇죠. 우리한테는 맨마지막에 와요. 그런 거 볼 때 단도직입적으로 '이게 뭐야? 우리 북한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수모를 받고 있지 내가?'탈북민5 : 또 한 가지 팩트가 있는 게, 경찰들이 한국 사람 보잖아요? 경례를 해요 경례. 근데 북한 사람은 여권을 보면요, 어떻게서든 트집을 잡아가지고 돈을 뺏으려고 합니다탈북민5 : "너넨 왜 우리 북조선 사람들을 인종차별 하냐?" / "너는 북조선 사람 아니야. 얘는 한국 사람이야" / "그게 뭔데?" / "얘는 잘 살아, 너넨 못 살아"정은이가 푸틴이랑 만나서 똥꼬쇼 해도 현지 인식은 북한보다 한국에 훨씬 호의적임. 사실 이건 친북 국가 모두에게 해당함화나서 책상 쾅쾅 하면서 뭐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음 암튼 많이 서럽고 속상해 하는 표정이었음MC : 한국인에 질투 같은 건 못 느껴요?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거지 취급 당한다?!탈북민5 : 아니요MC : 부러워하겠죠탈북민5 : 한국에 대한 그런 부러움? '아 나도 한국 사람 되고 싶다'MC : 말도 똑같은데탈북민4 : 그래, 말도 똑같은데탈북민5 : (러시아 경찰이 하는 말)"너는 왜 한국 사람으로 안 태어났니?"MC : 그걸 어떻게 해탈북민5 : "이제라도 한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니?"근데 다른 영상에서 보니깐 한국에서 살았던 인도인도 북한 사람 만나니깐 저런 식으로 긁으면서 계몽(?)시키려 했다 함탈북민5 :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민족의 아픔? 수치스러움?MC : 수치스럽죠탈북민5 : 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북과 남으로 갈린 것도 가슴 아픈데, 그때의 분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MC : 다들 그랬을 거예요탈북민7<해외 파견 노동자의 관리자> : 저도 중동에서 돌아다닐 때 노스 코리안이란 소리를 안 했어요. 그냥 코리안이라 했거든요탈북민4 : 나랑 똑같아ㅋㅋ 코리아 이즈 원이잖아~탈북민7 : 일단 무시는 안 당합니다MC : ㅋㅋㅋㅋㅋ거짓말 한 건 아니니깐~탈북민7 : 어차피 북한 노동자는 이유 하나로, 불쌍한 취급 당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 같아요해외 노동자들 다 모여 있는 건설 현장에서도 북한 사람들만 스마트폰 못 쓰고 노동 강도 미쳤는데 돈도 못 받고 그래서 현지에서도 불쌍한 취급 받는다 함탈북민7 : 대한민국 여권 하나 들고, 저는 북한 여권도 소지했던 사람인데 대해주는 태도가 이미 다르거든요MC : 아 그래요?탈북민7 : 확실하게 차이가 나죠이건 탈북민들 모두가 입 모아서 하는 말. 한국 자체도 여권 파워가 센데, 북한 여권 쓰다가(혹은 탈북할 때 신분증 없다가) 한국 여권 내밀면 프리패스라서 쾌감 장난 아니라고 함탈북민7 : 그리고 또 오만에도, 중동에도 케이팝의 열기가 정말 엄~청납니다! 현지 소녀들 보면 한국말을 엄청 잘합니다. 특히 한국말 어디서 배웠냐 그러면 "BTS 노래 듣다가 배웠다" 막 이런 소리를 하거든요탈북민7 : 뭐 이런 것들을 보면서 북한 사람들 하고 한국 사람들 하고 경제적 수준 차이가 너무나도 넘사벽이니깐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이렇기 때문에 해외 나가면 현실을 깨닫고 북한 국적을 숨긴다고 함. 특히 저 배지는 모두가 입을 모아서 떼고 다닌다고ㅋㅋ 유학생이든 외교관이든 예외 없음이런 거 겪으면 김씨일가 충성 세뇌받은 엘리트들도현타와서 탈북 마려워지긴 할 듯우리가 나라꼬라지가 막장이네 뭐네 그래도한국 여권 갖고 해외 나가면 일단 무시당하는 일은 거의 없는데북한 여권 들고 다니면 이래저래 인정도 못 받고 설움 엄청날 듯
작성자 : 코드치기귀찮어고정닉
Vickers Brothers: 대기업이 만들면 다릅니다
[시리즈] 영국 전략폭격기 개발사 · 영국 전략폭격기의 역사: 꽤나 긴 서론 · Handley Page Bomber: 전략폭격기의 시초 · 참고용: 영국 공군의 중폭격기 계보 못생긴 헨들리 페이지 폭격기들을 대체한 것은 더 못생긴 빅커스 비미(Vickers Vimy)였다. 영국군은 항공기 농가 살리기 프로젝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성능, 같은 목적으로 개발된 항공기더라도 꼭 다른 회사에서 여러 가지 사양을 도입했는데,냉전기 영국군의 V-폭격기들이 대표적으로 돈이 썩어넘쳤는지 셋다 각기 다른 제작사 (빅커스, 아브로, 헨들리 페이지)에서 만들었다. 굳이 이럴 이유가 있나...? 여튼, 그래서 이 빅커스 비미 또한 1917년에 영국군이 헨들리 페이지 V/1500과 함께 기존에 사용되던 헨들리 페이지 O/100을 대체할 목적으로 빅커스 사에다가 개발을 의뢰하여 만들어졌다 빅커스...헨들리 페이지가 항공기 하나만 파는 항덕이었다면 빅커스는 온갖걸 다 팔아재끼는 재벌이었다 1828년, 철도 산업에 돈을 투자했다 대박을 친 성공한 제분업자이자 셰필드 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이었던 에드워드 빅커스에 의해 설립된 빅커스는 처음에는 셰필드에 위치한 제철소를 주축으로 성장했지만, 그의 아들들인 토마스 빅커스와 엘버트 빅커스가 Vickers, Sons & Company로 회사명을 변경한 이후 어마어마하게 커져서 영국 굴지의 대기업이 되었다. 당시 빅커스는 정말 안만드는 제품이 없었는데, 대표적인 생산품만 살펴보자면 '폼폼 포'로 알려진 QF 2파운더 대공속사포 하이럼 맥심의 회사를 1897년에 인수한 이후 그의 발명품이었던 맥심 중기관총의 무게를 줄이는 (27kg->20kg) 등의 개량을 거쳐 1912년에 출시되어 1968년까지 영연방에서 절찬리에 사용되었던 서부전선 독일군 분쇄기, 빅커스 중기관총같은 경화기/중화기들을 비롯하여 2차대전기에 사용된 마틸다/발렌타인 보병전차, 현재 영국군의 주력전차인 첼린저-1/2도 빅커스사의 작품이고 빅커스 발리언트나 VC-10같은 비행기도 만들었으며, 1910년대 당시 세계 최초의 고속전함이었던 퀸 엘리자베스급의 염가형으로 건조되었으나 전함 주제에 최고속도 21노트(38km)라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스팩과 부실한 대공성능으로 인해 2차대전 당시에는 대놓고 계륵으로 취급받은 영국군 전함 잔혹사의 끝판왕, 리벤지급 전함과 애초에 태생부터가 몰락하기 시작한 영국의 사정으로 14인치 함포를 탑재한 조약형 전함으로 설계되어 야마토급이나 아이오와급같은 타국의 전함들에 비해 약간...아니 많이 딸리는 성능을 가졌지만 이를 영국 해군의 맨파워로 이겨내며 영국군의 마지막 전함으로 역사에 남은 킹 조지 5세급,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해군이 울부짖던 함대결전을 위해 전쟁 마지막까지 구레나 남양군도같은 후방에 숨어서 꿀빨기 바빴던 야마토같은 최신 전함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딸리는 순양전함이라는 태생과 건조된지 30년이 넘어가는 구식 퇴물전함이라는 이유로 함대결전에도 끼지 못하고 구축함들과 함께 끝까지 태평양에서 미군과 싸우다가 4척 모두 장렬하게 가라앉은, 일본 제국해군의 진정한 수훈함이자 대들보, 콩고급 순양전함 천황의 비상금까지 싹싹 털어서 구매한 이후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기함으로써 1905년 5월에 일어난 쓰시마 해전에 참전, 교전 중 러시아군의 집중사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격침당하지 않고 버틴 덕에 러일전쟁 승리의 주역이 되었지만 러일전쟁때 전함의 모든 운을 끌어다 쓴건지 전쟁 이후에는 전함이 낼수있는 온갖 사건사고 (침몰 1회 좌초 1회 침수사고 다수)를 내고 다니다가 워싱턴 군축조약에 의해 1923년 9월 퇴역이 결정되어 요코스카 앞바다에 콘크리트로 박제당했고,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에는 상부구조물과 무장들이 전부 뜯겨나간 채로 미군들의 나이트클럽과 수족관으로 사용되는 등 온갖 치욕이란 치욕은 다 겪었지만 그래도 전노급 전함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아 살아남는게 강한 것이다를 몸소 보여준 시키시마급 전함 미카사를 건조한 것도 빅커스였다. 아무튼, 이런 개짱짱기업 빅커스가 만든 빅커스 비미는 HP사의 폭격기들보단 좀 작았는데, 일단 똑같이 1918년에 배치된 O/400과 비교하면 동체 길이부터가 19m VS 13m으로 더 작았고 익면적도 O/400에 비해 20% 정도 줄었으며 최대이륙중량(MTOW)도 2톤가량 차이났다. 하지만 이렇게 작아진 동체에다 O/400에도 쓰인 롤스로이스제 이글 VIII엔진을 2개씩 박아넣어서 최대속도도 더 빨랐고, 폭장량도 200kg가량 많았다. 게다가 전투행동반경도 1400km으로 O/400보다 300km이나 더 길었다. 물론 얘도 O/100과 동시대의 항공기였던 만큼 나무와 캔버스가 주재료였고(기수부는 알루미늄이었다) 기체 경량화 때문에 기총도 2정밖에 없었으며, 실용상승한도 또한 2.1km 가량으로 낮았지만 일단 폭탄이 많이 들어가고 멀리 날잖아? 게다가 어뢰까지 탑재가 가능했다. 여러모로 기존에 쓰던 O/100은 물론 V/1500보다 전반적인 성능이 뛰어났지만, 생산라인에 누가 사보타지라도 했던건지 생산속도가 진짜 느려도 너무 느렸다. 1917년 7월에 개발을 요구받은 빅커스 사는 1917년 11월에 초도비행을 시작해서 1918년 10월에 프로토타입 4기를 제작했지만 마음이 급했던 영국군은 1918년 3월 26일, 그러니까 아직 시험비행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비미 폭격기 150대를 일시불로 질렀고, 1918년 5월에는 1000대를 추가로 주문했다. 근데 문제는...빅커스가 1918년 11월까지 생산한 폭격기가 고작 13대 뿐이었다는 사실과, 비미는 시제기 4대 중에서 2대가 추락했을 정도로 꽤나 수정해야만 하는 항목들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일단 엔진부터 하스피노-수이자 8(이탈리아)-> Salmson 성형 엔진(프랑스)-> 선빔 아프리디 수냉식 피스톤 엔진(영국)-> 피아트 A.12 피스톤 엔진(이탈리아)-> 롤스로이스 이글 VIII 엔진(영국)으로 개발중에 무려 5번이 바뀌었는데, 이는 전쟁중이었던 만큼 엔진 공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결국 1차대전 종전까지 비미는 고작 3대만이 영국군에 인도되었고, 전쟁 이후 RAF의 규모가 줄어듦에 따라 비미도 계획된 수량의 90%가 취소되어 겨우 110대만이 생산되었다. 비미가 최초로 전력화된 부대는 이집트에 주둔하던 제 58비행단이었다. 1919년 7월에 이집트에 배치된 이들은 배치되자마자 Handley Page 0/400을 빠르게 대체했고, 1920년대 중반 영국 공군의 주력 쌍발 중폭격기로 운용되었다. 하지만 뭐 전간기에 배치된 무기들이 으레 그렇듯 빅커스 비미는 이렇다할 활약 없이 1925년에 폭격 임무에서 배제되었고, 1938년까지 표적기로 쓰이다 퇴역한다. 빅커스 비미 또한 여태껏 소개했던 무기들과 비슷하게 여러가지 기록들을 세웠는데, 1919년에는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고, 1926년 영국 총파업 당시에는 폭탄 대신 신문들을 싣고 나르기도 했으며, 카이로~바그다드를 오가며 우편물들을 배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꽤 특이한 파생형들도 존재했으니... 초창기의 에어 앰뷸런스였던 비미-앰뷸런스가 비미 폭격기를 기반으로 5대가 개조되어 영국군에 배치되었고, 마찬가지로 55대의 비미 폭격기들이 병력 수송을 위해 빅커스 버논이라는 이름으로 개조되어 영군 공군에 인도되었다. 빅커스 비미의 다른 파생형이라 하면, 이른바 빅커스-커머셜이라 불린 여객기가 있었는데, 빅커스 비미를 기반으로 하여 가문비나무 합판으로 만든 대형 동체를 설치한 버전으로, 1919년에 개발되었다. 이 파생형의 큰손은 중화민국 정부였다. 1919년 100대에 이르는 비미 커머셜을 한번에 주문, 이후 1920년에 43대가 제작되어 40대가 인도되었지만 대부분은 혼란스러운 중국의 내부 사정으로 인해 사용되지 않은 채 상자에 담겨 있었고, 오직 7대 가량의 소수만이 운용되었다. 이후 이들은 중국사의 수많은 내전들 중 하나인 제 2차 직예-봉천 전쟁이 발발하자 폭격기로 개조되어 직예군의 폭격기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전쟁 중 이들은 저공 폭격 전술을 사용했기에 (폭격조준기 같은게 여객기에 달려있을리 없었으니까) 처음에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직예 군벌의 공군 참모총장, 조불리(趙步壢)가 직접 폭격기를 이끌고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전쟁 중반, 폭격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조 장군의 항공기가 대공포화에 피격되어 격추당하면서 폭격기들은 대공포를 피하기 위해 고고도에서 폭격을 수행했고, 이후에는 딱히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직봉전쟁 이후 모든 항공기는 군벌의 손에 넘어갔고, 이들은 제1중폭격기단을 창설했으나... 곧이어 만주사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들은 모두 일본군에 의해 노획되었고, 일본군은 이를 곧 폐기시켜버렸다. 이렇게 빅커스 비미의 활약상은 막을 내린다. 비미는 전작들보다 더 빠르고 멀리 날 수 있었기에 성능 자체만 보면 꽤나 괜찮은 폭격기였다. 그러나 개발 자체가 1917년에 시작된 탓에 1차대전에서는 활약조차 할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항공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순식간에 퇴물로 전락해버렸다. 실제로 비미가 영국군에서 폭격기로써 운용된 것은 1919년부터 1925년까지 단 7년에 불과했으니 뭐... 여러모로 시대를 잘못 타고난 무기였던 셈 이런 빅커스 비미를 대체한 것은 빅커스 비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빅커스 버지니아(Vickers Virginia)였다. 영국군은 1920년, 그러니까 빅커스 비미가 배치된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빅커스 사에다 신규 폭격기 개발을 요청했고, 빅커스는 이미 쓰고있던 비미 플랫폼을 기반으로 1922년에 시제기를 완성시켰다 버지니아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비미와 비슷했지만, 날개를 6m, 동체 길이를 3m가량 연장시키고 꼬리날개 끝에 기관총좌를 설치했으며, 전방 기총사수의 위치를 조금 낮춰서 전작에서 지적받은 조종사의 시야각 문제를 해결했다. 동체와 날개가 길어진 만큼 무게도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늘어난 무게로 인해 둔해진 기동성을 보강하기 위해 기존에 사용되던 300마력짜리 롤스로이스 이글 엔진에서 580마력을 내는 레이피어 라이언 엔진으로 교체했고, 기존에 운용하던 폭격기들의 동체가 기술의 한계로 인해 나무와 철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버지니아는 알루미늄과 듀랄루민으로 동체를 제작했다. 이렇게 완성된 빅커스 버지니아는 기존에 써먹던 폭격기를 재탕한것을 감안한다면 당시 기준으로는 꽤나 만족스러운 성능을 보여줬다. 일단 엔진마력이 2배 가까이 늘어난 덕분에 최고속도가 160km에서 174km으로 증가했고, 최대상승한도는 2배나 높아져서 버지니아는 최대 4km 상공에서도 원활한 작전이 가능했다. 다만, 아무래도 기체 자체가 1917년에 개발된 빅커스 비미를 기반으로 설계되었던 만큼 폭장량이나 작전반경은 기존과 별차이가 없었고, 방어무장 또한 기존에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던 7.7mm 루이스 경기관총 3정이 끝이었다. 이런 어중간한 스팩으로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던 시기인 전간기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지...만? 1머전의 후폭풍과 곧이어 불어닥친 대공황 덕분에 경제가 개박살이 나버린 영국의 사정으로 인해 빅커스 버지니아는 2차대전 이후인 1941년까지 퇴역하지 못하고 영국 공군에서 계속 쓰였다..... 그래도 1930년대부터는 폭격 임무는 후계기한테 넘기고 공수부대 훈련용이나 신기술 테스트베드로 굴려졌는데, 기체 자체에는 큰 이상이 없었지만 노후화된 기체를 국군의 F-5마냥 꾸역꾸역 운용했던 탓에 전체 생산분 124기 가운데 무려 81기 손실, 손실률 65%라는 신기록을 세워버리고 퇴역했다. 참고로 빅커스 버지니아 또한 방어무장을 죄다 제거하고 동체를 유선형으로 바꾼 빅커스 빅토리아라는 수송기 파생형이 존재했는데, 최대 22명의 병사들을 수송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총 97기가 생산되어 영국 공군에 배치된 빅토리아는 1935년에 엔진을 기존에 쓰던 600마력짜리에서 650마력짜리 페가수스 엔진으로 교체하고 기골 강화, 꼬리바퀴와 브레이크 장착, 폭격용 조준기와 파일런 설치 등의 개조를 거친 빅커스 발렌티아(Vickers Valentina)로 개량되었고, 이들은 그래도 1941년에는 퇴역한 버지니아와는 달리 2차세계대전 종전 직전인 1944년까지 마르고 닳도록 쓰이면서 영국군을 수송했다. 여담으로, 폭탄창을 외부에 설치하는 개조를 받았기에 분명히 공식적으로는 수송기였지만 1톤가량의 폭탄을 탑재할 수 있어서 2머전 초반인 1940년부터 1941년까지 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의 폭격기로써 운용되었다. 근데 뭐 당연하게도 별다른 전과는 없었다고.... 다음편에 계속....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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